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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가 전하는 가방 이야기

2021.05.11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가 전하는 가방 이야기

유럽 패션 명문가는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할까. 에르메스 문화유산 아티스틱 디렉터가 전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방에 대한 이야기.

선망의 대상으로서 에르메스의 가방이 차지하는 지위는 놀랍다. 그 놀라움을 담은 전시가 파리와 런던이 아닌 서울에서 열린다. 에르메스 역사부터 현재까지 다루는 헤리티지 전시 시리즈 중 <에르메스, 가방 이야기(Once Upon a Bag)>이다. 5월 22일부터 6월 6일까지 성수동 디 뮤지엄(hermes.com에서 예약 후 관람 가능하다)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서는 20세기 초 처음 등장한 가방부터 지난해 처음 선보인 가방까지 50여 점의 소장품을 만날 수 있다(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아카이브와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에서 가장 뜻깊은 제품만 선별했다). 이를 위해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의 디렉터 겸 하우스의 문화유산 아티스틱 디렉터인 메네울 드 바즐레르 뒤 샤텔(Ménéhould de Bazelaire du Chatelle)을 만났다. 30년 넘게 하우스의 역사 지킴이를 자처한 그녀가 들려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방에 대한 뜻깊은 이야기.

에르메스 하우스의 문화유산 아티스틱 디렉터인 메네울 드 바즐레르 뒤 샤텔.

에르메스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 역사를 지켜보고 기록하는 입장에서 하우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뭔가? 다양하다. 첫 번째는 역사를 돌아보는 ‘추억’이다. 그리고 ‘움직임’이 가장 중요한 단어다. 뛰어난 적응력, 노하우, 새로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전진하기 위해 늘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전통에 뿌리를 두며, 창조와 혁신에 열정적이다.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탐구하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고객의 필요를 돌본다. 에르메스 로고는 이렇듯 끝없는 움직임의 이미지 그 자체다.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와 마부의 이미지다. 더 확장되길 원하며 늘 새 고객을 기다린다. 그들은 예기치 못한 즐거움이다. 날마다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을 보며 이 컬렉션을 통해 움직임(Movement), 창의성(Creativity), 호기심(Curiosity), 열정(Passion)을 갖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을 상기하며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의 구성에 철칙이 있나?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컬렉션의 미션은 첫째, 에르메스에 합류하는 젊은 세대의 장인들, 젊은 고객에게 에르메스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오브제보다 가치에 대한 문제다. 결국 에르메스의 작품은 인간의 움직임을 돕기 위해 쓰이는 오브제에 품질과 탁월한 장인 정신이라는 핵심 가치를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간으로서 감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과거에 중점을 둔 컬렉션이라 과거를 감상하는 능력의 함양도 하나의 원칙이다. 현재 에르메스 하우스는 6대 후손이 경영하지만 과거를 존중하고 감상할 줄 안다면 우리 세대 역시 기적의 오브제, 놀라운 오브제를 만들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미래에는 우리 세대의 물품이 컬렉션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품질이라는 사명을 추진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의 원칙은 컬렉션의 정신을 유지하고, 감탄할 능력과 아름다움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낄 능력의 함양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칙은 이 컬렉션을 매우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사실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은 꽤 비밀스럽다. 알리바바의 동굴 같은 보물 창고와 비슷하다. 평소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지만 <에르메스, 가방 이야기(Once Upon a Bag)> 같은 헤리티지 시리즈 전시를 통해 더 많이 공유하고자 한다. 컬렉션은 전 세계 새 매장의 벽을 장식하며 역사를 공유하는 데 쓰인다. 나를 포함해 6인의 중요 업무 중 하나가 새 매장에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의 회화 또는 오브제의 공유다.

콩스탕스 백.

여전히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이나 에르메스 하우스와 관련된 오브제를 수집하나?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 컬렉션은 끝없는 이야기다. 원하는 만큼 더 많이 창조하고, 수집하고 전 세계의 여러 문화로부터 과거의 보물에 대한 존중을 표현할 가능성이 무궁하다. 이 컬렉션은 에밀 에르메스(Émile Hermès)에 의해 19세기 후반에 시작됐다. 1951년 별세했지만 컬렉션에 대한 비전은 끊이지 않았다. 사위 로베르 뒤마(Robert Dumas)가 이 컬렉션을 위해 전시품을 계속 매입해 소중히 관리했다. 또 컬렉션의 스토리텔링과 오브제 등을 상세히 알리기 위해 컬렉션 기록 작업도 추진했다. 에밀 에르메스, 로베르 뒤마,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의 뒤를 이어 지금은 피에르 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의 후원을 받으며 컬렉션을 만든다. 매주 경매에 참여하며 컬렉션에 추가할 아름다운 작품을 찾는다. 이 컬렉션은 여전히 매우 생동감 넘치지만 저장 공간이 제한돼 늘 소규모로 유지된다. 과거의 오브제를 보존하는 것 역시 에르메스의 사명이다. 그것이 미래를 창조한다. 창조 행위 역시 중요하다.

가장 애정이 많이 가는 오브제는 뭔가? 에밀 에르메스의 개인사가 담긴 오브제, 스토리텔링 등 각각의 전시품이 인상적이다. 각 오브제에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놀라운 면이 있다. 굳이 꼽으라면 에르메스의 로고에 표현된 회화인 알프레드 드 드뢰(Alfred de Dreux)의 ‘르 뒤끄 아뗄(Le Duc Attele)’ 등 그의 수수한 19세기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에 에르메스를 알아가는 데 매우 흥미로운 오브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생소한 오브제를 발견할 것이다. 에르메스가 하니스와 안장 제조 공방이었던 19세기 후반에 그가 만든 최초의 가방이자 여성용 가방으로 간주될 오브제다. 에르메스 하우스의 미래를 알리는 신호였다. 이 오브제는 1890년대 에르메스가 특별히 제작한 가죽 벨트형 가방으로, 당대 스타였던 젊은 배우 겸 가수 비아나 두하멜(Biana Duhamel)을 위해 제작했다. 그녀는 허리가 잘록한 미모의 가수였다. 청년이었던 에밀 에르메스가 그녀를 사모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 최초로 벨트에 작은 지갑, 일종의 클러치가 달린 여성용 가방을 만들었다. 두하멜이 맡은 오페라 <미스 헬리엣(Miss Helyett)>의 배역을 위해 특별히 가죽으로 디자인했다. 에르메스 최초의 가방이기에 이 오브제를 좋아한다. 이 오브제는 가방 제작자의 새 출발을 알린다. 또 에르메스가 19세기 여권신장운동에 동참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젊은 여배우 두하멜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노래하고 춤췄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Édouard Vuillard)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녀만을 위한 가방을 매고 무대에서 가무하는 모습이다. 대단하지 않나?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 속 1837년 선보인 삭 드 뉘.

이 전시는 한국에서 에르메스 가방 역사를 감상할 기회다. 에르메스 하우스에서 가방이 상징하는 의미 혹은 중요성은 뭘까? 앞서 말한 두하멜의 가방 외에도 주로 20세기 초 에르메스에서 디자인한 주요 가방이 이 전시의 출발이다. 오뜨 아 끄로와(Haut à Courroies)가 전시된 첫 번째 방부터 사람들은 에르메스가 본격적으로 디자인한 첫 가방을 볼 수 있다. 영원히 새로운 뉘앙스의 작품으로 표현해낼 바탕이 되는 디자인이다. 시대를 초월해 요즘 고객에게도 매력적인 디자인이다. 그리고 오뜨 아 끄로와는 에르메스의 출발점이다. 안장용품이라는 배경에서 비롯된 이 가방의 유용성은 에르메스가 기능성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승마용 안장, 부츠, 채찍, 모자 등을 운반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했다. 고객의 움직임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기 위한 우리의 도전 정신이다. 이 가방을 통해 기능성과 우아함을 동시에 추구하며 전통을 발전시키고 변형시키며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왔는지 느낄 수 있다.

전시 기획 시 큐레이터인 브루노 고디숑(Bruno Gaudichon)이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의 오브제 선정에 참여했나? 물론이다. 동화 테마의 전시라는 아이디어는 피에르 알렉시 뒤마와 생각했고 브루노 고디숑과 작업했다. 그의 비전은 우리에게 자극이 됐다. 2004년에는 모든 시대 전 인류의 가방에 대해 스토리텔링하는 대규모 전시를 파리에서 최초로 기획했다. 물론 에르메스 가방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시를 통해 우리는 에르메스 가방이 보다 광범위한 가방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1988년 선보인 클러치.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여러 가방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디자인 혹은 제품은? 첫 번째 가방인 오뜨 아 끄로와. 에르메스 백 중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가방 중 하나다. 하지만 과거에 만든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미래 고객의 새로운 삶을 위해 뭘 만들지 고민한다. 그래서 2020년에 선보인 제품이 무척 흥미롭다. 특히 가방 디자이너들의 혁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시몬느 에르메스(Simone Hermès)를 꼽고 싶다. 장인 정신을 통해 완벽한 품질을 추구한다는 전통을 고수하되 단순하고 실용적이다. 어깨에 두르거나 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실용성이 돋보인다. 또 젊다. 젊음은 에르메스에 중요하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 대한 비전을 유지한다. 이 가방은 에밀 에르메스의 셋째 딸 이름을 딴 것이다. 그녀는 학생이었고 당대 젊은 여성으로 공부를 원했다. 이 가방은 학생들의 그런 생활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는 시몬느 에르메스를 당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오래 쓰길 바란다. 품질과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의 랑데부다.

에르메스 역사에선 혁신과 전통이 공존하는데 이를 잘 대변하는 오브제는? 삭 드 뉘(Sac de Nuit)라고 부르는 태피스트리 나이트 백이다. 1837년에 출시됐고 이 전시에도 출품한다. 태피스트리 천으로 만든 가방이지만 바닥은 가죽으로 덮인 나무다. 19세기 유명 엔지니어 고디요(Godillot)가 고안했다. 그는 당시 여행에 적합한 가방을 만들고자 했으며 그의 비전은 가방을 ‘나누는’ 것이었다. 여행자는 태피스트리로 만든 상단에 옷을 담고 나무로 만든 별도의 작은 하단 트렁크에는 신발이나 피크닉 용품을 넣을 수 있다. 낡아 보이는 이 가방은 19세기 여행자들의 삶에 작은 혁명이었다. 수년 후 이 가방을 구입한 에밀 에르메스는 태피스트리 백의 전통에 추가된 혁신에 감동했으며 이 오래된 백은 출시 100년 후 에밀 에르메스가 가방을 혁신하는 데 큰 자극이 됐다. 이번에 볼 수 있는 삭 말렛(SacMallette)은 ‘작은 트렁크가 달린 가방’을 뜻한다. 아름다운 악어가죽으로 제작했으면 악어가죽으로 덮인 하단 트렁크에는 개인용품이나 액세서리를 넣을 수 있다. 한 개의 가방에 두 개의 가방이 있는 셈이다. 에르메스에서도 최고의 장인만이 삭 말렛을 만들 수 있다.

현대적인 버전의 오뜨 아 끄로와.

에르메스 백이 모두가 꿈꾸는 대상이 된 이유는 뭘까? 꿈은 누구에게나 은밀하며, 신비롭고 비밀스럽다.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강렬한 것들을 꿈꾼다. 요즘에는 그냥 버리는 물건(Gadgets)이 많다. 우리는 그것을 꿈꾸지 않는다. 이미 질렸을지 모른다. 가짜 꿈, 피상적인 꿈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르메스 가방이란 매우 강렬한 꿈이다. 아름다운 현실의 일부와 맞닿아 있기에 더 강렬하다. 에르메스 가방은 장인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소재로 제작된다. 에르메스를 살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비싼 것도 사실이다. 꿈이야말로 에르메스 백에 중요하다. 이 꿈은 동화나 허영이 아니다. 요즘도 한 시즌만 유행하는 가방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 촌스럽고 우스워진다. 에르메스 가방을 꿈꾸는 것은 오래 지속될 무언가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차원이 다른 꿈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우아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간결하다. 이제는 환경을 존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것에 책임을 느낀다. 에르메스 백을 산다는 것은 그것을 오래 소유해 딸들에게까지 물려주는 것을 뜻한다. 딸들은 우리의 손녀들에게 그것을 물려줄 것이다. 이거야말로 지구를 보살피는 꿈이다. 다른 세상, 책임감 있는 세상에 대한 꿈. 그리고 에르메스 백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각자의 꿈과 연결되고, 추억,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과 연결된다. 이런 꿈을 우리 앞뒤 세대와 나누는 기분이다. 여성용 가방, 여성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만, 유치하거나 피상적이지 않다.

전시를 통해 한국에서 에르메스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에르메스 미술상 시상식을 위해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한국인 그리고 한국 문화, 특히 ‘과시하는 우아함’이 아닌 ‘고요한 우아함’에 감동했다. 그리고 장인 정신을 갖고 있다. 리움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정말 놀랐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그릇 등 한국 도자기의 고귀한 미, 청자색 한국 도자기는 완벽했다. 그래서 일상에서 완벽한 미의 추구는 한국의 전통이라 여겼다. 프랑스인과 한국인은 유머 감각, 일상에서 우아함의 추구 등 공통점이 많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예리한 관객이 될 테고 에르메스 가방 뒤에 숨겨진 세련미를 눈치챌 것이다. 또 유머 감각이 뛰어난 한국인으로서 장 루이 뒤마가 디자인한 삭 아 말리스(Sac à Malice) 시리즈의 재미, 창의성을 만끽할 것이다. 장 루이 뒤마 역시 미술상 시상식을 위해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덕분에 한국 문화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삭 아 말리스를 디자인했다. 또 한국에 매우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들이 이번 전시를 좋아할 거라 확신한다.

패션 에디터
손기호
Courtesy of
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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