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으로 돌아온 지능형 마켓, IRL
지능형 마켓(Intelligent Retail Lab), IRL이 패션 발원지 런던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그곳에서 발견한 코로나 이후 세상의 새로운 모습.
굴을 먹으며 아연과 단백질이 흡수돼 기분이 좋아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휴대전화로 셀프 계산을 완료했고, 이제 내 것이 된 맥시 드레스를 가져갈 채비를 마쳤다. 그리고 런던의 브라운스 브룩 스트리트(Browns Brook Street)에 새로 오픈한 코트야드 레스토랑 네이티브(Native)의 긴 의자에 행복감에 휩싸인 채 편히 앉아 있었다. 곧 그 드레스를 입고 베니스 주데카(Giudecca)섬을 거닐거나 큰 모임에서 주최하는 피크닉 파티에 참석할 모습을 상상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매장에서 실제로 하는 쇼핑은 집 앞으로 배송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브라운스 브룩 스트리트에 있는 이 타운 하우스의 4개 층은 색다른 우아함과 매력으로 유혹한다. 그 디모레스튜디오(Dimorestudio) 내부는 꽃무늬 카펫과 메탈 큐브 선반, 금속 재질 테두리에 자리한 오리지널 플랑드르 스타일 프레스코 벽화로 한껏 멋을 뽐낸다. 꼭대기 층에 있는 프라이빗 스타일링 공간은 쇼핑과 매력 발산을 동시에 원하는 고객을 위한 헤어 & 뷰티 스테이션을 완비했다. 이전 소유주 낸시 랭카스터(Nancy Lancaster)가 1957년 계획한 것과 똑같은 인디언 옐로 컬러의 옐로 룸은 홀스턴(Halston)의 뉴욕 스튜디오처럼 거울을 설치해 눈길을 끈다.
다기능 공간, 몰입 체험, AR 이미지, 식당, 매장 가이드, 개인 스타일 어드바이저와 스마트 계산대(더 이상 줄을 서거나 ‘카드 승인 거절’로 인한 창피함은 없다)가 포스트 팬데믹 리테일 매장 풍경을 다채로운 문화가 접목된 스마트 테크 서비스의 장으로 바꿔놓고 있다. 셀프리지스 백화점에서는 플로리스트 수업부터 스케이트 레슨까지 모든 것을 제공하는 체험 컨시어지(Experience Concierge)를 만나볼 수 있다. 지난여름에는 웨딩 전용 공간을 4층에 마련했다. 한편 버버리는 VR 체험이 가능한 올림피아 백의 글로벌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또 본드 스트리트에는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슈퍼스토어가 들어선다. 안야 힌드마치는 팝업 헤어 살롱(더 빌리지 홀에 자리하며 이곳에서 여러 컨셉의 이벤트를 진행한다)과 ‘Anya Café’를 갖춘 5층짜리 리테일 컨셉 매장 ‘The Village’를 벨그라비아(Belgravia)에 오픈했다. 파페치의 브라운스 매장은 오픈하기 전까지 수년의 준비 기간을 거치며 물리적인 것과 디지털 방식을 통합해야 했다.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고객을 직접 뵙고 응대하고 싶어요.” 플래그십 숍 매니저 가이 갓프레이(Guy Godfrey)가 말했다. “방문객 중에는 가이드 투어를 받고 싶어 하는 분도 있고, 온라인 위시 리스트를 작성해 오자마자 곧바로 입어보고 싶어 하는 분도 있죠.”
럭셔리 리테일 숍의 경직되고 위협적인 측면을 기꺼이 돕고자 하는 유쾌한 스태프들이 확실히 바꿔놓고 있다. 브랜드와 매장은 팬데믹 시대 이후 소비자의 욕구 충족을 위해 그들의 접근 방식을 가다듬고 변화해야 했던 것이다. 2021년 4월 발표된 아마존 매출액 전년 대비 44% 급증에서 확인된 e커머스의 활황과 더불어 비필수품 매출의 급격한 하락, 제품 소비 환경의 고려 등으로 인해 매장이 모든 것을 바꿔가고 있다. 게다가 1년간 집에서 온라인으로 쇼핑하다 보니, 우리는 실제 매장을 훑어보는 데서 즐거움을 재발견하고 있다. “4월 12일 영국의 규제 완화 이후 제가 맨 먼저 찾은 매장이 셀프리지스였죠. 열여섯 살 때부터 그곳을 드나들었고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쇼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하코 아트(Hako Art)의 아티스트 섭외 담당자 주아니타 박실(Juanita Boxill)이 말했다. 그녀는 QR 코드로 활성화되는 JW 앤더슨의 스크린을 날아다니는 가상 벌과 활 짝 핀 꽃을 보며 즐거움을 느꼈지만, 사카이 스웨터 재킷의 모습을 보면서도 기쁨을 얻었다.
특별한 리테일 숍의 추구는 2020년 일시적 폐쇄 조치로 가속화되었다. “매장은 우리 커뮤니티와 관계를 맺는 플랫폼이 됩니다. 실제 매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든 가상 스타일링 세션과 같은 디지털 채널을 통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가니(Ganni)의 CEO 니콜라이 레프스트루프(Nicolaj Reffstrup)가 말했다. “매장은 당신의 DNA, 당신의 제품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돕는 여러 활동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센터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정서적 연계를 재활성화할 필요성도 있다. “여성은 쇼핑의 사교적 측면을 갈망해왔습니다. 제품을 만지고, 매장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쇼핑하는 날 수반되는 런치, 커피, 친구들과 자기 관리 등의 전체 과정을 통해서 말이죠.” 저스틴 밀즈(Justine Mills)가 말했다. 그녀는 9월 크리켓-패션(cricket-fashion.com)을 론칭하는 크리켓 인 리버풀(Cricket in Liverpool)의 관리 및 구매 이사로 일한다.
매치스패션은 5 카를로스 플레이스(5 Carlos Place) 타운 하우스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존재감을 이어간다. 이 기업의 거래 중 95%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굳이 매장을 설치한 이유는 뭘까? “물리적 터치 포인트를 갖는 것이 매우 유용하죠. 우리는 대량으로 판매하는 업체가 아니에요. 그래서 소비자와 이야기하려고 시도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브랜드 담당 최고 이사 제스 크리스티(Jess Christie)가 말했다. 그녀는 최근에 선호도와 사고방식 등에 관한 소비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것을 통해 나름의 세계관을 갖는 것의 중요성이 밝혀졌다. “물리적 리테일 숍은 어떠한 목적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특별함을 느끼게 만들고 발견의 기쁨을 제공해야 해요. 온라인은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집으로 배달시키는 것에 권태감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매력적이고 지식도 풍부하며 강요하지 않는 매장 직원과 함께 실제 공간을 거니는 것이 지닌 놀라움이 빠져 있는 거죠.” 4월 코로나에 따른 규제가 완화되자 어느 프라이빗 고객의 남편이 스코츠(Scott’s)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이 타운 하우스 매장에서 영업시간 외에 쇼핑 이벤트를 마련했다. 늦여름쯤 코너 아이브스(Conner Ives)를 비롯한 혁신적인 브랜드의 입점, 가을에는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과의 협업 이벤트도 있다.
샬롯 틸버리, 데이즈드 미디어와 더불어 지점을 소호 하우스에 새롭게 오픈하는 새 소셜/워크 허브 ‘180 The Strand’는 혁신적인 리테일 숍을 도시 직장인에 주선한다. 동굴 같은 모양의 이 브루탈리즘(Brutalism) 빌딩에는 사무실과 전시 공간이 있다. 현재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와 협업한 료지 이케다(Ryoji Ikeda)의 몰입적인 조명과 사운드 디지털 작품을 전시 중이다. 또 사무엘 로스(Samuel Ross)와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Grace Wales Bonner) 등의 디자이너 스튜디오, 알렉스 이글(Alex Eagle)의 ‘The Store X’도 입점했다.
오래된 비닐 옷을 뒤적이거나 웨일스 보너와 아디다스의 협업으로 탄생한 슈즈를 고르는 것이 이곳에서 티타임에 맛볼 수 있는 재밋거리가 될 수 있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야말로 스토어가 지닌 더 근사한 점이죠. 런던의 멀티브랜드 매장은 잘되고 있어요. ‘사람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죠.” 알렉스 이글이 말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정형화되지 않은 접근 방법은 빈티지 가구, 레코드판, 서적과 더불어 웨스트우드, 요지, 라프 시몬스의 캘빈 클라인 컬렉션, 빈티지 티셔츠,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제품과 컬트 제품 등 아카이브 패션에 주목한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시그니처 인테리어 공간에 잘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서적과 디자인을 꼼꼼히 살피죠. 기분을 전환시켜주니까요. 그런 학습의 측면이 이 전체 건물에 즐거움을 선사할 수도 있어요.”
매장을 둘러보면 제품이 빽빽하지 않게 진열된 것이 눈에 띌 수도 있다. 규모가 작아진 컬렉션과 과잉 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디지털 리테일 숍과 IRL 리테일 숍의 진열대가 여유로워졌다. 즉 샘플링부터 대규모 컬렉션과 매장 디스플레이, 가득 찬 옷장에 이르기까지 각 디자인 단계부터 과잉 상태가 썩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과 트레이닝복을 입고 지내는 기간이 연장된 후 제품 선택 방법은 더 다양해졌지만 패션에 대한 욕구가 재설정되고 있다.
“대체로 더 적게 구매하고 있어요.” 커뮤니케이션 어드바이저 아니타 템플러(Anita Templer)가 말했다. “그런 것이 독특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팬데믹 이전에도 많이 사는 것이 인생의 중요 포인트는 아니었어요. 솔직히 옷장에 굉장한 옷이 꽤 들어 있어요. 그것을 입으며 즐기고 싶어요. 더 많은 옷을 쟁여 넣고 싶진 않아요. 여러 면에서 그런 것이 옳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대신 템플러는 30년 된 리바이스와 사카이,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가 지닌 매력을 재발견하는 중이다. 지난해에 그녀는 르시(Re-SEE)에서 빈티지 이브 생 로랑를 찾아냈고, 플리츠 칼라의 폴카 도트 셀린느 드레스를 구매하고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뭔가를 산다면, 여생에 입을 만한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동의 자유 또한 스타일 선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운동복 좀 그만 입으라며 참견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다니엘 리가 디자인한 보테가 베네타 부츠를 신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먹히지 않더군요.” 쇼핑몰이 다시 북적이는 홍콩에 위치한 에이전시인 반크 크리에이티브(Banck Creative) 창립자 킴 뷔 콜라(Kim Bui Kollar)가 웃으면서 말했다. “다시 ‘잘 차려입고’ 있어요. 그리고 전에는 ‘룩’에 대한 신념으로 고통받았지만, 이제 편안함이라는 요소가 일상에 파고들었죠.” 그녀가 말하면서 홍콩 필하모닉 같은 문화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서점 큐브릭(Kubrick)의 제품 디스플레이가 돋보이는 조이스 같은 매장에서 뭔가를 발견하는 기분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여행을 많이 못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친구, 쇼핑, 문화적 대화에 참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이 새로운 풍경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관계, 문화와 환대 그리고 패션의 관계, 그 관계의 중심에 소비자가 자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굴을 먹는 것이 내게는 전제 조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집 밖으로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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