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 엘바즈를 기리며
코로나로 인한 알버 엘바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뿐 아니라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그리고 그가 디자인한 옷으로 인해 많은 기쁨을 누렸던 사람들까지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수많은 디자이너가 있지만, 알버 엘바즈의 창의적인 작업 방식은 공감 능력과 따스함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패션의 터무니없는 면을 꿰뚫어보고, 여자들을 거기서 탈출시키곤 했죠. 여자들을 자신의 친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친구든 아니든, 그와 대화를 나누면 그가 얼마나 사려 깊고 위트 넘치며 통찰력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솔직하고 즉흥적이며 비유로 가득한 담화 방식은 그와 대화하는 모든 이가 아주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는 여자들을 변신시키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있는 거죠.”
이 코멘트는 지난 1월 알버와 나눈 줌 대화에서 들은 것입니다. 나의 동료이자 <보그> 런웨이의 글로벌 디렉터인 니콜 펠프스와 셋이 함께 한 대화였습니다. 그는 패션계로 복귀하며 선보일 자신의 브랜드 AZ 팩토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죠. 그는 여자들에게 동시대적인 “해결책 기반(Solutions-based)”의 컬렉션을 제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패션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가 이룬 것들, 그의 재능, 패션계에 기여한 바를 하나의 글에 전부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알버 엘바즈를 다른 디자이너와 차별화한 것은 그가 자신을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포지셔닝했는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컨셉을 뽑아내는 천재가 아니라, 자신의 기술과 여자들이 살면서 겪는 것들에 대한 사회적인 통찰력을 결합한 협력자로 스스로를 정의했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 그리고 여자들의 삶과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을 포용하는” 일이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레드 카펫 룩을 차려입을 때 가방이나 목걸이, 귀고리에만 신경 쓴다면 정말 중요한 걸 놓친 거라고요. 그는 여자들을 보고 싶다고 했죠. 그들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평생의 과제는 드레스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최종적으로 사라질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그 여자의 얼굴이니까요.”
비록 그가 사라질 옷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가 패션에 기여한 바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패션사뿐 아니라 그의 옷을 입고 아끼고 좋아한 여자들의 옷장에서도 말입니다. 나는 2002년 알버가 랑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첫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 그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디자이너가 본능적으로 패션의 축을 이동시킨 기억돼야 할 하나의 순간이었죠. 감수성에 대한 모든 것이 있었고, 사랑받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원석 장식의 드레스와 코트, 바닥에 끌리는 올 풀린 시폰… 세련된 테일러링의 고상한 현실주의 버전이었습니다.
당시 랑방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알버는 하우스를 파리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고 가장 핫한 하우스로 변신시켰습니다. 첫 시즌 직후부터 수많은 여자들이 매장으로 달려갔으니까요. 거기에는 늘 그의 시그니처 드레스가 있었습니다. 볼륨 있는 태피터와 실크, 허전한 네크라인을 장식할 화려한 크리스털 주얼리, 그로그랭 리본, 펜슬 드레스와 몸을 넉넉하게 감싸는 코트. 당대 여자들과 발맞추며 실용성을 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공감 능력에 기반한 전문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랑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 전 알버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입생로랑의 여성복을 맡았고, 그 전에는 기라로쉬, 그리고 1989년부터 파리로 베이스를 옮기기 전까지 뉴욕에서 제프리 빈과 함께 일했습니다. 랑방에서 자신의 비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10년 이상의 오뜨 꾸뛰르 경험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알버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훨씬 더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1년에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난 그는 8개월이 됐을 때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 텔아비브 외곽 마을 홀론으로 이주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헤어 컬러리스트로 일하고 있었죠. 나는 디자이너의 옷에 대한 첫 번째 기억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알버의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장난감 살 돈이 없었어요. 집에 있는 건 체스판이 전부였죠. 어릴 적에 난 아빠의 은박지를 가져다가 체스판의 말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곤 했어요. 그들에게 역할을 만들어주면서 몇 시간이고 놀았답니다.”
학창 시절에는 좋아하는 선생님에게서 영감을 얻어 패션 그림을 교과서에 그리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셴카르대학(Shenkar College of Textile Technology and Fashion)에 입학했지만 입대해야 했죠. 어린 알버즈의 군 생활에 대한 이야기 역시 그가 얼마나 창의적인 독창성과 친절함을 지닌 사람인지 보여줬습니다. “천식이 있어서 그들은 나를 군악대로 보냈어요. 수많은 이들이 집에서 떨어져 외로워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여자들이 부모님 댁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봤죠.” 그가 웃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 것은 매주 한 번씩 그들을 데려다가 함께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했죠!”
전 세계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알버 엘바즈가 가져온 행복으로 감동받았는지 알기란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의 평생의 반려자 알렉스 구의 슬픔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패션계는 알버가 우리에게 준 모든 것에 큰 빚을 졌습니다. 그를 알게 된, 운 좋은 우리에게 그에 대한 기억은 보물처럼 남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옷을 입는 걸 좋아했고 앞으로도 좋아할 이들에게도요.
- 글
- Sarah Mower
- 에디터
- 송보라
- 사진
- GettyImagesKorea, Shutterstock, AZ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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