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불쑥 나타난 라이브 커머스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소비, 스토리를 파는 소비, 비하인드를 모두 알고 사는 소비. 이 모든 걸 뭉뚱그린 라이브 커머스가 불쑥 나타났다!
세상에 아이폰도 없고 인스타그램도 없고 tvN도 없고 쿠팡도 없던 시절, 나는 침대에 누워 하루에 1시간 정도 꼬박꼬박 홈쇼핑을 시청했다. 그땐 홈쇼핑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이 하나 있었는데, 홈쇼핑을 챙겨 보는 이유가 그 거부감을 더 단단히 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쇼호스트가 나와 끊임없이 이야기할 때 얼마나 많은 비문을 사용하는지 체크하고, 한 문장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때의 그 덜컹거림을 짚어내고, 같은 방송 안에서도 말의 논리가 이상하게 뒤바뀌진 않았는지, 괜히 매의 눈을 뜨고서는 열렬히 시청했다. 그렇게 축적된 내용으로 비평 기사도 한 번 쓴 적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홈쇼핑에 집착한 건 사실 홈쇼핑이 충격적으로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켜놓으면 시간이 잘 흘렀고 또 눈 돌릴 틈 없이 흥미로웠다. 내가 필요한지도 몰랐던 물건에 대해 꼼꼼하게, 온전하게 설명해줬다. 욕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심정으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품 설명의 불완전함’을 꼬집기 위해 오히려 그 설명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그때 산 물건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지만 홈쇼핑을 보던 순간 나의 몰입도는 아직도 기억난다.
그 후론 홈쇼핑을 끊고 해외 직구에 빠져들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불붙기 시작한 ‘라이브 커머스’ 열풍 덕에 오랜만에 홈쇼핑을 시청하는 마음으로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훑었다. 아시다시피, 라이브 커머스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유튜브 라이브 등에 익숙한 판매자, 소비자 모두의 필요에 의해 생긴 새로운 쇼핑 방식이다. 휴대전화에 특화된 타이트한 앵글과 세로형 방송 화면으로 상품 판매 생방송을 진행하고, 소비자는 실시간 필터 없이 댓글을 남길 수 있다. 아이돌이 그렇게 개인 방송 화면에 대고 외치던 ‘여러분과의 즐거운 소통’이 소비의 한복판에도 등장한 셈이다. “제가 이렇게 물건을 가지고 나왔지만, 솔직히 저는 소통하려고 왔죠. 오늘도 여러분이랑 놀아보도록 할게요.” 어느 날 방송을 하던 쇼핑몰 대표가 실제로 한 말이다.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모아둔 플랫폼 사이트에 들어가면 공통점을 한 가지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 유튜버, 인플루언서가 사회자로 자주 등장하는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선 하나같이 모두 두 손을 흔들며 소비자들과 끊임없이 인사한다는 점이다. 이 친근한 버스트 샷이야말로 라이브 커머스의 특징을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존 홈쇼핑이 이루지 못한 ‘탈방송’의 친근함.
자주 보이는 단골 시청자의 아이디를 불러 인사하고, 제품과 아무 상관 없는 질문에도 답하고, 정곡을 찌르는 제품의 단점 지적에도 답하고, 심지어 다른 시청자가 또 다른 시청자의 질문에 답변을 대신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라이브 방송에 익숙한 사회자는 실시간에 몸을 맡긴 채 방송 시간과 제품 설명과 질문과 답변 사이를 능숙하게 유영한다. 그걸 보는 나 역시 과거 홈쇼핑을 챙겨 보던 나와는 태도가 달라졌다. 옆집 가게 사장님처럼 다가오는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볼 때는 사회자의 비문이나 삐걱거리는 제품 설명 따위는 더 이상 시청의 방해 요소가 아니다. 코미디언이 나와 동물 흉내를 내다 운동화를 파는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 기존 ‘방송’과 같은 잣대는 큰 의미가 없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3조원 규모로 예측되던 라이브 커머스 시장이 2023년에는 10조원으로 커질 것이라 예측했다. 네이버, 카카오, 시즌,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 기업이 라이브 커머스에 중무장한 채 뛰어들었고, 중소 규모 쇼핑 플랫폼 역시 어렵지 않게 시장에 진입했다. 라이브 송출과 댓글이 가능하다면,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로 연결만 가능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판매의 멍석은 쫙 깔리는 셈이다. SNS나 유튜브를 써본 적 있는 이들에게 ‘라이브 방송’에 꽤 익숙한 형태이기에 ‘라이브 커머스’에 처음 진입하는 이들에게도 허들은 없다. 홈쇼핑처럼 전문 방송 스튜디오 분위기를 내고, 쇼호스트가 물건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보여주는 것만이 또 라이브 커머스는 아니다. 요즘 브랜드라면 하나씩은 기본으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기능을 켜서 매장을 찍고, 물건을 하나씩 보여주고, 댓글에 달리는 질문에 답해주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라이브 커머스의 일종이다. 클릭 한 번으로 구매까지 연결된다면 확실한 ‘풀 패키지’. 그렇지 않더라도 ‘라이브 커머스’는 쇼핑 문턱을 낮추는 최신의 방법으로 기능한다. 최근 관심이 있던 리빙 편집숍이 켠 라이브 방송에 들어갔다가 30분을 넘게 그대로 방송을 본 경험이 있다. 평소엔 전화를 걸고 제품 번호를 불러 가격을 확인해야 했던 고가의 상품도 댓글 한 번으로 궁금증을 해소했다. “질문하신 이 소파는 대략 1,000만원이고요, 질감은 이렇게 가까이 찍어 자세히 보여드릴게요.”
라이브 커머스는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제품 구매의 유용성 면에서도 확실한 장점이 있다. 채널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동시간에 판매 중인 제품이 또 셀 수 없이 많다 보니 소비자에게는 선택지가 두둑한 메뉴판이 눈앞에 놓이는 것과 같다. 예닐곱 개쯤 되는 홈쇼핑 채널을 옮겨 다니며 시청하던 때와 완전히 다르다. 또 이 시기에 딱 필요한 물건, 지금 딱 세일 중인 상품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물건 더미에서 헤매지 않아도 된다. 실시간으로 시청자가 많은 채널에 들어가면 ‘필요한 것이’, ‘그곳에’, ‘딱’ 있다. 라이브 커머스 방송 채널 중엔 여전히 ‘6시 내고향’ 같은 포맷도 있고, 말쑥한 진행자가 나와 제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고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있다. 이 둘의 간극은 아주 크지만, 제품 스토리를 구구절절 풀어낸다는 점은 같다. 이 김의 생산자는 누구인지, 이 향수 생산 지역의 향료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지금 이 운동 기기가 나오기까지 어떠한 기술적 변화를 겪었는지 시청자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설명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 미용 기기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보기 위한 사용법은 어떻게 되는지, 이 옷을 실제로 입으면 핏이 어떨지도 파악할 수 있다. 자꾸 지갑이 열리는 건 이처럼 다각도로 소비를 자극하는 라이브 커머스의 특징 때문이다.
한바탕 정신없는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시청하고 난 뒤, 와글와글하던 노트북 화면이 조용해지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사한 사진과 정제된 글로 소비자의 지갑을 마구 열던 쇼핑 플랫폼은 어찌 되는 걸까? 인스타그램의 아름다운 사진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던 판매자, 보드라운 감성의 제품 사진으로 이미지를 구축하던 브랜드도 시대에 맞춰 변할까?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려 상승할 브랜드도, 기존에 하던 것을 꿋꿋하게 유지해 생존하는 브랜드도 있겠지만 제품을 ‘파는 방법’이 변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플랫폼과 콘텐츠 형태가 바뀌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이 이미지로 승부 보던 시대를 지나, 제품 스토리로 소구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제품의 동서남북, 앞뒤 위아래, 장막 뒤의 비하인드와 최소한으로 정제된 제품의 포장까지 다 벗겨 탈탈 털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기사를 위해 일주일간 매일 한두 시간씩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시청했다. 나뿐 아니라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대부분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한다. 15~30초짜리 광고의 강렬한 임팩트보다 1시간짜리 잡담을 동반한 소통으로 제품을 구매하고, 그것을 시간 낭비로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더 익숙하게 여긴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마를 짚었다. 소비가 정말로 일상이 되고, 소비가 진짜 놀이가 되는 순간을 내가 목도하는 것일까? 소비자의 피드백이 활발하다 못해 실시간 직접 전달되는 소비 생태계가 열리는 것일까?
일단 오늘 도착할 예정인 ‘라이브 커머스 특가 20% 할인 순살 간장게장과 새우장 세트’를 먹으며 생각하는 게 낫겠다.
- 에디터
- 김나랑
- 글쓴이
- 손기은(칼럼니스트)
- Courtesy of
- 라이브 커머스 더립, 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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