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체리 블로섬> 전시 후일담
“데미안 허스트의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온갖 색으로 풍덩 뛰어드는 것 같아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아트 프로젝트 & 프로그램 디렉터 이자벨 고드프와가 전시 후일담을 〈보그〉에 전했다.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는 한여름인데도 벚꽃이 만발했다. 조형과 추상 사이를 오가며 완성한 벚꽃 회화 전시 데미안 허스트의 <Cherry Blossoms>이 내년 1월 2일까지 열리기 때문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프랑스에서 처음 여는 전시다. ‘체리 블로섬’ 연작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등장한 위대한 예술 사조에 경의를 표하며 회화에 대한 탐험을 담은 작품이다. 꼬박 3년간 전념해 지난해 11월 107점을 완성했다. 한 폭에서 여섯 폭에 이르는 커다란 사이즈의 벚꽃이 압도적이다. 그중 30점을 전시에 선보이며, 도록에는 모든 작품이 실렸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아트 프로젝트 & 프로그램 디렉터 이자벨 고드프와(Isabelle Gaudefroy)와 이 전시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이자벨은 노마딕 나이트(원제 Soirées Nomades)의 큐레이터로 1999년부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함께했다. 노마딕 나이트는 시각예술뿐 아니라 퍼포먼스, 무용, 음악, 문학까지 포괄하는 예술 프로그램이다. 그녀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다원 예술 전시 ‘로큰롤(Rock’n’Roll 39-59, 2007)’ ‘비트 기타노 다케시(Beat Takeshi Kitano Gosse de Peintre, 2010)’ ‘아메리카 라티나(America Latina, 2013)’ ‘준야 이시가미–건축, 자유를 찾다(Junya Ishigami, Freeing Architecture, 2018)’ ‘나무들(Trees, 2019)’ 등을 기획했고, 이번 ‘체리 블로섬’을 위해 데미안과 강렬한 첫 만남을 가졌다.
데미안 허스트의 ‘체리 블로섬’ 107점 중 30점의 회화를 전시에 선보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데미안 허스트가 큐레이션을 많이 했어요. 허스트에게 “작품을 어떻게 선보이고 싶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단호하게 원하는 바를 말했죠. 전시 구성 자체도 데미안의 작품인 셈이에요. 그는 전시할 작품을 직접 선택했고, 그렇기에 작품을 거는 최상의 방법도 본인이 알았죠. 물론 미술감독과 논의도 했어요. 그렇게 흰 벽에 모든 그림을 규칙적으로 걸고 어떤 글도 쓰지 않기로 결정했죠.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아무런 방해도, 정보도 없이 오롯이 그림에 몰두하고 빠져들길 바랐죠. 이 문장이 그림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데미안의 답이에요. 전시장 지하와 1층의 층고가 다른 점이 고민이긴 했죠. 1층에는 더 거대한 작품도 걸린 반면에 지하에는 똑같은 크기의 작품을 같은 간격으로 걸었죠. 아주 규칙적으로 배치했어요. 일부가 초기작으로, 후기 작품보다 추상적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그가 창작한 ‘체리 블로섬’ 107점의 출발은 베일 페인팅(Veil Painting)이에요. 초기엔 그림이 물감으로 뒤덮인, 말 그대로 베일 같은 그림이었죠. 추상화, 형상화에 대한 의문을 품던 와중에 다소 추상적인 그림은 좀 더 비유적으로 달라졌고 진짜 나무 같아졌어요. 초기 그림은 중력이 없는 느낌이었다면 갈수록 실제로 덩치가 있는 나무처럼 보였어요.
오로지 벚꽃뿐인 대형 캔버스가 늘어선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실이 압도적이에요. 작업실을 처음 방문할 때 어땠나요?
스튜디오에 세 번 방문했어요. 데미안은 한두 번 마주쳤고요. 처음 간 날이 생생해요. 압도적이고 마법 같은 공간에 굉장한 작품이 줄지어 있었죠. 스튜디오는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뒤덮여 있었어요. 페인트가 묻지 않도록 신발과 가운을 착용해야 했죠. 말 그대로 어디에나 페인트가 있었으니까요. 다 마르지도 않아 의자에 앉을 때 옷의 얼룩을 감수해야 했어요. 데미안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있었죠. 누군가는 데미안이 그림 그릴 때 캔버스에 페인트를 던지는 영상을 봤을 거예요. 그는 캔버스에 커다란 페인트 덩어리를 올리죠. 어떤 것은 두께가 3cm나 돼요.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3차원이죠. 그렇게 많은 페인트를 칠하니 온통 페인트로 범벅이 될 수밖에요. 스튜디오에 있으면 컬러 안으로 풍덩 뛰어드는 것 같아요.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면, 2~3년 전쯤에 데미안의 인스타그램에서 이 그림을 우연히 봤어요.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죠. 한 번도 인연이 없던 허스트와 약속을 잡고 만났어요. 데미안은 그의 그림처럼 즉각적이고 매력적이었어요. 스스로도 알더군요. 자연스레 까르띠에 재단에서 여는 전시 이야기가 잡혀갔죠.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에르베 샹데스 관장은 파리 <보그> 인터뷰에서 “전시관의 조명이 공간에 끊이지 않는 움직임을 만들어 데미안의 작품이 더 긴장감 있게 느껴질 것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장 누벨이 설계한 전시 공간과 ‘체리 블로섬’이 어떤 시너지를 내나요?
장 누벨의 건축물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아티스트가 자유로울 수 있는 설계라는 거죠. 특히 투명성을 짚고 싶어요. 이 건축물은 주변의 정원,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 열려 있어요. 당신은 시간에 의지하게 되고, 시간은 전시의 중요한 요소가 되죠.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죠. ‘체리 블로섬’은 데미안의 다른 그림처럼 삶의 주기, 무의미와 죽음의 상징이 담긴 작품이죠. 시간의 흐름이 내재된 그의 작품이 공간의 투명성에 어우러져 그야말로 완벽해지죠. 또한 전시장에서 데미안의 스튜디오를 그려볼 수 있어요. 강변과 가까운 스튜디오에 흘러 들어온 웅장한 빛이 그림 위에 앉죠. 그림이 시야를 가리기에 스튜디오에서 바깥 풍경을 볼 순 없지만, 그 빛을 통해 밖을 보는 듯해요. 그 느낌을 전시장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공간에 들어오는 빛과 함께 그림에 집중하게 되죠.
데미안 허스트와 소통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그는 현대미술의 악동이잖아요.
악동 같은 일화는 없어요. 현대미술의 악동 이미지인 데다 자유롭고 도발적이긴 하지만 일하는 방식은 매우 엄격하고 체계적이거든요. 그가 있는 영국에서 프랑스 파리를 오가면 자가 격리만 두 번을 거쳐야 했기에 방문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시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상의했죠. 다행히 프랑스의 지침이 바뀌어 전시 하루 전날 데미안이 방문했어요. 그가 뭔가 바꾸고 싶어 할까 봐 조명과 디자인 팀이 대기했죠. 밤을 새울 각오였어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죠. 그러고 보면 이번 전시는 그림을 설치하고 거는 일련의 과정이 정말 쉬웠어요. 준비 과정부터 합리적이고 조직적이었으니까요.
데미안 허스트는 “‘체리 블로섬’은 아름다움과 삶,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와 비극적인 감상이 동시에 느껴지죠. 기억에 남는 관객 평이 있나요?
정말 많은 사람이 방문했어요. 전시가 성공한 것은 작품의 유혹적 측면뿐 아니라 이면의 복잡성 덕분이죠. 데미안이 평생 탐구해온 주제인 삶과 죽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어요. 어느 관람객은 이렇게 말했죠. “데미안은 작품을 통해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이를테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같은.” 평단 또한 마찬가지예요. 우선 데미안이 벚꽃을 그렸다니 놀라워했죠. ‘체리 블로섬’은 평단이 그에게 기대하는 최상의 것이었어요.
데미안 허스트는 “1980년대에는 회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써 피하려 해도 나는 평생 회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어요. <보그> 인터뷰에서도 “그리면서 힐링했고, 쇠라나 모네, 보나르의 벚나무 회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죠. 아티스트 개인뿐 아니라 현재 미술계와 관객에게도 회화는 또다시 큰 의미를 얻는 듯합니다. 현시대에 회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20세기 전후에만 해도 회화의 죽음을 선언하면서도 되살려왔습니다. 회화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현재 많은 젊은 화가가 회화를 주된 매개체로 표현하고 있어요. 재현적인 그림도 꽤 강하게 떠오릅니다. 데미안도 평생 그림을 그려왔죠. 혹자는 데미안이 다시 그림에 주목한다지만, 그리기를 멈춘 적이 없어요. 매번 모든 그림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죠. 점묘화처럼 잘 알려진 작품도 있지만, 덜 알려진 시리즈도 많아요.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그림의 장점은 감상자와 그림이 매우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라고 봐요. 이는 예술의 본질입니다. 그림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고 도전을 받는 것. 매우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관람객은 그림에 대해 이해하고 그런 위대한 그림이 가진 복잡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림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죠. 이는 완벽한 경험이자 사람들이 지금 찾는 거예요. 현재 그림이 다시 크게 중요해지는 이유죠.
팬데믹이 앞으로의 전시 기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팬데믹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이번 전시도 1년이나 연기해야 했죠. 다행이기도 했어요. 원래 잡힌 전시 일정에선 데미안이 전체 시리즈를 끝내지 못했거든요. 전시 일정이 밀렸기에 그의 모든 작품을 도록에 담을 수 있었죠. 불확실한 시대이기에 전시 일정 조정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팬데믹이라고 어떤 프로젝트도 취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몇몇 전시는 미뤄졌지만, 결국엔 선보이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팬데믹 시대일지라도 좋은 프로젝트라면 아티스트와 함께 재건해나가리라 믿어요. (VK)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THIBAUT VOI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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