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슈퍼 디자이너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 #1

2023.02.20

슈퍼 디자이너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 #1

전무후무한 2020년을 다들 어떤 심정으로 보냈을까. 록다운으로 작업실을 떠났던 슈퍼 디자이너들이 자기 집에서 패션의 미래를 숙고하며 침착하게 지내는 법을 <보그>에 고백한다.

NICOLAS GHESQUIÈRE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기분이 좋다. 지난밤 파리 시장이 식당과 카페의 영업 재개를 허가함에 따라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저녁에 외식을 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카페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알죠?”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다는 조짐이 나타난 거잖아요!” 봉쇄령을 내렸을 때 제스키에르는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마지막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돌아와 15년 동안 살아온 파리 외곽의 집에서 조용히 지냈다. 반려견들과 몇몇 지인과 함께 말이다. “제가 이 집을 제대로 즐길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이번에는 나무를 심을 정도였다니까요.” 오랫동안 한 장소에 머문 적이 없었던 그가 말했다. “시간이 유예되면서 저는 여행 일정으로 가득 찬 미친 스케줄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제 마음을 깨달았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사람의 사고방식이 바뀐 것 같아요. 패션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그런 대화는 팬데믹이 발생하기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그가 이렇게 말하면서 더 작은 브랜드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확실히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얻은 위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연대감이죠.” 코로나19의 위협에서 벗어난 후 창의성은 어떤 모습일까? “과거 위기의 시절을 떠올리면, 늘 창의적인 순간이 뒤이어 나타났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유의미하고, 색다르며, 새로운 뭔가를 제시하고 싶어요. 제가 타협하게 될 그런 것 말고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은 기능의 수준이 가장 중요하죠. 저는 주변 사람도 신경 쓰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제품을 생산하고 제조하는 방식,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싶어요. 또 친구들이나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해 99세인 제 할머니와 영상통화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JUNG WOOK JUN

올해를 몇 달 남기지 않은 지금, 준지 정욱준은 10년간 갖지 못한 긴 휴가를 떠날 거라 얘기했다. 2007년부터 그는 파리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해왔다. 이제 막 해외 진출을 꿈꾸는 디자이너에게는 저 멀리 앞서 있는 선배였고, 팬들에게는 자랑스러운 K-패션의 선구자였다. 하지만 초유의 사태로 파리 패션 위크는 정상 스케줄 가동이 불가능해졌다. “파리에서 컬렉션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느낀 순간부터 비디오 프레젠테이션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단지 기술적으로 훌륭한 영상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옷뿐 아니라 영상 그 자체로도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영상을 원했죠.” 2021 S/S 컬렉션 영상 제목은 ‘SEOULSOUL’. 모델 신현지와 태민이 밀리터리 룩을 입고 자신만만하게 서울 곳곳을 워킹했다. 10년 넘게 이어온 유럽 출장은 디자이너의 창작에 오랫동안 영감을 주던 시간이었다. “팬데믹 초기엔 불행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여겼지만, 몇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 준지라는 작업물의 장단점을 한 번 더 생각했다는 것. 그리고 요리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일상이 정말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도 ‘창작 본능’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패션계가 도전해온 많은 시도가 좌절되고 있어요.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이런 상황에도 창작을 멈추면 안 됩니다. 적어도 1년에 두 번, 새로운 컬렉션이 주는 새로운 감동을 향해 전진해야죠. 그런 면에서 코로나 이전과 달라진 건 없습니다. 방식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DONATELLA VERSACE

요리부터 공예품 만들기까지 록다운 기간에 많은 사람이 집 안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기쁨을 다시 발견했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제 삶은 그렇지 않죠.”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그런 생각을 일축하며 말했다. “저도 샐러드를 만들 수 있죠. 하지만 그러지 않아요.” 그녀가 살짝 꼬아서 말했다. 몇 달 동안 밀라노 집에서 생활한 그녀는 매일 머리를 손질하고 메이크업을 했다. “저와 제 애완견들은 그러지 않아요. 편한 차림을 하고, 머리도 엉망이고, 메이크업도 안 한다고요? 그러면 안 돼요. 뇌가 작동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흔들림 없이 관리해야 해요.” 이탈리아가 봉쇄령을 해제할 때까지 베르사체를 이끄는 그녀가 자연의 섭리대로 그냥 두었던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세상에, 뿌리 염색할 부분이 너무 길게 자랐지 뭐예요. 저는 원래 제 머리 색깔도 완전히 까먹고 살았는데 말이죠. 봉쇄령이 해제되자마자 가장 먼저 머리 탈색부터 했죠.” 코로나19가 밀라노를 강타하자 베르사체는 그 지역 구호단체에 기부했다. “그분들은 영웅이에요. 진정한 영웅이죠.” 도나텔라가 의료 종사자들을 두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저희는 두 달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죠. 창밖을 내다봐도 거리에 개미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을 정도였어요.” 전화로만 연락이 닿았던 그녀의 팀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상황이었다면 절대 말하지 않을 얘기를 터놓게 되었죠. 제 팀은 굉장히 자유분방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그녀가 그때를 회상했다. 이탈리아 경제가 크게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일터로 복귀한 그녀는 온 마음을 일자리 재창출과 ‘모든 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 착수했다. “그것이 제가 투쟁할 다음 전쟁이에요.” 도나텔라는 베르사체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예고하면서 주요 작품 30점만 모아놓은 남녀 공동 컬렉션을 발표했다. “컬렉션 규모를 축소시키고 조금 더 자주 발표하는 거죠. 제가 제안한 거예요. 지금 여름인데도 매장에는 겨울 코트가 나와 있을 거예요. 날씨와 의상 발표 시즌이 맞지 않는 거죠. 저는 이것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9월 메인 컬렉션에 대한 그녀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규모는 작게, 내용은 알차게! 사람들은 지금 당장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녀가 잠깐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매력, 슈퍼모델,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은 잊지 마세요.” 코로나 팬데믹이 쓸고 지나간 후 이 세상에 매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존재할까? “이 시기가 지나간 후에도 매력적인 곳이 한 곳 있을 것 같네요.”

PIERPAOLO PICCIOLI

격리된 채 보낸 매일 저녁 피엘파올로 피촐리와 그의 가족은 네투노(Nettuno) 거리에 울려 퍼지는 현지 주민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발렌티노를 이끄는 이 디자이너는 자신이 나고 자란 로마의 한 해안 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의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스케치하며 지중해 멋쟁이가 할 만한 일을 했다. “봉쇄령 기간에 급진적인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죠.” 그가 선언하듯 말하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자신의 매니페스토를 밝혔다. 옷 재단 방식에서부터 그 옷에 담기는 가치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제 일의 모든 측면에서 조금 더 급진적인 접근법을 사용하고 싶었죠. 창의성이 패션 브랜드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거예요. 과거에는 마케팅과 브랜딩이 창의성보다 더 중요했죠. 그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그가 풀장 옆에 임시로 마련한 가든 오피스에서 아두트 아케치, 시인 무스타파 등 스무 명이 넘는 유명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발렌티노 가을 광고 캠페인에 쓰일 각자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돈을 주는 대신 이 브랜드 이름으로 로마 라차로 스팔란차니 병원(Lazzaro Spallanzani Hospital)에 꽤 많은 기금을 기부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가두시위가 벌어졌을 때, 피촐리는 자신이 급진적 자세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희망을 그 안에서 감지했다. “다르다는 것도 하나의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정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하나의 브랜드를 통해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한 개인으로서 인스타그램으로 제 가치관을 전합니다. 그렇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는 형상화된 이미지를 통해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느껴요. 저는 소통하는 가운데 조금 더 급진적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MIUCCIA PRADA

2020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낙관론자와 실용주의자로 나뉜다면 미우치아 프라다는 후자에 해당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모두가 성인군자처럼 될 것이라며 상투적으로 생각하기는 싫어요. 우리는 예전 그대로일 거예요.” 그녀가 단언했다.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변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 모두가 엄청나게 노력해야죠.” 이것은 굉장히 솔직한 의견이며 문화 리더인 프라다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실제로 예측 불가능한 올해의 상황에도 그녀는 패션을 내다보는 예언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세상이 봉쇄에 들어가기 몇 주 전 그녀는 패션 산업의 진보를 촉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라프 시몬스를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우리를 규정해온 이 모든 시스템과 구조를 재고해야 할 때예요.” 그녀가 2월에 이렇게 말했고, 실제로 그녀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 최근 몇 달 동안 입증되었다. 지금 그녀는 밀라노 집에 머물며 두 가지 사항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제가 굉장히 많은 의문을 품고 있고, 지금 그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이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사안을 고민하는 더 확장된 사고를 바탕으로 명품 패션 브랜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가 주된 주제죠. 두 번째는 ‘저는 일하면서, 특히 옷을 만들면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패션계 속도에 대한 논의는 수없이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존경받는 디자이너들조차 패션계의 지나친 요구로 영향을 받는다. “또 다른 쇼, 또 다른 볼거리, 또 다른 이벤트… 디자이너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사람 같다고 이미 말하고 있었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한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오랫동안 정치적 영역에서 구현했어도, 옷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것이 공적 역할인 한 여성이 지금 ‘기업을 성공적으로 키우는 것과 민주적 사고가 공존하는 방법’을 재고한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겠죠.”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죠. 정치는 제 사고의 기반이고, 현실의 기반이고, 모든 것의 기반이죠. 정치는 본질적이지 않아요. 현실이니까요.” 그것은 1993년 폰다치오네 프라다 설립의 동력이었다. 인종적 편견에서부터 젠더 문제에 이르기까지 ‘더 깊은 사고가 요구되는’ 사안을 고찰할 수 있도록 분리된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브랜드에 관한 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선언 같은 건 절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것이 제 사고의 핵심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그녀가 설명했다.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때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죠. 한 기업으로서 뭔가를 말할 때, 정직하게 행동하고 기회주의로 비치고 싶지 않다면 책임져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비주류 사람들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영향으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그녀의 자유로운 이상이 반영된 옷을 디자인하고 폰다치오네 프라다가 그 이상의 뉘앙스를 보다 더 명쾌하게 고찰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번 변화를 통해 명품 기업이 이러한 사안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을까 궁금해졌어요.” 그녀가 인정했다. “제 생각을 재고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집에 가서 과제하라’라고 썼죠. 그것이 핵심 포인트예요. 공부합시다. 사람들이 제게 뭔가를 물을 때면 저는 ‘공부하세요’라고 말해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더 많이 공부해!’라고 말해요. 더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죠.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저는 생각의 방향 정도는 잡아두고 있어요.” 이 세상과 세상의 산업이 제도적 인종차별, 세대 간 권리 박탈, 경기 침체의 시작, 팬데믹의 영향 등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기에, 우리가 각자의 결정을 인정하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두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가짓수는 적어도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프라다가 깊이 생각하며 말했다. “저는 웬만하면 희망을 가지려고 해요. 희망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PARK SEUNG GUN

“아직 정서적 팬데믹 상황이에요.” 하루에 수만 명씩 확진자가 속출하는 다른 패션 수도와 달리 서울은 어느 정도 안정기다. 브랜드 쇼룸은 정상 운영되고 비대면 촬영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 푸시버튼에도 아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승건은 최근 몇 년간 유럽과 서울을 오가며 자신의 옷을 더 많은 대중에게 선보였다. 그가 런던 패션 위크 런웨이에 처음 오른 순간에도 <보그>가 함께했다. “파리에서 바이어들을 위해 쇼룸을 열 수 없어 비대면 쇼룸을 진행했습니다. 시차 때문에 바이어들과는 주로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화상회의를 했죠. 아무래도 실제로 옷을 보는 게 아니다 보니 지난 시즌과 달리 매우 선명한 컬러를 택하고, 디지털상에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세밀하고 과감한 디테일을 추가했어요. 다행히 제가 원하던 느낌이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자신을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는 쪽에 더 가까운 디자이너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라고 말한다. “비대면 상황에서 만남이라는 게 더 소중해졌죠. 만나지 못하더라도 누구보다 편하고 좋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힘든 시기를 함께 버티고 있으니까요.”

VIRGIL ABLOH

일주일에 여덟 번 정도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고, 현지 표준 시간대에 맞춰 일하려고 잠도 미루면서 커리어를 쌓아온 남자, 버질 아블로는 봉쇄령이 내려지자마자 시카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며 안도감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경험했다. 모두가 너무 두려워했기 때문에 회의는 취소되고, 전시는 연기되었으며, 패션쇼와 생산 마감 일정도 미뤄졌다. 그러다 보니 이 강제 멈춤은 그가 한 번도 갖지 못한 휴일이 되었다. 그러나 5월 초 아머드 알베리(Ahmaud Arbery)의 총격 사망을 촬영한 동영상이 온라인에 퍼졌을 때, 패션 산업에서는 그의 죽음으로 제기된 엄청난 사회 정치적 사안을 다루지 않았다. 그보다는 시즌별 패션쇼 일정의 재조정에 관한 논의만 계속 이루어졌다. “더 넓은 시각으로 봤을 때 그것이 제게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해보세요. 저는 뉴스에서 그리고 패션계 소식통들이 알베리의 죽음을 깊이 고심하지 않은 그런 나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아프리칸 아메리칸 디자이너이자 자신의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운영할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패션 브랜드 중 하나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아블로는 종종 자신의 커리어를 트로이의 목마로 표현했다. “제 힘은 흑인의 재능, 흑인다움, 제가 만든 결과에 담긴 흑인다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포용성에 접근하는 자신의 방식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에 흑인 커뮤니티에서 나눈 대화와 패션 산업에서 진행되는 대화 간의 현저한 차이에 그는 매우 놀라고 말았다. 특히 컬렉션, 패션 위크, 관객이 더 적었던 과거 패션 산업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그리워하고 있지만, 그런 시스템은 아블로를 거부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진짜 말 그대로, 카니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던 당시 이 두 사람은 패션쇼에서 외면당한 것으로 유명했다). “패션 산업이 인종 문제를 다뤄야 하나요?” 그가 물었다. “글쎄, 이 산업은 조직 전체로 움직이고 본심을 쉽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대변하면서도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해요.” 그다음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사망으로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한 지지가 전 세계적으로 탄력을 얻자, 패션 브랜드는 서둘러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그들이 구조적 결함에 임시방편으로 임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종 문제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가 말했다. “그 문제는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탄압받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모르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말하죠. 그렇게 하도록 두어도 될까요? 해시태그와 기부를 넘어 저는 조직 전체의 변화를 보고 싶어요. 단지 브랜드에서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왜 중요한 문제인지 진정으로 공감하고 동조하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가 평소대로 돌아가려고, 깨끗한 이미지로 되돌아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실제적 이해가 중요한 순간입니다. 대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리라 믿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과 가슴이 열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죠.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에 관한 메시지를 널리 퍼트리게 되니까요.”

JONATHAN ANDERSON

“세상이 허리케인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그 한가운데 있고.” 조나단 앤더슨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날 아침 영국 정치인들은 이 나라 전역에 설치된 노예 상인들의 동상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신문 헤드라인은 그런 동상을 그대로 두는 것의 장점을 다루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인지, 아니면 한계를 정해놓고 어느 선 이상은 넘어설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의아해하는 순간에 와 있어요.” 앤더슨이 말했다. “저는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고, ‘우리가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막을 방법은 어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죠.” 이 디자이너는 오랫동안 이 주제에 매료되어왔다. 그가 2월에 선보인 컬렉션은 1920년대와 1940년대 포스트워 미학을 깊이 다루었다. 즉 플래퍼 드레스와 뉴룩을 비롯해 격변의 시대 이후 영향력과 자신감을 뽐낼 수 있는 의상을 선보였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소용돌이에도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 애쓰는 패션계에서 ‘옷이 사회, 젠더, 인종, 정치 등을 위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그가 입증하고 있다. 실제로 고전적인 현실 탐험과 판타지 사이에서 옷을 나누었을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옷을 차려입는 사람들의 삶에서 구현되는 패션계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다. “저희는 손을 뻗어 다른 사람들이 그 옷을 집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이든 커뮤니티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가 말했다. “아마 미래의 의류는 더 큰 차원에서 볼 때 ‘도움’과 관련된 것일 거예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폭발적인 발전을 이룩한 1920년대(The Roaring 20s)’가 올지 누가 알았겠어요!”

SARAH BURTON

지난봄 내내 알렉산더 맥퀸의 장인들은 각자의 집에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사라 버튼은 생산 공정에 있는 미완성 제품의 사진을 매일 받아보았다. “이 상황이 모든 팀원의 열정을 부각시켰죠. 사생활, 가족,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제품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자긍심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지 아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그것은 매일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주변에서 돌아가는 만물의 소음을 진정시키는 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왔는가를 깨닫게 했죠.” 이 경험은 그녀가 디자이너로서 삶을 형성해가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맥퀸에서 일하던 초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당시는 지금보다 자원이 적은 탓에 직접 해야 했죠.” 그녀가 기억을 떠올렸다. 록다운이 시작되었을 때 버튼은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고심했다. “저희는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에 이미 갖고 있던 패브릭만 사용하기로 결정했죠. 그 옷감에 프린트를 넣고 색다른 모습으로 꾸며 새 느낌을 준 거죠.” 그녀의 팀은 영국 전역을 돌며 답사하는 대신 집 근처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 개인으로서, 한 커뮤니티로서 경험한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죠.” 이번 팬데믹은 버튼에게 알렉산더 맥퀸의 정신을 더 고취했을 뿐이다. “사랑받고 소중히 간직하며 입을 수 있는 그런 옷을 계속 만들 거예요. 각 시대에 어울릴 뿐 아니라 시간의 시험도 견뎌내는 그런 옷 말이죠. 저는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을 우리의 가치관과 역사, 고유성을 흐르는 시간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책임이라고 확신해요. 그리고 혁신하는 것도 임무죠.” 그녀가 말했다. “친숙함에는 위안이, 새로운 실험에는 흥분이 있죠.”

    에디터
    남현지
    작가
    Sarah Harris, Anders Christian Madsen, Olivia S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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