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작사, 그 AI 작곡
가상 악기와 플랫폼의 등장이 빌리 아일리시를 지구 스타로 만들었다면, 인공지능은 음악 생산을 본질적으로 바꾼다.
음악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는 초보자가 재미 삼아 만든 음악부터 프로 뮤지션이 스케치만 한 데모곡까지 다양한 음악이 있다. 사운드클라우드에서는 음악 중간에 ‘이 부분 아주 좋은데!’ 같은 코멘트(댓글)를 달 수 있는데, 낯선 곡에 대한 댓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플로우 뮤직(Flow Music)이 2016년에 발표한 ‘Daddy’s Car’와 ‘The Ballad of Mr. Shadow’의 코멘트는 특별한 재미를 준다. 수많은 사람이 거의 같은 댓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맙소사, 인공지능이 해냈네!”
플로우 뮤직은 소니의 딥러닝 연구소 계정으로, ‘플로우 머신’이라는 인공지능에 비틀스 음악을 토대로 수만 히트곡을 분석시켜 새로운 음악을 만들게 했다. 그 결과가 ‘Daddy’s Car’다. 얼핏 들으면 비틀스의 숨은 곡처럼 들린다. 플로우 머신이 비틀스 커버 밴드 같다면 아이바(AIVA: Artificial Intelligence Virtual Artist)는 한스 짐머의 인공지능 버전일 것이다. 프랑스 음악저작권협회에도 등록된 아이바는 게임이나 영화의 스코어 뮤직을 만든다.
인공지능의 창의성 이슈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2012년 7월, 1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런던교향악단은 이아모스(Iamus)라는 인공지능이 작곡한 교향곡 ‘심연 속으로(Transits-into an Abyss)’를 연주했다. 연주 당시 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음악은 인간의 영역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음악 창작에 과학기술을 접목하려는 노력은 사실은 굉장히 오래되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2악장(Piano Sonata No.11 k.331 2nd Movement)은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나온 합을 구해 숫자에 따라 음표를 배열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또한 난수표를 활용한 하이든, 황금비를 활용한 바흐 등 고전음악의 선구자들은 음악에 수학적 이론을 접목하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가 발명된 1950년대부터 컴퓨팅 작곡은 본격화되었다. 일리노이대학의 일리악(Illiac)은 16세기 음악을 토대로 현악 사중주를 작곡했고, 1980년대 이후엔 바흐 스타일의 음악을 만드는 전문가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1990년대에는 데이비드 보위가 실리콘밸리의 회사와 함께 버베사이저(Verbasizer)라는 작사용 인공지능을 만들기도 했다.
21세기의 인공지능은 더 똑똑해졌다. 2010년에 싱글을 발표한 에밀리 하웰(Emily Howell)은 고전음악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창조한 인공지능이다. 현재는 아이바뿐 아니라 앰퍼 뮤직(Amper Music), 에크릿 뮤직(Ecrett Music), 험탭(Humtap), 아마데우스 코드(Amadeus Code) 같은 작곡 인공지능이 다수 존재한다. 이 중 험탭은 상당히 괜찮은, 그러니까 듣기 좋은 음악 인공지능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인공지능은 일반인들도 정기 결제로 사용할 수 있다.
일반 산업과 마찬가지로 음악 산업 역시 생산-유통-판매의 구조다. 19세기 말부터 최근 21세기까지 이뤄진 기술 발전이 음악 산업의 토대를 구성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음악 산업의 주요 이슈는 모두 유통과 판매 단계에 집중되었다. 실연에서 레코딩(음반)으로, 음반에서 음원으로,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음악의 유통 구조를 바꾸면서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물론 전기와 컴퓨터, 통신 등 새로운 기술이 음악의 생산 단계에 개입하면서 새로운 사운드와 신종 장르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규모 산업적인 변화를 이끈 것은 유통의 혁신이었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지난 10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은 음악 생산 부문에서 본질적 변화를 야기한다.
언급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모두 음악 창작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프로그램인데, 누구나 구독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이바는 게임과 영화 산업에서 비중이 더 커지는 스코어 뮤직의 생산성을 높이고, 앰퍼 뮤직은 팟캐스트나 유튜브 영상에 필요한 음악을 만들어준다. 특히 아이바는 작곡가가 만든 데모곡을 원하는 버전으로 편곡하는 것을 비롯해 적극적으로 판매도 지원한다. 인공지능으로 만든 음악의 저작권은 저작권자에게 귀속되어 수익성까지 보장하는 것이다.
수년 전만 해도 신기함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인공지능 작곡’은 현재 가장 예민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핵심은 인공지능의 음악이 인간적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것은 인간성을 규정하는 철학적, 신학적 문제로도 비화된다. 영혼과 감정을 인간성의 전제로 삼을 때 인공지능이 창조하는 감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사례로 새삼 깨닫는 것은 질문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음악에서 인공지능은 감각의 문제라기보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문제다. 이것은 네트워크 환경 아래에서 음악이 콘텐츠 산업의 한 분야로 귀속되고, 콘텐츠 산업의 구조가 플랫폼 중심으로 바뀌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슈다.
2019년 기준으로 스포티파이의 전체 사용자는 2억7,100만 명이고 애플 뮤직은 6,000만 명이다. 아마존 뮤직은 5,500만 명, 텐센트 뮤직은 6억6,1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무엇보다 유튜브 뮤직 사용자는 10억 명으로 압도적이다. 70억 세계 인구 중 30% 정도의 인구가 단 몇 개의 플랫폼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에 신곡 수백 곡이 쏟아져 나온다.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 심지어 스마트폰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가상 악기 스테이션 덕분에 음악을 만들고 발표하는 진입 장벽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야말로 이런 환경 변화를 상징하는 아티스트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이런 상황은 타율, 즉 효율성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기업이나 아티스트가 생산하는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문제는 최적화라는 문제로 재정의된다.
한스 짐머 같은 거물급 작곡자가 영화나 게임에 사용되는 스코어를 작곡하는 데에는 최소 6개월의 시간과 수십만 달러가 요구된다. 아이바 같은 인공지능은 그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물론 누구나 한스 짐머를 기용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이런 비교가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인공지능의 시장성과 영향력은 더 커진다. 콘텐츠에서 음악은 무시할 수 없는 비중으로 중요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스코어 뮤직에 특화된 아이바, 팟캐스트 및 유튜브 영상 BGM에 최적화된 앰퍼 뮤직은 중소기업 이하 소규모 집단의 콘텐츠 창작을 지원한다.
이런 현상이 밴드나 싱어송라이터로까지 확대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가상 악기와 플랫폼의 등장이 빌리 아일리시와 같은 베드룸 아티스트, 즉 집에서 혼자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의 지구적 성공을 견인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창작성을 보완하거나 이끌 수 있다. 소니의 플로우 머신이 비틀스 스타일로 만든 ‘Daddy’s Car’는 엄청나게 히트할 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만족스럽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인공지능을 통한 음악의 최적화에는 비용뿐 아니라 감각까지 포함된다. 인공지능으로 실패 확률을 낮추는 것이다.
플랫폼 중심으로 변화된 콘텐츠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롱테일 법칙을 따른다. 상위 20% 히트작이 아니라 다수의 덜 유명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수익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현재의 음악 인공지능은 이 지점에 대한 기술적 솔루션을 제공한다. 인공지능 작곡가는 심층 신경망을 이용해 음악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고, 수학적 규칙을 활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이렇게 되면 음악의 대중적 성공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바뀔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미래가 아닌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인공지능의 음악은 이미 일상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러 걱정과 두려운 시선을 만날 때마다 나는 데이비드 보위를 떠올린다. 1997년 다큐멘터리에서 보위는 컴퓨터로 작곡 프로그램인 버베사이저를 만들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에게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그저 음악을 더 즐겁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나 역시 그렇다.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 글쓴이
- 차우진(문화 평론가)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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