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김재현의 집
온갖 야생화가 피어 있는 정원에 물을 준 뒤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하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요리한다.
‘에몽’을 이끄는 디자이너 김재현의 집에 지루함은 없다.
시스템, 분더샵, 쟈뎅드슈에뜨, 럭키슈에뜨, 에몽(Aimons)까지. 남다른 감각으로 늘 트렌드 최전방에서 서울 패션을 리드하는 디자이너 김재현이 UN빌리지의 한적한 빌라로 이사한 건 3년 전이다. 2015년부터 함께 지낸 반려견 제타에게 마음껏 뛰어놀 공간을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운명처럼 이 집을 소개받은 후부터 다른 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상태였죠.” 서울이 알아주는 예리한 감각의 소유자는 흙더미 속에서도 진주를 발견했다. 그녀는 오래된 빌라를 보는 순간 파리의 ‘영 바이브’를 느꼈다. “젊은 아티스트가 많은 파리의 소박한 동네가 떠올랐어요. 나만의 분위기로 바꾼다면 그들처럼 젊은 마인드로 활기차게 지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계약 성사와 동시에 3개월간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층고가 높은 거실 중앙에 서서 한눈에 집을 훑어보니 세련된 가구 편집숍을 찾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여기엔 우리 여자들이 갖고 싶어 하는 아이템이 절묘하게 퍼즐을 맞춘다. 가구의 히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요즘 유행하는 가구만 모조리 다 갖다놨군”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가구가 그녀의 품에 안긴 지는 10년도 훨씬 넘었다. 오래 써서 노랗게 색깔이 바랜 대리석 테이블과 의자 네 개로 구성된 놀(Knoll)의 튤립 세트는 20년 전 구입했고, 루이스 폴센의 판텔라 조명은 한국 정식 수입 전 파리에서 산 것이다. 집 안 곳곳의 수납과 인테리어를 동시에 해결하는 모듈 가구 USM 역시 마찬가지다. “파리 유학 시절 마레의 어느 복삿집에서 처음 USM 시스템을 보고 충격에 빠졌어요. 가게 전체가 샛노란 색 USM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시크하더라고요!” 그런가 하면 바삭한 비스킷 컬러의 소파는 플렉스폼 제품으로 그녀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가구다.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거실이에요.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삶에서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마저 문득 들 정도죠.” 초록색 USM 모듈 가구 위로 걸어둔 크고 작은 그림은 그녀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비싸고 귀한 작품을 모으는 데 집착하지는 않아요. 전시를 관람하다 한눈에 마음에 들거나 색감이 아름답거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을 즉흥적으로 구입하는 편이죠.” 거실 벽의 중앙에 걸린 그림은 민성식 작가의 작품으로 삼청동 갤러리에서 첫눈에 반해 구입했다. 그 옆으로 서혜영 작가와 이난 작가의 사진, 아티스트 나난의 청자 그림이 걸려 있다.
가구는 하나같이 특별한 외형이지만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주위와 잘 어우러진다. 지오 폰티(Gio Ponti)의 우드 소재 선반도 그렇다. “다른 가구가 워낙 컬러풀하고 크고 작은 소품도 많아 어수선한 인테리어에 무게를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이게 제격이었어요.” 가구를 잘 고르는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번 살 때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산다”고 늘 그렇듯 명쾌하게 답했다. “가구를 자주 구입하지 않지만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야 오래오래 소중히 쓰게 돼요. 최근에 구입한 가구는 놀의 다이닝 테이블이에요. 집으로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는 편이라 열 명은 동시에 앉아 식사할 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로 샀죠.”
테라초 대리석으로 마감한 매끈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 공간이 펼쳐진다. 그녀는 숙고 끝에 지하를 운동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했다. 한쪽 벽면을 노란색 페인트로 칠하고 반대쪽에 전면 거울을 설치했으며, 그 사이에 발레 바와 퍼스널 필라테스 기구, 짐 볼, 덤벨 등 다양한 운동기구를 배치해 언제든 체력 단련이 가능한 공간을 완성한 것이다(서울 패션 피플들 사이에서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매일 아침 7시에 필라테스 선생님이 이곳을 방문해 저의 운동을 도와주세요.”
그런데 이 색색의 드림 하우스를 꾸미며 가장 공들인 공간은 따로 있다. 부엌과 연결되는 테라스다. 작은 정원과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오랜 소망에 따라 많은 예산을 기꺼이 투자했을 정도다. “이 집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정원의 담쟁이덩굴이었어요. 파리의 클래식한 호텔 벽에서나 볼 법한 담벼락 같았거든요.” 여러 야생화부터 장미, 허브까지 3년 동안 매일 1시간씩 정성으로 물을 주고 또 매해 새로운 식물을 더해 지금의 ‘제타 정원’을 완성했다. “제타가 여기서 뛰어노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녀가 특유의 호탕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다. “사실 큰 집을 마련하고 대규모 인테리어 공사까지 진행해 중간에 후회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에 팬데믹을 겪으며 이 집을 더 사랑하게 됐어요. 텃밭에서 손수 키운 채소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세요?” 그녀가 고추와 상추 등 막 수확한 신선한 채소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원래 외식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집밥을 더 자주 먹게 된 그녀는 손담비, 채정안, 강승현, 이혜영 등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한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도심 속 정원’ 라이프는 지금 전개하는 패션 브랜드 에몽의 컨셉과도 일맥상통한다. 멋스러운 트레이닝 수트와 가드닝용으로도 손색없는 오버올, 빈티지 감성이 묻어나는 티셔츠까지. 그녀의 드림 하우스는 에몽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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