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와 미술계의 핫이슈, NFT
프랑스 남부 해안가에 집을 짓는다. 구찌 신상 드레스를 입고 블랙핑크 콘서트를 관람한다. 피카소 그림 4분의 1 조각을 구입한다. 코로나 시대에도 가상 세계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NFT는 디지털 신세계에 눈뜬 패션계와 미술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올봄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의 화제는 6,930만 달러(약 785억원)에 낙찰된 비플(Beeple)의 디지털 회화 작업이었다. 미국 디지털 아티스트로 2007년 5월부터 매일 온라인에 신작을 게재한 그는 지난 1월 5,000번째 업로드를 마친 후 이를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라는 이름의 디지털 콜라주로 묶어 미술품 시장에 내놓았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이로써 그는 제프 쿤스와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현존하는 예술가 중 세 번째로 비싼 작가가 됐다. 크리스티는 2만1,069×2만1,069픽셀의 이 거대한 Jpg 파일을 경매 회사가 선보이는 ‘최초의 순수 디지털 작품’으로 홍보했다. 물론 이전에도 크리스티가 비디오 작품이나 팀랩(TeamLab)의 소프트웨어 기반 설치 작업을 판매한 적은 있다. 하지만 여기엔 디지털 파일을 저장할 수 있는 고급 하드 드라이브와 작품 인증서 같은 물리적 요소가 수반되었다. 이번 경우는 다르다. Jpg 파일과 NFT가 이 모두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약자인 NFT는 쉽게 말해 디지털 정품 인증서 같은 개념이다.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암호 화폐의 일종이지만 비트코인과 달리 대체가 불가능하다. 버스 토큰과 동전(코인)의 차이랄까. 예를 들면 100원짜리 동전끼리는 상호 교환이 가능하지만 버스 토큰(요즘식으로 말하자면 버스 카드)은 각각의 값어치가 다르다. 서울 강남 땅과 지방 변두리 땅이 똑같은 면적임에도 실물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천지 차이가 나듯 말이다. 이처럼 NFT는 별도의 고유 인식값을 지니고 있어 가치가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복사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이미지, 동영상, 음악, 텍스트 등)에 진정성과 희소성을 부여할 수 있다. 또 암호화 기술과 P2P(Peer to Peer: 개인 간의 디지털 파일 공유) 네트워크를 통해 구축된 블록체인이 중요한 기록을 저장하는 데 유용한 만큼 여러 온라인 플랫폼에서 해당 파일이 되팔리거나 전시될 때마다 모든 소유권자의 기록이 따라다닌다. 거래 장부가 인터넷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다. 덕분에 갤러리나 아티스트가 진품으로서의 가치와 신뢰를 얻고자 노력해온 일련의 지난한 과정(얼마나 믿을 만한 거래처인지 입증해주는 역사와 명성, 작가와 기관의 사인이 첨부된 인증서, 한정판이라는 약속 등)을 NFT는 한 번에 자동화한다.
대체 이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는가에 관해선 세세히 묻지 마시길.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의 짧은 논문조차 인문계 출신인 내겐 그 자체로 해독 불가능한 암호와 같으니까. 2008 년 인터넷에 등장해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제목의 아홉 장짜리 논문을 남긴 나카모토는 2011년 홀연히 사라진 상태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유수의 천재적 인물들이 후보로 지목되었지만 누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인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논문에서 기술한 이 블록체인이 금융뿐 아니라 거래와 신용에 기반을 둔 지적 재산권(IP) 영역에서 매우 유용하다는 점이다. 별도의 인식값이 부여된 NFT 디지털 콘텐츠는 이더리움(Ethereum) 같은 가상 화폐를 매개로 NFT 컬렉팅 플랫폼을 통해 거래된다. 작가가 직접 판매하는 1차 시장으로는 슈퍼레어(SuperRare),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 파운데이션(Foundation), 메이커스플레이스(MakersPlace) 등이 유명하고, 개인 간에 거래하는 2차 시장으로는 ‘라리블(Rarible)’, 오픈씨(OpenSea) 등이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누구라도 당장 이 사이트 중 하나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는 식으로 자기 작품이나 소장품을 NFT 민팅(Minting: 주조)해 업로드하면 된다. 물론 누군가가 이를 보고 입찰·매수 버튼을 눌러 실제 판매가 되는 건 다른 문제다.
크리스티 역시 순수 디지털 작품을 대상으로 한 이번 경매를 위해 NFT 예술 작품 거래소 ‘메이커스플레이스’와 제휴했다. 2018년 파리의 인공지능 연구기관 오비어스(Obvious)가 알고리즘으로 생성한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화’를 추정치의 40배가 넘는 43만2,500달러에 팔며 ‘알고리즘이 창조한 예술품을 선보인 최초의 경매 회사’라는 타이틀을 가져간 크리스티는 비플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로 디지털 콘텐츠 아트 작품의 신고가를 경신하며 예술계 혁신의 아이콘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크리스티와 함께 글로벌 경매 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소더비 또한 ‘Pak’로 알려진 익명의 디지털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NFT 경매에 나선다. 이들에 앞서 일론 머스크의 아내이자 가수인 그라임스가 3월 초 경매에 내놓은 디지털 그림은 20분 만에 580만 달러(약 66억원)에 거래되었다.
한국 작가와 국내 갤러리도 NFT에 관심이 높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NFT 작품을 판매해왔다. NFT 시장에선 특히 캐릭터 기반 작품이 인기가 있는데 그중 단연 주목할 만한 건 디지털 아티스트 ‘미스터 미상’이다. NFT 작품을 선보이기 전까지 외주를 받는 프리랜스 그래픽·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미술계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의 작품은 억대에 거래된다. 앞서 언급한 NFT 컬렉팅 플랫폼 ‘슈퍼레어’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그는 자신의 ‘Modern Life is Rubbish’ 시리즈 ‘Pantheon’을 최근 33만7,432달러(약 3억8,000만원)에 팔았다. 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한 작품 이미지 대부분엔 ‘Sold Out’ 마크가 찍혀 있는데 여기서도 판매가를 확인할 수 있다. 1월부터는 아예 크립토복셀(Cryptovoxels)이라는 3차원 가상 세계에서 얼마간의 랜드(Land: 게임 안에서 구획된 땅)를 구입해 직접 갤러리를 짓고 작품을 해당 사이트에서 전시하는 중이다. 크립토복셀은 갤러리나 숍을 짓는 데 특화된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 세계로 요즘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그 유명한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와 마찬가지로 가상의 부동산을 사고파는 사이트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게임 심시티(SimCity),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와 비슷하다.
NFT 컬렉팅은 미술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잭 도시는 얼마 전, 2006년 3월 21일 자 자신의 첫 트윗 ‘Just setting up my twttr’를 NFT로 민팅해 밸류어블스 바이 센트(Valuables by Cent)라는 트윗 거래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최종 낙찰가는 1,630ETH(약 290만 달러)으로 잭 도시는 이를 모두 비트코인으로 바꿔 수익금을 아프리카 빈곤 가정을 돕는 기부 플랫폼에 보냈다. 농구 선수 르브론 제임스의 덩크슛 장면을 담은 NFT 포토 카드는 20만8,000달러에 팔렸다.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NFT 이벤트는 또 어떤가. 맥도날드는 실물 굿즈 대신 빅맥과 감자튀김 등 대표 메뉴 네 개를 토큰화한 디지털 아트 ‘McDoNFT’를 경품으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타코벨 역시 지난 3월 8일 타코를 테마로 하는 5종의 NFT 이미지 25개를 ‘라리블’ 플랫폼에서 발행해 30분 만에 전량 매진 기록을 세웠으며, 이미 2차 시장에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프링글스도 ‘크립토 크리스프’ 맛 NFT 50개를 출시한 바 있다. 가격은 현실의 상품과 동일하지만 실제로 맛볼 수는 없다.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CoinDesk)>는 NFT 시장의 가치를 2억5,000만 달러로 추정한다.
이 같은 NFT 컬렉팅 열풍의 원조는 2017년 출시된 가상의 고양이 육성 게임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일 것이다. 그 옛날의 다마고치와 포켓몬 카드가 결합된 형태로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고양이를 키우는 수집형 게임이다. 저마다 다른 용모와 특성을 가진 고양이들을 모으고 교배해 최대한 아름답고 희귀한 고양이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각각의 고양이는 NFT화돼 고유의 일련번호를 부여받기에 유저들은 암호 화폐로 이 고양이들을 사고팔 수 있다. 현재 가장 높은 가격이 붙은 고양이는 분홍색 몸에 용의 꼬리를 가진 ‘드래곤’으로 판매가는 600ETH이다. 4월 13일 자 USD 이더리움 가격을 사용해 환율을 재계산하면 무려 14억6,000만원! 크립토키티의 유행은 지났어도 이 못난이 고양이들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가상 세계의 아바타를 위한 옷도 주요 거래 품목 중 하나다. 내가 아는 미디어 아티스트는 요즘 메타버스(Metaverse) 내 아바타의 드레스를 디자인하며 못다 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실현하는 중이다.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말 그대로 웹과 인터넷 등의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에 흡수된 또 하나의 세계다. 한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미스터 미상이 크립토복셀에서 디지털 부동산을 구입해 가상의 갤러리를 운영하듯 메타버스의 유저들은 땅을 매입하거나 건물을 올리고, 게임, 전시, 테마파크, 공연 등의 콘텐츠를 만들어 현실 세계처럼 운용한다. 버추얼 의상이나 메타버스 플랫폼 내 게임, 공연 등의 입장 티켓을 사고팔 수 있고 유저들끼리 채팅도 가능하다. 암호 화폐로 모든 거래가 이뤄지는 메타버스는 NFT와 만나면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듯 보인다.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가상 세계에서도 아이템의 소장 가치는 진품의 희소성에서 오는 법이니까.
이미 패션계에서는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루이 비통이 라이엇게임즈와 지난해 10월 유럽에서 출시한 LOL(리그 오브 레전드) 버추얼 의상과 신발, 가방, 액세서리 47종은 1시간 만에 모두 매진됐다. 약 2억 명의 유저를 보유한 네이버Z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Zepeto)’에는 구찌 매장이 생겼다. 1월에 구찌 2021 S/S 시즌 신제품 일부를 구현한 버추얼 컬렉션은 열흘 만에 제페토 내에서 40만 개 이상의 2차 콘텐츠를 생성했으며 조회 수는 300만 이상을 기록했다. 블랙핑크 콘서트와 사인회가 열리기도 한 제페토는 전 세계 Z세대의 놀이터다. 제페토는 구찌와 함께 3D 월드맵 ‘구찌 빌라’를 론칭하며 구찌 IP를 사용한 옷과 가방, 액세서리 제품 60여 종을 공식 발표했다. 구찌 본사가 있는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버추얼 매장에서 제페토의 유저들은 인형 옷 입히기를 하듯 자신의 ‘부캐’ 아바타에게 구찌 제품을 입히고 이를 구입할 수도 있다. 현실의 내가 입을 수 있는 옷도 아닌데 이 무슨 돈 낭비인가 싶겠지만, 일단 아바타에 구찌 신상을 척 하니 입혀보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도 구찌는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와 파트너십을 맺고 사이버 패션 스타일링 게임 ‘드레스트’를 비롯 ‘심즈4’, ‘포켓몬스터’ 등의 게임과 협업한 적 있다. 최근에는 자사 앱을 통해 AR 피팅 룸을 선보이며 착화 체험이 가능한 한정판 스니커즈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11.99달러(한화 1만4,000원)에 판매하는 이 3D 증강 현실 스니커즈는 벨라루스 기반의 패션 테크 기업 워너(Wanna)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디지털 의상과 패션 소품을 NFT로 판매하진 않지만 현실화될 전망이다. NFT 전문 분석 사이트 ‘논펀지블닷컴(nonfungible.com)’에 따르면 나이키, 루이 비통 등 유명 브랜드에서는 이미 NFT 상품 제작에 나선 상태다. 나이키는 2019년 말 고객이 구매한 상품에 고유 아이디를 부여해 제품의 소유와 진품을 증명할 수 있는 ‘크립토킥스(CryptoKicks)’라는 이름의 특허를 출원했다.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인 칼 라거펠트의 사진도 모두 블록체인으로 저장된다. 라거펠트가 샤넬에 합류한 1983년부터 그와 일해온 샤넬 아트 디렉터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패션 & 라이프스타일 네트워크를 구축한 룩소(Lukso)에 자신이 소장한 사진을 캐시 메모리로 남기기로 했다. 프룬더는 2019년 라거펠트 사망 후 그의 개인적 사진 유산을 상속받았다. 라거펠트는 “나는 현재를 수용하며 미래를 발명한다”고 말하며 늘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룩소의 자문위원이기도 한 프룬더는 아카이브를 이곳에 두는 건 바로 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 세대는 피지털 스페이스(Phygital Space)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진화하고 있으며 우린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죠.” 피지털 스페이스란 물리적(Physical) 제품과 디지털(Digital) 서비스가 결합된 세상을 뜻한다. 바로 요즘의 3차원 가상 세계처럼 말이다. 전시와 책을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공개될 라거펠트의 아카이브는 디지털 복사본, 실물 복사본, 한정판 에디션 등의 형태를 띠며 이미지는 모두 NFT 포맷으로 등록된다.
이쯤 되면 대체 ‘룩소’는 또 뭔가 싶을 것이다. 이름은 물론 ‘새로운 창조 경제를 위한 블록체인 멀티버스(Multiverse)’라는 회사 소개도 생소하지만 룩소의 공동 설립자가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파비안 보겔스텔러 (Fabian Vogelsteller)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위상은 달라진다. 룩소는 지난 2월 22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세계 최초의 ‘크립토 패션 위크(@Cryptofashionweek)’의 메인 스폰서로 나섰다. 크립토 패션은 블록체인으로 거래 및 인증하는 디지털 패션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 패션 위크의 이미지와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각국의 여러 3D 패션 아티스트가 창작한 디지털 패션 작업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눈을 사로 잡는다. 패션 위크 동안에는 클럽하우스와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디지털 패션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기술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이벤트를 열었다. 디지털 패션 위크답게 AI 구동 방식의 트랜스휴먼 쿠키(Kuki)가 특별 출연해 대담을 이어가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패션과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지적 재산권 영역에 가져온 변화의 바람이 우리를 더 나은 차원으로 진화시킬 커다란 돌풍일지 투기꾼들의 일시적 광풍일지는 아직 모른다. 의견은 지금도 분분하다. NFT는 진품에 대한 신뢰를 담보하지만 진품의 예술적 가치를 증명할 수는 없다. 신뢰도와 가치는 다른 얘기다. 내 컴퓨터에 저장된 숱한 파일이 NFT화된다고 저절로 가치를 지니는 건 아니다. ‘정품’임이 분명한 나의 ‘투데이 익스클루시브’ 똥과 오줌처럼 말이다. 미국의 어느 영화감독은 NFT의 맹점을 방귀로 표현했다. 자신과 친구들의 1년 치 방귀 소리를 모아 52분 분량의 음성 파일을 만든 후 ‘마스터 컬렉션’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아 NFT 경매에 부쳤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420달러(약 47만원)에 낙찰됐다.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콘텐츠라는 점, 또 특정 소유권자가 있다 해도 별도의 원본이 존재하는 한 언제든 복제 및 재생될 가능성이 있는 디지털 파일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NFT 작품이 지나치게 고평가되었다는 거품 논란도 있다. 실제로 비플의 작품 경매가 예고된 지난 크리스티 경매 시작 직전, 한 블록체인 회사는 미술품 경매장에 모인 구매자를 조롱하고 풍자하기 위해 뱅크시의 판화 작품 ‘멍청이들(Morons)’의 판본 500개 중 하나를 스캔해 NFT로 변환한 후 이를 경매에 내놓고 진짜 그림은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 결과는? 뱅크시의 NFT 작품은 228.69ETH에 팔렸다. 이는 원본의 판매가 9만5,000달러(약 1억7,000만원)의 네 배다. 뱅크시의 이 그림에는 “이런 쓰레기를 사는 멍청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NFT 거래를 제대로 보호할 만한 현행법도 아직 미비하다.
그럼에도 NFT의 등장은 반갑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복제되던 디지털 콘텐츠의 지적 재산권을 보장할 가장 합리적인 수단일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분명 새로운 기회의 장이니 말이다. 비트코인이 은행 등 금융기관의 비대화, 권력화에 대한 반감으로 등장한 것처럼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거래하고 자동적으로 신뢰도를 획득함으로써 창작자들은 보다 많은 이에게 자기 작품을 소개할 수 있다. 유명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건 소수의 예술가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였다. 특정 기관이 독점해온 예술품 중개 기능 자체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기관의 권위는 줄어들 것이다. 재능 넘치는 신진 작가들이나 그간 판매가 쉽지 않았던 디지털 콘텐츠 기반 아티스트에겐 반가운 일이다. 또 거래 장부가 투명하게 공개됨으로써 ‘노들러 갤러리 위작 사건’과 같은 미술품 위조를 막을 수 있다. J.P. 모건 같은 억만장자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던 165년 전통의 이 미국 화랑은 13년에 걸쳐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같은 추상 화가들의 가짜 그림을 유통해온 것이 들통나며 2011년 11월 폐업했다. 무려 8,000만 달러어치의 그림이 모사품이며 그 주인공은 맨해튼 거리의 무명 화가, 중국인 모사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미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패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입장에서 NFT는 잠재적 소비자 시장인 Z세대의 놀이터에 자연스럽게 진입하면서도 디자인과 초상권 등 지적 재산권의 금전적 가치까지 챙길 수 있는 요술 카드다. 돈이 된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유저의 입장에선? 글쎄, 주머니를 여는 건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온라인과 가상 현실에 재미있는 요소가 늘어나는데 딱히 불만을 품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요즘 나는 며칠째 NFT를 공부하며 블록체인과 메타버스 관련주를 살피는 중이다. 디지털 크리에이터도 아니며 게임을 즐기지도 않지만 NFT로 연결되는 이 낯선 가상의 세계는 흥미진진하다. 확실히 뭔가 바람이 불고 있다. 물론 섣부른 투자는 금물이다. 기억하겠지만 2008년 리먼 사태 이전의 거품 경제 시기에도 부동산, 주식, 금, 미술품 등 화폐 가치 저장 수단이 급등했다. 투자의 욕심보다 우선은 이 멋진 신세계를 느긋하게 여행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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