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운동 이야기
신체가 정신을 지배하자 외마디 비명이 비집고 나왔다. 생존을 위해 운동을 시작해야 할 때다.
결정적 계기는 손목이었다. 엄지 쪽 손허리뼈 부위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근육을 타고 팔뚝까지 통증이 쫙 퍼졌는데 마치 살가죽 아래에서 누가 모닥불을 피우는 것만 같았다. 키보드 손목 받침대를 구입했고 손목 보호대를 찼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슬슬 무서웠다. 며칠 후 좁은 자리에 주차하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기둥이 여기 있어? 경사는? 아니, 애초에 왜 주차라는 걸 해야 하는 거야!” 자동차 핸들을 돌리기도 힘들어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에 찍힌 척추는 짜파게티처럼 구불구불했다. 휜 척추가 목과 어깨, 손목에까지 통증이라는 저주를 내리고 있었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완치될 수도 없다고 했다.
도수 치료와 충격파 치료를 받는 가운데 지인들은 운동을 권했다. 건강검진에서 비만 판정을 받았다. ‘늘 몸이 무겁고 피곤한’ 감각이 찾아온 지 오래였다. 탄산수 페트병 뚜껑을 열면서도 힘이 들어 짜증이 일었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1시간이면 쓰던 질문지를 3시간 넘게 붙잡고 있었다. 퍼스널 트레이너를 찾아간 건 정말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였다. 인바디 결과지를 받아 든 트레이너는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한 몸이네요.” 가만히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는 몸을 보며 진단은 이어졌다. “계속 앉아서 일하죠? 평발이네요? 자다 깨지 않아요?(이하 중략)” 점쟁이처럼 현 상태를 콕콕 맞힌 선생님은 말했다. “지금 권하고 싶은 건 걷기예요. 9층 사무실까지 계단 이용하고요. 일상에서 체력이 생겨야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거예요.” 뛰지도 말라고 했다. 릴랙스할 수 있는 호흡을 권했다. “지금 회원님이 덤벨을 쥐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40대에는 ‘케어’를 하고 ‘엑서사이즈’로 넘어가야 해요. 몸에 힘을 빼는 구조로 만들고 운동 시작합시다. 그러면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잠을 잘 잤다, 신경질이 줄었다로 순환이 될 거예요.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거고요. 삶을 지켜내야 합니다.” 2년 전 나는 여자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기사를 썼다. 힘센 여자가 되고 싶다고도 썼다. 하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근육을 욕망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프리퀄 한복판이었다.
얼마 전 영국 <허핑턴 포스트>는 30~60대 여성이 운동하는 이유가 과거와 다르다는 기사를 실었다. 20대에는 다이어트와 외모 때문에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정신 건강과 체력을 위해 운동을 한다는 여성들의 인터뷰였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건 “평생 운동을 싫어했지만 언덕을 오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지면서 운동을 시작했고, 이제는 20년 후에도 누구의 도움 없이 언덕을 오르기 위해 운동한다”는 50대 인터뷰이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30~60대에 운동을 한다는 건, 예전과 똑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기 위해서다. 주위를 돌아보면 정말 그랬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위해 덤덤한 얼굴을 하고 러닝 머신에 오르고, 필라테스를 하고, 수영을 했다. 번아웃으로 퇴사한 지인은 2년 뒤 한결 가뿐한 얼굴로 종일 골골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아침밥으로 몸에 연료를 채워 넣듯,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준비한 후 출근하거라.”
이렇듯 여성은 생애 주기에 따라 운동하는 목적이 바뀐다. 굶거나 폭주를 해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체력 전 성기인 20대에 우리는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한다. 30대가 되면 근골격량에서 근육량과 골밀도가 조금씩 줄어들고 만성피로가 비집고 들어온다. 이때 결혼과 육아를 하게 된다면 운동 시간은 소멸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할 일만 하다 보면 나처럼 어딘가 고장이 나서 40대를 맞이한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시기와 자녀가 어느 정도 자라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시기가 일치한다. 그래서 여자들의 운동 황금기는 50대다. 그리고 60~70대가 되면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한다.
생애 주기로 따지면 지금 나는 운동 취약기에 있다. 시간이 없다. 아침에 눈떠서 식사를 준비하고 준비물 챙겨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가 집에 오면 또다시 숙제를 챙기고 씻겨서 재워야 하는 미션이 남아 있다. 틈틈이 인터넷 쇼핑, 다림질, 방 정리 등 무수한 일을 한다. 그러고 나면 눈을 감을 힘도 남지 않는다. 헬스장이든 요가 아카데미 등 어딘가에 가서 운동을 하려면 이동하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최소 2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일과에서는 그 2시간이 보이질 않는다. 잠을 줄여야 할까. 눈 질끈 감고 다른 가족에게 내 의무를 맡겨야 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70대 엄마는 “나이 들어서 나처럼 되지 말고 운동하라”는 말을 종종 건넨다. 그런데 정말이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나보다 쇠약한 엄마에게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떠넘기고 내 한 몸만 챙긴다는 죄책감이 찾아온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운동 가방 들고 집 밖을 나서는 날이 과연 올까. 미국에서는 엄마들이 운동하는 동안 베이비시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육 관이 있다던데. 운동을 기본값으로 여기는 사회가 부러울 따름이다.
반면 함께 살고 있는 남편과 아빠는 운동 시간을 대체로 확보하고 있다. 남편은 퇴근 후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헬스장에서 흠씬 땀을 흘린 후 샤워까지 마치고 돌아온다. 주 2회 정도는 골프를 치러 간다. 아버지 역시 3만 보 달성을 위해 매일 2시간씩 동네를 걷는다. 이런 차이가 왜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처음부터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인 남편과 아빠는 운동을 우선순위로 뒀고,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엄마와 나는 다른 모든 일을 한 후 운동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없었다. 엄마와 내가 운동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가 그저 취향 탓일까.
스포츠 기자 이은경은 저서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에서 운동을 못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여자 집단이 공유한 문제점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몸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사회에서 여자아이들은 몸을 움직인다거나 땀을 흘리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여럿이 어울려 운동하는 재미나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 걷기, 요가, 필라테스, 수영 등 혼자 하는 종목을 선택하고 운동은 지루한 것이 된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습관을 가져보지 못한 여자들은 겨루는 재미나 단련으로 찾아오는 뿌듯함을 모른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할지 머쓱하기만 하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로 축구에 뛰어든 여자들에게서 보이는 건 여럿이 운동하는 재미다. 축구장을 가로지르는 그녀들의 얼굴에서는 유희로 인한 생기가 흘러넘친다.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이 곧 운동이 되지 않을까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설거지를 하며 팔을 이렇게 많이 움직이고 집 안에 늘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놓느라 이렇게 분주한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사는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다. 노동과 운동의 차이는 한 가지다. 어디를 움직이는가 인식하면 운동이고 없으면 노동이다. 설거지할 때도 스쿼트하듯 뒤꿈치를 들고 한다거나 걸레질할 때 의식적으로 허리를 꼿꼿이 펴는 식으로 가사 노동에 운동을 결합하는 건 가능하다. 다만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하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의 세포 나이가 7~9년 차이 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여기에서 운동이란 ‘매일 30분 달리기’다. 하루에 30분를 써야만 쇠락해가는 신체 나이를 되돌릴 수 있는 인체라니. 40대가 되어 찾아온 통증은 몸이 보내는 신호인 듯하다. 사실 이번 기사를 시작하며 생존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해내 삶이 얼마나 거뜬해졌는지 쓰고 싶었다. 한 손으로 핸들을 돌리고 콧김으로 탄산수 뚜껑을 따며 아침에 눈이 절로 번쩍 떠지는 변화에 대해. 분명 달리기를 시작해서 몸의 감각이 온전히 깨어나 그 감각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으리라 장담했다. 역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품을 수 있는 환상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천천히 걸어 우유 심부름을 다녀왔고 오후 미팅에는 계단을 이용해서 내려갈 생각이다. 이제야 내 몸과 내 상황이 온전하게 보인다. 2년 뒤 나는 어떤 몸으로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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