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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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2021-06-29T17:47:26+00:00 2021.06.29|

이제는 고문(古文)이 된 것 같은 현빈의 말을 빌려 꿈결 같은 이 비단을 설명해본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놓은 수가 100년 가까이 휘황하다.

올해 구찌의 ‘가옥’, 몇 해 전 에르메스의 ‘보자기의 예술’까지 불러들이지 않아도 이제 한국적인 것은 변방의 어떤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심의 핵으로 당대 트렌드를 견인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허가 찔리는 색상의 배치, 사람의 손 기술에 대한 순수한 의구심이 생기는 솜씨까지. 한국의 미, 한국의 패션으로 구획되는 광범위하고, 집요하게도 집약적인 오브제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동이 불편한 시기에 끊이지 않은 관람객, 그로 인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기록적인 리트윗까지 소소할 줄 알았으나 끝끝내 창대한 전시가 있었다. 재단법인 예올(김영명 이사장)에서 올린 <통영 송촌(宋村) 송병문가(家) 복식 기증전>이 그것이었는데 전시 제목이 된 송병문의 손녀인 송유숙이 굳건하게 지켜온 14대를 이어온 유물을 기증한 가치 있는 전시였다. 100년 전, 사진으로도 보지 못한 유물이 어제 만들어진 것처럼 온전히 눈앞에 있는 예올은 말 그대로 박물관이었다. 훌륭하게 보존된 송병문가의 복식 일습이 우아하고도 세련되게 부려져 있었는데 그저 옷이라 부르기는 턱없이 부족하고 유물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작품이 이른바 회화처럼 서 있었다. 옷으로 가늠되는 옷 주인의 풍채, 그 옷을 입고 나섰을 솟을대문, 통영의 바닷바람이 코끝에 스치는 기분이 들었다. 씨실과 날실 사이에 직조된 사연을 유추하기만으로도 숨 가쁘게 느껴지는, 말과 글 없이 엄청난 이야기가 들리는 공간이었다. <보그>의 오랜 친구인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전시를 기획했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소담하게도 포장된 전시 발간물을 보니 반가운 이름 하나는 고개를 넘어 마음을 끄덕이게 했다. 기증자 송유숙의 담담하고도 의미 있는 인터뷰 글을 쓴 이의 이름으로 <보그 코리아> 초대 편집장 이명희가 쓰여 있었다. 다시 되돌아가 한 글자도 아까워하며 몇 번 읽게 하는 힘이 그 세 글자에 도사리고 있었다.

1886년생인 할아버지의 옷부터 1925년에 태어난 엄마의 것까지 모두, 이토록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던 그 딸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100년이 훌쩍 넘는 집안 4대의 물품을 이토록 잘 보존하고 있다면 다른 것은 또 얼마나 대단하게 가지고 있을까. 이 대단한 기증자 송유숙을 만난 건 그녀의 집이었다. 예올에 기증한 것은 주로 복식이었고, 여전히 그녀의 수중에 있는 유물은 열 손가락이 부족했다. 그녀의 유물은 유산이고 보물이어서 유물이었다. 대를 잇는 장과 농, 색깔별로 두루 간직하고 있는 상보, 집안의 여자들 대대로 물려준 나전 함까지. 박물관 한복판에서 쿠키를 먹었고 주스를 마셨고 눈망울이 아직 아기 같은 노령견 마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송유숙 씨가 이 모든 것을 간직한 이유는 간명했다. 증조할머니 것을 할머니가, 할머니 것을 어머니가 소중히 보관하시는 걸 봐왔기 때문이라는 것. 귀하고 좋은 것.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것을 내가 손질해두면 또 누구라도 더 좋겠지 하는 마음이 그 출발이라 했다. 한양대학교에서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고현정 교수는 그런 집안 내력을 또 그대로 빼닮아 할아버지의 한복감을 그대로 복원한 비단으로 풀 스커트를 입고 나와 설레는 웃음으로 엄마 송유숙 옆에 선다. 역사란 오늘의 어제, 또 내일의 어제인 오늘이 함께 흐르는 시간의 모둠이라는 것을, 대단할 것도 거룩하다는 자의식 한 숟가락 끼얹지 않고 담담하게 스미듯 누리는 송유숙과 고현정의 일상에서 읽고 만다. 지금 봐도, 어느 명품 하우스에 내놔도 따위의 수사 없이 그저 위풍당당하게 아름답기만 한 송병문 가문의 자수를 소개해본다. 여기서 무엇을 얻거나 말거나, 이것을 통해 어떤 것이 환기되거나 말거나. 자체로 아름다운 한국 자수의 1930년대부터 압도적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 1930년 이전 제작한 것으로 유추되는 함. 입신양명과 수복강녕, 다산의 염원이 가득 담긴 물고기, 학, 석류까지 자개가 빼곡하다. 송유숙의 어머니 고 박필순 여사가 받은 함이다. 송유숙의 소장품 중에는 처네가 있었다. 머리에 쓰는 장옷에서 파생된 방한용 쓰개를 처네라 부르는데 인상적이게도 블랙 실크였고 섬세한 수가 일품이었다. 송유숙은 다양한 상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어머니 박필순이 혼수로 해온 것으로 기물의 텍스처가 그대로 드러나게 입체적으로 놓는다는 통영 자수의 특징이 보인다며 자부심을 표했다. 부엌에서 마당을 지나 본채로 상을 들고 가야 하는 한옥의 구조상 상보는 필수였다고 한다. 박필순이 가져온 상보가 다 너무 예뻐 “쓰지 말고 두어라”라고 한 시어머니의 그 뜻이 이 아름다운 상보가 오늘 이 지면에 오를 수 있게 한 것. 매란국죽과 함께 학의 깃털까지 섬세하게 보인다. 송유숙은 일제강점기에 무궁화 수를 놓게 한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며 무궁화 상보에 더한 애정을 보였다. 화려한 수의 상보와 더없이 어울린다. 혼수로 가져간 수젓집도 당시 자수의 화룡점정으로 보인다. 부부의 은수저가 담긴 수젓집은 술 장식까지 극도의 장식미를 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