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STELLA!

2021.02.02

by 손기호

    STELLA!

    빛 가운데 태어나 빛을 발산한 뒤 빛으로 사라진, 스텔라 테넌트.

    2018년 봄 <보그 코리아> 4월호를 위해 사진가 강혜원이 런던에서 촬영한 스텔라 테넌트의 포트레이트.

    <We Have Never Been Modern>. 모델 스텔라 테넌트(Stella Tennant)를 보면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는 스텔라가 없었다면 결코 현대적인 패션을 깨닫지 못했을지 모른다. 짧은 보브 컷에 깊고 푸른 눈, 견고하게 솟은 코를 지닌 모델은 1990년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27년간 패션 세계에서 초현대적인 아이콘의 위치를 독점해왔다. 헬무트 랭부터 칼 라거펠트의 샤넬과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까지. 시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현대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때면 그녀를 찾았다. 이토록 독보적인 모델이 지난해 12월 22일 스코틀랜드의 시골에서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윈체스터 스쿨 오브 아트(Winchester School of Art)에서 조소를 공부하던 스무세 살 스텔라는 양털을 재료로 한 과제를 만들던 중 영국 <보그> 촬영장으로 호출을 받는 것으로 패션계와 인연을 맺었다. X세대를 대표하는 영국 아가씨들을 한데 모았던 1993년 연말 특집을 위해서다. 당시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우연히 스텔라의 여권 사진을 본 후 그녀를 추천했고, 스텔라는 느닷없이 야간열차를 타고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으로 달려갔다. 당시 현장을 지휘하던 인물은 다들 패션계의 전설이었다. 사진가는 스티븐 마이젤, 에디터는 이자벨라 블로우, 스타일리스트는 조 맥케나. 양털 악취를 풀풀 풍기며 코걸이를 하고 나타난 소녀를 보자마자 에디터는 기겁했지만, 마이젤은 단번에 매혹당하고 말았다.

    패션계는 단번에 스코틀랜드 시골 소녀를 열렬히 환영했다. 알렉산더 맥퀸의 레이스 미니 드레스에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플랫폼 구두, 필립 트레이시의 모자를 쓴 마이젤의 영국 <보그> 화보 속 스텔라의 얼굴은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마이젤은 곧 이탈리아 <보그> 커버에 스텔라를 점찍었고,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였던 지아니 베르사체와 장 폴 고티에가 연이어 자신의 쇼에 세웠다.

    녹슨 코걸이에 제멋대로 뻗은 짧은 머리는 그녀를 영국판 그런지 열풍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펑크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스텔라는 사실 역사 깊은 가문 출신이었다(귀족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약한 패션계에서 이런 배경은 빛나는 후광이었던 셈이다). 대영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인이었던 하드윅의 베스(Bess of Hardwick)의 후손이자 스텔라의 외할머니는 20세기 영국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밋퍼드 자매(Mitford Sisters)의 막내인 데번셔 공작 부인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자란 세상은 고귀한 귀족 세계와 거리가 멀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경계 인근의 농장에서 자란 스텔라는 영국 <보그> 촬영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드레스를 입어본 적 없던, 말 그대로 톰보이.

    “그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건지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2018년 영국 <보그> 인터뷰에서 스텔라는 모델 일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고 추억했다. “당시만 해도 패션계는 천박한 곳이라 여겼고,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았어요.” 스텔라를 부추긴 건 아주 실용적인 이유. 스코틀랜드 농장을 구입할 돈만 모으겠다는 계획 덕분에 본격적으로 모델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반응은 놀라울 만큼 뜨거웠다. 패션계 입성 두 시즌 만에 75개 패션쇼에 서는가 하면, 전혀 다른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모두 그녀를 원했다. 헬무트 랭의 날카로운 코트를 입은 모습도, 존 갈리아노의 바이어스 컷 드레스를 입은 모습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렬했다. 스티븐 마이젤의 극적인 이미지에서도 마크 보스윅의 거친 앵글 속에서도 스텔라는 여전히 스텔라였다. 결국 1996년에는 클라우디아 쉬퍼의 뒤를 이어 샤넬과 계약을 맺으면서 패션계의 왕관을 넘겨받았다.

    린다와 나오미, 크리스티와 케이트 등과 함께 패션의 신전에서 마음껏 뛰놀던 스텔라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건 1998년이다. 마리오 테스티노의 어시스턴트였던 다비드 라스네(David Lasnet)와 열애 중에 첫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이듬해 스코틀랜드 시골 성당에서 헬무트 랭의 시스 드레스(할머니인 데번셔 공작 부인은 ‘붕대 신부’라고 불렀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며 잠시 패션 세계에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첫째 마르셀에 이어, 세실리, 재스민, 아이리스가 차례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스텔라와 남편, 네 아이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서 18세기에 지어진 스코틀랜드 농장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2년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마리오 테스티노는 버버리의 새로운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스텔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단순히 모델이 아닌, 정식 컨설팅까지 맡은 스텔라는 자신이 생각하는 영국적인 멋을 버버리에 전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은 남다른 이미지를 완성할 때면 스텔라를 찾았다.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바잘리아는 전혀 다른 발렌시아가의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1990년대를 추억했다. 사진가 마크 보스윅이 찍은 스텔라의 모습은 1990년대를 알지 못하던 세대에게는 충격을,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이에게는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었다(<보그 코리아> 역시 이 이미지로 서울에서 게릴라 전시를 선보였다).

    절대적인 1990년대 키드인 나에게 스텔라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그녀 이후로 카일리 백스, 트리시 고프, 에린 오코너 등 ‘보이시’한 모델이 연이어 등장했지만 누구도 스텔라를 추월할 순 없었다. 1994년 장 폴 고티에 쇼에서 코에 커다란 옷핀을 달고 배꼽에 해골 그림을 그린 모습을 어떻게 잊겠나. 샤넬의 1996년 봄 컬렉션에서는 마이크로 비키니 그리고 1997년 가을 베르사체 꾸뛰르 쇼에서 어깨를 강조한 검정 드레스도 잊히지 않는다. 1994년 데이비드 심스가 촬영하고 안나 콕번이 스타일링한 <더 페이스> 매거진 화보, 또 1995년 마크 보스윅이 촬영한 이탈리아 <보그> 화보는 지금도 패션 에디터인 나에게 영감을 준다. 그런가 하면 2001년 VH1/보그 어워즈에서 발렌시아가의 패치워크 톱과 카고 바지의 스타일링은 어찌나 쿨했는지. MTV 채널로 지켜보던 내게 시상식 무대에 ‘플립플랍’을 신고 오르는 감각은 놀라움 그 이상이었다.

    가끔 런웨이에서 지켜보거나 패션 위크 기간 중 레스토랑이나 거리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스텔라는 여전히 내게도 멀고 먼 인물이었다. 그녀와 나의 세계가 아주 잠시 맞닿은 건 지난 2018년 2월 중순 런던이었다. 수없이 이어진 구애에 마침내 항복한 그녀가 드디어 <보그 코리아>의 같은 해 4월 커버를 촬영하기로 한 것이다. 서늘한 아침 스튜디오에 들어선 스텔라는 곧바로 따뜻한 차를 찾았다. 마주 앉은 그녀는 따뜻하고 정중했으며 열정적이었다. 끊임없는 내 질문(“헬무트와는 아직 연락하는지?” “뎀나와 일하는 건 어떤지?”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인지?”)에 친근하게 답해주었고, 처음 만나는 스태프에게도 금세 웃으며 다가왔다. 인간적인 모습이야말로 더 매력적이었다. 공부 잘하는 아들을 자랑하거나 당시 크게 아팠던 패션계 인물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 촬영이 끝난 뒤 글래스고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스튜디오를 나서던 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크리스마스의 악몽. 성탄절 직전에 찾아온 악몽 같은 소식이 패션계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스텔라는 단순히 모델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첫 번째 랑방 광고에 스텔라를 캐스팅한 알버 엘바즈는 이렇게 추억했다. “그녀는 여성이자 어머니, 영국인이자 귀족이었으며, 황금 같은 마음을 지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텔라를 런웨이에 올린 발렌티노의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그녀만의 매력은 따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가 증명한 게 있습니다. 우아함이란 단순히 신체적인 특징이나 걸음걸이가 아닌 내면에 있다는 거죠.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며 따라 할 수 없는 우아함을 지녔습니다.”

    새해 첫 주, 그녀의 가족은 스텔라가 한동안 깊은 우울증을 겪었으며, 결국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정신적인 건강이 지닌 위중함을 알리기 위해 세상에 그녀의 아픔을 알리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스텔라는 아름다운 영혼을 지녔으며, 가까운 가족과 좋은 친구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지성, 유머 감각을 통해 수많은 이를 감동시킨 감성적이고 유망한 여성이었습니다.” 부디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이 편안하게 영면에 들기를 바란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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