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드 코메르스 개관전에 다녀왔습니다
케어링 그룹의 수장이자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의 오너, 5,000여 점에 달하는 근현대 예술품을 소장한 슈퍼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 그의 개인 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가 지난 5월 22일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오프닝을 의미하는 ‘우베르튀르(Ouverture)’라는 개관 기념전 제목은 이미 3년 전에 공개되었죠. 전시는 새로운 시작,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 폭넓은 관객을 포용하는 개방성 등 여러 함의를 담은 타이틀에 부합하듯, 예술 장르와 국적, 성별을 초월한 다채로운 작품으로 채워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두말할 것 없이 미술관의 심장부인 로통드 전시관을 차지한 영예의 주인공, 우르스 피셔의 조각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와 국적의 의자, 인물상, 고전주의 조각상을 왁스 소재로 재현한 피셔의 조각은 전시의 시작과 함께 점화되어 서서히 녹아내리도록 고안되었는데요. 가장 정적인 예술 매체인 ‘조각’에 ‘소멸’이라는 시간성을 부여함으로써 관객과 작품 간에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듯 보였습니다.
피셔의 조각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또 다른 조각 작품도 있었습니다.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24개 쇼윈도에 전시된 베르트랑 라비에(Bertrand Lavier)의 작품이었는데요. 공산품과 소비재 등 현대인에게 익숙한 오브제를 모티브로 한 라비에의 조각품은 전시품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신성하고도 고풍스러운 쇼윈도에 자리 잡으며 전시라는 문맥과 예술품 사이의 흥미로운 대화를 이끌어냈죠.
이번 전시에서 단연 주목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미술관의 2층 전체를 할애한 현대 회화 전시였습니다. 설치미술이 유럽 미술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현대미술관에서 평면 미술인 회화의 입지는 과거에 비해 많이 위축됐는데요. 개념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 신체와 섹슈얼리티, 욕망을 탐구하는 여성주의 작가 미리암 칸(Miriam Cahn), 유럽 현대 회화 신의 대표적인 화가 피터 도이그(Peter Doig), 프랑스 미술계의 루키 클레어 타부레(Claire Tabouret), 가나 출신의 영국 작가 리넷 이아돔 보아키(Lynette Yiadom-Boakye)에 이르기까지 2차원의 평면에 얼마나 다양한 개념적, 형식적 시도가 가능한지 몸소 입증하는 동시대 작가를 한자리에 모아 현대 회화계의 역동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현대미술을 정의하는 주요한 개념 중 하나인 유희성은 기념전 곳곳에 녹아들었는데요.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예상치 못한 장소에 배치된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타티아나 트루베(Tatiana Trouvé)의 ‘인 시투(In Situ)’ 작품은 관람에 유쾌함을 더했습니다.
- 에디터
- 공인아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 글 / 취재
- 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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