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20.08.13

by 조소현

    코로나 시대의 사랑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1년 365일 24시간 사랑스러울 순 없다.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 이혼’이 화두가 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이혼’ 위기에 처한 커플이 L과 D라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불과 1년 전 D의 생일에 L은 마을 사람 스무 명의 축하 메시지를 받아 영상과 카드를 제작했다. D는 L을 항상 아기처럼 보살폈다. 자기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게 했다. 말하자면 ‘닭살 커플’이었다. 그런데 1년 후 두 사람은 부부 상담을 시작했고, 그것도 소용이 없었는지 별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 사업을 준비하면서 일하는 방식이 달라서 균열이 시작되었고,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여행이나 외출도 못하고 매일 둘이서만 복닥거리더니 틈이 커졌다. 아직 별거를 시작하기 전 L이 말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난단 말이야. D를 깨우지 않기 위해 운동을 나가. 1시간 조깅을 하고 돌아와도 D는 자고 있어. 나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이면서 아침을 준비하고, 컴퓨터를 열어서 일을 하고 메일도 몇 통 보내. 이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끝났어. 그런데 D는 아직 자고 있어.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해. 청소를 시작할 때쯤엔 조용히 움직일 필요도 못 느껴. 머릿속으로는 ‘내가 아침을 짓고 청소도 하고 일도 다 하면 D는 뭘 하지? 그렇다면 내 인생에 D가 왜 필요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느지막이 일어난 D는 내가 왜 화가 나 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내가 전형적인 중국 헬리콥터 맘 밑에서 자라서 완벽주의 성향에, 타인을 밀어붙이는 기질이 있는 게 문제인 것 같아. 내가 완벽한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좌절스럽고 죄책감이 들어.”

    아주 고전적인 고민이다. ‘내가 모든 걸 다 하면 저 인간은 뭘 하지? 왜 내 인생에 저 인간이 필요할까?’라는 자문을 한 번도 안 해본 이성애 커플이 있긴 있을까? L이 자책 단계를 넘어 별거에 돌입했을 때 나는 그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잘 지내고 있어. 사업 준비부터 집안일까지 나 혼자 다 하는 게 벅차지도 않고, D의 감정을 헤아리거나 속도를 맞출 필요가 없으니까 오히려 편해. ‘어, 이거 할 수 있겠는데?’라는 기분이야.”

    서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물론 기능적 협업이 사랑의 절대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파트너십의 붕괴는 사랑을 훼손시키기에 충분하다.

    또 다른 친구 S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일을 못 나가고 석 달 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외로움에 지쳐서 여자 친구를 사귀기로 결심했다. 그는 데이트 앱으로 발견한 여자를 집에 초대했고, 그 여자 역시 나 홀로 쿼런틴 끝에 조난 신호를 보내듯 데이트 앱에 접속한 참이었다. 하지만 S는 딱 이틀 만에 자신에겐 애인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집에서 할 일이 있다는데 자꾸 놀아달라고 하잖아. 석 달 동안 혼자 게임하고 밥 해 먹고 뒹굴다가 갑자기 옆에 누가 있으니까 엄청 신경 쓰이는 거야. 어쩜 사람이 그렇게 쉬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너무 귀찮았어. 나는 그냥 가끔 섹스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24시간 내내 여자 친구에게 시달릴 바에는 혼자 게임이나 하는 게 낫겠더라. 그래서 그 여자 보고 그만 나가달라고 했지.”

    긴 시간을 함께 보내려면 서로 방기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쿼런틴 시대는 많은 커플에게 그 가능성을 미리 시험해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서로에게 아무리 여유 공간을 제공해도 두 사람만으로는 완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며칠 전 나는 싱글맘 J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300평짜리 단독주택에서 고등학생 딸, 중학생 조카와 함께 산다. 귀여운 개, 고양이도 있다. 그들 모두, 그러니까 인간까지도 어쩐지 강아지처럼 손님을 반기는 기색이었다. 발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J는 팬데믹 때문에 일이 끊겼고, 딸과 조카는 학교에 못 가고 있다. 공간이 넓어서 덜 답답한 게 그나마 위안이다. J의 딸은 최근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조카는 홈스쿨링 기간 동안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다. “집에만 있으니까 의욕이 떨어져서요. 마스크를 쓰더라도 다른 사람 얼굴을 보고 싶어요.” 그들은 서로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사회생활’, 즉 관계를 확장하고 자극을 주고받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행위가 결여된 생활이 그들을 무기력 상태로 몰아넣고 있었다. 건강한 관계에는 당사자들뿐 아니라 당사자들과 타인이 맺는, 즉 인접한 관계들의 후광도 필요한 법이다.

    세상은 의외로 쉽게 변하고 사랑은 연약하여 별것에 다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 시대는 우리에게 몸의 건강뿐 아니라 관계의 건강에 대해서도 고민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당신은 파트너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고, 독립적이고,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인가? 당신은 어쩌면 같이 데이트하기에 꽤 즐거운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함께 인생을 보내기에도 그런가? 상대방은 함께 인생을 보낼 만한 사람인가? 이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이런 질문에도 답을 해봐야 할 것이다.

      이숙명(칼럼니스트)
      에디터
      조소현
      사진
      Crawford Joll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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