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니의 시간, 아르마니의 약속

Fashion

아르마니의 시간, 아르마니의 약속

2021-07-09T01:04:19+00:00 2021.07.09|

50년 넘게 맹렬하게 일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인터뷰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사랑하는 패션 비즈니스에 대해, 그것의 변화에 대해 솔직히 말한다.

밀라노 보르고누오보 거리(Via Borgonuovo)에 있는 우아한 서재에서 줌으로 촬영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모습.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는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패션쇼를 준비하는데, 옷이 없는 거예요.” 자신의 사진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패션계와 그의 고향 밀라노가 마비된 지 1년여가 흐른 후 처음 가진 인터뷰에서 아르마니가 말했다. 또 다른 꿈에서는 86세인 그가 연극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악몽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험난한 벼랑 끝자락에 걸터앉은 악몽이 코로나 내내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주로 나쁜 꿈이에요. 악몽이죠.” 무테 라운드 안경 뒤로 잘 알려진 아크틱 블루의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가 말했다.

아르마니가 수십 년간 장악해온 패션계 역시 아마 우연이 아닐지 모르지만, 위태롭고 중요한 순간에 놓여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매출에 큰 타격을 입혔고 업체를 도산시켰으며 패션 산업과 문화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다. 공급 체인이 무너지고 패션쇼가 중단되고 인플루언서들이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심지어 팬데믹 이전에도 패스트 패션, 지속 가능성, 다양성, e커머스, 리세일 등 새로운 세력과 새로운 우선 사항과 경쟁이라는 소용돌이로 인해 패션 산업의 미래가 바뀌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의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쳤듯 그것은 그런 움직임을 모두 드러내거나 악화시켰다. 이제 백신이 나오고 정상화될 희미한 빛줄기가 멀리서 보이자, 모두가 패션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알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제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말하죠.” 자신의 백발만큼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몸에 꼭 맞는 미드나잇 블루 크루넥 스웨터와 블루 팬츠를 입은 아르마니가 말했다.

그러나 당신이 전 세계에 뻗어 있는 패션 제국을 운영하고, 오뜨 꾸뛰르, 런웨이, 레드 카펫,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몰, 아르마니 까사의 고급 가구, 아르마니 서점의 커피 테이블용 책, 호텔, 카페, 향기, 초콜릿 등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관련된 모든 것에 손을 댄 듯 보이는 억만장자 거물이라면,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굳이 천리안을 가질 필요는 없다. 미래를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일 테니까. 아르마니가 패션계에서 그리고 그의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운영 면에서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 것들이 코로나 위기를 통해 그의 눈에 굉장히 많이 띄었다. 그는 그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눈이 살짝 뜨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패션 산업이 지속 불가능한 속도로 위태롭게 달린다고 인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하이, 미디엄, 로우 패션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코로나로 급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디자이너들이 자연적이지 않은 무수히 많은 패션 시즌을 충족시키려고 생산의 쳇바퀴를 얼마나 많이 돌리고 있었는지 인지하게 되었다. “패션은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었죠.” ‘너무나 천박하던’ 캡슐 패션쇼와 크루즈 캣워크를 위한 이국적인 무대를 한탄스러워하며 그가 말했다.

‘봉쇄령’이 내려진 시간은 아르마니가 내면을 보도록 이끌었다. 그는 그 도시가 밀실처럼 답답했기에 태양과 전원을 갈망하며 자신의 별장으로 향했다. 갑자기 삶이 너무 나약해 보였다. 1985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바이러스에 굴복했던 공동 창립자이자 동지이며 너무나 사랑했던 세르지오 갈레오티(Sergio Galeotti)가 가끔 생각났다고 한다. “그 바이러스는 바로 에이즈였죠.” 그가 내게 말했다.

피아첸차(Piacenza)의 한 동네에서 자라며 의사가 되려고 공부를 했던 아르마니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부터 자신과 직원들의 건강에 위협적 요인으로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메이저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2020년 2월 밀라노 패션 위크 패션쇼를 중단했다. “저는 ‘안전을 기하겠습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신문에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첫 타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했죠.” 그는 이탈리아 병원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고 아르마니의 이탈리아 생산 기지를 일회용 의료 방호복을 생산하는 데 활용함으로써 의료 종사자를 지원했다. 그리고 밀라노 외곽의 아르마니 기업 단지에 있는 체육 시설을 세계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코로나 검사 대기 장소로 바꾸었다(아르마니를 만나기 위해 나는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고, 모델과 아르마니의 꾸뛰르 부문장, 그의 개인 보좌관과 함께 차례를 기다렸다). 모든 예방 조치에도 그는 자신의 연령과 최근 앓은 중병 탓에 나약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운명을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의 회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최근 그는 팬데믹으로 인해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구찌, 펜디, 푸치 등 이탈리아의 거대 명품 브랜드가 프랑스 대기업 케어링과 LVMH에 매각될 때, 아르마니는 수년간 아르마니의 독립성을 강조해왔다. 최근 이탈리아 대통령 궁에 가구와 비품을 기증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상징 같은 아르마니는 프랑스 업체의 아르마니 인수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아르마니가 독립 기업체로 지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수긍하면서, “누군가는 이 중요한 이탈리아 기업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으며 꼭 패션 기업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상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또한 조카 로베르타 아르마니(Roberta Armani)와 그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레오 델오르코(Leo Dell’Orco)를 거론하면서 그의 가족에게 그 사업체의 상당 부분을 물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후임자는 미정이다. “아직 가부를 결정할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보스가 없는 거죠.” 로베르타 아르마니는 자신의 삼촌이 끊임없이 미래를 고민한다고 내게 말했다. “삼촌은 분명히 계획을 세워놨을 거예요. 그리고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그의 뜻을 지지할 겁니다.” 이렇게 그녀는 말하면서 아르마니가 또 다른 이탈리아 거대 기업과 합병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패션 산업에서 중요한 ‘메이드 인 이탈리아’ 조인트 벤처가 탄생하면 정말 대단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패션계의 다른 거물들은 오래 견뎌오고 세를 확장해왔으며 이탈리아 패션계의 먹이사슬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브랜드를 칭송한다. “이것은 특정 산업계를 뛰어넘어 이탈리아의 가지입니다.” 몽클레르 회장이자 최고경영자 레모 루피니(Remo Ruffini)가 말했다. 그는 ‘킹 조르지오’를 존경해 마지않는다. “저는 아르마니라는 브랜드가 미래에 무엇을 할지는 몰라요. 하지만 아르마니 스타일은 우리의 일상에 녹아 있죠.”

내려놓기. 그것은 아르마니가 과거에도 수없이 생각해왔다. 그는 한때 “85세에도 여전히 톱 디자이너라면 ‘터무니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다 안다는 듯 미소 지으며 “그런데 그 나이를 넘겨버렸군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노선을 90세로 늦췄다. 그리고 어떤 실질적 계획도 세우지 않았을 수도 있는 승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심하는 동안 분명히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조용히 일을 지휘하고, 자신의 경쟁자들을 혹평하고, 작은 헛기침에도 그가 원하는 바를 알아챌 수 있게 부하 직원들을 단련해왔다. 일중독인 이 디자이너는 존중받는 데 익숙하고, 그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경쟁자들과 패션계 동료들이 그를 두고 ‘현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저 높은 곳에 계신 존재’처럼 말하는 것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제가 무슨 명예 회장인 것처럼 말이죠.” 아르마니는 쉽게 볼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의 신중한 엄격함을 무장 해제시켰다. 그는 그런 칭찬이 패션계의 경쟁에서 그를 ‘하찮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의도라고 의심하며, 자신의 직분이 리본이나 커팅하러 다니는 명예직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했다. “저는 대표예요. 궂은일을 직접 하는 리더죠. 업무를 진행하고, 결정을 내리고, 변화를 주도하고 싶어요.”

1967년 초창기의 아르마니. 니노 세루티(Nino Cerruti)를 위해 남성복을 디자인하던 그의 레이블은 일하는 여성, 패셔너블하고 모던한 남성에게 잘 어울리는 옷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디자인과 관련해 “제 나름의 방식으로 임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며칠 전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자신의 컬렉션이 미학적 수준에서 진화하고자 하는 욕구를 나타낸다고 밝혔다. 잔혹한 1년이 흐른 뒤 그 브랜드는 조금 더 여성적으로 부드럽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조카는 아르마니 프리베의 컬러 분출이 코로나 이후 어떻게 생명을 나타냈는지 이야기했다. “즐거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죠.” 그렇지만 그런 변화가 아르마니 사무실의 프레스코화 천장 아래서 굉장히 호화롭게 보였고,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패션을 재창조하기보다 현재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듯 보였다. 심지어 아르마니가 좋아하는 뮤즈이자 브랜드 홍보대사이며, 자신의 기존 아르마니 옷을 레드 카펫 룩으로 재활용한 것으로 유명한 케이트 블란쳇조차도 아르마니가 변화를 이끄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의 옷이 지닌 영원한 우수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마니가 전통적인 남성 라인과 여성 라인을 믹스한 것은 오랫동안 제게 시금석이 되어왔죠.” 그러면서 그녀가 이렇게 썼다. “저는 늘 아르마니와 그의 디자인이 담아내는 우아함, 심플함, 영원함을 갈망해왔어요.”

아르마니는 본질적으로 “모든 일이 이상하게 돌아갈 때, 신중한 일류 디자인이 혁명적일 수 있고, 여성에게 혁명적인 일을 하도록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영국 왕가를 거부하도록 힘을 보탤 수 있다. 메건 마클이 영국 왕실과의 전쟁에 임하기 위해 옷을 갖춰 입어야 했을 때 그녀는 하얀 연꽃 프린트의 아르마니 블랙 실크 랩 드레스를 선택했다. “제가 하는 일의 목표는 한 가지예요. 여성에게 그들의 존재와 그들이 입은 것을 통해 편안함을 얻는 내적 강인함을 심어주는 거죠.” 이미 그 드레스가 괜찮다고 인정했던 아르마니는 내가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에 왕세손비가 출연한 것을 언급하자 이렇게 말했다. “제 드레스가 그렇게 중요한 일에 선택되다니 으쓱한 기분이 들어요. 제 일의 진정한 의미를 나타내죠.”

그렇지만 그가 불완전한 패션 산업으로 여기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지닌 엄청난 영향력을 사용할 의지가 있을까? 심지어 그것이 그 자신의 거대한 사업체의 축소를 의미한다 할지라도? 내가 그의 거대한 본사, 코로나로 인해 텅 빈 호텔, 상업적인 꾸뛰르 쇼룸, 바쁜 재봉사로 북적이는 아틀리에를 투어할 때, 그는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한 수많은 서머 룩의 대폭적인 축소를 지휘하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제가 가장 먼저 말한 내용이 바로 ‘컬렉션이 1/3가량 축소되어야 한다’는 거였죠.” 그에 따르면 글로벌 패션 아이템 생산량 가운데 60%가량이 팔리지 않은 채 아웃렛이나 암거래 시장에 버려진다고 한다. “저는 아웃렛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요.” 수년간 자신의 경고가 무시돼왔다고 하소연하던 아르마니는 코로나로 인해 이제 달라졌고 패션계의 일부 대형 업체가 그의 리드를 따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그들이 한 걸음 물러서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굳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시장에서 폭발적 수준으로 제품을 생산하던 대형 레이블이라고 말씀드릴게요. 그랬던 업체가 ‘아니야,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어. 사람들이 사지 않으니까!’라고 말하기 시작했죠.”

아르마니는 이전에도 패션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그와 갈레오티는 1975년 자신들의 폭스바겐 비틀을 팔아 마련한 종잣돈으로 회사를 세운 후, 그 시대의 과함을 스타일로 바로잡았다. 그들은 페미니즘의 부상을 우아한 드레이프트 테일러링으로 캐치해냈다. 이 스타일 덕분에 아르마니는 1980년대 미국 신사 스타일의 대표 주자 ‘아르마니를 입은 리처드 기어’에 의해 아이콘이 된 패셔너블하고 모던한 남성, 권한을 부여받은 직장 여성을 위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아르마니의 회색과 베이지색 패브릭은 전체적으로 옅은 색조를 처음 소개했고 거의 반세기 동안 그 색상으로 이 세계를 물들여왔다. 부끄러움이 별로 없는 아르마니는 자신의 혁신이 ‘위대한 변화’가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그 혁신 또한 당시 스타일이 터무니없는 수준이었기에 해볼 만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그의 혁신은 현실적으로 기존 체제에 반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조지 마이클의 비디오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던 1990년 슈퍼모델들에 대해 그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바로 중성적이고 무명인 모델들을 세웠다. 투 머치, 즉 너무 지나칠 때, 아르마니는 투 머치에 반하는 행보를 보였다. 다시 한번 세상이 자신에게 돌아왔다고 그가 강하게 주장했다.

코로나는 ‘옷이 많지 않아도 잘 입을 수 있고 매일 쇼핑하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고 아르마니가 말했다. 패션이 그 진정한 기능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그것은 사람들을 더 나아 보이고 더 낫게 살아가도록 돕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패션은 사람들이 입는 것이지,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날 아침 그의 사무실 복합 단지를 찾아간 것이 떠올랐다. 오래된 네슬레 곡물 저장소, 즉 그레인 사일로를 개조해 만든 건물은 그의 디자인을 전시하는 매력적인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르마니의 회색과 베이지색 옷을 입은 머리 없는 마네킹이 꼭대기 층을 가득 채웠고, 그것 중 상당수가 20~30년 후 발표된 디자인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같은 컬렉션 의상인 것처럼 말이다. 요점은 분명했다. ‘아르마니는 만고불변이다.’ 또한 아르마니가 1980년대 오스카 시상식과 여러 레드 카펫에 참석하는 유명 여배우에게 입히기 시작했던 우아한 드레스에 할애된 부속 건물도 있었다.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르마니가 기본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그가 매력적인 유명인 패션을 양산하는 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패션 트렌드의 추구는 패션계를 좀먹는 요인으로, 아르마니가 혐오하는 지금의 인플루언서 시대의 서막으로 패션계 비평가들이 지적한다.

그가 조금이라도 느낄까? “죄책감을요?” 그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속죄보다 마케팅 수완일 수 있겠지만, 그는 지난 10여 년에 걸쳐 레드 카펫의 화려함을 살짝 억제하자는 이니셔티브를 지지해왔다. 2011년 아르마니는 그린 카펫 챌린지(Green Carpet Challenge)를 받아들인 첫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것은 리비아 퍼스(Livia Firth)가 지속 가능한 패션을 부각시키고자 만들었다. 그가 재활용 플라스틱과 패브릭으로 그녀의 드레스와 리비아의 전남편이자 배우인 콜린 퍼스의 턱시도를 제작했다. 리비아 퍼스는 아르마니가 “형편없으면 제 이름을 걸지 않을게요”라고 자신에게 한 말을 전해줬다. 그러나 드레스는 대박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사교 모임에서 패션 거대 기업 케어링을 이끄는 프랑수아 앙리 피노와 그의 아내 셀마 헤이엑이 그녀의 드레스를 만져보며 실크 같은 감촉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리비아 퍼스는 아르마니가 기업의 힘을 통해 지속 가능성과 공정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이 전례를 따르도록 압박하는 리더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르마니가 분명한 비전으로 이 일에 동참한 이후, 전 세계적 사업 확장에 뛰어들고 이 때문에 그가 계획하던 일이 중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그녀는 그가 단순한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아르마니가 지닌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감으로써 패션 산업을 혁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르마니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렇지만 아르마니 사일로 건물 1층에 전시된 재활용 엠포리오 아르마니 캡슐 컬렉션 제품 옆으로 대형 액세서리 전시관이 있었다. 이 기업이 현재 매출 증대를 위해 이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그것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아르마니는 정말 속도를 늦추고 싶을까? 아니면 그저 아르마니답지 않은 경쟁자들의 화려함에 일침을 가하고 아르마니 브랜드 자체를 띄우기 위해 속도 늦춤에 대해 언급하는 걸까? 그는 정말 덜 팔고 하이엔드 럭셔리에 더 집중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의 리드를 따르게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는 꾸준히 확장하고 싶은 걸까? 그는 현재의 위기를 패션 산업을 구하기 위한 기회로 삼는 일에 진심일까? 아니면 정말 자신이 떠난 후에도 그 회사가 확실히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다져놓는 걸까?

벼랑 끝에 불안정하게 서 있었다는 아르마니의 꿈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그러면서 그가 그곳에서 어떻게 떨어지고 싶은지 궁금했다. 그가 앞에서 비통해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재봉사들이 공장에서 직접 바느질하던 지나치게 감상적인 이탈리아식 향수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를 기대했다. 또한 온라인 판매가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실용적이기 때문에 패션쇼와 쇼룸을 대체하게 될 거라고 예상한 것도 기억난다. 무엇보다 그가 다음 회의를 위해 자리를 뜨기 전, 우리가 나눈 인터뷰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패션의 미래는 뭘까요?” 내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이 길 끝에 빛이 있을까요?” 그러자 아르마니가 말했다. “우리가 희망하는 빛은 시장에서 우리의 위치를 되찾는 것이죠. 코로나 시대 이전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개선해나가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