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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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2021-05-27T18:41:05+00:00 2021.05.28|

74세의 윤여정은 나이 들수록 더 빛을 발한다. 하지만 여전히 현역 배우인 그를 일반화하긴 힘들다. 행복한 노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돈 버는 것 말고 뭘 해야 할까?

채지민, ‘An Unexpected Appreciator’, 2020, Oil on Canvas, 130.3×130.3cm. 광야의 불완전한 구조물에서 발길을 멈추고 푸른 허공을 한없이 바라보는 노년의 감상자를 표현했다.

먼저 짧은 우스갯소리 한 토막.

어느 날 은퇴한 70세 노인이 아들딸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앞으로 살날이 잘해야 10년이다. 죽을 때까지 쓸 돈만 조금 남기고 너희에게 다 물려줄 테니 그리 알아라.” 10년 후 80세가 된 노인이 다시 자녀를 불러 모았다. “이제 정말로 몇 년 못 가서 죽을 텐데 내가 남긴 것을 잘 나누고 잘 살아라.” 다시 10년 후에도 노인은 죽지 않았고, 또 10년이 흘렀다. 100세가 되어 드디어 죽음을 맞이한 노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말거라. 30년 동안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간다.”

써놓고 보니 별로 안 웃기다. 얘기 들을 때는 꽤 웃겼는데. 100세까지 사는 경우가 흔해져서? 사실이 그렇다. 이제 은퇴 후의 삶이 30년쯤 되리라 는 건 누구나 예상하는 일이다. 노년의 삶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이런 얘기는 어떨까?

현대사회에서 의료가 중요해진 것은 질병을 고치는 의료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가 아니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늘어나 그만큼 아픈 기간도 길어졌기 때문이다. 설득력 있는 얘기고, 사실이 그렇다. 그러니 은퇴 후 30 년의 시간이 주어진들 그 시간이 아프지 않고 팔팔하게 활동할 수 있는 중년의 시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취약한 은퇴 후 30년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통계청의 2020년 고령 인구 비율을 보면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 15.7%다. 반면 14세까지의 인구는 12%를 약간 넘는 정도로 고령자를 밑돈 지 한참 됐다. 고령자 비율은 2060년에는 44%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령 사회’ 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대다. 그러나 고령화보다 더 문제는 노인 빈곤이다. 우리나라 고령자의 상대적 빈곤율은 3~4%에 불과한 유럽 복지국가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양극화가 심하다는 미국의 23%에 비해서도 두 배쯤 높다. 그래서인지 고령자의 삶에 대한 만족도도 국민 전체 평균 40%보다 훨씬 낮은 25%다. 현대 의료의 역설처럼,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노년의 불행도 늘고 있다는 얘기다. ‘행복한 노년’이란 우리 보통 사람에게는 그저 영화와 드라마에나 나오는 환상인가?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행복하고 의미 깊은 노년의 삶을 꾸려가는 모델이 있어 조금은 불안을 달래준다. 연기 인생 55년, 74세의 윤여정이 맨 먼저 떠오른다. 아카데미 조연상 수상이 아니어도 그의 인생은 어쩐 일인 지 나이가 들수록 더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의 경우는 여전히 ‘현역’이라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일반화하기가 어렵다.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펴내고 102세인 올해까지도 여전히 집필과 강연 등을 이어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형석 교수도 있다. 최근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적 행보에 잠시 등장하는가 하면, 보수 신문의 부추김 때문인지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으나, (그러나 김형석 교수가 무교회주의자로 출발하여 기독교적 실존주의에 평생 심취했고, 유신 시절에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 것도 기억해야 한다) 그의 노년은 모두 부러워할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라면 얼마 전 작고한 채현국 선생의 노년을 본받고 싶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지만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만년에는 대안학교 무보수 이사장으로 아이들이 다칠까 봐 돌부리를 치우고 화단 잡풀을 뽑으며 산 그분의 말은 늘 경청할 가치가 컸다. 완고하고 자기중심적인 노인이 흔하기에 이처럼 자기 세대에 대한 반성과 절제의 겸양을 보여주는 어른이 돋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국내 유수의 제약 회사 CEO를 몇 번이나 거치고 물러난 선배와 식사를 한 적 있다. 이제 은퇴를 결심하고 ‘인생 제2막’을 준비하는데, 어떤 일을 할지 고민이라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돈 버는 일엔 관심이 별로 없고, 다만 어떤 일이 나와 주변에 함께 도움이 되고 의미 깊은 것일지 고민스럽다는 얘기였다. 평생 회사에서 닥쳐오는 일을 처리하고 가족을 위해 살다 보니,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다는 생각이 은퇴와 함께 불쑥 밀어닥쳤다고 했다.

선배가 길을 잘 찾을 거라 믿지만, 결국 은퇴 후 노년의 삶이란 나의 중장년 또는 청년기 삶이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웰다잉을 위해서는 먼저 웰빙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과도 같다고 할까. 엉망으로 살아온 인생이 노년의 좋은 삶을 가져다줄 리 만무하거니와, 노년의 짧은 몇 년으로 후회 없는 만족스러운 삶을 가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의 30대, 40대, 50대에 마지막 30년을 준비해야 한다. 약간의 경제력은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수지만, 그것이 저절로 의미 깊은 삶까지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는 돈 버는 것 말고 무엇을 해야 할까?

글을 쓰면서 노년과 은퇴에 관한 책을 찾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한 가지 눈에 띄었다. 할머니의 책은 많은데 왜 행복한 노년을 꾸려가는 할아버지의 책은 드문 것일까? 일본 동화작가 사노 요코 할머니가 쓴 <사는 게 뭐라고>는 ‘인생은 번거롭지만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간단한 진실로, 내 맘대로 즐겁게 사는 비결을 설득한다. 75세에 화가로 데뷔해 101세까지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그림으로 미국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은 할머니 얘기,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라는 책도 있다. 그림책 해설가인 무루 씨는 할머니가 아니지만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으로 좋은 노년을 꿈꾸는 독자의 관심을 모았다.

‘할머니’란 존재는 이 세상에서 참으로 무해하고 안전한 대상이라는 우리의 평소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귀여운 할머니, 엉뚱한 할머니, 실수투성이 정 많은 할머니. 윤여정이 연기한 <미나리>의 ‘순자’ 할머니부터 그러하다. 그런데 왜 그런 할아버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은퇴 후의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내는 데는 속설과 달리 ‘운동’과 ‘돈’보다 ‘관계’와 ‘의미 깊은 일’이 더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음식을 혼자 챙겨 먹는 것보다 거친 음식을 친구와 함께 먹는 것이 더 좋고, 혼자 열심히 운동하는 것보다 함께 그냥 걷는 것이 더 좋다는 얘기다. 하루 종일 TV 켜놓고 노는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하는 것이 더 낫다.

이런 ‘관계’와 ‘일’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물론 최소한의 경제력과 사회적 능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독거노인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경제력이라는 게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잠시 직장을 쉴 무렵, 부부가 (집만 있다면) 한 달에 100만원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이는 그 상태였다.

주변과의 관계를 잘 이어가면서도 자기만의 일과 시간을 보낼 줄 아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경제력과 함께 지적 수준이 높은 고학력의 지식인이 의미 깊은 노년을 보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책을 많이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고, 의미 깊은 일을 도모하고, 능력이 된다면 은퇴 후 최소한의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 해설사라거나 교육 보조자라거나 자전거·오토바이 수리라거나 농사라거나 번역과 집필이라거나,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위층에는 고마운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신다. 성당 형제님이기도 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마주치는데, 가평인가 양평 즈음에 너른 텃밭을 하나 마련하고 농막까지 지어 평일에는 늘 그곳에서 생활한다. 때마다 한 아름 싱싱한 채소와 먹거리를 안겨주어서 우리 집은 그 수혜를 톡톡히 보는 중이다. 한번은 “이런 걸로 생활은 되세요?” 하고 물으니, 밭에서 기른 농작물을 내다 팔아서 제법 돈도 만지고 나라에서 주는 연금도 합하면 아무 지장이 없으시단다. 할아버지의 모범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