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리운 라이브 패션쇼에 대하여

Fashion

여전히 그리운 라이브 패션쇼에 대하여

2021-07-19T14:40:34+00:00 2021.07.16|

<보그>의 역사인 이 남자는 거의 모든 패션쇼에 참석했다. 그는 지금 패션을 경험하는 새 방법에 갈채를 보내면서도, 여전히 그 현장에서 맡아온 향수 냄새와 관중의 소리를 그리워한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얘기하고자 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패션쇼!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지난 한 해 동안 창의적인 사람들이 디스토피아적 혼돈의 시간 동안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찾아낸 창의적 솔루션도 경이롭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제레미 스캇의 모스키노가 무대에 세운 마리오네트 모델들, JW 앤더슨의 쇼 인 어 박스(Show in a Box), 그의 “The Loewe Show Has Been Cancelled”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 그리고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그린 스크린으로 꾸민 루이 비통 2021 S/S 무대가 특히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 학생들이 런던 연립주택에서부터 레이캬비크(Reykjavik)의 양 농장까지 각양각색의 집에서 발표한 쇼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런 굉장한 무대를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니까.

전통적 라이브 패션쇼의 과도한 탄소 발자국에 대한 의식을 보여주는 더 많은 혁신과 상상, 솔루션은 계속 보면 좋겠다. 동시에 라이브 공연, 뮤직, 댄스 등으로 구성된 엄청난 패션쇼가 지니는 순전한 감각적 경이로움은 어린 시절부터 내 가슴에 울림을 주었다.

1970년대 영국은 어른에게 암울한 시기였다. 정전 사태, 총파업과 IRA의 테러 공격으로 심각하게 균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행에 민감한 어린 소년에게는 정말 근사한 시기였다. 사회 전반의 불안에 대한 반응으로 런던에서 활동하던 스타 디자이너들, 특히 오지 클락(Ossie Clark), 잔드라 로즈(Zandra Rhodes), 안토니 프라이스(Antony Price), 진 뮤어(Jean Muir), 테아 포터(Thea Porter) 그리고 빌 깁(Bill Gibb) 등은 대공황 시대 미국 영화 산업 제작자만큼 현실 도피주의자처럼 환상과 향수 속에서 작품을 끌고 나갔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깁은 나의 패션계 아이돌이다. 내가 직접 관람한 첫 패션쇼가 바로 그의 기발한 창작품을 발표하던 무대였다. 1977년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그 화려한 패션쇼는 그가 만든 레이블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나는 당시 열네 살이었고 영국 <보그>의 연례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진로에 대한 주사위가 분명하게 던져졌다. 티켓을 구매했고 패션 전공 학생 수백 명과 함께 거대한 콘서트홀의 맨 꼭대기 좌석에 앉았다. 영국 <보그> 지면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너무나 많은 디스코 시대 로이 풀러(Loie Fuller)들처럼 배우, 모델, 잇 걸(잇 보이스)들이 무대를 누비는 현장을 목격한 뒤 그냥 얼어붙어 있었다. 그 무대의 또 다른 볼거리는 로열 발레단의 매력적인 스타 댄서 웨인 슬립(Wayne Sleep, 그는 나중에 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함께 공연하곤 했다. 찰스 왕세자는 이것을 분명 수치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올가 코르부트(Olga Korbut)의 깜짝 카메오 등장이었다. 쇼의 대단원은 깁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에나멜 단추의 색깔인 옐로, 블랙, 화이트 풍선 수천 개가 천장에서 쏟아지고 영국인이 국가보다 더 많이 부르는 노래 ‘Land of Hope and Glory’가 흘러나오면서 막을 내렸다. 한 편의 연극이고 공연이면서 마술이었다. 그때 물리적 패션쇼를 통해 한 디자이너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계속 빌 깁 같은 디자이너를 꿈꾸며 1980년대 초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세계적 컬렉션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서관에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모서리가 죄다 접혀버린 <Collezioni>라는 두툼한 잡지에 실린 손톱만큼 작은 사진을 보는 것뿐이었다. 뭐랄까, 당시 런던의 밤 유흥 장소가 영국적 패션쇼의 현장이기도 했다. 우리는 캠던 팰리스(Camden Palace)나 차차 클럽(Cha Cha Club)에 가려고 우리만의 룩을 만들어내면서 한 주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파리의 패션쇼를 직접 구경하기’에도 관심을 쏟았다. 모델 보조나 헤어와 메이크업 팀 멤버로 가장하거나 때때로 보안 장벽을 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가끔 요지와 레이의 급진적 디자인을 입석으로 관람하기도 했고 클로드 몬타나의 만화적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을 보는 보상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티에리 뮈글러가 1984년 가을 패션쇼를 거대한 록 콘서트 공간인 제니스 파리(Zénith Paris)에서 열었고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티켓을 판매했다. 얼마 안 되는 학비 보조금이 이때만큼 유익하게 쓰인 적은 거의 없었다. 그 패션쇼는 굉장한 볼거리였다. 클라이맥스로 점점 고조되면서 로저 미클로시(Rózsa Miklós)의 열광적 사운드트랙 <King of Kings>에 맞춰 종교적 테마의 피날레를 선보였다. 그리고 당시 아들 노엘을 임신한 지 6개월째였던 런웨이 스타 팻 클리블랜드가 스와로브스키 스팽클이 부착된 아이스 블루 시폰 드레스를 입고 별 모양 후광을 비추며 성모 마리아가 되어 하강하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뮈글러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았다. 또 다른 시즌의 무대에서는 그의 뮤즈 도핀 드 제르파니온(Dauphine de Jerphanion)이 놀란 허스키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등장했다. 그리고 트럼프 가문의 이바나가 은은한 금발의 올림머리로 광대뼈를 부각시킨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했을 때, 뮈글러는 그녀와 함께 카우보이 바지를 입은 천부적인 재능의 포르노 스타 제프 스트라이커(Jeff Stryker)를 1992년 봄 런웨이에 출격시켰다.

팻 클리블랜드가 구름 속에서 내려온 후, 동창인 존갈리아노가 자신의 세인트 마틴 졸업 작품 패션쇼를 열었다. 프랑스혁명 후 총재 정부 시대(1795~1799년)에 나타났던 색다른 남성 멋쟁이를 지칭하는 앵크 루아야블(Incroyables)에 영감을 받은 그는 10대였던 카밀라 니커슨(미국 <보그> 패션 에디터)을 비롯해 정말 매력적인 인물들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프랑스 국가(國歌) ‘마르세예즈(Marseillaise)’와 비트 박스를 매시업한 리듬에 맞춰 밴시(아일랜드에서 죽음을 예언한다고 여겨진 여자 요정, 구슬픈 울음소리로 죽음을 알려준다고 함)처럼 비명을 지르며 모델들이 무대를 활보하게 했다. 쇼는 몇 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가장 흥분된 패션쇼의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는 꾸준히 그런 작품을 만들어왔다. 특히 1998년 디올 오뜨 꾸뛰르 패션쇼는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열린 이 쇼는 故 마이클 하웰스(Michael Howells)의 데커레이션, 탱고 댄서, 털이 하얗고 큰 개 보르조이(Borzoi) 그리고 대리석만큼 넓은 크리놀린을 입은 마르케사 카사티 (Marchesa Casati)의 화신으로 꾸며졌다.

한편 1980년대는 또한 도나 카란의 ‘Seven Easy Pieces’ 쇼를 통해 기억에 남는 맨해튼의 순간을 안겨주기도 했다. 쇼는 뉴욕 7번가에 위치한 그녀의 좁은 쇼룸에서 열렸다. 블랙 저지 보디수트, 블랙 스타킹과 힐을 착용하고, 플랫폼 위에 펼쳐놓은 옷을 입은 전투적인 모델들이 손드하임(Sondheim)의 ‘Putting It Together’를 노래하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사운드트랙에 맞춰 워킹했다. 작품 모두 당시 내게는 굉장히 이국적으로 보였다. 아마 그쪽에서도 나에 대해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패션쇼가 끝나고 도나 카란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그녀의 개인 비서가 디자이너에게 먼저 가서 내가 카디건 세트로 샤넬 재킷을 입고 퀼팅 네이비 저지 샤넬 지갑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줬으니 말이다.

그런 활기 넘치는 1980년대에 크리스찬 라크르와도 1987년 오페라풍 데뷔 패션쇼를 통해 정말 파리다운 순간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다. 아를의 여왕(Queen of Arles)과 시녀들이 막을 연 쇼에서는 악절마다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푸프 드레스를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관객을 위한 작은 금빛 무도회장 의자에는 패션쇼 일정표와 자주색 또는 강렬한 핑크색 카네이션이 한 송이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라크르와가 무대 인사를 하러 나오자 카네이션이 쏟아져 내렸다. 당시 라크르와 쇼는 40분간 지속됐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 꾸뛰르 쇼는 120가지 룩을 뽐내면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되기도 했다.

7월에 가을 꾸뛰르 패션쇼가 열리는 동안 호텔 볼룸을 채운 열기는 미친 듯이 부채질해대는 관객의 다양하고 강한 향과 한데 섞인 채, 공간에 듬뿍 뿌려진 그 순간을 상징하는 디자이너의 향기를 무력화시키거나 더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림은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 몬타나는 첫 모델이 런웨이로 나가기 직전 헤어스타일을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손보기도 했다.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까다롭게 엄수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카트린 드뇌브는 장 폴 고티에의 늦게 진행된 어느 패션쇼에 몹시 화가 난 나머지, 모로코 결혼식에 참석한 미사 집전 신부처럼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때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이만, 제리 홀의 패션쇼 카메오 출연도 독특했지만, 화보 촬영 전문이었던 슈퍼모델 나오미, 신디, 린다, 크리스티가 조지 마이클의 ‘프리덤! ’90’을 립싱크로 부르며 지아니 베르사체의 1991년 열광적인 패션쇼에 등장해 화끈한 워킹을 선보인 것도 굉장히 독특했다. 그때까지 여러 시간 내내 디자이너의 옷을 갈아입으며 무대에 설 뿐 화보 촬영은 거의 하지 않았던 특별한 패션모델 부류가 존재했다. 이들은 꿈결 같은 동작으로 놀라움을 자아내는 여자들이었다. 이를테면 브라질 출신 달마 칼라도(Dalma Callado)는 거만한 눈길을 관중에게 보내며 런웨이를 천천히 걸어 나와 재킷 단추를 풀고, 커프스와 장갑을 벗고, 석기시대 혈거인이 갓 잡은 사냥감을 끌고 가듯 재킷을 질질 끌고 들어갔다.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거나 발을 헛디디지 않고 말이다. 칼 라거펠트는 1990년대에 늘 패션쇼에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를 캐스팅했다. 호리호리한 런웨이 스타였던 그녀는 한 패션쇼에서 25벌을 갈아입기도 했다(10대였던 케이트 모스는 파리에서 열린 갈리아노의 첫 패션쇼에 섰을 때, 자신에게 단 한 벌만 할당된 것을 보고 눈물을 터트리기도 했다).

나는 1992년 맨해튼으로 이사했고 미국 <보그>로 옮겼다. 간단명료한 뉴욕 패션쇼에 이미 익숙해 있었다. 런웨이의 모든 작품이 판매용이었고 사고방식은 밝고 매력적이었다. 한편 파리에서는 헬무트 랭이 모델들을 속사포같이 빠르게 런웨이에서 질주하게 했다. 잠깐 멈춰 빙그르르 도는 것도 없이 질주하게 함으로써 조용한 혁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런던의 패션계에 막 입성한 리 알렉산더 맥퀸이 극단적 불안과 공포라는 개념을 패션쇼에 가미하며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냈다. 리의 시각을 거쳐 탄생한 세상은 디스토피아였다. 그래서 그 세상의 공포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줄 갑옷을 만들어냈다.

1995년 열린 그의 네 번째 패션쇼 타이틀은 히치콕의 위협적인 작품과 같은 ‘The Birds’였다. 그때 처음으로 그의 패션쇼를 관람했다. 우리는 런던 북구에 있었고 당시 매춘으로 악명 높던 지저분한 킹스크로스(King’s Cross)의 폐허나 다름없는 빅토리아풍 창고로 초대받았다. 밀실 공포증이 느껴질 만큼 복도와 계단이 좁았다. 자리 잡고 앉기 전부터 심한 불안을 느낄 정도였다.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새소리에 자동차 부딪히는 소리가 믹스된 위협적인 사운드트랙에 맞춰 레이저 빔의 역광 조명을 비추며 런웨이 끝부분에 실루엣이 보였고, 섬뜩한 로봇 같은 여성 모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아찔한 힐을 신고, 하얀 콘택트렌즈를 껴서 멍해 보이는 시선으로(소설가 플럼 사이크스(Plum Sykes)도 이 쇼에서 모델로 섰는데 렌즈 착용을 거부했다) 광택 있는 바퀴 자국 패턴이 부각되지 않게 들어간 옅은 색상의 옷을 입은 채 불안하게 무대를 걸었다. 재킷과 셔츠는 모두 유두 바로 밑부분에서 잘려 있었고, 팬츠와 스커트도 골반 아랫부분에 걸치게 재단해 둥근 엉덩이가 드러났다. 그 작품 모두 숨이 멎을 만큼 근사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보여준 무질서한 쇼를 통해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패션에 대해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완전히 달랐다. 뮈글러처럼 맥퀸은 타고난 쇼맨이었다. (1999년 봄) 로봇이 스프레이로 페인트칠한 샬롬 할로우, (2006년 가을)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케이트 모스, (2004년 봄) 영화 <They Shoot Horses, Don’t They?>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무용가 마이클 클락(Michael Clark)이 연출한 쇼에서 (주석과 납의 합금) 백랍 스팽글 의상이 넘치는 가운데 카렌 엘슨이 피로로 쓰러지는 장면을 연기한 것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맥퀸의 디스토피아와 더불어 1990년대는 우리에게 톰 포드가 이끄는 구찌의 흥분을 선사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패션쇼에서 표출되는 나이트클럽의 에너지에 섹스를 담아냈다. 그리고 미우치아 프라다의 등장도 우리를 흥분시켰다. 그녀는 획기적인 패션쇼에 예술을 녹여냈다. 마크 제이콥스 또한 파리 루이 비통 패션쇼를 비롯해, 뉴욕 렉싱턴 애비뉴와 파크 애비뉴에서 열린 패션쇼를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 했다. 린 예거(Lynn Yaeger)와 안나 피아지(Anna Piaggi)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조각가 레이첼 파인스타인(Rachel Feinstein)이 무대를 만든 2012 가을 컬렉션, 하루 동안의 무도회 여왕을 그린 2006년 봄 컬렉션(펜 스테이트 블루 밴드(Penn State Blue Band)가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연주했다), 관중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던 캐롤 아미티지(Karole Armitage)의 쇼로 구성된 2020년 가을 컬렉션 등 그는 시즌별로 분위기를 바꿔왔다.

뉴욕의 랄프 로렌은 강하게 몰입시키는 방법으로 관중을 자신의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환기하는 무대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곳 어디든 관객을 이끌었다. (2008년 봄) 1930년대 애스콧 레이스(Ascot Race), 데코 상하이(Deco Shanghai, 2011년 가을) 등을 대표적인 무대로 꼽을 수 있다. 한편 랄프 로렌의 50주년 기념 컬렉션(2018년 가을) 무대가 센트럴 파크의 베데스다 분수(Bethesda Fountain)에서 진행되었다. 힐러리 클린턴, 오프라 윈프리, 로버트 드 니로와 카니예 웨스트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그리고 1981년 가을 패션쇼에 처음 선보인 아메리칸 웨스트 스타일, 미국의 다양성을 기쁘게 찬양했던 다양한 세대의 캐스팅, 그가 커리어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보여준 라이트 모티브 등으로 쇼를 구성했다. 또한 제레미 O. 해리스 (Jeremy O. Harris)의 희곡 <Slave Play>에서 영감을 받은 텔파 클레멘스(Telfar Clemens)의 2019년 가을 컬렉션은 관객이 어울려 춤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의식을 이끌어냈다. 패션쇼가 열띤 사회 비판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 커비 장 레이몬드(Kerby Jean-Raymond)는 자신의 피에르 모스(Pyer Moss) 2019년 봄 쇼를 위크스빌 헤리티지 센터(Weeksville Heritage Center)에서 열었다. 이곳은 미국에서 처음 자유를 얻은 흑인 커뮤니티 중 하나다. 가스펠 콰이어와 아티스트 데릭 아담스(Derrick Adams)의 협업이 패션쇼를 한층 더 빛냈다. 이것은 휘몰아치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게 하는 그런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의 2020년 봄 패션쇼는 이것을 퇴색시킬 만큼 훌륭했다. 브루클린의 킹스 시어터(Kings Theatre)에서 열린 이 무대는 칭송받지 못했던 로큰롤의 대모 시스터 로제타 사프(Sister Rosetta Tharpe)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작가 케이시 제럴드(Casey Gerald)의 강렬한 모놀로그로 더 돋보였다. <보그>의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 폴리 멜렌이 말한 대로, 패션쇼는 나를 오싹하게 만든다. 그리고 말 그대로 눈물 나게 만들었다. 슈퍼마켓, 비행기, 이탈리아식 빌라, 파리 거리, 모델들의 발을 휘감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변까지 칼 라거펠트가 샤넬을 위해 마련한 몰입적인 경험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시차, 교통 체증으로 인한 걱정, 북적대는 인파, 쇼 시작을 향한 긴 기다림은 그립지 않다. 하지만 극장, 발레, 오페라와 나이트클럽을 향한 그리움만큼 기대를 요동치게 만드는 패션쇼의 감각적 경험을 향한 그리움이 너무도 크다. 그 감각적 경험을 매우 갈망하고 있다. 런웨이와 흥분한 관객, 디자이너의 비전이 정말 보고 싶다. 그곳의 향기, 무대 뒤 옷의 감촉, 얼굴에 키스하듯 인사할 때 생기는 가벼운 바람이 그립다. 또 제레미 힐리(Jeremy Healy)가 갈리아노 쇼를 위해 만든 사운드스케이프까지. 그리고 그 기분… 그것은 모두 주관적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