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로꼬대로만

2023.02.26

by VOGUE

    로꼬대로만

    로꼬가 죠지와 함께 새 싱글 ‘이대로만’을 선보인다. 그는 여전히 요즘 흐름에 적응하며 힙합과 함께 간다.

    니트 스웨터와 핑크 티셔츠, 디스트로이드 데님 팬츠, 드롭 이어링, 메탈 슈즈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에 <SOME TIME> EP를 다시 들었다. 2020년 로꼬가 전역 후 바로 발표한 앨범이다. 나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 좋았다. ‘SOMETIME’이 아니라 ‘SOME TIME’. 띄어쓰기 하나만으로 의미는 달라지고 확장됐다. 그리고 그 새로워진 의미가 앨범에 담긴 노래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누구에게나 정리해야 할 어떤 시간이 있다.

    안경은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군대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난달에 전역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인터뷰 맥락상 필요한 내용인데 어쩌지. 그러자 로꼬가 말했다. “아직도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군대 얘기를 하는 편이라 괜찮아요.”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네요. 전역한 지 거의 1년인데 계획대로 잘되는 중인가요.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나긴 했는데, 사실 최근에야 적응이 완료됐어요.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뭐가 많이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음악을 최대한 많이 선보이겠다고 계획했어요. 그런데 <고등래퍼>처럼 거절하기엔 너무 재밌을 것 같은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몰렸어요. 덕분에 바쁘게는 살았지만 제 음악 작업은 계획한 만큼은 못한 것 같아요.”

    오버사이즈 후디와 트레이닝 팬츠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달라진 회사에도 적응이 필요했을 것 같았다. 물론 AOMG는 로꼬가 입대하기 전에도 성공적인 회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더 근사해졌다. 오래전 박재범이 아이돌 음악과 힙합을 섞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성공을 거뒀다면 요즘 AOMG는 K-팝과 힙합을 양손에 쥐고 넥스트 레벨로 향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회사 구성원들이 친밀한 가족 같은 느낌에 가까웠어요. 인원도 적었고 소통도 더 자유로웠죠. 그런데 전역 후에는 제가 모르는 직원이 많아졌고 문서로 정리해야 하는 것도 늘었어요. 회사 규모도 당연히 커졌죠.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적응해야 하는 시스템인 거죠. 아, 회사가 제가 꿈꾸던 로망에 더 가까워진 것 같긴 해요. 미국 래퍼들 영상 보면 제이 지(Jay Z) 같은 래퍼들이 회의실에서 많은 직원들과 회의하고 그러잖아요. 회사가 그런 모습에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아요.”

    장갑 달린 퍼 재킷, 그린 포인트 트랙 재킷과 팬츠, 러버 부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계획한 만큼 음악 작업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음원 앱에서 확인해보면 꽤 여러 싱글이 보인다. 사실 이 정도면 꾸준히 노래를 발표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최근 몇 개월간 로꼬가 발표한 싱글을 들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그대로일까. 혹시 미묘하게 달라진 어떤 디테일이 최근 작업한 노래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제가 1989년생이에요. 고등학교 때 이루펀트 CD를 사서 들었어요. 그때는 감정적으로 깊이 있게 와닿는 음악을 선호해서 찾아 들었어요. 그런데 군 복무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부대에서 어린 친구들과 생활했는데 그 친구들은 가사보다 무드를 중요하게 여기더라고요. 그걸 보며 요즘은 음악에서 무드가 굉장히 중요해졌다는 걸 느꼈어요. 예전에는 음악을 만들 때 가사 전달에 치중했어요. 그러다 보니 가사가 너무 정갈하게 수정이 되고 랩 플로우는 듣는 재미가 덜해지는 과정을 늘 겪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전보다 가사를 편하게 써요. 수정을 많이 하지 않아요. 웬만하면 처음에 쓴 그 느낌으로 내버려두려고 해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작업해볼 생각이에요.”

    니트 롱 카디건은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그러고 보니 싱글 외에 피처링에도 꽤 참여한다. 미노이, 유겸, 강다니엘, 던밀스, 토일 등의 최근 노래에서도 로꼬의 랩을 들을 수 있다. 이쯤 되면 계획만큼 음악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로꼬의 말에 의구심이 생긴다. 동시에 피처링 참여 기준도 궁금해졌다. 같은 회사 아티스트면 무조건 참여? 개인적으로 친하면 오케이? 로꼬의 대답은 정석적이었다. 근본적인 이유처럼 들리기도 했다. “피처링을 수락하는 기준이라… 저도 다른 아티스트와 별다를 것은 없어요. 그냥 재미있을 만한 것? 제가 뭔가 재미있게 임할 수 있겠다, 부담이 없겠다 싶으면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로꼬에게 다시 물었다. 로꼬는 새 싱글 ‘이대로만’의 발매를 앞뒀고 이 노래에는 죠지가 참여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 이 노래를 미리 들을 수 있었다. 죠지는 어떤 과정으로 참여하게 된 걸까. “<고등래퍼> 후 본격적으로 제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체적인 내용은 어느 정도 다 구상된 상태고요, 비트도 많이 받고 프로듀서도 많이 만나며 작업하고 있어요. 그중 ‘이대로만’은 뭔가 여름 전에 나와야 한다고 여긴 곡이었어요. 그래서 9월 넘기기 전에 가볍게 내고 싶다고 회사 측에 말했어요. 죠지 씨는…(로꼬는 후배인 죠지에게도 존칭을 썼다.) 그냥 이 노래가 나오고 갑자기 죠지 씨가 생각났어요. 음악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죠지 씨를 떠올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 곡은 죠지 씨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죠.”

    오버사이즈 자카드 봄버 재킷과 터틀넥 톱, 니트 카디건, 팬츠는 프라다(Prada).

    역시 이 시대의 허브는 인스타그램 DM이란 말인가. 죠지와 안면이 있었는지, 죠지가 흔쾌히 참여했는지 물었다. “안면은 조금 있어요. 예전에 미국에서 공연할 때 같이 무대에 선 적 있어 그때 몇 번 인사드렸죠. 그리고 감사하게도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바로 트랙을 보내드렸는데 바로 녹음본이 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먼저 버스(Verse)를 하고 죠지 씨의 버스가 나오는 구성을 취하게 된 이유는요, 일단 구상한 주제를 초반에 제가 표현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또 이 곡이 저의 다른 곡보다 피치가 좀 높은 편인데 제가 위 톤이 좀 약하거든요. 그래서 제 버스가 지루해지기 전에 죠지 씨 버스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흥미로운 설명이다. 나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런 배경에 대해서도 알고 듣는다면 노래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로꼬의 설명을 들으며 즉석에서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로꼬 씨가 멜로디가 가미된 랩을 많이 구사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래퍼잖아요. 반면 죠지는 보컬리스트고요. 죠지 같은 싱어와 한 곡에서 퍼포먼스 하는 데서 오는 부담은 없나요? 더 긴장될 수도 있고요.” “아니요. 오히려 그런 게 적어져요. 부담이 오히려 덜해지죠. 어느 순간부터 저는 무난함이 저의 색깔이 되었다고 봐요. 그래서 실제로도 제 싱글이나 앨범에 참여한 피처링 아티스트가 저보다 돋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피드백도 많고요. 그런데 저는 그게 괜찮거든요. 오히려 피처링 아티스트가 제 곡을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저는 좋아요. 그래서 보컬리스트와 같은 노래에 참여할 때도 제가 더 못 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로꼬는 혹시 대인배인가? 그런데 사실 이런 태도는 아티스트가 갖춰야 할 꽤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꼬의 높은 자존감이 추측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인터넷 힙합 게시판의 논쟁이 떠올랐다. 이 트랙에서 이 래퍼가 가장 잘했다, 아니다 저 래퍼가 제일 잘했다, 이 래퍼가 랩으로 저 래퍼를 죽였다, 같은 이야기 말이다. 로꼬는 그런 논쟁에서 이제 스스로 자유로워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로꼬가 말했다. “아, 그런데 래퍼끼리 할 때는 또 많이 달라요. 래퍼들과 한 곡에서 작업할 때는 확실히 저를 더 부각시키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곡이 더 재미있게 나오는 것 같고요.”

    레오퍼드 패턴의 모헤어 스웨터, 메탈릭 실버 팬츠, 슈즈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안경은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다행이다. 뭔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꼬에게 여전히 흐르는 힙합의 피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까. 로꼬의 힙합 피는 어떤 색일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가 인터뷰를 준비할 때 본 댓글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시간이 들겠지’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이었다. 로꼬에게 물었다. “‘로꼬를 보면 머니 스웩과 여자 자랑이 없어서 좋다’는 댓글을 봤어요. 그런데 이런 건 힙합과 관련한 대중의 반응에 꼭 하나씩 있는 거거든요. 사회 비판하는 힙합 노래 댓글에 꼭 이런 게 달리잖아요. ‘이런 게 진짜 힙합이지! 돈 얘기하고 차 자랑하는 요즘 힙합은 힙합이 아니야!’” 몇 초의 정적이 흐른 뒤 로꼬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머니 스웩도 많이 하고요, 여자 자랑도 많이 했어요. 제가 참여한 어떤 곡에서는 가사 수위가 너무 세다는 피드백도 들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제 노래 중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은 좀 달라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런 댓글을 칭찬이라고 받아들이진 않아요. 오히려 내 음악을 많이 안 들었구나 싶어서 아쉽죠.”

    인터뷰를 끝내고 오는 길에도 나는 <SOME TIME> EP를 들었다. 로꼬의 과거를 지나 어떤 시간은 이 앨범으로 정리됐다. 그리고 로꼬는 다른 시간과 살고 있다. 요즘의 흐름에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여전히 힙합과 함께. ((VK)

      컨드리뷰팅 에디터
      허세련
      포토그래퍼
      박성배
      김봉현(힙합 저널리스트)
      스타일리스트
      박지연, 박상욱
      헤어 & 메이크업
      이은혜
      소품
      한송이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