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킴 존스의 매우 사적인 것들

2021.09.01

by VOGUE

    킴 존스의 매우 사적인 것들

    킴 존스의 집, 킴 존스의 공간,  킴 존스의 매우 사적인 것들.

    이 고전적 흉상은 케이트 모스와 니콜라이 폰 비스마르크가 선물한 생일 선물이다.

    유리와 시멘트로 된 웨스트 런던 중심의 차분한 브루탈리즘 양식의 공간보다 대지의 균열과 대기의 빛을 더 가까이 떠올리는 곳이 또 있을까? 세계에서 갖가지 물건과 가구, 도자기, 광물을 집으로 가져오면서 수년 동안 킴 존스(Kim Jones)에게 놀라운 수집 기술을 가르친 지질학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잘 아로새겼다는 생각이 든다. 수년간 던힐과 루이 비통에서 일한 뒤 펜디 여성복과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그는 치장 벽토와 원형 또는 팔각형의 작은 탑 사이에 취향을 접목할 조지아 양식의 건물을 찾고 있었다. 그 후 LA 여행길에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간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그런 호감이 점점 커지다가 지금의 이 저택을 만나면서 확고해졌다. 2006년 지아니 보츠포드 아키텍츠(Gianni Botsford Architects)가 노팅 힐의 뒤쪽 정원에 설계한 800㎡의 이 저택은 RIBA 국제상(RIBA International Award)과 AIA 우수 건축 디자인상(AIA Excellence in Design Prize)을 수상했다.

    거실을 지배하는 벽면을 덮은 거대한 책장. 장 프루베의 프로젝트에 따라 제작한 선반 위에 존스는 희귀한 판본을 모아놓았다. 잡지 <Studio 54>의 인쇄가 잘못된 잡지의 유일한 판본과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 초판본, 앨런 긴즈버그의 <Howl> 프리뷰 사본 등이다.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진행 중인 작업입니다”라고 존스는 말한다.

    “집은 모든 것과 모든 사람으로부터 멀어져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보호받는 공간이죠. 여기서 ‘젠’이라고밖에는 정의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를 느꼈어요.” 작은 벽난로 옆과 위쪽 벽면으로 로저 프라이의 유화에서, 화가이자 직물 디자이너이며 지난 세기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연인이었던 던컨 그랜트의 ‘Mrs Dalloway’에 이르는 작품을 전시해놓은 그림 갤러리를 등진 채 낮은 소파 끝에 앉아 드라마 <더 크라운>에 나올 법한 부드러운 악센트로 존스는 말한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가까이에는 1916년과 1917년 사이에 앙리 마티스가 보잘것없는 신분의 이탈리아 초차라 지방 출신 모델 로레타 아르피노에게 헌정한 초상화 26점 중 한 점이 걸려 있다. 마티스는 그녀에게 로레트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존스가 소장한 그림 속 그녀는 머리를 묶고 어깨에는 녹색 숄을 두른 모습이다. 디자이너 킴 존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던 책과 아버지가 가져오신 카펫을 포함해 수집 본능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제 자신을 예술의 수호자로 여겨요.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하면 미래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예술에 접근하게 할지에 관심이 많지요.”

    손으로 그린 루소 벽지. 드 구르네(De Gournay) 제작. 알렉스 폭스턴의 그림.

    그는 어린 시절 <스타워즈> 주인공의 스티커를 모으면서 시작된 영감을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그 영감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 도자기와 책에 대한 애정으로 세련되게 발전했고, 그 책을 지금 벽을 덮은 기념비적 선반 위에 모아두었다. “대부분 작가의 서명이 들어간 초판본인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과 블룸즈버리 그룹에 관련된 다른 작가의 책도 있어요.” 180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와 런던의 킹스 칼리지를 중심으로 생겨난 예술가 그룹에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면서 그는 말한다. 블룸즈버리 그룹의 예술가는 섹슈얼리티, 평화주의, 사회적 조화에 대한 새로운 경계를 집요하게 탐구한 탐험가로 최근 존스는 메종 펜디를 지휘하는 책임자로 데뷔하면서 경의를 표한 바 있다. 시인 도로시 파커는 번역할 수 없을 만큼 암시적이고 우아한 과장법을 사용해 “그들은 사각형 안에서 살았고 원 안에서 그렸으며 삼각형 안에서 사랑했다”고 했다(파커의 이 유명한 은유는 사각형-광장, 원-블룸즈버리 서클, 삼각형-삼각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주로 어머니의 영향이 컸으며, 화가 바네사 벨과 던컨 그랜트가 시골에서 여름을 지내던 찰스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스트 서식스에서 보낸 유년기에서 비롯된 문학에 대한 열정 말이다. “요즘에는 국가 기념물이 된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의 집 ‘Monk’s House’도 빼놓을 수 없죠. 그들에 대한 애정은 매우 개인적인 유대감 때문입니다.” 게다가 작지만 고백할 수 없는 페티시즘이 있다. 모든 수집가의 손처럼 존스의 손을 흥분시키는 그 섬세한 전율 말이다. “초판본을 수집한다는 것은 제 자신이 저자와 출판사의 의도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거예요. 블룸즈버리 그룹의 경우 대상이 가진 물질적 특성과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또한 아주 오래전에 그 작가들이 자신들의 손에 들었던 바로 그 책을 손에 쥐어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거죠.” 이 보물 중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풍경화가이자 시인 비타 색빌 웨스트에게 헌정한 <올랜도>도 있다. “물론 그 소설은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벽에 걸린 작품, 왼쪽부터. 로저 프라이, 풍경화, 1924년. 1913년, 프라이의 작업실인 오메가 공방의 포스터를 위한 만화. 던컨 그랜트의 어느 양치기 소녀의 초상. 로저 프라이, 랄라 반데르벨데(Lalla Vandervelde), 1917년. 벨기에 대사 부인으로 집 장식을 오메가 공방에 맡겼다. 던컨 그랜트, 미스 홀랜드(Miss Holland), 1924년. 바네사 벨, 스택야드 찰스턴(Stackyard Charleston), 1919년. 던컨 그랜트, 음악가들(The Musicians), 1930년대. 바닥에 놓인 작품, 왼쪽부터. 제이크 채프먼과 다이노스 채프먼 형제, ‘What a Trailer Can do’, 2007년 작. 던컨 그랜트, 수를 놓은 파이어 스크린, 1915~1920년. 바네사 벨, 찰스턴의 데스몬드 매카시(Desmond MacCarthy of Charleston).

    그의 자유분방한 합리주의 속에 이 ‘빛의 집’은 케이트 모스와 그녀의 귀족 혈통의 연인인 사진가 니콜라이 폰 비스마르크(Nikolai von Bismarck)가 선물한 고개 숙인 석고상부터 남아프리카의 거장 힐턴 닐의 고양이 도자기 에 이르기까지, 그의 배우들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준비된 무대다. 새들의 노래가 깃든 열대의 밤을 연상시키는 거실의 벽지 같은, 세심한 디테일이 즉흥적인 여백을 주고, ‘세관원’ 루소의 화폭이 이국적이고 천진난만한 서정성을 풍긴다. 이런 것들을 선택한 배경은 뭘까? 열대의 꿈과 이상적인 여정을 향한 나른함? “특히 이 방은 천장이 끝도 없이 높아요. 수평으로 넓은 것보다 수직으로 더 높죠. 벽의 맨 아래쪽을 따라 수작업으로 그려 넣은 벽지를 둘러 이곳에 따뜻함을 주고 싶었어요. 여행은 어린 시절부터 저와 함께한 열정이며, 계속 삶과 일에 영감을 주고 있어요.” 그의 몸은 필요할 때 떠난다. 그러지 못할 때는 일관적이면서 결코 과함이 없이 절제된 집주인의 절충주의의 중심에, 프랜시스 베이컨의 ‘절규하는 교황 조각’처럼 작품이 발하는 모든 중요한 목소리를 불러 모은다.

    탁자 위에 놓인 남아프리카의 도예가 힐턴 닐의 도자기 작품. 피터 도이그의 그림. 오메가 공방에서 제작한 상자, 프랑수아 자비에 라란의 청동 거북. 탁자 아래 선반에 놓인 힐턴 닐의 도자기 작품.

    “모두 그가 팝아트만 좋아한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죠.” 1962년 11월 엘리노어 워드의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열린 워홀의 첫 번째 뉴욕 개인전 원본 카탈로그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옆에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에바 가드너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한 후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그린 자화상이 있다. 역시 또 하나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침실에서는 데릭 저먼, 라이언 맥긴리, 르네 마그리트가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다.

    디올 남성복 디자이너 알렉스 폭스턴의 유화 두 점. 불과 몇 년 전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곧바로 성공을 거뒀다. 두 번의 개인전에서 작품이 매진됐고, 강렬한 충격을 주는 독창적 색상과 터치에 매료된 수집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출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마라케시의 푸른 은신처에서 이브 생 로랑이 앉아 스케치하던 의자로 꾸며진 정원을 지나게 된다. 파리에서 8년을 보낸 후 존스도 자신의 마조렐(Majorelle)을 찾은 것 같다. “수집하고, 또 차분하게 편집할 수 있는 곳, 집이죠. 그곳은 영원히 저의 집입니다.” (VK)

      RAFFAELE PANIZZA
      사진
      JACKIE NICK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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