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당분의 빈자리를 채운 인공 감미료 이야기

2021.06.25

당분의 빈자리를 채운 인공 감미료 이야기

값이 없는 수, 아무것도 없다는 임의적 개념의 ‘제로’. 열량과 당분을 비운 그 자리엔 대체 무엇을 채웠을까?

(왼쪽부터)핑크 컬러 뷔스티에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at matchesfashion.com), 이니셜 장식 네크리스는 에이치앤엠(H&M), 검지와 중지에 낀 반지는 지예 신(Jiye Shin), 도트 패턴 드레스는 기준(Kijun), 크리스털 링은 넘버링(Numbering), 뷔스티에는 와이씨에이치(YCH).

실상 ‘다섯 살 입맛’이라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이것’을 즐겨 마시고, 빌 게이츠는 회의실이나 연구실에 늘 ‘이것’을 구비할 만큼 심각한 중독자다. 마크 제이콥스 역시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그것을 항상 들고 일했다. “저는 물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대신 다이어트 콜라를 즐기죠.” 10여 년 전, 파리 <보그> 편집장 엠마누엘 알트가 한 말은 2021년 현재를 예견하는 신탁이라도 된 걸까? 얼마 전 그녀의 <보그> 사무실에서 열린 생일 파티 테이블에서도 변함없이 지키고 있으며, 내가 지금 일하는 <보그 코리아> 사무실 여러 책상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다이어트 콜라. 바로 그 ‘제로 콜라’가 우리의 식생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함유한 당류와 지방이 ‘0’, 그래서 칼로리도 거의 제로. 원래 제로 탄산음료는 이른바 ‘몸매 관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마시던 마니아적 카테고리였다. 특유의 헛헛한 단맛에 제로 콜라를 주문하면 “그럴 바에 운동을 해”, “차라리 탄산을 끊는 게 낫지 않니?”라고 주변인들에게 일명 ‘후려치기’를 당해본 서러운 과거도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의 활동 범위는 좁아진 데 반해 배달 음식 소비는 폭증하고, 확 찐 살을 걱정해 하나의 요소라도 칼로리를 줄여보자는 심리와 함께 ‘제로 시장’은 열두세 살 청소년처럼 폭풍 성장했다.

젊은 세대의 당뇨부터 각종 성인병 증가로 ‘설탕세’ 법안에 대한 발의가 본격 구체화된 이유도 한몫 거들었다. ‘코카콜라사’가 오랫동안 독식해온 제로 시장을 뚫고 올 초 출시된 ‘펩시 제로 슈거’는 네 달 만에 2,700만 병이 넘게 판매되는 호황을 이룬 것이다. 그 외에 ‘칠성 사이다 제로’, ‘나랑드 사이다 제로’도 전체 매출 비중의 50%를 초과하는 등 자체 기록을 경신하고 또 경신하는 중이다. 심지어 ‘제로 맥주’까지 등장했다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음료업계의 최근 트렌드를 더 구구절절 읊어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 이제 제로 콜라를 주문한다고 ‘후려치기’를 당할 일은 없다. 언제 그랬냐는 듯 대유행처럼 번져 어느새 대부분이 마시고 있으니까. 문제는 이 ‘제로’라는 숫자만 믿고 이것을 물 마시듯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물보다 낫다고 확신하는 맹신론자도 생겨났다. 이대로 마시고 달려도 괜찮은 걸까?

과연 무엇이 제로를 만드는가? 괜찮은지 따지기 앞서 살펴봐야 할 문제다. 보통 일반 콜라 한 캔(210ml)이 함유하고 있는 설탕은 약 22~23g. ‘제로’를 이름에 달고 있는 탄산음료의 경우 설탕보다 몇백 배 이상 단맛을 지니되 열량은 전혀 없는 합성 감미료로 대체한다. 그 대역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수크랄로스’, ‘아세설팜칼륨’, ‘아스파탐’, ‘에리스리톨’. 대표 대체 당분이자 제로 콜라의 성분으로 가장 잘 알려진 아스파탐은 3년 전부터 대부분 수크랄로스로 교체되었다. 설탕의 200배 정도 단맛을 지닌 아스파탐에 비해 수크랄로스는 무려 600배! 이제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던 단맛은 거의 보완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제로 탄산음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체 당분은 바로 이 수크랄로스와 아세설팜칼륨 두 가지다. 당연하게도 FDA, JECFA(유엔 합동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의 안전성 승인을 받고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화합물로, 수크랄로스의 경우 250ml 기준 40mg가량 함유되어 있다. 무게의 차이가 느껴지시나? 설탕이 20g 이상 들어가는 데 비해 합성 감미료는 단 40mg, 그 미미한 함유량만으로 풍부한 단맛을 낸다. 게다가 열량 따위는 없다. 이는 제로 콜라(이하 모든 제로 탄산음료 포함)를 맘껏 마셔도 건강에 해가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근거 없는 ‘썰’과 상술은 과감하게 거를 줄 아는 것이 미덕. 퍼 장식 샌들은 율이에(Yuul Yie).

무엇이든 과다 섭취하는 것은 금물이라지만, 수크랄로스는 일일 섭취 허용량이 60kg 성인 기준 900mg. 즉 하루에 1.5L 페트병으로 네 병 이상 먹거나, 355ml짜리 일명 ‘뚱캔’을 18캔 이상 마셔야 간신히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물을 그렇게 마셔도 전해질 이상이 우려되는 수치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과도한 염려일 뿐이며, 실생활에서 하루 한두 캔 마신다고 신체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일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유어클리닉 서수진 원장 또한 이에 동조하는 의견을 내비친다. “단맛을 영원히 끊고 살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정제 설탕보다 인공 감미료를 섭취하는 편이 낫죠. 혈당 수치를 올리지 않는 것은 물론, 건강한 성인의 체내에선 금세 배출될 만큼 극소량이 함유되어 있으니까요.”

여기까지만 읽으면 여생을 보내며 얼마든지 마셔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 주장의 근거가 되는 수치나 화학적 특성을 일부 전문가들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이야기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아직까지 인공 감미료의 위해성에 대한 실험은 동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제각기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른 만큼, 지나친 맹신과 섭취는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사실상 미지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아직까지 무조건 안전하다고만 호언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장내 생태계 혼란’이다. 합성 감미료를 습관적으로 자주 섭취했을 때, 이를 분해하는 특정 장내 세균이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증식하면서 장내 미생물총이 좋지 않은 쪽으로 변화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결국 혈당 수치 조절에 문제가 생기면서 대사 질환이 발생! 혈당 수치를 올리지 않는다더니, 대체 이건 또 웬 말인가?

배신감에 뒤통수가 얼얼한 마당에 원리를 살펴보니 상황은 이렇다. 합성 감미료는 체내에서 분해되지 않지만, 설탕으로부터 얻지 못한 열량을 우리의 몸은 약삭빠르게도 장내 미생물을 활용해 대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채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익하지 못한 균이 증식하고, 혈당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한숨 돌릴 만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건 동물 실험 결과라는 점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요즘 유행하는 준말을 빌리자면 역시나 ‘케바케’. 미생물총, 최근 들어서는 ‘마이크로바이옴’이란 단어로 더 익숙할 이 미생물 생태계는 우리의 유전체와 크고 작은 습관으로 다져진 것이라 사람마다 매우 불균일해 누군가는 아무리 합성 감미료를 많이 먹는다 한들 멀쩡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아닐 수 있다는 알쏭달쏭한 결론이다. 린클리닉 김세현 원장은 제로 탄산음료가 지금처럼 대중화된 시점에선 인공 감미료가 단순히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칼로리의 수치보다는 호르몬에 줄 수 있는 영향에 주목해야 합니다. 장내 미생물총의 변화도 문제지만, 사실 제로 탄산음료를 단독으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죠. 탄수화물과 함께 인공 감미료를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건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결국 살이 찌게 되는 결과를 언젠가는 초래합니다. 마냥 안심할 수 있는 대체재는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죠.”

인공 감미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학계에서조차 갑론을박이 팽팽하게 펼쳐진다. 속 시원한 결론이 내려지진 않았지만 이쯤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 하나. 아직 인공 감미료의 역사는 짧고, 스스로 그 마루타가 되기에 우리의 몸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것이다. 물론 평소 정제 설탕 섭취가 과다했던 비만이나 당뇨 환자라면 인공 감미료의 도움이 클 수 있다. 또한 건강한 사람이 제로 콜라를 하루 한 캔 정도 마시는 것쯤은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이것만 마셔도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무분별하게 섭취하거나, 인공 감미료의 구성 성분이 필수아미노산을 포함한다고 샐러드나 비타민처럼 먹어야 한다는 SNS의 근거 없는 ‘썰’이나 마켓의 상술은 스스로 잘 판단해가며 필터링할 필요는 있다. ‘0’에 수렴하는 건 칼로리가 아니라 언젠가 내 건강 상태일 수 있으니까.

뷰티 에디터
송가혜
포토그래퍼
차혜경
모델
안지우, Ludimila, Yeva Z
스타일리스트
김보라
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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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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