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Nicolas

Fashion

Another Nicolas

2021-08-03T14:39:17+00:00 2021.08.04|

니콜라 디 펠리체가 합류하면서, 메종 꾸레주는 다시 한번 창립자 꾸레주의 신선한 라인과 개성을 갖췄다. 과감한 긍정주의, 창조적 에너지, 열정적 몰입.

그는 굉장히 만족했다. 이곳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고요함이 있었다. 꾸레주의 새로운 아트 디렉터 니콜라 디 펠리체(Nicolas Di Felice)는 앙드레 꾸레주(André Courrèges)가 유례없이 혁신해온 굴지의 브랜드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스니커즈를 신은 채 스포트라이트에 들어섰다. 그의 이름에는 불투명한 화이트, 미니스커트를 입은 날렵한 소녀들,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창립자 앙드레 꾸레주의 성실한 스타일, 시각적 환상, 인간성, 아틀리에의 정신 등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늘 중심에 있어왔어요. 각종 원단, 꿰매는 작업, 팀원들에 둘러싸여 일하는 것을 늘 좋아했죠.” 그는 각 장소의 역사에 관심이 있으며 말 그대로 ‘좋은 바이브’를 느낀다.

펠리체의 첫 패션쇼는 ‘꾸레주의 기초’에 따라 만들어진 느낌으로, 다시 한번 이 브랜드의 이름을 빛나게 하겠다는 약속을 보여주었다. 이는 전통과 역사에 대한 존중이자 다음에 열릴 새로운 장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꾸레주 붐은 돌아온다!

어떻게 벨기에 샤를루아 출신의 소년이 수년이 흘러 메종 꾸레주의 근거지인 프랑수아 1세 거리 40번지에 정착할 수 있었나요? 처음으로 패션에 관심을 가진 것은 MTV에서 나오는 음악과 영상에 노출되면서였죠. 그것이 패션이라는 인식을 그때 했어요. 정확히 패션이 어떤 건지 모르면서 말이죠. 샤를루아 한구석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어머니와 엔지니어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여러 영상이 저를 꿈꾸게 했고,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죠. 저는 시골 한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 출신이에요. 교회가 있고, 신문이나 잡지를 파는 가게, 바가 두 곳 있었어요. 인구가 600명밖에 되지 않는 벨기에 마을에도 바와 감자튀김 가게는 있다고요! 아버지는 늘 <르 비프(Le Vif)>라는 잡지를 구독하셨는데, 프랑스의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와 비슷한 잡지입니다. 그 잡지에 당시 라캉브르 국립시각예술학교 출신의 인재를 찾는 구인 광고가 종종 실렸어요. 그래서 그 학교로 갔죠. 학교에 다니며 모든 것을 알고, 배우고,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흡수하려고 했어요. 1학년 때 과제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크리에이터에 대해 조사해야 했는데, 그곳에서 발렌시아가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우연히 알게 되었죠. 정말 흥미로운 우연이에요!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이끄는 발렌시아가에서 주요 커리어를 쌓았고, 이후에는 루이 비통으로 옮겼어요. 발렌시아가에서는 인턴으로 시작해 계속 일하게 된 케이스예요. 주니어 디자이너로 일할 기회를 얻었죠. 작은 팀으로 일했는데, 거기서 나타샤 램지 레비(Natacha Ramsay-Levi)와 알레그리아 토라사(Allegria Torassa)를 만났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동료들이었죠. 막 브뤼셀에서 가기도 했고 굉장히 수줍은 성격이었는데, 그런 제게 파리 감성을 불어넣었죠.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고, 스튜디오에서도 함께했습니다. 함께 야근하면서 밤 11시쯤에 친구들과 모이기도 했어요. 공원 철창을 함께 넘기도 하고. 밤에 뷔트쇼몽 공원에 가보고는 완전히 빠졌어요. 자정 즈음에 퇴근하고는 러닝하러 그곳에 가곤 했습니다. 또 아름다운 건물을 많이 구경한 덕분인지, 루브르가 삭막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파리라는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소년 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생각할수록 고맙고, 로맨틱한 시간이었습니다. 37세가 된 지금도 아주 행복한 기억이에요. 니콜라 제스키에르에게도 많이 배웠죠. 모든 것이 빨랐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냈어요. 그러면서도 엄청난 정확도와 일에 대한 사랑이 있었죠.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운 만남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줄리앙 도세나도 아주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렇게 루이 비통에서 계속 일했고, 수트 디자인 아틀리에를 책임지는 시니어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사진가 나다니엘 골드버그가 촬영한 니콜라 디 펠리체.

스튜디오 소속 디자이너에서 벗어나 리더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길 권한 사람은 누구였죠? 당연히 꾸레주에서 권했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시켜달라고 한 건 아닙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딱히 갈라설 이유도 없었고, 아트 디렉터가 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어요. 이런 유의 제안에 ‘아뇨,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류에 가까웠죠. 하지만 꾸레주였어요. 너무 멋진 모험이죠. 이 브랜드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앙드레 꾸레주의 유산을 잘 이해했고, 이 방식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꾸레주의 명확한 심플함, 기하학적 라인, 반드시 따라야 할 깔끔함, 연속성, 창조성의 반복, 열린 감성 등이 모든 것의 차분한 균형. 이런 것이 좋았습니다. 열정적인 인물의 비전이죠.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데 두려움이 없는 그런 사람이오. 그의 용기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일뿐 아니라 인생에도. 이런 환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어떤 자유를 늘 붙잡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앙드레 꾸레주는 자유라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창의성을 타고난 인물입니다. 그의 위대한 형식주의 속에서 모든 것은 자유로울 수 있어요. 그의 언어는 진짜 대단하고, 형식이 있으면서도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어 이를 무한히 즐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 컬렉션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뭔가요? 우선 꾸레주 아카이브에 대한 느낌입니다. 아까 언급한 형식이 있는 꾸레주의 언어와 아카이브의 조합입니다. 이런 것의 모태가 된 아이디어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죠. 이곳은 꾸레주의 집 그 자체입니다. 1층에 매장과 아틀리에가 함께 있기도 하고요. 수년간 이런 것이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아름다운 그것을 되살리고 고치려고 합니다. 이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어요. 일단 이 브랜드에서 그동안 걱정스럽게 지키고 전해 내려온 의상을 되살리는 작업은 꽤 잘됐다고 봅니다. 그다음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신과의 조우입니다. 저의 어떤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의상을 선보일 겁니다. 심플하면서도 정제된 것들이 저를 잘 보여준다고 봐요. 정석의 패션쇼 풍경도 좋지만, 마지막에는 젊은 모델들이 벽을 타고 오릅니다. 밤에 파리 공원의 철창을 넘던 추억에 대한 것이죠. 벽을 세우는 것도, 자유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이미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을 통해 우리가 사는 현재를 느끼게 하는 거죠. 다른 것을 보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하니까.

‘벨기에적 포인트’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죠? 과감하면서도 꾸밈없는 면이겠죠. 꾸레주 자체를 잘 보여주는 설계도 같은 느낌이랄까요. 기성복을 디자인하면서 이런 면이 좀 드러났다고 봅니다. 제가 전체적으로 구상한 프로젝트였거든요. 이 브랜드를 잘 파악하고 있을 때, 다른 것도 탐구할 수 있겠죠. 하지만 현재로서는 꾸레주 자체에 집중하는 데 기쁨을 느낍니다.

1968년 앙드레 꾸레주 컬렉션.

컬렉션 제목인 ‘너의 심장 소리가 들려(I Can Feel Your Heartbeat)’는 개인적 발상인가요? 아름답게 여겨져서 붙였는데, 이런 것이 제 로맨틱한 점일 수 있겠군요. 마르탱 솔베이그(Martin Solveig)의 데뷔 앨범 수록곡 가운데 여자 목소리가 저 가사를 기도문처럼 반복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하기도 하고. 진짜로, 스스로에게 저 말을 하기도 하고 남에게도 합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새해 목표로 ‘용기 내기(Courage)’를 정했다고 칩시다. 아마 같은 말도 각자 다르게 해석할 겁니다. 어떤 사람은 큰 흥분을 느낄 테고, 누군가는 겨울철에 보내는 작은 응원 메시지라고도 여기겠죠. 저도 옷을 통해 이런 것을 전달하고 싶어요. 체험한 것을 각자의 스토리로만 가져가는 겁니다. 오래되고 역사가 있는 셔츠를 시간을 거슬러 당대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그런 것을 원해요.

꾸레주의 아카이브를 파헤치면서 놀란 것이 있나요? 매우 멋졌고,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어요. 의상뿐 아니라 도면과 영상이 전부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첫 컬렉션을 살펴보고 싶었거든요. “역시나!”라고 해야 하는 건지, 가장 덜 알려진 것에 가장 끌렸습니다. 앙드레 꾸레주의 데뷔가 제 데뷔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앙드레 꾸레주 역시 발렌시아가에서 나왔기 때문이겠죠. 아틀리에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꼈고, 거의 작업실에 살면서 천을 수 킬로미터는 꿰맨 것 같아요. 자료가 엄청난 데다 풍부하다는 것이 몹시 인상 깊었어요. 패션쇼의 모든 참석자, 항공사 승무원 유니폼, 차량, 꾸레주가 피우던 담뱃갑까지 있었다고요. 특히 첫 컬렉션 직후의 거의 모든 사진이 있었어요. 이런 집착적 면모가 엔지니어다운 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향수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이런 것에 대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에는 앙드레 꾸레주가 스케치하고 직접 사용하던 가구가 한가득입니다. 두 손에 거대한 우주가 있는 느낌이에요. 걸작이 다 있죠. 모든 아카이브 자료는 말할 수 없이 감명 깊었고, 여전히 제 앞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삶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제 일을 360도의 시각, 즉 모든 카테고리, 모든 이미지, 상품과 디자인의 시각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요. 친환경 비닐 소재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환경은 일과 깊숙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겠죠. 원단을 고르는 것부터 환경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굳이 해악을 끼치는 선택은 할 필요 없어요. 비닐로 된 의상은 현재 70%의 식물성 섬유를 사용한 스트레치 저지 소재로 만들고 있어요. 곧 옷 소재 전체를 100% 식물성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또 유통 과정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에서 주로 생산하려고 합니다. 이 또한 잘 진행되고 있어요. 환경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옷을 오래 입는 거라는 게 골자입니다. 제 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죠. 옷을 물려줄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빈티드(Vinted)에 있는 빈티지 매장에서 꾸레주 의상이 팔린다는 것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단순히 잘 팔리는 옷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늘 살아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겁니다. 꾸레주의 정신은 아주 생명력이 강합니다. 사랑받는 옷은 그런 게 아닐까요?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