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 갬빗> 이후 엄청난 신작을 준비 중인 안야 테일러 조이
<더 위치>와 <엠마>로 이미 스타덤에 오른 안야 테일러 조이가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에서 약물중독 체스 여왕 역을 펼치며 전 세계에 열혈 팬을 낳고 있다. 그녀가 엄청난 신작을 준비 중이다.
스타들의 주요 특징은 사람들이 우러러본다는 점 아닐까? 스타덤과 자만심은 연결되기 쉽다. 그러나 <퀸스 갬빗>에서 불후의 연기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안야 테일러 조이(Anya Taylor-Joy)에게 두 가지는 결코 공존하지 않았다. 몇 달 전 인터뷰 당시 24세의 여배우는 LA에서 데이비드 O. 러셀(David O. Russell) 감독과 극비리에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 영화에 대해 알려진 것은 어마어마한 캐스팅뿐이다. 배우들의 이름뿐 아니라 그 수도 입이 벌어질 만하다. 로버트 드 니로, 크리스 록, 마고 로비, 크리스찬 베일, 마이크 마이어스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7년 전 첫 영화를 찍은 테일러 조이에게 이 영화는 16번째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대배우들의 라인업에서는 신인에 가깝다. 줌 화상 통화로 만난 그녀가 말했다. “그 영화는 완전히 극비예요. 그러다 보니 갑자기 그 대배우들의 이름을 듣게 되면 정말…” 그녀가 명치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 오른쪽 무릎 방향으로 얼굴을 살짝 찌푸려 보였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대배우들을 보고 ‘심쿵’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대배우들에 비하면 저는 어린아이에 불과해요. 땅꼬마죠. 정말 말도 안 되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러셀은 이 대스타들 사이에서도 테일러 조이의 존재감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안야는 두려움을 모르고 직감적이고 민감하죠. 그리고 특유의 방식으로 자신만만합니다.” 그가 이메일에 또 이렇게 적었다. “그녀는 색다르고 묘해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지녔고 모두 매력적이죠.” <퀸스 갬빗>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모두 다 동의했다. 지난가을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방송된 이후 6,200만이 넘는 가구가 시청했다. 2020년 명실상부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며 하나의 문화 이벤트가 되었다. 지난가을 며칠 동안, 내 트위터 피드는 그 드라마와 드라마 속 스타 이야기로 도배됐다. 체스! 아름다움! 그리고 성적 긴장감! 그것들 모두 핫이슈였다. 테일러 조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마 5년 정도 지나야 그런 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 흐른 뒤에야 그 시기가 올 거예요.”
우리가 처음 인터뷰할 때, 테일러 조이는 헐렁한 롱 슬리브의 블랙 티셔츠를 입고 가느다란 팔목에 헤어밴드를 끼고 있었다. 긴 밝은 금발을 귀 뒤쪽에 꽂은 그녀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민낯이었다. 어려 보이는 맨 얼굴이 붉은색 손톱과 대조를 이뤘다. 심지어 손톱은 섹시하고 날카로워서 치명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배역 때문에 한 거예요!” 그녀가 말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여 보였다. “진짜 손톱 아니에요. 촬영이 없는 날 테일러 조이는 ‘어덜팅 데이(어른들의 일을 하며 보내는 날을 그녀는 그렇게 불렀다)’를 보내고 있었다. “빨래, 집 안 청소, 문화인다운 일을 하고 평소처럼 망나니같이 행동하지 않는 날이죠.” 화상 통화 속 그녀의 뒤쪽으로 부엌 아일랜드 식탁 위 난초 화분, 벽에 세워놓은 기타, 손끝 부분에 있는 여러 개의 커다란 크리스털이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는 책이 쌓여 있었다. 현재 거처로 사용하는 비인간적일 정도로 광이 나는 임대 아파트에 그녀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증거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테일러 조이가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에게 2020년은 아찔할 정도로 상승한 해였다면, 2021년은 성층권을 뚫을 만큼 높이 떠서 바쁜 한 해가 될 테니까. 우선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스릴러 영화 <Last Night in Soho>를 촬영 중이다. 이 영화에서는 한껏 부풀린 헤어스타일에 절제된 어투를 구사하며, 1960년대 런던에서 활동하는 출세 지향적인 가수 샌디를 연기한다(내가 받은 예고편에는 페툴라 클락의 ‘Downtown’을 정말 간드러지게 부르는 장면뿐 아니라 놀라운 댄스 장면도 있었다!). 또 <퀸스 갬빗>의 감독이자 공동 크리에이터 스콧 프랭크와 재회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Laughter in the Dark>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함께한다. 그다음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의 대작 프리퀄인 <Furiosa>에 캐스팅됐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테일러 조이는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했던 음울한 까까머리 페미니스트 무법자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젊은 퓨리오사가 어떤 모습일지 상관없이, 책을 좋아하는 인물이나 작고 여린 역할을 주로 맡아온 그녀를 액션 영화에서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또 다른 영화로 <The Northman>이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바이킹 스릴러에서는 니콜 키드먼과 에단 호크가 공동 주연을 맡았다. 지난해 북아일랜드에서 촬영한(그녀가 진흙더미 산기슭에서 맨발로 촬영하는 날이 많았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이 영화를 통해 테일러 조이는 에거스 감독과도 재회했다. 에거스 감독은 18세의 테일러 조이를 그녀의 데뷔작이자 무시무시한 초자연 호러 무비인 <더 위치>에 캐스팅했다.
이러한 세계적 유명세에 대해 에거스 감독에게 묻자 이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놀랐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화면에서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화면상 잘 나오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내면까지 다 털어놓죠. 그들의 외면을 뚫고 마음과 감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거죠. 게다가 테일러 조이는 너무 훌륭한 배우예요. 훌륭한 배우이자 스타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죠. 그런데 안야는 진정한 배우이면서 스타입니다.” 6남매 중 막내인 테일러 조이는 마이애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아기였을 때 가족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6년 뒤 다시 런던으로 옮겨왔다. 향수병에 걸려 있고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몰랐던 테일러 조이는 2년간 영어 학습을 거부했다. 나중에 그런 거부감이 수그러들긴 했지만(<해리 포터> 책이 그녀의 공부 교재)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특히 외모 때문에 괴롭힘을 많이 당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열한 살의 저는 뭔가 어색하던 시기였어요.”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케이트 모스를 발굴한 스톰 모델 매니지먼트의 사라 두카스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됐다.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제 머리는 남들보다 작은데 눈은 같은 크기였죠. 머리가 조금 더 커져서 비율이 맞아지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테일러 조이는 가정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여긴다. “엄마는 사람들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보도록 저를 키우셨어요.” 테일러 조이는 거울을 많이 보지 않는다. “자신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저의 가장 아름다운 면은 바로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니까요. 그런 뒤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면 자신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되죠.”
이 내용을 글로 보면 굉장히 감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순수함을 느꼈다. 10대 시절에 힘들었던 이유도 그 때문인지 궁금했다. 테일러 조이는 배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학교, 특히 학교의 사회적 요소를 어려워했다. “학교에서 받은 정보 모두 ‘너에게 문제가 있어!’를 가리키고 있었죠.” 열네 살 때는 2주간 연출 수업을 듣기 위해 혼자 뉴욕으로 갔다. 거기서 맨 먼저 멕시칸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머리를 핑크색으로 염색했다. “말 그대로, 공항에서 나오면서 어느 미용실을 봤죠. 그리고 ‘그래, 분홍색 머리, 나에게 필요한 게 저거야’라고 생각했어요.” 2년 뒤 그녀는 엄마와 아빠에게 장문의 글을 썼다. 배우가 되기 위해 왜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제니퍼 마리나 조이(Jennifer Marina Joy)와 데니스 알란 테일러(Dennis Alan Taylor)는 신뢰를 보내며 막내딸이 쓴 긴 글을 읽고 그 의견에 동의했다.
2016년 테일러 조이의 첫 대작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가치가 입증되었다고 느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성공’을 입증해주는 증거가 있었다. <더 위치>에서는 17세기 뉴잉글랜드 황야에서 제정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불굴의 청교도 가족의 맏딸 토마신을 연기했다. 교활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풍기던 그녀는 날카롭게 생긴 어두운 부모와 그 가족이 직접 찾아낸 습하고 으스스한 내륙 지방에서 위험할 정도로 빛을 발했다. 그렇지만 거대한 화면 속 자신을 처음 보며 온몸이 오싹해졌다.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 같았죠. 다시 일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어요.”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10개가 넘는 상에 노미네이트됐고, 이름을 날릴 역할을 더 많이 제안했다. 그중에는 어텀 드 와일드 감독이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매력적으로 각색한 영화도 있었다. 지난해 그녀는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유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시대극, 특히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보닛을 쓴 여성들이 재잘거리고 웃어대는 것에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며 완전히 무장 해제되었고 즐거움에 기습당하고 말았다. 오스틴의 작품 속 등장인물 중 가장 흥미로운 여주인공이자 ‘멋지고 영리하고 부유한’ 여주인공으로서 테일러 조이는 조니 플린이 맡은 단호하고 조용하지만 강렬한 미스터 나이틀리에 맞섰다. 사탕 같은 영화였다. 겉으로는 신맛과 단맛이 나지만, 소설만큼 핵심에 엄청난 뭔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일러 조이가 맡은 당돌하고 버릇없고 골치 아플 정도로 어린 엠마라는 인물은 자기애로 넘쳤다. 성장의 길을 열어주는 힘겨운 자기 환멸을 겪기 전까지 말이다. 드 와일드 감독은 어두운 영화 <더 위치>와 <두 소녀(Thoroughbreds)>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조용한 소녀를 연기한 그녀에게 감탄했다. 사악한 연기를 할 때조차 매력을 발산했다.
“엠마를 호감 가는 허접쓰레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드 와일드 감독이 과격한 어투로 말했다. “그녀의 성격 속 추함은 전체 모습에서 드러나는 당당함만큼 중요했죠.” 캐릭터가 그녀의 자아를 깨고 나와야 했다. “안야만 가능한 일이었어요. 자만과 자신감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으니까요. 배우가 그런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죠. 특히 여배우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격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녀는 제 뮤즈예요. 아시죠? 그녀를 뮤즈로 여기는 감독이 꽤 있어요.” 그녀가 과할 정도로 욕을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주어지는 대로 다 받아들여요. 더럽게 확실하죠. ‘무비 스타’라는 말을 재정의하고 있어요. 젠장, 혼자만 잘되는 게 아니죠. 영화를 통해 떠오르죠. 단지 놀라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더 놀라워지도록 만들기 위해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점이 너무 좋아요. 자신의 광채와 마법 가루를 공유하고 있어요. 그녀에게서 나온 빛이 출연진 전체를 비추죠.” 여러 면에서 <엠마>를 촬영하는 것은 목가적 경험이었다. “여름에 잉글랜드에서 촬영했어요. 아시다시피 정말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엄청나게 큰 여러 채의 저택 주변을 돌아다니며 잔디밭에서 피크닉하듯 점심을 먹었어요.” 테일러 조이의 말과 달리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몇 년을 비디오 게임에 빗대어 설명했다. “매년 비디오 게임 레벨이 달라졌어요.” 매번 새로운 레벨이었기에 ‘규칙이 뭐지? 내 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지?’라고 자문해야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벅찬 레벨은 <엠마>에서 시작됐다. “촬영 전, 엄청 충격적인 이별을 겪었어요. 그 일로 모든 게 힘들었죠. 제가 너무 불안정하고 불안했어요.”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다. “캐릭터, 캐릭터, 캐릭터만 연기했어요. 잠시도 쉬지 않았죠.”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자아 소멸의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미스터 나이틀리와 엠마의 한껏 고조된 장면에서 대본상 코피를 쏟아야 했다. 그런데 테일러 조이가 진짜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감독은 물론 함께 연기하는 배우도 너무 놀라 혼란에 빠졌고 흥분했다. 내게도 굉장히 인상적인 이 야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농담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여러분, 제가 연기를 위해 진짜 피를 흘렸어요!”
2019년의 어느 날 테일러 조이는 미술관에 들어가 자신이 맡은 각 캐릭터가 어떤 작품을 좋아할지, 그 이유는 뭔지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정작 저는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저를 위해 뭘 선택해야 할지 감이 없었어요.”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부드러운 소리가 나왔다. “여기서 처음 하는 얘긴데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이젠 알아요. 한 인간으로서 뭘 즐기는지! 2019년을 보내면서 저는 한 여자가 됐어요.” 어떤 면에선 자기 자신을 연기할 준비가 된 듯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글쎄, 어느 정도는 그럴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해요.” 나는 망설이며 치료 방법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편안하게 대답했다. “지난 4년간 어떤 치료도 받지 않았어요. 제 생각을 분석하며 시간을 보냈죠. ‘이런 일엔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잖아. 앉아서 이해할 때까지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2020년 2월 <엠마> 개봉 후,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 역시 집에서 일을 처리했다. 코로나로 봉쇄령이 내려졌고 런던이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그래서 영화 포스터도 버스에 그대로 부착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많은 사람에게 <엠마>가 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로 남게 되었다. <엠마>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되자 그녀는 ‘내가 납치되거나 성적 학대를 받는 역할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영화라 진짜 다행이다’라고 여겼다. 실제로 그런 역할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두 눈은 공포를 전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녀를 호러 무비에 캐스팅한 수많은 감독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공포는 금방 지루해진다. 테일러 조이를 차별화하는 것은 그녀의 연기에 담긴 ‘실제적 스마트함’이다. 심지어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에서 해리성 장애를 가진 남자에게 인질로 잡혀가는 소녀 역할을 할 때도, 함께 끌려간 세 소녀 가운데 가장 똑똑한 인물을 연기했다. 다른 두 명이 울부짖으며 부둥켜 안고 인질범에게 불운하게 맞서는 동안(일부 남자 감독들은 여전히 꽉 끼는 옷을 입고 울고 있는 10대 소녀를 좋아한다), 테일러 조이가 맡은 케이시는 그 상황을 예리하게 판단하고 소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스타덤을 꿈꾸면서 침대에 누워 <Late Night with Seth Meyers>에 출연하는 것을 상상하는 배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테일러 조이는 비디오 링크를 통해 토크쇼에 여러 차례 멋진 모습으로 출연했다. 그렇지만 혜성처럼 스타덤에 오른 순간이 불가피하게 쉬어야 했던 기간과 맞아떨어진 것에 감사하는 듯했다. 스타덤을 두고 벌어지는 야단법석은 이제 예전의 일이 되었다. 그녀는 요즘 런던에서 즐겨 찾던 인도 식당 근처에 집을 마련해 너무 들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은 불쑥불쑥 그녀를 방해한다. 최근 비행기를 타고 LA로 간 후 시차 적응이 안 돼 잠을 못 자고 멍한 상태로 새벽 4시에 산책을 했다. 휘청거리며 걷던 그녀가 <퀸스 갬빗> 광고판 속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됐다. 그때 감정 변화가 어땠는지 떠올리며 그녀가 이야기했다. 맨 먼저, ‘세상에, 내가 광고판에 있네. 배우로서 내가 정말 원했던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현실적이야!’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보내주기 위해 사진을 찍고, 다시 숙소로 걸어갔다.
전개도 빠르고 굉장히 기교적인 <퀸스 갬빗>은 1950년대 중반 켄터키에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아홉 살의 베스가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엄마가 자살한 듯한 자동차 사고 이후 졸지에 고아가 된다.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어린 베스는 매정하게 바가지 머리 스타일로 깎인 채 매일 안정제를 받아먹는다. 그러나 관리인 샤이벨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녀는 지하실에서 이상한 흑백 보드를 혼자 뚫어져라 보고 있는 샤이벨을 처음 보게 된다. 예의 주시하던 작은 베스가 묻는다. “그 게임 이름이 뭐예요?” 그렇게 체스와의 운명이 시작된다. 베스가 운명처럼 체스를 알아가는 것과 안정제 중독이 동시에 일어난다. 안정제를 몰래 모아두었다가 밤에 복용한다. 그렇게 하면 침대에 누워 천장에 거대한 체스판을 더 쉽게 상상으로 그려내고 그 위에 체스 말을 옮기며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베스의 천재성과 약물 남용이 뒤죽박죽 섞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베스는 약물중독자가 되어갔고 어른 수준의 체스 선수가 됐다. 곧 베스는 10대 소녀가 된다. 어린 시절과 똑같이 ‘추한’ 앞머리를 가진 10대 시절 베스는 테일러 조이가 연기한다(심지어 이 헤어스타일조차 그녀 얼굴의 음산한 대칭을 덜어내지는 못한다). 그 후 모든 남자아이를 이기고, 주 챔피언, 그 이상의 존재로 우뚝 선다. 시각적으로 극적인 면이 없고 사색적인 체스를 스크린에서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비결은 뭘까? 이 드라마가 가진 여러 무기 중 두 번째로 강력한 것은 클로즈업이다. 카메라가 이 드라마의 첫 번째 무기인 ‘여주인공의 얼굴’을 비추며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서 맴돈다. 그녀의 시선은 사납고 열정적이다. 때로 베스는 자기 확신으로 밝게 빛난다. 그녀는 천재이고 자신도 그것을 안다. 나는 나와 이야기를 나눴고, 자기 뒤쪽에 난초를 놓아둔 밝은 피부의 그 젊은 여성을 그녀 자신이 부르듯 ‘망나니’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보여준 많은 연기, 특히 베스 연기에서 그런 와일드함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검은 눈동자의 커다란 눈을 스르르 움직이자 치명적이고 살짝 공포스러운 뭔가가 그녀 안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퀸스 갬빗>은 월터 테비스가 1983년 출판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녀는 그 책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그다지 특이한 일은 아니다. 일주일에 세 권 정도는 책을 읽기 때문이다. 지금은 글레논 도일의 <Untamed>와 파멜라 데스 바레스의 소녀 팬 회고록 <I’m with Band>를 읽고 있다. 또 다른 매력적인 회고록 집필가 이브 바비츠에도 열광한다. “글 읽는 법을 배우자마자 독서에 푹 빠졌죠. 다들 마찬가지였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았어요.” 그녀에게 테비스의 소설이 더 독특하게 다가온 이유는 이런 인식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이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려면, 이 캐릭터에 나를 많이 쏟아부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거죠.”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테일러 조이는 번쩍하며 문득 통찰력 같은 것을 느꼈다. 베스는 머리를 빨갛게 물들여야 했다. 공동 크리에이터이자 감독인 프랭크 역시 이런 직감에 공감한다. 헤어와 메이크업 디자이너 다니엘 파커도 마찬가지다. 테일러 조이는 베스가 체스 말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도 우연히 발견했다. 그녀가 체스 전문가이며 이 드라마의 자문위원인 73세의 브루스 판돌피니에게 그 방식을 보여주자, 그는 그런 선수를 본 적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베스가 손목을 우아하게 돌리면서 달그락 소리가 나는 말을 손바닥으로 집어 올리는 방법은 시그니처가 됐다. 촉각적으로 만족을 주는 과장된 동작인 것이다.
체스 경기의 우승으로 돈과 자신감을 얻은 베스는 점차 스타일리시하고 성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미운 오리 새끼였던 그녀는 세련된 드레스를 입고 유럽의 웅장한 호텔을 돌아다닌다(코스튬 디자이너 가브리엘레 빈더가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고른 베스의 옷은 이 드라마를 보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이 모든 것의 에로틱한 점이 회자되면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07년 수학 천재 소녀 이야기를 다룬 소설 <Gifted>로 데뷔한 작가 니키타 랄와니는 고교 시절 체스 선수로 활동했다. 그녀는 학교 팀의 유일한 여학생이라 이상한 취급을 받았다. 그녀 역시 이 드라마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그럴듯했어요. 하지만 강렬하고 당당한 성적 영혼과 괴짜스러운 감성의 결합이 제게는 너무 신선했죠.”
“우리는 체스로 섹시함을 되찾는다며 촬영 현장에서 농담을 하기도 했죠.” 테일러 조이가 말했다. “사람들이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다들 ‘체스 두러 가야겠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네’라고 말한다니 너무 좋아요. 관객의 그런 반응을 목표로 연기하니까요.” 방영 후 몇 주 만에 체스 관련 용품 판매량이 125% 증가했다는 후일담은 유명하다. “5년 뒤에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게 이런 뜻이에요!”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내가 체스 게임을 부활시켰어요!’라고 말하면서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자만심 넘치는 모습을 흉내 내며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그날 아침, 그녀의 절친이 “남자 친구들이 chess.com에서 체스를 둔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퀸스 갬빗>의 핵심에 단순한 진리가 자리한다. ‘재능이 당신을 정상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적어도 체스 차원에서는 진리에 해당된다. 하지만 변덕스럽고 변화 요소가 많은 영화 제작 세계에서는 재능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흑과 백’, ‘이기냐 지냐’라는 체스의 이진법적 특성과 연기의 측정될 수 없고 주관적인 면을 어떻게 동시에 다룰 수 있었는지 테일러 조이에게 물었다. 대답은 겸손했다. “늘 캐릭터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이 말을 하기 전 진심 어린 어투로 말했다. “그 말을 잡는 손은 제가 아니에요. 다른 인물로 살아가게 되면 실존적으로 혼란스러워지죠.” 테일러 조이의 캐릭터들은 너무 리얼하다. 그래서 촬영이 끝날 때 그 캐릭터들과 헤어지는 게 슬플 정도다. 자신이 맡았던 인물들을 추억하기 위해 그녀는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따로 간직한다. 베스를 기념하기 위해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모자와 옷을 모아두었다. “베스는 제가 아주 오래 머릿속과 삶에 담고 있는 목소리죠. 굉장히 노골적인 장면 몇 컷이 있었어요. 그것은 제가 경험하거나 목격한 것들이었죠. 그만큼 정말 현실적이었어요.”
그녀에게 특별히 가깝게 느껴진 장면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럼요. 베스가 파리의 한 호텔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그랬어요.” 그녀는 이 드라마의 첫 시작을 알리는 드라마틱한 플래시 포워드(이야기 도중 미래의 한 장면을 삽입하는 표현 기법) 장면에 대해 언급했다. 그 장면에서 호텔 직원이 호텔 아래층에서 열리는 체스 매치에 베스를 데려가려고 그녀의 방문을 끈질기게 노크하고,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잠에서 깬다. 베스는 밤새 술에 취해 욕조 안에서 옷을 입고 흠뻑 젖은 채 잠들어 있었다. 구구절절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베스가 직원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알았어요.” 그녀가 베스를 떠나보낼 수 있었을까? “그 말을 들으니 슬퍼지는군요. 저도 모르겠어요. 너무 복잡해요. 각 캐릭터마다 애도의 시기가 다르죠. 정말 없어지지 않는 캐릭터가 있어요. 베스도 그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그녀는 끔찍한 위기가 맞물린 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전례 없이 힘든 시기에 성년이 되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미국 영화계는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해 동의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몰랐어요. 저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사람들과 일해본 적이 없었죠. 굉장히 축복받았어요!” 그런 그녀 역시 괴상한 여성 혐오를 비롯해 지난 행정부가 보여준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 소수의 의견이야? 상대 여성의 허락이 없으면 함부로 그녀에게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믿는 것이 소수의 의견이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테일러 조이와 <퀸스 갬빗>은 골든글로브를 받았다. 이런 신나는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런 일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 좀 이상한 건가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 인정받는 일은 정말 멋지고 감동적이에요. 그렇긴 하지만 제 영화와 감독님, 친구들을 위해 나설 뿐이죠. 제가 그런 일을 계속 의식했다면, 정신 건강에 별로 안 좋았을 것 같아요.” 그녀가 정말 중요한 해명을 덧붙였다. “‘저는 그런 일을 피해요’, ‘저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한 말을 해명하고 싶어요. 그런 일에 감사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저를 ‘사람 이상의 뭔가’라고 믿기 시작하면, 저는 최선을 다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그런 캐릭터를 인간적 대상으로 보잖아요.” ‘스타들의 주요 특징은 사람들이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삶과 연결되어야 하죠. 진정한 마음과 진정한 정서를 지니지 않았다면, 캐릭터에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겠어요?”
- 포토그래퍼
- Ryan McGinley
- 글
- Hermione Hoby
- 스타일리스트
- Yashua Si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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