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셀프 헤어 전성시대

2021.07.27

by 송가혜

    셀프 헤어 전성시대

    아이시 블루, 애시드 옐로, 그 밖에도 다양한 컬러를 자유자재로 모발에 입히는 시대. 이 모든 것이 ‘셀프’로도 가능하다.

    얼마 전 <보그>로부터 취재차 직접 셀프 염색을 시도해보겠냐는 제의가 왔다. 팬데믹 사태 이후 331일째 남편과 함께 저녁 식사를 먹으며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머리 색을 바꾸고 싶은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첫아이 출산, 도돌이표처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자택 봉쇄령 등. 지난 한 해 동안 내 삶은 작은 변화 하나조차 몹시 갈망하던 참이었다. 이럴 때 염색만큼 쉽고 간편하게 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예로부터 모발 색을 바꾸는 일은 특히 여성에게 문화적 변화에 동참하는 수단이었다. 1920년대에 섹슈얼한 이미지로 주목받은 영화배우 ‘클라라 보’와 ‘테다 바라’를 모방하던 신여성들은 당시 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것으로 반항적인 기질을 드러냈다. 여권신장운동이 급부상한 1950년대에 여성이 전형적인 가정주부의 심벌이던 진한 금발을 거부하던 행보 역시 그 대표적 예다. 1980년대의 네온 빛깔 헤어는 펑크족에게 보수적이고 가족적인 가치관을 거부하는 비주얼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이러스 시대에는? 예전처럼 자주 헤어 숍을 드나들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 침체된 일상에 갑갑함을 느낀 사람들이 소소한 일탈이나 개성 표현의 수단으로 스스로 집에서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대담한 색감에 도전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셀프 염색이 화두로 떠오른 지금은 염모제가 튄 옷깃과 얼룩진 손가락이 역사 속 유물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자, 그럼 아마추어인 나는 어떤 헤어 컬러를 선택해야 실패 확률도 줄이면서 색다르게 변신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올해 F/W 컬렉션의 사진을 살펴보았다. ‘마르니’, ‘가브리엘라 허스트’, ‘돌체앤가바나’ 컬렉션 속 모델들의 모발은 그야말로 강렬하고 휘황찬란했다. 색색으로 물든 ‘틱토커’의 화려한 머리카락 역시 앞으로 다가올 트렌드를 예고한다. 애시드 옐로, 플레임 오렌지와 차가운 블루, 새하얗게 탈색한 머리 등 예전에는 모발에 입힐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컬러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들은 블루, 레드, 오렌지 등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진 스펙트럼의 헤어 컬러를 선호하고 있어요. 그야말로 광풍이 불고 있죠.” 유명 헤어 살롱인 동시에 획기적인 염색약을 출시하는 토털 헤어 브랜드, ‘블리치 런던(Bleach London)’의 창립자이며 헤어 컬러리스트로 활동하는 알렉스 브라운셀(Alex Brownsell)은 이야기한다. 좀 더 전문적인 조언을 얻기 위해 나는 그녀와 줌으로 대화를 나누며 직접 염색에 돌입했다. 브라운셀은 그야말로 뷰티업계의 ‘수잔 밀러(저명한 점성가)’로 통하는 존재다. 실험적이면서도 변혁적인 스타일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녀는 리타 오라, 플로렌스 웰치, 조지아 메이 재거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의 인상적인 헤어스타일을 탄생시킨 주인공이자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셀린느 에디 슬리먼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영국에서 창립한 헤어 살롱 ‘블리치 런던’은 패션 전문가와 각종 하위문화 집단이 영감을 얻기 위해 모여드는 핫 플레이스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아름답고, 섹시하면서도 우아하고, 지금보다 젊어 보이기 위해 노력해왔죠. 하지만 ‘블리치 런던’을 통해 제가 창출하고 싶은 가치는 그 반대였어요.” 브라운셀이 이 브랜드를 창립하며 세운 비전은 지금의 뷰티 트렌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녀가 살롱을 오픈한 이후 출시한 실험적이고 마니아틱한 염색약 16가지에는 염모제뿐 아니라 스타일링 도구, 헤어 토너와 블리치 키트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헤어스타일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들이 집에서도 스스로 머리 색을 쉽고 과감하게 바꿀 수 있게 돕는다. 마니아적 팬덤의 중심에는 브라운셀만의 남다른 염색 기술이 있었다. 단골 고객에서 브랜드의 투자자로, 이제는 공동 소유주가 된 모델 조지아 메이 재거는 브라운셀에 대해 ‘연금술사’라고 표현한다. “브라운셀의 집에 놀러 가면 패브릭이나 컬러 칩이 들어 있는 지퍼 백이 가득 있어요. 그것들을 가지고 컬러를 이것저것 조합해보는 거죠.” 나는 고민 끝에 그녀의 제품 가운데 ‘저스트 라이크 허니(Just Like Honey)’라는 골든 블론드 컬러를 선택했다.

    지난겨울, 코로나 바이러스가 영국을 강타해 ‘록다운’ 사태에 돌입했을 때 ‘블리치 런던’ 은 디지털 상담 플랫폼을 더욱 활성화했다. 헤어 컬러부터 모발 타입별 추천 제품, 단계별 팁에 대해 무료로 스타일리스트들과 일대일 대화를 나누는 이 서비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브라운셀은 1년 넘게 집에 갇혀 지낸 틱톡 세대에게 ‘DIY 염색’은 마치 ‘바나나 빵을 굽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루틴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처음 시도해보는 사람도, 셀프 염색이 익숙한 사람도 모두 과감해지고 있죠. 디지털 컨설팅을 통해 단순히 모발 전체를 물들이는 것뿐 아니라 모근 쪽을 다른 컬러로 물들이는 ‘루트 클래시,’ 그러데이션처럼 표현하는 ‘옹브레’ 등 염색 기술에도 도전하고요.” 그녀는 최근의 트렌드를 설명하며 한껏 고취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제 나의 고루한 갈색 모발에 변신을 시도할 차례. 나는 모발을 빗질하면서 여러 갈래로 나누고, 그녀의 블리치 키트 속 탈색제를 바르는 중간에도 확인받고자 스크린을 향해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걱정하는 내게 브라운셀은 재차 “아마추어다운 실수조차 멋지게 표현될 수 있어요. ‘DIY’의 가장 큰 매력은 스스로 직접 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만족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라고 안심시켰다. “네, 좋아요. 컬러가 얼룩덜룩해도 괜찮아요. 지금 당장은 얼룩이 심해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하이라이트가 표현될 테니까요.” 한결같이 차분하면서도 사교적인 톤으로 말이다. 그녀는 전문 컬러리스트지만 실제로 집에서 한 것처럼 보이는 모호한 스타일링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판에 박힌 듯 헤어 살롱에서 한 티가 팍팍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해 보이는 딱딱한 스타일링은 ‘블리치 런던’이 추구하는 비전과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셀프 염색을 위해 준비하고, 탈색하고, 다시 모발에 색깔을 입히는 데 총 2시간이 소요되었다. 염색약을 헹궈내고 말리자 밝아진 모발 군데군데 새하얗게 얼룩진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아차, 핀을 꽂아둔 뒷머리의 일부분을 깜빡한 것이다. 실수였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브라운셀은 “바로 그런 것이 ‘블리치 런던’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컬러예요. 우연히 표현된 색감이 지닌 매력이 확실히 있어요. 우리는 그 뚜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잡아내기 위해 정교한 컬러 작업을 하죠”라고 ‘블리치 런던’의 모토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요즘 나의 머리칼은 칙칙한 무채색을 벗어나 탐스러운 캐러멜빛을 띤다. 그뿐인가? 밝은 하이라이트까지 들어가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헤어 컬러가 완성되었다. 이제 언제든 내가 원하는 순간에, 마음에 내키는 컬러로 염색을 마음껏 해볼 수 있다는 것에, 실패해도 괜찮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그저 오랫동안 나의 모발이 건강하게 버텨주기만 바랄 뿐이다. (VK)

    뷰티 에디터
    송가혜
    Molly Creede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