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코드와 나이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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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코드와 나이키의 만남

2020-09-04T10:28:15+00:00 2020.09.04|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두 브랜드 ‘래코드’와 ‘나이키’가 만났다. 우리에게도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서울 시민을 위한 도심 속 녹지 서울숲. 분홍색 꽃을 피운 배롱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스트링으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슬리브리스 원피스와 토시는 래코드 바이 나이키(RE;CODE by NIKE), 재활용 폐기물로 만든 ‘에어 베이퍼맥스 2020 플라이니트’ 운동화와 분홍색 터틀넥은 나이키(Nike).

2012년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가 ‘지속 가능성’을 내걸고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업사이클링’, ‘재활용’이라는 가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너무 많았다. 낭비하지 않는 디자인, 의식 있는 의류 소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미 세상은 패스트 패션이 점령한 지 오래였다. 우리는 매장 진열장이 매일매일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데 익숙해졌고, 다양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달콤함에 젖어든 상태였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0년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패션 비즈니스의 주요 고객인 밀레니얼과 Z세대는 환경에 대한 영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은 럭셔리 브랜드와 독립 디자이너 그리고 SPA 브랜드 너 나 할 것 없이 환경문제를 의식하며 디자인, 제작, 유통에 이르는 전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분홍색 터틀넥은 나이키(Nike), 검은색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래코드 바이 나이키(RE;CODE by NIKE).

래코드는 2012년 아웃도어와 스포츠 의류로 유명한 패션 기업 코오롱에서 만든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래코드를 론칭하던 즈음 코오롱에서 발생한 의류 재고는 연 1조5,000억원, 폐기되던 옷은 60억원어치. 래코드의 초기 미션은 재고 3년 차에 이르러 소각 운명에 처한 자사 옷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브랜드 아틀리에에서 수작업으로 만들던 컬렉션은 점점 품목이 늘었다. 의류 재고를 사용한 ‘인벤토리 컬렉션’, 자동차 에어백, 카시트 등 산업 폐기물을 사용한 ‘인더스트리얼 컬렉션’, 오래된 군용품을 사용한 ‘밀리터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어느 정도 브랜드 아카이브가 쌓이자 한남동 편집숍 ‘시리즈코너’ 래코드 매장도 열었다. 이곳에서 고객은 옷이 어떻게 해체되고 재조합되는지 그리고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옷을 비롯해 책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체험했다. 또 국내외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런던 아트 페어에도 진출하며 한국형 지속 가능 패션 브랜드를 대표하게 되었다.

탈착 가능한 후디가 달린 파란색 톱, 플리츠 스커트, 크로스 보디 백은 래코드 바이 나이키(RE;CODE by NIKE), 연보라색 레깅스와 양말, 재활용 폐기물로 만든 ‘에어 베이퍼맥스 2020 플라이니트’ 운동화는 나이키(Nike).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또한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맞서왔다. 탄소 배출과 폐기물이 없는 미래를 위해 ‘Move to Zero’ 캠페인을 실천하며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 컬렉션을 선보여왔다. 그뿐 아니라 2025년까지 자사 및 운영 시설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매립지에 버려지는 모든 신발 제조 폐기물 가운데 99%를 용도 전환하며, 2030년까지 세계 공급망에서 탄소 배출을 30% 감축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최근에는 ‘This is Trash’라는 파격적 문구를 걸고 지속 가능 컬렉션 ‘Space Hippie’를 발표했다. 일명 우주 쓰레기로 불리는 공장 폐기물과 소비재 폐기물,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등으로 만든 운동화 시리즈다.

 

이렇듯 래코드와 나이키는 각각 방식은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다. 그리고 두 개의 평행선이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나이키 본사에서 마켓 리서치를 위해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서울을 방문하던 중 한남동 래코드 매장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되었다. 래코드가 수년간 보여준 지속 가능성의 가치와 디자인이 나이키와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키, 회색 등 여러 원단을 패치워크처럼 재조합한 스웨트셔츠는 래코드 바이 나이키(RE;CODE by NIKE), 민트 형광색 반바지와 레이어드한 트레이닝 팬츠, ‘데이브레이크’ 운동화는 나이키(Nike).

지난 1년간의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우선 래코드에서 나이키 물류 센터를 방문해 재고를 고르고 상품 3,000개를 받았다. 래코드 디자인팀은 나이키의 의류 재고, 폐자재 70%와 코오롱의 재고 30%를 활용하기로 결정했고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RE;CODE by NIKE’로 지칭했다. 그리고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주제 아래 톱, 점프수트, 스커트, 바지, 모자, 머플러, 아동복까지 31개 의류와 25개 액세서리를 만들어냈다. 한정판으로 제작된 이번 아이템은 온라인에서는 W컨셉 숍과 코오롱 몰, 오프라인에서는 분더샵 청담과 이태원 ‘시리즈코너’ 내 래코드 매장에서 판매한다(판매액의 5%는 래코드와 나이키의 이름으로 기부한다).

퍼프 소매가 달린 톱과 여러 원단을 이어 붙인 치마는 래코드 바이 나이키(RE;CODE by NIKE), 붉은색 슬리브리스 톱과 양말,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스페이스 히피’ 운동화는 나이키(Nike).

8월 첫째 주 기자와 인플루언서에게 미리 공개한 ‘RE;CODE by NIKE’ 팝업 스페이스의 반응은 굉장했다. 래코드 팀은 예상 시기보다 훨씬 빨리 솔드 아웃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또 이 촬영에 함께한 모델들 역시 각자 사고 싶은 아이템의 가격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정도였다.

나이키와 래코드는 ‘RE;CODE by NIKE’ 발표와 동시에 팝업 스페이스와 디지털 채널을 통해 업사이클링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이키 신발에 쓰고 남은 부자재인 인솔로 DIY 슬리퍼를 만들고 나만의 마스크를 만드는 프로그램, 디지털 화상 플랫폼 ‘줌’을 통해 라이브로 배우 류준열을 포함해 사전 신청자 100명과 잘 입지 않는 스웨트셔츠를 새로운 아이템으로 변신시키는 업사이클링 노하우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패션계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더 나은 선택을 통해 그들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미래를 위해 변화를 꾀하는 의식적 노력의 일환이다.

래코드를 총괄하는 한경애 전무는 2015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5년쯤 지나면 윤리적 패션의 가치에 지갑을 여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놀랍게도 5년이 지난 지금 패션계는 래코드가 먼저 기치를 내세웠던 지속 가능성을 따르고 있다. “나이키 파트너십을 통해 래코드가 보다 대중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길 기대하는 한편, 패션 브랜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