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살림!

Living

살림? 살림!

2021-05-13T11:17:15+00:00 2021.01.25|

삶을 가꾸는 살림에 충실해야 한다. 살림이 우리를 살린다.

La Femme Qui Repasse, 1992, Acrylic and Embroidery on Canvas, 39 3/8 × 33 1/2 in 100 × 85 cm (GHA.18089)

집 밖에 나가는 행위가 죄악시되고, 매 끼니를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기이한 시대 가운데 나는 미처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냉장고에 방치된 평이한 식재료로부터 곧잘 영감을 받았고, 의외의 조합과 색다른 조리법으로 꽤 그럴듯한 한 끼를 완성한 것이다. <사랑의 블랙홀> 같은 기묘한 감각이 연상되는 ‘돌밥돌밥’ 속에서 누구보다 손쉽게 끼니를 기획하고 만들어냈다. 반주로 어울리는 술은 왜 그렇게 잘 찾으며, 입안을 개운하게 마무리할 디저트 아이디어는 어쩌면 그렇게 무성하게 떠오르던지. 하지만 요리하는 내 모습은 냉동실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백설기보다 더 낯설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한 번도 ‘요리 잘하는 여자’로 불리고 싶은 적이 없었다.

결혼한 여자에게 요리는 가족 구성원이 살아가기 위한 연료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바깥일 못지않게 노동력을 투자해야 하지만 전문가로서 명예나 재화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식구의 굶주린 위장은 따듯하게 차오르지만 음식은 거짓말처럼 식도로 사라진다. 가사가 노동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온종일 가사를 하면서도 일하는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던 우리 어머니들은 그 소모성에 진력이 나서 딸들을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뜨개질할 시간에 나가서 놀아라”라고 진심으로 조언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여성이 해오던 일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나에게 ‘여성적인 것은 하찮다’는 메시지 역시 전했다. 그런 세상에서 십자수는 어쩐지 남자에게 조신함을 증명하는 순종적 취미로 여겨졌고 뜨개질은 시간과 재능 낭비처럼 보였다. 부엌일에 관심을 가지면 미래에 내가 머물 곳은 부엌이 될 것만 같았다. 199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과하며 ‘가정’이 필수 교과 과정에서 종적을 감추고, ‘정보 통신’이 그 시간표를 대체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섭섭하진 않았다. 나를 둘러싼 사회가 한목소리로 가정 바깥에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살림은 ‘하찮은 행위’가 됐다.

<페미니즘 탐구생활> 저자 게일 피트먼은 학교에서 바느질, 요리 등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철저히 성차별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여성이 했던 일을 현대 여성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관점은 여성적인 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언젠가 페미니스트 엄마를 둔 딸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엄마는 어린 딸에게 절대 공주 드레스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무에 기어오르거나 모래밭에 뒹굴어도 무관한 오버올로 서랍장을 채웠다. 성인이 된 후 딸은 사실 핑크색 원피스가 입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핑크색 원피스를 입어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역사는 여자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1990년대에 잡지 <Bust>를 창간한 데비 스톨러(Debbie Stoller) 역시 비슷한 경험을 고백했다. 사실 데비는 뜨개질하거나 수를 놓거나 바느질할 때 여자 가족과의 연대감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긴 두려웠고 결국 남몰래 뜨개질을 시작했다. 사실 뜨개질은 잘못이 없었다.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목공만큼 공간 지각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문적 활동이었다. 하지만 여성적인 일로 분류되자 하찮은 일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데비는 잡지에 여성적인 활동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 뜨개질을 되찾아오자는 ‘Stitch’n Bitch’ 운동을 벌였고 공공장소에서 공공연하게 뜨개질을 했다. 여성의 일에 가치를 두고 공예 분야에서 여성의 역사를 존중하자는 함성이었다.

한 올씩 뜨다 보면 반드시 온기 충전된 결과물로 탄생하는 뜨개질은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할 때는 저돌적으로 돌변한다. 지난해 총선을 치르던 날 광화문광장과 남산터널 근처 육교에는 핑크색, 빨간색, 네온 연두색으로 직조된 뜨개물이 걸렸다. 실이 엮여 모인 메시지 ‘Vote for Women’이 선명했다. 공예나 뜨개질에 얽힌 여성스러움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편견을 뒤집어보고자 ‘전복적인 공예’를 도모하는 ‘Witch Knit Crew’의 작업이었다. 여자의 이야기를 여자들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연결해나가려는 목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뜨는 뜨개물로 완전하게 구현된다.

소외당했던 역사를 지닌 여성 예술가에게도 살림은 오랜 화두였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에서 저자 윤혜정은 “김수자가 1990년대 초 바느질, 빨래, 청소, 요리, 다리미질, 다듬질, 장보기 등 현대미술이 도외시한 일상적 가사 노동 행위를 미술 언어로 개념화하고 현대미술사에 미적, 사회적, 심리적인 면에서 예술 행위로 재정립했다”고 기록했다. 김수자의 작품은 바늘로부터 시작했다. 회화가 아닌 자수로 작업하는 가다 아메르(Ghada Amer)는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남성의 예술로 여겨지는 ‘회화’를 거부하고 싶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전형적인 도구인 자수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그녀의 첫 자수 작품은 ‘5인의 직장 여성(Five Women at Work)’(1991)으로, 화폭에는 청소하고, 쇼핑하며, 요리하고, 아이를 돌보는 여성 네 명의 모습이 있었다. 다섯 번째 여성은 그녀들을 수놓고 있는 작가 자신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 중인 양혜규의 ‘소리나는 가물家物’을 보며 다시 드는 생각은 살림의 재정의의 필요성이다. 다리미, 빨래집게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은 거대하게 확대되어 자신의 귀한 쓸모를 묻는 듯하다. 작가는 살림은 매니지먼트의 영역이며 정말 대단한 일이기에 존경과 영예를 부여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집안일이 아니라 우리 삶이 원활하게 굴러가도록 큰 계획을 짜고 세부적인 방안을 실행하는 것이다. 살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독립성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엌에 얼씬거리지 않으며 바깥일에만 몰두했던 나는 새로운 가부장이었고 스스로를 책임질 줄 모르는 무책임한 존재였다. 최근 신학자 현경 교수가 오래전 주창했던 ‘살림이스트’를 다시 떠올린 건, ‘살림의 힘’을 절감해서다. 살림은 ‘살림살이’를 뜻하기도 하지만, ‘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면서 지워버렸던 나를 찾았다.

세상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1990년대 뜨개질로 대표된 여성적 행위는 2021년에 에세이 읽기, 다이어리 꾸미기 등으로 이름을 바꿔 ‘여성적’으로 성별화되어 있다. SNS 한쪽에서는 지금도 에세이 읽을 시간에 주식 투자라도 하라는 설전이 벌어진다. 이 둘은 시간을 낭비하는 한심한 취미로 불린다. 하지만 모든 행위에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는 가치는 포터링(Pottering)으로 이 난세를 견디는 지금, 당위성을 잃었다. 게다가 문화 예술, 출판으로 엄연히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이어리를 꾸미고 에세이를 읽어도 된다. 이 취향은 무엇도 상징하지 않는다.

살림을 뒷바라지가 아닌, 삶을 매니지먼트하는 행위로 확장하자 요리, 청소를 비롯해 뜨개질, 화초 돌보기에 재미있는 구석이 많이 보였다. 그동안 내 눈을 가린 건 살림은 쓸데없다는 세상의 폄하였다. 식재료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거나, 뜨개질을 해서 모자를 선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여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러한 인간일 뿐이다. 자수와 복싱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으며 바느질을 좋아한다고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보다 자기 식대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나는 비로소 ‘요리 잘하는 여자’로 불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탐가로서 스스로를 먹이는 책임감을 갖고 싶어졌다. 요리를 여자의 일로 떠넘긴 자에 대한 저주를 담은 뜨개질도 해보고 싶다. 어차피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죄악시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