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가장 저평가되는 감각, 후각 이야기

2021.04.26

by 이주현

    가장 저평가되는 감각, 후각 이야기

    냄새를 인지하고 구별하는 후각과 신체, 정신의 기묘한 상관관계.

    코를 톡 쏘는 갓 베어낸 풀 내음,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냄새, 무더운 날 얼굴에 바른 자외선 차단제 향… 2014년 록펠러대학교(Rockefeller University)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코는 수천억 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그중에는 특정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 냄새가 있다. 비주얼 아티스트 코시마 스미스(Cosima Smith)가 35세 되던 해 그녀의 세상을 큰 혼란에 빠뜨린 건 훈제 러시아식 팬케이크 ‘연어 블리니’ 냄새였다. 지난해 봄, 어느 파티에서 그녀는 입에 넣으려던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했어요. 분명 식감도 느껴지고 연어가 눈앞에 보이는데 그 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죠.”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코시마는 미각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당시 후각 상실증이 코로나19 증상이란 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는데 이젠 그녀도 안다. 코로나19 초기 증상이었다는 사실을. 영국 의학 저널 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의 절반 정도가 후각 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 메이오 클리닉(Mayo Clinic) 연구에서도 후각 상실이 고열보다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파악하는 데 더 나은 지표가 된다고 밝혔다.

    딥티크 ‘오르페옹 오 드 퍼퓸’.

    냄새를 인지하고 구별하는 후각은 복잡하지만 저평가되는 감각이다. 2011년 젊은이 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16~22세 응답자 절반 이상이 “기술 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느니 후각을 잃는 게 낫겠다”고 답했다. CNN 사진기자로 활동하는 남편도 이런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선천적으로 후각 상실증을 갖고 태어난 그는 태어나 어떤 냄새도 맡아본 적 없다. 그래서 냄새와 연관된 기억도 없다. 젖먹이 아이의 머리 냄새는 물론 어머니의 향수 냄새를 맡아본 적 없다. 놀랍게도 우리가 처음 만난 10년 전까지도 이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음’이나 ‘웩’이라고 했어요. 그걸 큰 문제로 만들고 싶지 않았죠.” 그는 마늘이나 박하 같은 향신료 맛을 느낄 수 없다. 대신 최대한 식감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는다. 놀랍게도 음식을 못하지도 않는다. 끓어오르는 냄비의 뚜껑을 열며 “이거 아주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은데!”라고 외치는 남편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면 그걸 그리워할 일도 없어”라고 말한다.

    구찌 뷰티 ‘블룸 오 드 퍼퓸’.

    향기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향수 브랜드 오스텐스(Ostens)의 창립자 로랑 들라퐁(Laurent Delafon)과 크리스토퍼 유(Christopher Yu)를 매료시켰다. 유나이티드 퍼퓸즈(United Perfumes)의 CEO와 매니징 디렉터이기도 한 둘은 딥티크 영국 지사 성공의 주역으로 향수업계에서 20년 이상 일해왔다. “로랑과 저는 향과 관련된 교육이나 향에 대해 말할 때 쓰는 표현을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해왔어요. 아이들은 질감이나 맛, 색을 표현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이 배우지만 그에 비해 향과 관련된 단어는 많이 알지 못하죠.”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후각 상실증의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연구에 따르면 후각 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은 우울, 불안, 외로움뿐 아니라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 후각은 병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나 방향 감각과도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후각을 잃기 전까진 그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죠.” <욕망을 부르는 향기(The Scent of Desire)>의 저자인 신경학 박사 레이첼 허즈(Rachel Herz)가 말했다. “뇌에서 후각을 담당하는 부분은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후각을 잃으면 자아도 잃기 시작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자아를 상실하는 게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루이 비통 ‘온 더 비치’.

    “코로나19로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후각을 잃는 건지 아직 확실히 알진 못해요.” 할리 스트리트에 위치한 가이스 & 세인트 토머스 영국 보건 서비스 파운데이션 트러스트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개빈 모리슨(Gavin Morrison)이 말했다. “코에 염증이 생기는 것도 이유가 되겠죠. 향이 공기를 통해 뇌로 전달되지 않는 거예요. 보통 3주 동안 증상이 지속되는데 코로나19 환자 중 10% 정도는 증상이 더 오래가요. 신경이 손상되거나 후구(Olfactory Bulb)에 문제가 생긴 거죠. 우리가 이미 알듯이 코로나19가 뇌에 영향을 주니까요.”

    아로믹스(Aromyx)는 팰로앨토(Palo Alto)에 위치한 바이오 기업으로 전 세계인의 후각에 대한 인식을 분석한다. 조시 실버맨(Josh Silverman) 아로믹스 CEO는 “세계 최초로 맛과 냄새에 대한 느낌에 대해 소통하는 플랫폼을 제공하죠. 후각은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에요. 코가 뇌보다 먼저 발달하기에 코는 뇌의 가장 오래된 부분과 연결되죠. 우리는 냄새를 감정이나 직감을 통해 해석해요. 다른 어떤 감각과 비교해도 그런 경향이 더 큽니다. 그래서 냄새에 대한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더 어려운 거예요.”

    이솝 ‘마라케시 인텐스 오 드 퍼퓸’.

    크리스토퍼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후각을 잃었다(다행히 현재는 회복한 상태다). 하지만 그는 로랑과 만든 향에 대한 언어 덕분에 후각 상실증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만의 언어로 말하면 되니까요. 로랑이 어떤 향을 맡고 제게 설명해주면 저는 다른 방식으로 그 향을 맡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죠.”

    모리슨 박사에 따르면 후각을 잃거나 후각에 변화가 생기면 12~18개월에 걸쳐 증상이 완화되긴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렵다. 또 누구라도 후각에 변화가 생긴 걸 알아차리면 바로 이비인후과를 방문할 것을 강조했다.

    원인에 따라 치료 방법도 다양하다. 후각 수용체와 코안의 신경섬유를 활성화하는 수술이 될 수도 있고 현재 코시마가 받고 있는 ‘후각 트레이닝’이란 것도 있다(Fifth Sense 같은 자선단체를 통해 받을 수 있으며, 조향사라면 기본적으로 받는 트레이닝이다). 이 트레이닝은 태어날 때부터 후각 상실증인 사람이 아니라면 효과가 있다.

    린다 필킹턴(Linda Pilkington)도 자신의 퍼퓸 하우스 오르몽드 제인(Ormonde Jayne)을 설립하기 2년 전부터 조향사 트레이닝을 받았다. 다양한 향에 대해 외우면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한층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지나치는 모든 향을 맡을 수 있었어요.” 그녀는 안개 낀 날 하이드파크 주위를 걸으며 말했다. “저 여성분은 이런 종류의 향수를 뿌렸군요. 이 집에서 나는 냄새는 별로네요. 다른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냄새까지 맡는 거죠. 온갖 향을 계속 맡지만 그게 힘들진 않아요.”

    내가 계속 조르는데도 남편이 왜 본인이 냄새를 맡지 못하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굳이 알아보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어디 갈 때마다 온갖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나에겐 너무 과할 것 같아. 그리고 냄새가 본질적으로 매력과 연결된다면 말이야.” 남편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당신이 안 좋아지면 어떡해?” 나름 일리 있는 말이다.

    뷰티 에디터
    이주현
    포토그래퍼
    조기석
    Nicole Mowbray
    모델
    홍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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