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교수가 말하는 안전한 세상이란?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 이수정 교수는 여성들이 안전한 세상이 될 때까지 계속 얘기할 생각이다.
일상은 대체로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만 안전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나는 야근으로 귀가가 늦어져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갈 때면 긴장으로 어깨가 뻐근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여는 그 짧은 순간에 누군가가 갑자기 집 안으로 뛰어들진 않을까 무섭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역 화장실을 쓸 때면 불법 촬영 장치가 있진 않을지 걱정하며 급하게 일을 본다. 언제, 누구로부터, 어떤 일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2020년 대한민국을 사는 여자들에게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새겨져 있다.
스스로 조심하는 것 외에 해결책이 없다는 나의 오래된 무력감에 변화를 일으킨 건 프로파일러이자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n번방 사건, 신림동 스토킹 사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안인득 방화 살인 사건 등 극악무도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이수정 교수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분석하고 분노하고 비판했다. 누구보다 범죄자를 이해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이수정 교수의 시선은 늘 반대편, 약자와 여성을 향해 있었다.
이수정 교수는 처음 만난 살인 사건의 범죄자가 실은 가정 폭력 피해자들임을 깨닫고 여성과 피해자를 위해 역할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힌 적 있다. 여자였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고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했으며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단순히 범죄자의 심리 분석에 그치지 않았다. 전자 발찌 도입 기준을 마련해 해당 법안 도입에 일조했다. 스토킹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랜덤 채팅 앱을 규제해야 한다고, 가정 폭력 처벌법의 반의사 불벌죄를 없애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목소리는 여성의 인권과 생명권을 위할 때만 커지고 뜨거워졌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부유하던 날, 붉은 원피스 차림의 이수정 교수를 만났다. 사실 <보그>는 수개월 전 ‘이 시대를 이끄는 파워 우먼’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흔쾌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여성이 안전한 세상’에 대해 묻고 싶다 했을 때 이수정 교수는 바로 “만나자”는 답변을 들려줬다. n번방 사건, 권력형 성범죄, 서울역 묻지마 폭행, 창녕 아동 학대 등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서글프게 했던 사건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마다 이수정 교수는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카랑카랑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였다.
엄청난 스케줄 가운데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어디 다녀오는 길인가. 방학을 했지만 보통 오전에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오후에 나와서 돌아다닌다. 오늘은 방송사 두 군데를 다녀왔고, 하여튼 계속 일하다가 여기까지 다다랐다.
마지막 일정인가. 저녁에 회의가 하나 더 잡혀 있다.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사건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안희정, 오거돈 등 지자체장으로부터 촉발된 권력형 성범죄가 최근 큰 이슈다. 범죄 심리학자 입장에서 그들에게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이 있었다고 보나. 죄책감이 틀림없이 있었기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지자체는 다른 조직과 달리 수장이 되고 나면 위에 아무도 없는 특수한 구조다. 징계권자가 스스로 징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감시 감독의 기능이 너무 취약하다. 지자체장의 부패, 특히 성 비위는 수없이 반복되어왔지만 오늘날엔 문제의식이 생겨 여성들이 신고를 하다 보니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감시 기능을 해주면 좋겠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강화하거나 피해자들이 쉽게 신고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권이 있으므로 신고가 들어가면 언제 조사받을지 모른다는 경계심이 해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나. 그러길 바란다. 예전에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이 수용자들을 너무 많이 폭행했다. 그런데 수용자들에게 인권침해가 있을 때 무조건 국가인권위에 신고해라, 그러면 조사를 나가겠다고 했더니 지난 4~5년 사이에 교도소가 정말 많이 변했다. 물론 터무니없는 신고도 많지만 어쨌든 신고당할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에 교도관들이 지침을 넘어서는 일을 잘 안한다. 그런 식으로 당분간 철저히 조사하면 중앙 부처에서 감시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줄 것이다.
이번에도 2차 가해가 우려된다. 사실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성희롱 사건이 벌어지면 “여자가 잘못했겠지. 괜히 그랬겠어?” 같은 반응부터 나온다. 놀랍게도 남녀 구분 없이 보이는 반응이다. 피해자를 탓하는 심리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처벌 수위가 낮긴 하나 2차 가해도 처벌 가능하다. 이번 피해자도 2차 가해 행위를 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해 고소·고발을 했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고소해야 한다. 사람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2차 가해를 하는 이유는 심리학에 ‘Just World Hypothesis’라는 가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반드시 정의롭다고 볼 수는 없는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가정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잘못해서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지 피해자가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불공평함이 발생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야 내 인생이 편하다는 것이다. 서울역 묻지마 폭행도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해야 내가 자유롭게 길거리를 다닐 수 있잖나. 서울역에 우연히 서 있다는 이유로 폭행의 피해자가 된다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겠나. 그러니까 세상이 원래 공평한데 그런 일이 일어난 건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거다.
본능적인 자기방어로 들린다. 그렇다. 그런 방어 본능으로 피해자 책임론이 강화된다. 하지만 범죄 피해를 당하는 데 무슨 요건이 필요하겠나. 그렇기 때문에 유달리 이번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부르는 게 비상식적이다. 평범한 사람의 절도 사건이라도 사기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르겠나. 공소권이 없어진 데다가 사실관계를 밝히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피해자가 현재 너무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참 안쓰럽다. 얼마나 참고 참다가 터뜨렸겠나. 그런데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해주지 않고 4년이나 뭐 했느냐고 비난하는 언론인마저 등장했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피해자답기를 바란다. 하지만 피해자다운 게 어디 있나. ‘어떻게 하면 피해자로 불러줄래?’라고 묻고 싶다. 취약한 사람들만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 안희정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 씨 같은 경우도 학벌이 좋고 똑똑한 여자가 성폭력을 당했을 리 없다고 한다. 지능이 높고 학벌이 좋으면 피해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다. 피해자는 여자가 아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확장성에 대해서는 부인한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가 얼마만큼 끔찍하고 괴로울 수 있는지 용감하게 한국 사회를 향해 알린, 최초의 피해 여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SNS에 피해 상황을 올리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경찰 재수사를 끌어냈다. 수사기관이 움직이지 않아 피해자가 피해를 검증하고, 해결을 촉구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가혹하다. 그래도 과거보다 나아졌다. 과거에는 피해자 스스로 본인의 책임이라고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집안의 수치로 취급하면서 인도나 중동처럼 피해자에게 징벌을 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친고죄도 폐지됐고 많은 사람이 피해자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잖나. 여자들이 음란하거나 문란해서 피해를 당하는 게 아니라고 인정받은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범인 검거율은 현저히 높아졌다. 우리가 느끼는 정서적 온도 차는 범인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아서 생기는 걸까. 원래도 범인 검거율은 높았다. 하지만 신고율 자체가 낮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 여자들이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잖나. 특히 위계나 위력이 있는 관계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한 신체적 접촉은 굉장히 많은 여자들이 경험한다. 하지만 심각한 사건만 신고하고, 그런 몇몇 사건만 해결하면 검거율은 100%가 된다. 하지만 무연고 시신이라든가 실종 또는 가출 신고 상태로 덮이는 사건까지 따지면 검거율이 그렇게 높지 않을 수도 있다. 뚜껑을 열고 보면 이런 시스템을 더 정비해야지 싶다. 사법부는 피해자에게는 용어조차 엄격하게 굴면서 피의자나 범인들의 인권 보호에는 왜 그렇게 정성을 쏟는지 늘 의문이었다. 관료주의 때문이다. 사법제도 자체가 사실은 형벌 시스템이다. 어떻게 하면 공평하게 처벌할 수 있는가만 중요하다. 즉 형벌이 목적인 사법제도에서 피고인을 유일한 클라이언트로 여기니 피해자는 이 시스템과 관계없는 증인에 불과하다. 그런데 피해자는 여자들이 많고, 약자들이 다 피해자들이다.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을 보며 국가만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온 국민이 피해자를 무시하기 때문에 피해 회복에 굉장히 도달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공소권이 없어지자 국가는 피해 입증조차 해주지 않고 국민은 피해자에게 ‘네가 가해자다’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피해자 지원법, 피해자 구조 기금법이 도입되기 시작한 단계다. 시민이 범죄 피해를 당하는 데는 가해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치안을 안전하게 유지하지 못한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는 국가 책임론이 이제 소개되기 시작한 수준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국가에 책임이 있다기보다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기를 좋아한다.
최근 여성 대상 범죄 피의자가 모두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사과문과 탄원서를 썼다고, 결혼했다고 감경해줬다. 이렇게 피의자의 상황을 고려해가며 감경해주는 법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했지만 실형 1년 6개월 판결을 받은 손정우가 대표적이다. 감경을 판사의 재량에 맡기는 게 문제다. 판사들은 가중 요인은 발굴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해오던 감경 요인을 적용한다. 감경해줄 수 있는 양형 인자는 많은데 가중 요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피해의 심각성은 가중 요인이 아니다. 국민이 문제를 제기하면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나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 정부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만들어 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건 높이 평가한다. 원래 6월에 마련하려고 했던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은 성폭력 처벌법과 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을 반영해야 한다는 국민의 비판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연말로 연기했다. 좋은 사례다. 몇만 명씩 목소리를 내니 좀 더 반영이 많이 된다.
피의자만 법정에 서고 사건 기록이 분절된 채 전달되어 피의자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하게 된다는 판사들의 입장을 들은 적 있다. 맞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경찰, 검찰 조사 단계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 모아보면 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재판 기록보다 <그것이 알고 싶다> 기록을 더 신뢰한다. 진짜 초기 단계의 기록을 다 뒤지니까. 여러 사람 이야기도 들어보고 목격자들도 뒤늦게 나오고.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제공된 자료만으로는 실제적 진실을 알 수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위대함은 온갖 군데 다 돌아다니면서 캐온 진실에 있다. 법원도 그렇게 해주길 기대하지만 사실 한계가 있다. 법원은 하루에 수차례 재판을 한다. 나는 검사와 판사를 더 많이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건 발생 건수에 비해 검사, 판사 숫자가 많지 않으니 제대로 사건을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에서 허락해줘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다.
지난 4월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 촬영물을 소지만 해도 처벌하고 의제 강간 연령을 높이는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한 실질적 방법이 다수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인 여성을 위한 대책은 없었다. 아직 완성품이 아니다. 게다가 법안 발의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모든 범죄가 수면 위에서 일어나면 수사하기 좋겠으나 비밀방에서 일어난다. 다크 웹에 들어가 수거된 증거도 법적 증거로 인정받으려면 잠입 수사도 허가하도록 입법해야 하는데 다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한편 그렇게 되면 경찰에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양형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검거해놓은 사람은 더 엄벌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검거한 사람만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조주빈이나 갓갓은 엄벌하겠지만 n번방에 있던 1만5,000명의 헤비 유저들은 검거되지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다른 방에 옮겨가서 성 착취물을 사고판다. 이들을 추적해야 성 착취로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잠입 수사도, 그루밍 수사도 입법이 안 되다 보니 물 아래 가라앉은 암시장은 그대로다. .
조주빈은 어느 정도 실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나. 변호사들이 10년 정도 나올 거라고 말한다. 신체 접촉이 없는 성범죄치고는 많이 나오는 거다. 강간보다 높으니까. 물론 영미권 국가와 비교하면 할 말 없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중형이다.
트위터에서는 n번방 전원 신원 공개를 요구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에게 신상 공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들도 수치심을 느낄까.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피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착취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니까 본인의 신상 공개에 대해서는 꽤 경계심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개인 정보가 알려지면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징역보다 신상 공개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공개될 가능성이 있나. 아동 성범죄자는 신상이 밝혀질 텐데 그러려면 소지죄 대상이 되어야 한다. 헤비 유저들은 성 착취물을 다운받아놨을 것이고 그 파일이 증거가 되면 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들이 활동하는 곳으로 경찰이 못 들어간다.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활용할 수 없으니까. 피해자가 신고하거나 신고 포상금제가 있어서 시민의 신고도 가능하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다크 웹에 못 들어가니 고발이 쉽지 않다.
디지털 성범죄에서 기술이 새로운 우월적 지위를 제공한다고 했던 발언이 와닿았다. 저서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에서 한국형 범죄로 묻지마 범죄, 가정 폭력, 주취 폭력을 꼽았는데 이제는 디지털 성범죄로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것 같다. 대한민국이 아주 특수한 IT 환경을 지니기 때문에 외국에 비해 사이버 범죄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미국 대사관에서 컨퍼런스를 하자고 내게 연락이 올 정도다. 이런 범죄가 광범위하게 일어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여자들을 착취했을 뿐 아니라 온라인 사기도 굉장히 많이 저질렀다. 옛날에는 위계나 위력을 갖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성 비위 문제가 일어났다면 앞으로의 세대는 그 위에 디지털 에이전트들이 있다. 이번에 밝혀지지 않았다면 사회적 지위가 굉장히 높은 피해자도 발생했을 것이다. 이제 테크놀로지가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으로 나뉠 가능성이 높다.
가정 폭력의 위험도 늘 경고해왔다. 최근 아동 학대 사건이 늘어나는 이유를 시대 안에서 설명해줄 수 있을까. 아동 학대나 가정 폭력은 굉장히 오래된 문제다. 다만 과거에 비해 가정 폭력이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건이 늘었다. 아동 학대 치사 사건이 10년 전에는 6~7건이었는데 지난해에 43건이 됐으니까. 과거에는 확대가족이라 가정 폭력이든 아동 학대든 가정 안에서 갈등을 중화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가정이 해체되니까 그런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이 없으면 스트레스 요인이 없었을 텐데, 불경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양육의 부담도, 가정의 책무도 싫은 가족 구성원이 많이 늘어났다. 가정 폭력이 배우자 살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꽤 있고 아동 학대 치사는 더 심각해졌다. 형사 기관이라도 강제력을 가지고 개입하면 되는데 약자 중의 약자, 가정 내에서도 학대받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동복지법으로 복지 지원만 하면 된다고 여길 뿐, 아동 학대 처벌법이 뻔히 있어도 적용하지 않는다. 아동 학대는 아예 신고가 안 되지 않나. 아동 학대 가해자들은 유달리 민원을 많이 넣는다. 내 새끼 내 맘대로 하는데 어떠냐는 식이다. 그렇게 안타까운 일이 늘어간다.
창녕 아동 학대 사건이 떠오른다. 현금 지급성 복지 지원이 아동 학대에는 함정이 될 수 있다. 창녕 사건의 경우 애가 있는 조현병 환자를 유인해 혼인신고를 하고 애 둘을 더 낳고 세 명의 아동 수당과 출산 장려금을 받았다. 부산에서 창원, 거제로 옮겨 다니다가 창녕으로 간 이유는 출산 지원금 1,000만원 때문이다. 거기서 네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알다시피 애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부모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첫째 아이 목에 쇠사슬을 걸어놓고 집안일을 시켰다. 도대체 21세기가 맞나. 지자체장들은 정신 차리고 이런 사건을 쫓아다녀야지 추문에 연루되면 안 된다. 누굴 탓하겠나. 제대로 사람을 보지 못한 국민도 잘못이다. 점점 지방자치는 강화될 텐데 유권자도 비판적 시각으로 선출직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얘기하는 사람도 굉장히 힘들다.
범죄 심리학자로서 자문도 하지만 주관적인 의견도 많이 내고 있다. 나만 내는 의견이 아니니까. 젊은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피해 호소인이라는 전례 없는 이상한 용어가 형사 사법제도 내에 입장한 이 상황에 가만있으면 되나.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다 보면 비판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반응에 흔들리거나 다친 적은 없나. 물리적인 건 아니지만 공격이 있으니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정치를 하지 않는다. 편 가르기 게임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걸 말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되면서 얻고자 하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겠나. 어떤 날엔 좌로부터 공격받고 어떤 날엔 우로부터 공격받아도 나는 계속 내야 하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욕을 얻어먹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릴 거라 생각한다. SNS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대화의 장이 현재는 온라인이다. 하지만 그렇게 건강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상식적인 사람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이만큼 굴러왔다.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굴러갈 거라고 본다.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보도 여부를 결정하고, 자극적인 사건을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보도한다. 기자 본인과 언론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생각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나도 많은 일을 하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한결같고 그것은 정치 성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생명에 대한 가치, 특히 여성의 생명에 대한 가치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런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으면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그것만 중요하게 여기면 <보그>면 어떻고 <그것이 알고 싶다>면 어떤가. 요즘 난 연예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하지만 꼭 이 주제를 다뤄달라는 조건을 건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추구한다.
늘 연구가 제일 재미있다고 밝혀왔다. 최근 힘을 쏟고 있는 연구 활동은 뭔가. 여름이 연구로 바쁜 계절이다. 겨울에는 교도소가 너무 추워서 조사가 힘들다. 지금 3개 연구가 돌아간다. 하나는 지난 3년 동안 살인 사건 판결문을 다 모아 여성 살인 피해자들이 스토킹을 몇 퍼센트 당했는지 찾아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가 찾은 결과에 따르면 40% 정도가 스토킹을 꽤 장기간 당한다. 스토킹 방지법이 있다면 안인득 사건처럼 목숨을 잃는 피해자의 40%는 구할 수 있다. 스토킹 방지법은 구애 방지법이 아니라 목숨의 손실을 막는 예방적 법률로서 필요하다. 또 다른 과제는 성폭력 재범 평가를 디지털 성범죄로 넓히는 일이다. 소년범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기준을 만들고 있다. 세 번째로는 출소자들을 재사회화하기 위한 필요를 파악 중이다.
요즘도 교도소에서 직접 범죄자들을 만나고 있나. 교도소에서도 만나고 보호 관찰소에서도 만난다. 법원에서 써달라는 의견서도 써야 하고 일은 계속 늘고 있다.
할수록 어려운 일인가. 어렵다. 다 지나간 일이지 않나.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분석하면 얼마나 쉽겠나. 법률가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특히 물적 증거 하나도 없고 진술만 있는 사건은 계속 뚫어져라 보는 수밖에 없다. 아까도 친족 성폭력 사건 기록이 잔뜩 들어왔다. 진술이 엇갈려 실존하는 사건인지, 아니면 어떤 필요 때문에 문제 제기만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데 그런 일투성이다.
첫 번째 연구는 스토킹 방지법 제정에 어떤 도움이 될까. 많은 도움은 안 되겠지만 누군가는 볼 것이다. 스토킹 방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부각시키는 데 그 자료는 무척 중요할 것이다. 여성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스토킹 방지법이 필요할 뿐 구애하는 철없는 남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필요한 건 아님을 보여주는 데이터니까.
팟캐스트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시즌 2를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범죄 영화를 약자와 피해자 입장에서 보는 시각을 제공한 방송이다. 진행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어떤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팟캐스트를 듣고 용기를 얻었다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의 댓글을 봤을 때 내가 이걸 시작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연구자가 연구만 해서는 그런 유효한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넷 다 생업이 있다 보니 시간을 쪼개 어떻게든 1년을 이어왔는데 나름의 보람을 느낀다.
언젠가부터 해결사 이미지가 생겼다. 피해자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오는 경우도 있나. 이메일은 많이 온다. 하지만 나는 상담가가 아니라 연구자다. 직접 도움을 줄 수는 없는 입장이니 어디로 가보라고 소개하는 정도다.
10대 청소년이 포주로 나왔던 드라마 <인간수업>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오락물로서 흡입력이 엄청났지만 n번방 사건과 맞물리며 현실을 드라마로 보는 듯했다. 이런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 때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드라마를 방송할 때마다 위험에 빠진 청소년은 1388로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나왔다고 들었다. 세간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청소년을 구조하기 위해 현실을 고발하는 듯한 가면을 쓰는 염치는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그런 시도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유의 재생산은 매우 주의해야 한다. 틀림없이 누군가에게는 범죄 학습 효과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책임질 건가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편의상 소통을 위해 쓰지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용어는 무엇이 있을까. 언어가 우리 정신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몰카’도 ‘야동’도 마음에 안 든다. ‘발바리’로 불린 연쇄 성폭행범도 그렇다. 그런 말에는 여성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거나 남성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희화화가 전제되어 있다.
발바리는 지나치게 귀엽다. 그러게 말이다. 발바리라는 말이 나오고 법원에서 연쇄 성폭행범을 만나달라고 해서 가봤더니 나이가 60이 넘었더라.
딸을 제약하며 키워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 이 땅의 아들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정정당당하게 키우는 게 맞다. 법을 잘 지키기만 해도 걱정을 덜 것 같다. 딸을 키우는 데는 지금도 어려움이 있고 여전히 미안하다. 딸도 아이를 낳아보면 이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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