여성 청결제의 숨겨진 비밀
‘그곳’에서 라벤더 향이 나야 하는 건 어불성설. 여성 청결제의 목적은 외음부 세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작은 속옷에 묻어난 분비물이었다. 불쾌한 냄새나 가려운 증상은 없었지만 팬티 라이너의 방해 없이 순면 속옷의 보드라운 촉감을 느끼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광고에 혹해 구입한 라벤더 향 여성 청결제는 향의 흔적만 남길 뿐 근본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분비물의 양이 늘었다면 기분 탓일까?
무지하던 내가 뒤늦게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질 자체가 자정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AI 기능이 추가된 로봇 청소기 이야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질은 억지로 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청결 기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와! 내 몸에 이토록 놀라운 기능이 있을 줄이야). 투명한 냉 같은 분비물이 있거나 시큼한 냄새가 곧 질염의 시그널이 아니며, 오히려 Y존은 자주 씻을수록 점막을 자극해 역효과다. Y존은 산성을 유지해야 해로운 균이 생겼을 때 맞서 싸울 수 있는 락토바실러스균이 보존되는데, 이는 곧 튼튼한 장벽을 이루는 환경을 만든다. 물로만 닦아내도 충분한 Y존을 알칼리성 비누(시중에 판매하는 일반 비누는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한다)나 인공 향료로 가득한 여성 청결제로 부지런히 닦을수록 장벽은 방패를 뺏긴 병사처럼 하염없이 연약해질 뿐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분비물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거나 치즈처럼 덩어리진 이상 징후가 목격된다면? 질염, 심각하게는 골반염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 무조건 산부인과로 직진할 것.
여성 청결제의 또 다른 이름은 ‘외음부 세정제’다. 다시 말해 질 안쪽까지 세정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여성 생식기에서 가장 돌출된 외음부는 외부 물질의 침투를 막는 진피층이 없고 각질층도 아주 얇은 데다 습도가 높아 쉽게 민감해진다. 그리하여 얼굴 전용 폼 클렌저처럼 Y존을 위한 전용 세정제가 탄생한 것이다. 분비물이 많은 배란기, 생리 직후, 여름철 땀과 습기로 불쾌할 때, 수영장이나 사우나처럼 공공시설 이용 직후, 성관계 후 등 필요와 목적에 따라 하루에 한 번 사용으로 충분하다. 신체 부위를 통틀어 화학 성분의 흡수율이 높기에 여성 청결제는 pH 밸런스를 약산성으로 맞춰주는 기본 역할만 수행해도 합격. 그러니 무향, 무취여도 두 팔 벌려 반겨주자. 여기에 합성 보존제, 인공 향료 성분을 과하게 함유한 건 아닌지 제품 뒷면의 전 성분 표시를 주도면밀하게 검토하는 자세는 필수다. 그마저도 번거롭다면? <보그> 뷰티팀의 생생한 후기를 적극 참고하길.
(위쪽 사진 위부터 순서대로)궁중비책 ‘수딩 센서티브 워시’ 물보다 쫀득하고 에센스보다 묽은 제형이 피부에 부드럽게 닿는다. 두세 번 펌핑으로 고운 거품이 형성되고 쑥, 구절초, 익모초의 약초 삼총사가 Y존을 진정시키며 뽀득뽀득 청결한 세정을 도와준다.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만 유독 건조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200ml, 1만8,000원)
아이소이 ‘시크릿 케어’ 화학 살균제 대신 천연 발효 젖산을, 인공 향료 대신 진귀한 불가리아 정부 공인 로즈 오일을 아낌없이 넣었다. 거품이 나지 않는 세럼 타입으로 손바닥에 덜어 외음부에 도포한 뒤 미온수로 씻어낸다.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은 없지만 3주 정도 사용해보면 높은 가격에 수긍이 간다. (50ml, 7만원)
알롱 ‘인티메이트 클렌저’ 왁싱 전문 브랜드에서 만든 세정제답게 세련된 접근법이 눈에 띈다.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젤 제형과 향. 임신 중일 때나 아이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축축한 물기 가득한 욕실에서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무광 패키지도 합격점. (200ml, 1만9,000원)
질경이 ‘2X 이너밸런스’ 탐폰이 떠오르는 위생적인 일회용기가 특징. 브라질 고원지대에서 채집한 그린 프로폴리스 추출물과 귀한 백미꽃 추출물, 오렌지 껍질 오일 함유로 일반 세정제가 닿기 힘든 부위까지 관리되니 외음부가 호사하는 느낌이다. 젤 제형을 외음부에 도포한 뒤 마사지 후 미온수로 닦아내면 찝찝함은 사라지고 촉촉함만 남는다. 아쉬운 점은 시큼한 향이지만, 인공 향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2g 3개입, 3만2,000원)
이브 ‘이브 워시’ 이브는 콘돔, 생리컵을 생산하며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청소년 피임권’, ‘질의 연대’ 캠페인을 펼치는 등 이력이 독특한 브랜드다. 솔직함을 내세워 제품 뒷면에 적힌 전 성분 역시 여덟 가지뿐. 전체 성분의 98.9%는 태생부터 남다른 유기농으로 합성 계면활성제 없이 두 달간 숙성한 원료를 사용했다. 사용하는 내내 고소한 향이 났는데 사탕수수에서 얻은 결정인 흑갈색 당밀이었다. (200ml, 2만6,900원)
에이치시크릿 ‘나로우 에센스’ 침대 옆에 두고 자기 전에 외음부에 한 방울 떨어뜨려 흡수시키는 에센스 타입. 동봉된 일회용 항균 스포이트를 활용하면 더 안심이다. 끈적임 없이 매트한 프라이머를 바른 것처럼 깔끔하게 흡수된다. FDA로부터 질염의 원인인 칸디다균, 가드네렐라균, 황색포도상구균을 99% 이상 제거하는 효과를 인증받았다. 항균 효과에 탄력, 윤기까지 놓치고 싶지 않다면 사용해보길. (30ml, 15만원)
마녀공장 ‘모이스트 플로랄 페미닌 워시 오프 젤’ 물 없이 사용하는 손 세정제처럼 외음부에 로션처럼 바르고 티슈로 쓱 닦아내면 된다. 특허받은 대추나무 잎 추출물, 다시마 추출물이 자극 없이 항균, 탈취를 책임진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티슈보다 경제적이며 촉촉한 마무리는 칭찬받아 마땅하다.(80ml, 1만8,000원)
미스미즈 ‘이너 리프레싱 워시’ 비데를 사용한 것처럼 속 시원한 세정이 필요할 때 손이 간다. 합성 계면활성제, 인공 향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에코서트에서 인증받은 유기농 황련, 감초, 병풀 추출물을 펌프 용기에 고스란히 넣었다. 샤워할 때 양손으로 용기 뒷부분을 꾹 눌러 분사하는 방식으로 시원하게 내뿜는 천연 항균수가 씻는 즐거움마저 선사한다. (50ml 2개입, 1만원)
산타마리아노벨라 ‘데테젠떼 인티모’ 피부 진정에 즉효인 금잔화 추출물과 알로에 젤 성분으로 보습에 신경 썼다. 꽉 끼는 청바지 혹은 팬티스타킹 때문에 Y존이 유독 압박당한 날 적극 추천한다. 소량의 향료를 사용했지만 인위적이지 않아 상쾌하고 스트레스가 즉시 완화된다. (250ml, 7만3,000원)
라포뮬 ‘허브 페미닌 클렌징 티슈’ 얼굴에 붙이는 시트 마스크처럼 대범한 크기의 티슈로 장시간 외출 시 요긴하게 쓰인다. 외음부에만 쓰기 아까울 만큼 부드럽고 도톰한 순면 티슈는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한 팩 안에 세 장이 들어 있어 외출할 때나 생리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쑥과 페퍼민트 오일은 그날의 불쾌함마저 잠재운다. (5팩, 1만1,000원)
- 뷰티 에디터
- 우주연
- 포토그래퍼
- 이신구
- 세트
- 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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