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이시영, 지금까지 이런 여배우는 없었다

2023.02.26

이시영, 지금까지 이런 여배우는 없었다

괴물과 싸우는 대체 불가 액션 스타, 전 국가 대표 권투 선수, 구독자 590만의 틱토커, 등산 유튜버 그리고 엄마. 변화무쌍한 인생을 사는 배우 이시영이야말로 독보적 캐릭터다.

밤하늘의 별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18K 옐로 골드와 아코야 진주 세팅의 ‘어브스트랙 스타’ 네크리스는 타사키(Tasaki), 오프숄더 드레스는 더오픈프로덕트(TheOpen Product).

섬세한 플리츠와 레이스가 조화를 이룬 볼 드레스는 디올(Dior), 펑크적인 가죽 스커트는 채뉴욕(CHAEnewyork).

볼드한 디자인의 18K 핑크 골드 소재 ‘클래쉬 드 까르띠에’ XL 네크리스는 까르띠에(Cartier), 화이트 케이프, 블랙 미니 드레스, 모노그램 패턴이 어우러진 가죽 앵클 부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풍성한 소매와 슬림한 보디 실루엣의 조화가 일품인 이브닝 드레스는 제이백 쿠튀르(Jaybaek Couture), 록적인 가죽 브라 톱은 채뉴욕(CHAEnewyork), 상하좌우로 미세하게 움직이는 피코 장식의 ‘클래쉬 드 까르띠에’ 링은 까르띠에(Cartier), 버클 장식이 돋보이는 플랫 샌들은 소피에(Sophieest).

이시영에게 2021년 1월은 특별한 ‘때’로 기억될 것이다. 전 세계 뷰어들을 매혹시킨 한국형 크리처물 <스위트홈>은 아시아 8개국 넷플릭스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지난 12월 25일 미국 종합 순위 3위까지 올랐다. 비영어권 콘텐츠 중 지금껏 톱 10에 진입한 건 글로벌 메가히트를 기록한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과 <스위트홈>뿐이다. 오래 고생한 제작진과 배우들에겐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결과였다. 특히 특전사 출신 소방관 서이경을 연기한 이시영의 생존 액션과 근육질 몸은 욕망에 잠식된 기괴한 괴물들의 모습만큼 강렬했다. <보그>와 만나 얘기를 나눈 건 10개월간의 촬영을 끝낸 지 꼭 1년이 된 1월이었다.

“기억에서 잊힐 때쯤 드라마가 나왔어요. 워낙 후반 작업이 많아 촬영 후 제작진이 ‘이제 다 잊고 각자 인생 살라’는 농담을 했는데 정말 그런 셈이었죠.” <스위트홈>이 공개된 12월 18일 오후 5시, 이시영은 이응복 연출가와 함께 작가의 집에서 드라마를 ‘집관’했다. CG를 입힌 편집본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온갖 괴물의 실감 나는 묘사뿐 아니라 극의 전반을 이끄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숨 가쁘게 펼쳐지는 보통 사람들의 사투는 1화부터 시선을 붙잡았다. “그날 같이 앉아 작품을 보면서도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몰랐어요. 대본을 계속 읽다 보면 객관성이 좀 없어지잖아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당연히 기분 좋죠.” 차분한 어투로 조용히 말을 잇는 이시영은 강인한 여전사이기보다 숫기 없이 얌전한 소녀 같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귀여운 얼굴과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폭발적 에너지가 나오는지 의아할 정도다. <스위트홈>의 서이경은 뛰어난 피지컬 능력을 지녔지만 액션 영화 해결사들처럼 걱정 없이 응원할 수 있는 무적의 용사는 아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고 뒤늦게 그의 비밀과 마주하게 되었으며, 지구 멸망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 생명을 잉태한 위태롭고 어두운 인물이기도 하다. 동명의 원작 웹툰에 없던 유일한 인물이다.

“새로운 캐릭터니까 이 역할은 남자가 해도 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굳이 여자로 설정한 건 약자가 큰 힘을 발휘할 때 감정적으로 더 풍부해진다는 이유였던 것 같아요.” 아이를 임신한 여주인공이 모성의 힘으로 적과 맞선다는 점에선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가 연상된다. 그러나 이경은 그녀 자체로 어떤 남자 캐릭터보다 강하다. 캐스팅 당시 이응복 감독의 요구는 명확했다. “남자보다 멋있는 액션을 보여달라.” 현란한 카메라 무빙과 편집으로 만들 수 있는 빠르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선 굵은 액션.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여배우 통틀어 다른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알고 있다시피 이시영은 국내 유일의 복싱 국가 대표 출신 배우다. 출연 제안을 받고 그녀는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을 만든 스타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건 모든 배우가 선망하는 일이다. 게다가 3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작이었다.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을 만난 것 같았죠. 반드시 잘해내고 싶었어요. 이응복 감독님과 작업은 처음이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굉장히 좋은 여건에서 촬영하는 만큼 어느 때보다 멋진 액션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는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주 52시간 이하로 촬영한다는 규정이 있다. 긴 제작 기간과 좋은 장비, 준비된 대본 등 배우 입장에선 최고의 환경이다.

이시영은 촬영 6개월 전부터 몸 관리에 돌입했다. 체지방 8%의 몸을 만들기 위해 철저히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하며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갔다. “누가 봐도 괴물과 싸워 이길 만한 당위성 있는 몸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시영은 보디라인을 예쁘게 만드는 대신 벌크업에 집중했다. 속옷 차림으로 거미 괴물과 맞서는 그 유명한 환풍구 장면은 드라마 인기만큼 화제였다. 지옥에 다녀온 듯한 성난 등 근육을 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닮았다며 ‘트리 근육’이라는 별칭도 붙였다. 출연 배우 중 한 명인 송강은 “나비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런 몸을 유지하는 건 다른 문제다. “거기서 보여준 제 몸을 추천하진 않아요. 체지방이 너무 빠지니 이상 증세가 오더라고요. 후유증이 오래갔어요. 원래는 촬영이 없더라도 평소 꾸준히 운동하는 편인데 <스위트홈> 이후로는 정말이지 푹 쉬고 있어요. 치즈 폭탄 피자까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곧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거든요. 제 몸에도 휴식기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운동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녀가 누군가.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달리기로 이긴 이시영이다(MBC <진짜 사나이> 해군 부사관 특집 편). 현재 그녀는 구독자 3만7,000명의 유튜브 채널 ‘이시영의 땀띠’를 운영 중이다. 땀띠는 ‘땀나는 TV’의 준말로, 보기만 해도 땀이 나는 등산 채널이다. 그저 동네 뒷산 정도가 아니라 전국 100대 명산을 목표로 꾸준히 산을 오르는데 거의 산악인 수준이다. “그거 아세요? 한국에 산이 4,000개가 넘어요. 국토 70%가 산지죠. 저도 아직 100대 명산 중 20여 곳 정도만 봤어요.” 긴 화보 촬영 중에도 말수가 드물던 이시영이 등산 얘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났다. 요즘처럼 운동을 쉬는 중에도 가수 션, 전 국가 대표 축구 선수 이영표, 조원희와 함께 일주일에 한두 번 10km 러닝을 하는 것도 등산을 위한 기초 체력을 위해서다. 등산을 시작한 건 <스위트홈> 촬영을 위해 체지방을 감량하면서부터다. 일반적인 달리기보다 고강도 유산소 운동이 필요했기에 걷기도 힘든 산을 마구 뛰어다녔다. “유산소 운동을 위한 수단으로 등산을 시작해 너무 힘들기만 하고 산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매일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무가 보이고 계곡도 보이고 아주 좋더라고요. 좀 천천히 산에 올라도 살이 많이 빠지고. 그러면서 점점 이 산 저 산 찾게 된 거죠.”

등산 유튜브를 개설한 지는 5개월째다. “등산 촬영에 흔쾌히 동참하겠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등산 자체가 힘든 데다 산에 가면 꼬박 하루를 보내야 하니 비생산적으로 여겼겠죠. 다행히 지금 제작 팀에서 강한 의지를 보여 열정적으로 하고 있어요.” 최근 이시영은 월간 <산> 표지 모델로도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제로 다룰 만큼 예상 밖의 전개였다. 촬영 제안을 받고 어리둥절했던 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동트기 전, 새벽 4시에 모여 산속에서 직접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준비해 촬영했다. 해가 가장 아름답게 비치는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화보 촬영이라면 신물 나게 해본 데뷔 14년 차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자연 앞에 인간은 미물일 뿐, ‘산사람’들에겐 여배우의 미모보다는 어디까지나 풍경이 더 중요했다. 이 색다른 경험을 무척 흥미롭게 여겼다. “아무래도 컨셉을 잘못 잡은 것 같아요. 당연히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영상을 볼 거라 여긴 채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반말로 진행했는데, 구독자의 주 연령층이 40~50대인 거예요(웃음). 다시 존댓말로 바꿔야 하나, 요즘 고민에 빠졌어요.”

이시영은 590만의 틱토커로도 유명하다. ‘틱톡에 진심인 편’이라는 글을 달고 올라오는 일상 속 코믹 영상은 600만 뷰 이상을 기록 중이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처럼 코믹한 전작을 떠올리면 낯선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껏 여배우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밈’을 생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실 코믹물을 좋아해요. 운동하게 된 후 중성적이고 강하고 어찌 보면 건조한 역할을 주로 했는데 틱톡에선 제가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어요. 탈출구처럼 가볍게 시작했지만 스트레스도 풀리고 무척 재밌어요.” 그러니까 이시영은 틱톡이라는 또 하나의 가상 세계에 새로운 자아를 만든 셈이다. 황당하고 웃긴 짧은 영상에서 울고 웃고 망가지고 소리 지르는 그녀들은 모두 이시영의 ‘부캐(부캐릭터)’다. 로맨스, 코미디, 액션, 공포, 드라마 등 온갖 장르를 다 아우른다. 확실히 독보적인 캐릭터다. 무엇보다 이시영은 망설임이 없다.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이나 본인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일말의 주저 없이 그냥 한다. ‘일단 하고 보자’는 건 인생의 좌우명이다. “운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늘 하던 말이에요. ‘일단 해봐. 아님 말고.’ 그렇게 인생을 살기 시작하면서 제가 얻은 것이 많거든요.”

사실 이시영은 등장부터 엄청나게 주목받은 스타는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에서 주인공 친구 역을 맡아 예쁘장한 얼굴로 관심을 끌었지만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연예 프로그램 진행자나 출연자로 더 익숙했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고 리버풀 FC 열성 팬이라는 독특한 여자 연예인. 엉뚱한 귀여움이 컨셉인가 싶더니 난데없이 권투를 하겠다고 나선 괴짜. 선수 생활을 고려하기엔 늦은 스물일곱 살에 운동을 시작해 결국 국가 대표 선수까지 된 황당한 이력의 소유자. “진짜 이상한 애라고 여겼을 거예요.” 이시영은 웃으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태어나 운동은 처음이었어요.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복싱장에 갈 일이 평생 없었겠죠. 처음엔 운동 가는 날이 죽기보다 싫었는데, 하다 보니 또 적응하게 되더라고요.” 드라마 촬영이 끝내 무산된 후에도 그녀는 힘든 복싱을 계속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많은 일과 달리 운동은 늘 노력만큼 결과가 따랐다. “선수 생활을 해보니 그 역시 또 아니긴 해요. 그래도 기초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하는 만큼 돌아왔죠. 거기에 빠져든 것 같아요. 결론을 얻고 싶었고. 뭐랄까, ‘약간 미쳤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그땐 그게 중요했어요.” 이시영은 약 8년간 복싱을 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에서 4년간 선수 생활도 했다. 그렇게 30대를 맞았다. 습관적인 어깨 탈구 부상으로 선수 생활 마감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연예계 대신 링 위에서 거친 시간을 보낸 그녀는 전보다 견고하고 성숙해졌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에야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걸 알았어요. 외롭고 힘든 적도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잊지 못할 시간이에요.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죠.” 한동안 그녀는 일부러 복싱 얘기를 피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유별난 열정이나 재능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익숙한 게 편한 탓에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이시영을 그런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시영은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그 모든 것을 ‘이시영다운 자연스러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땀 흘린 지난 시절을 감사하게 여긴다. “건강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제게 너무 좋은 변화를 줬어요. 보너스처럼 연기자로서 제가 갖지 못한 캐릭터도 생겼죠. 그 힘으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이시영은 샤를리즈 테론처럼 멋진 액션을 연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외모 이상의 출중한 연기력을 더 보여줄 것이다. 굳이 다른 배우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제작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스위트홈>의 다음 시리즈도 기대된다. 시즌 1의 서이경은 ‘그린홈’ 밖을 나가는 유일한 인물로 웹툰에 없었던 바깥세상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의 세계관을 확장한다. 전에 없던 캐릭터라는 점에서 서이경은 이시영과 닮은꼴이다. 유튜브와 틱톡, 넷플릭스를 무대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요즘 시대의 배우, 대체 불가 액션 스타. 이시영은 ‘때’를 만났다.

“데뷔 시절 꿈꾸던 먼 훗날의 모습이 지금의 제 모습은 아니지만 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 늦은 나이에 복싱을 시작했고 등산도 배웠어요. 이미 예쁜 아이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찾아오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또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 저의 남은 나날이 기대돼요.”

오프숄더 점프수트는 막스마라(Max Mara), 가죽 뷔스티에와 크리스털 귀고리는 렉토(Recto), 자카드 장식의 컴뱃 부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러플 장식 시폰 드레스, 와이드 벨트, 페이턴트 싸이하이 부츠는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스트링 장식 톱은 젤로티스(Zelotis).

관능적으로 보디라인을 드러내는 리넨 소재의 롱 드레스는 분더캄머(Wnderka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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