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경험
세계적인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늘어선 거리에 검은 소용돌이가 등장했다.
올록볼록한 철판에 가려진, 큐브처럼 네모반듯한 건물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 자리엔 지하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거대한 유리관을 중심으로 네 개의 검은 화강암 기둥이 세워진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다. 가장 기본적인 선과 도형만 허락한 외형은 같은 거리에 위치한 휘날리는 도포 자락과 탐스러운 꽃잎을 닮은 유명 건축가의 건물에 비해 엄격하고 통제된 인상을 준다.
“전 세계의 돌체앤가바나 플래그십 스토어는 각기 전부 다른 모습입니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다른 어느 매장과도 다르게, 서울만을 위해 디자인됐죠.” 도메니코 돌체의 말에 스테파노 가바나는 세련된 도시라는 서울의 인상을 반영해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특히 더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기대가 큽니다. 장 누벨과 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기대했던 진정한 건축 작품이니까요.”
압구정로 414에 위치한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는 아가 칸 건축상(Aga Khan Award for Architecture), 울프상 예술 부문(Wolf Prize in Art),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 등 주요 건축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작품이다. 외부뿐 아니라 인테리어도 장 누벨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는데, 얼핏 곡선 유리창을 설치한 평범한 사각 빌딩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거대한 투명 실린더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건물의 중심에는 또 하나의 유리관(건물을 다 지은 후에 건물 위에서 안으로 삽입한)이 설치돼 있고, 건물 내부에는 그 유리관을 중심으로 단일한 나선형 복도가 이어진다. 모든 플로어는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어슷하게 기울어진 경사로이며, 네 개 층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장 누벨은 서울 스토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국제 박람회처럼 서로 돋보이려고 경쟁하는 지역에서, 돌체앤가바나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차별화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고 검은 소용돌이에서 착안했죠.”
복도를 따라 도미노처럼 설치한 선반과 옷걸이는 기울어진 바닥과 별개로 독립적인 수직을 이루면서 나선형 복도를 양분하는 역할을 한다. 디스플레이를 왼쪽에 두고 걸으면 중앙 유리관을 통해 아래층과 위층을 볼 수 있고, 오른쪽에 두고 걸으면 큰 창을 통해 건물 밖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외부에서도 곡선 유리 파사드와 기울어진 프레임 사이로 내부 경사로를 볼 수 있음을 뜻한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활용한 다양한 블랙 컬러 소재가 매장 내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루프톱의 캐노피는 매장의 ‘꾸뛰르’적 면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거나,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장 누벨의 웅장한 건축에 익숙하다면 이 건물이 장 누벨의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정작 건축가 본인은 그 사실에 만족할지라도 말이다. 그는 건축가를 영화감독에 비유한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작품이란 사실을 몰랐다면, 전부 동일한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스타일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충실한 것을 말하죠.”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 스토어의 곡선 유리관을 통해 내부로 쏟아지는 압도적인 빛의 양은 ‘빛의 건축가’라는 정체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 특기는 바닥을 촘촘히 채운 네로 마르키나 대리석(Nero Marquina Marble) 타일, 망고목, 블랙 글라스와 아노다이즈드 알루미늄(Anodized Aluminum) 등 다양한 블랙 톤의 실내 장식재를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우아함, 패션, 다채로운 소재의 사용이 매장 디자인을 위해 우리가 선택한 돌체앤가바나의 키워드였어요. 공간에서 다채로운 색감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거의 올 블랙에 가까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실제로 매장 내부에 전시된 돌체앤가바나의 의상과 액세서리는 다양한 톤의 블랙 인테리어와 대조를 이루며 보석 상자의 주얼리처럼 아름답게 반짝인다. 누벨은 패션 매장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영되고, 우연한 만남과 내적 성찰이 이루어지며, 고객 경험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일반 건축물과는 다른 곳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건축가로서 그의 목표는 언제나 동일하다. “궁극적인 목표는 늘 그렇듯 진정한 의미의 건축적인 경험을 이끌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동안의 작업에 비하면 소규모인 이번 프로젝트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경험 많은 거장에게도 팬데믹으로 인한 전면 원격 작업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건축 현장을 단 한 번도 직접 방문하지 않은 채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전파를 타고 여행하고, 스크린을 통해 구체화하며, 온라인 미팅으로 완성한 건물이죠!” 지금도 충분히 낯설지만 앞으로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모두가 말한다. 장 누벨은 건축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할까? “팬데믹은 더 많은 사람이 도시 환경의 부조리함을 자각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보다 인간적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방식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더 바람직한 미래가 오기를 바랍니다.”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이규원
- 헤어
- 장혜연
- 메이크업
- 김지현
- 모델
- 윤보미, 노아, 박은우
- Sponsored by
- Dolce&Gab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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