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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형이라는 신인류

2023.02.12

정진형이라는 신인류

정진형이라는 신인류의 사랑은 음악으로 플레이된다.

CRYSTAL CLEAR 스트라이프 톱과 주얼리는 옐로우 트럭 빈티지(Yellow Truck Vintage).

라디오에 출연했다고 생각하고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하자 정진형은 “안녕하세요? FA의 노래하는 정진형입니다”라고 했다. 곧바로 “‘R&B 아티스트 정진형입니다’라고도 소개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인지도가 높지 않으니 어떤 걸 하는 사람인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정진형은 다니엘 시저(Daniel Caesar)의 ‘We Find Love’를 들으며 <보그> 촬영장에 왔다. “차분한 노래를 듣고 싶었어요. 원래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긴장하는 편이거든요.”

그의 소개대로 ‘R&B 아티스트’ 정진형은 얼마 전 EP 앨범을 내놓았다. 솔로 아티스트로 선언 같았던 EP 앨범 <SOAR>와 <TRACE>에 이은 행보다.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정서는 이어지되, 더 화려하고 매끈한 사운드가 가득하다. ‘변덕스러움’이라는 타이틀 아래 사랑의 변덕스러움을 풀어냈다. 단순히 달콤하거나 슬프기보다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미묘한 감정이 주를 이룬다. 네가 바라는 게 지긋지긋해서 차라리 내가 널 좋아했으면 하고, 너와 나눴던 모든 걸 전부 다른 사람과 해봤다고 한다. 정진형 음악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지금뿐 아니라 사랑은 항상 제게 가장 큰 주제예요. 어떤 사랑인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Whimsical>은 경험담이라기보다 그가 느끼는 감정의 총체다. “항상 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심각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풀기에 사랑이 가장 좋았어요. 예를 들어 ‘Back’이나 ‘Downtown’은 부정적인 감정을 사랑에 비유했어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담은 노래는 ‘Drunken Texts’와 ‘Drive’예요. 한 곡만 꼽자면 ‘Drive’라는 노래가 가장 좋아요. 가사만 보면 드라이브하는 내용 같지만 아예 다른 얘기거든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이랑 대조해서 들었을 때 내가 너를 지켜주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다들 즐길 수 있을 거예요.”

HOT ISSUE 티셔츠와 데님 반바지, 주얼리는 옐로우 트럭 빈티지(Yellow Truck Vintage), 스니커즈는 컨버스(Converse).

어떤 음악은 가사와 무관하게 시공간을 환기한다. 정진형의 음악에는 청명한 낮보다 모두가 잠든 밤 그 고요함이 있다. “실제로 밤에 작업을 많이 했어요(웃음). 밤이 되면 감정이 평온해져요. 낮은 집중되는 느낌이라면 밤은 내려놓을 수 있는 느낌이 들어요. 주변에 불빛이 있고 사람이 있어도 편안해요. 그런 느낌을 좋아해요.” 뮤지션 대부분이 밤에 작업하지 않냐고 하면서도 자신의 야행성을 인정했다. “그러고 보니 겨울에는 해를 거의 못 봤어요(웃음). 일단 오래 준비한 앨 범이에요. 작년에 쓴 곡도 있고, 올해 쓴 곡도 있어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밥 먹고 정신 차리면 작업하는 일상을 반복했는데 많은 감정을 느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앨범명인 ‘변덕’이 생각하려고 해서 나온 게 아니라 실제로 느껴서 나왔어요.”

REALITY BITES 몸을 타고 흐르는 실루엣의 카디건은 프라다(Prada).

앨범 <Whimsical>이 지금까지 내놓은 음악과 가장 다른 점을 물었을 때 정진형은 애매하게 대답해도 되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마음가짐’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조급함도 있었고 제가 주체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내가 주체가 되어 첫걸음을 내디딘 느낌이에요. 당연히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지만 제 생각이 담겼어요. 전보다 정말 훨씬 더 열심히 했어요.”

<Whimsical>은 그가 스스로 생각한 정체성이었다. 정진형의 인스타그램 아이디 @jay_thewhimsical이기도 하다. “제 안의 감정 기복이나 저만의 변덕스러움을 부정해왔다는 걸 이번에 작업하며 받아들였어요. 변덕스러운 게 이상한 게 아니라 가장 솔직하다는 것.”  <Whimsical>은 정진형이 스스로를 받아들인 한 시절의 기록이다.

SKIRT CHRONICLE 니트 안감이 눈에 띄는 오버사이즈 봄버와 여성용 랩 스커트는 프라다(Prada), 부츠는 닥터 마틴(Dr. Martens).

정진형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목소리다. 실제로 그의 노래를 듣고 과거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떠올리는 경우도 다수다. “특별하다고 여겨본 적 없는데 주변에서 음색이 좋다고 하면 부끄럽기도 해요. 지향하는 목소리나 톤은 듣는 음악에 따라 달라져요. 지금은 편안하게 부르려고 연구하고 있어요.” 정진형의 음악에는 종종 ‘펍에서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펍에서 우리는 음악을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나긋하고 나른한 그의 목소리는 감성을 지핀다.

정진형은 EP 앨범 전 곡에 작사·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계속 호흡을 맞추는 프로듀서 방달(Vangdale)과 함께 작업했다. “방달 형과만 작업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에요.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진 않아요(웃음).” 가장 잘 맞는 건 ‘감정선’이다. 프로듀서로서 방달은 정진형도 모르는 정진형을 끄집어낸다. “다음 레벨로 올라가도록 자극을 많이 줘요. 둘이 정말 너무 비슷한데, 표현이 오글거리지만 ‘또 다른 나’ 같은 느낌(웃음). 음악뿐 아니라 보는 유튜브까지도 비슷해요. 둘 다 어떤 영상을 추천하면 이미 본 경우가 많아요.” 정진형은 방달이 이끄는 크리에이터 집단 FA에 소속되어 있다. 힙합 듀오, DJ, 모델,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함께 또 자유롭게 활동한다. “영감을 많이 받아요. 다들 정말 열정적이거든요. 활발하게 소통하고요. 만나고 집에 가면 작업이 막 하고 싶어져요.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아서요. 서로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죠.”

STARDUST 새틴 소재 점프수트는 피터 도(Peter Do), 앵클 부츠는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정진형은 아이돌 연습생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YG의 보이 그룹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처음 대중 앞에 섰다. “힙합을 들으며 자랐어요. 초등학교 때 큰누나가 운전해서 학교에 데려다줬는데, 늘 같은 CD를 틀어줬어요. 윤미래 노래였죠.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음악을 듣기 시작해 열여섯 살쯤 뮤지션이 되고 싶었어요.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다가 YG 연습생으로 들어갔죠. 래퍼를 생각했는데 보컬을 권유받았고 여기까지 왔어요.” 알려져 있다시피 정진형은 최종 멤버로 선발되지 못했고 프로그램 종료 후 다른 소속사에서 아이돌로 데뷔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R&B 싱어송라이터로 더딘 여정을 시작했다.

몇 년간의 행보를 보면 ‘내 음악을 하겠다’는 신념에 가까운 집념이 읽힌다. “맞아요. 그 생각 하나였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정말 열정적이었을 때도 있었지만 방황하던 시간도 있었고 진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오래 걸린 만큼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어요. 절 많이 돌아봤어요. 많은 경험을 했다기보단 많은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진형은 ‘솔직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답한다. “제가 음악을 하게 된 것도 ‘내성적이라서’예요. 평소 의견을 잘 표현하지 못해요. 그런데 음악에서는 직설적이지 않아도 다른 걸 빌려 제 의견을 넣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음악이 좋고 항상 그럴 거예요.”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도 동일하다. “‘정말 솔직하게 가사를 쓴다’ 같은 댓글을 보면 너무 좋아요. 그냥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나 영감이나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COOL TIME 티셔츠와 데님 반바지, 주얼리는 옐로우 트럭 빈티지(Yellow Truck Vintage).

어느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신곡 1만 곡이 업로드된다. 대형 소속사 대신 독립 레이블로 가는 행보는 시스템보단 자기 자신에 대한 승부수다. 한국 음악 신이 음악 하기 좋은 환경인가 물을 때 정진형은 “아티스트의 마음에 따라 다른 것 같다”고 답했다. “‘대중적’의 의미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대중적이지 않다고 여기던 음악을 대중이 좋아하기도 하고 대중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지 않는 곡도 있어요. 하지만 대중과 타협해서 이런 노래만 하겠다는 건 핑계처럼 들려요. 제 음악도 대중적인 면이 있지만 타협했다고 생각 안 해요. 하고 싶어서 만든 곡이에요. 전 일단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자 여기까지 왔어요.” 에디 슬리먼의 록적이고도 반항적인 요소를 사랑하고, 축구 감독 토마스 투헬의 위기 대처 능력이 궁금하다는 정진형은 앞으로 “잘되고 싶다”. 싱글을 많이 내고 정규 앨범도 발매하고 공연도 많이 하고 유튜브에 얼굴도 자주 비치고 싶다. 몸을 덮고 있는 타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타투 하나만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팔의 13 타투가 제일 좋아요. 런던 갔을 때 즉흥적으로 타투 숍에 갔는데 영업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아 조그만 타투밖에 못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타투 숍 이름 13을 새겼어요. 원래 이렇게 무모하지 않아요. 솔직히 무서웠거든요(웃음). 즉흥적인 제가 자랑스러워서 이 타투가 제일 좋아요.”

피처 에디터
조소현
패션 에디터
손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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