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수주의 지난여름 일기

2021.09.10

by VOGUE

    수주의 지난여름 일기

    뉴욕에서 프랑스 남부로 날아가, 슈퍼모델에서 슈퍼스타로 맹활약한 수주의 지난여름 일기.

    7월 2주간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프랑스에 도착한 후 둘째 날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이벤트, 쇼, 인터뷰, 촬영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사실 나는 두 달 전 로레알 파리 홍보 모델로서 칸 영화제에 초대받았다. 그리고 6월 초 칸 영화제에 참석하기 전에는 파리에서 샤넬 꾸뛰르 쇼에 서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로레알과 샤넬은 나와 함께 수년간 일해온 중요한 하우스이자 여성, 자신감, 열정이 중심을 이루는 브랜드다. 특히 칸 영화제는 영화계 유명 인사뿐 아니라 슈퍼모델은 물론 광고 모델에게도 큰 행사다. 그 끝내주는 2주간의 일기를 <보그>에 공개한다.

    7월 2~6일, 뉴욕에서 출발, 파리로 이동
    내가 마지막으로 섰던 샤넬 패션쇼는 버지니 비아르가 2019년에 발표한 2020 크루즈 쇼로, 그녀의 첫 컬렉션이었다. 그랑 팔레가 보수공사에 들어가기 전이었고, 코로나19도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2일 밤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서 파리로 떠났다. 샤넬 패션쇼에 서기 위해서다. 이토록 오랜만에 샤넬 쇼에 서는 이유는? 어느 시점에 이르자 홍보대사로서 프런트 로에서 쇼를 관람하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다. 새벽 5시 호출이 이젠 만만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35차례가 넘게 샤넬 패션쇼 모델로 런웨이를 걸었으니, 좀 더 각별한 런웨이에만 서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쇼가 바로 그런 런웨이였다!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에 런웨이를 마련한 꾸뛰르 쇼는 1920년대에 찍힌 코코 샤넬의 독특한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진에서 샤넬은 마스크를 쓴 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조각상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비아르는 이 사진을 보자마자 인상파 화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의 모습, 특히 여성 화가이자 뮤즈였던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관객과 다시 만나는 패션쇼, ‘Musée de la Mode’ 혹은 가브리엘 샤넬의 작품이 영구 전시될 박물관 팔레 갈리에라에서 영감과 뮤즈에 대해 사색하며 첫 패션쇼를 연 것이다. 소수의 관객을 초대하고 컬렉션 규모를 줄이는 등 예전에 비하면 다소 축소된 쇼였지만 ‘더 작은 규모’가 단점은 아니다. 이번 컬렉션은 더없이 로맨틱했으며,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특히 마음에 쏙 든 드레스는 비즈로 장식한 보디스 톱, 인상주의 그림의 특징을 담은 오간자 장미 꽃잎과 천수국, 층층이 붙여놓은 알록달록 파스텔 색조의 부드러운 깃털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레이스로 가장자리를 두른 반투명 시폰 슬립 드레스도 있었다. 팬츠와 짝을 이루는 이 드레스에는 빅토리안 스타일 수영복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에 진정한 코코 샤넬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깃털 달린 화이트 실크 사이드 패널이 부착된 근사한 블랙 드레스는 넓은 챙 아래 동백꽃을 장식한 모자와 조화를 이뤘다. 모두 길고 긴 잃어버린 시대의 여성을 떠올리는 듯했지만, 흠잡을 데 없는 장인 정신으로 샤넬의 특징을 그대로 재해석하고 있었다.

    내 룩이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털이 박힌 단추 한 쌍으로 여민 화이트 수트로, 곡선의 어깨 라인이 실루엣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밤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한 후 진행한 첫 피팅에서 꾸뛰리에 마담 카롤린(Madame Caroline, 마스터 꾸뛰리에는 본인의 스튜디오가 있다. 여성이 대부분이며 각 룩을 책임진다)이 옷을 입혀보고는 재킷 양옆을 줄여 살갗이 덜 드러나 보이게 했다. 그 외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다른 피팅 작업은 필요 없었다. 그 순간 틸다 스윈튼을 위해 버지니가 만든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늘 그렇듯 두 번째 피팅은 헤어와 메이크업 테스트를 마친 후 이뤄졌다. 내가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다. 거꾸로 땋은 모히칸 스타일의 프렌치 브레이드 헤어에 꽂은 긴 블랙 리본이 내가 워킹하자 바람에 휙 날렸다. 다음 일정으로는 VIP 층에서 샤넬 홍보대사로서 참석해야 할 이벤트와 칸 영화제 레드 카펫에서 입을 의상 피팅 작업. 일주일 동안 행사와 디너가 많기에 피팅도 길었다. 열다섯 벌 이상 입어본 뒤 2020 S/S ‘Aubazine’ 컬렉션에서 꾸뛰르 디너 파티용 의상을 골랐다. 칸 영화제 디너 파티 의상으로는 2020 S/S 컬렉션의 하얀색 작은 꽃을 더하고 하이 슬릿에 한쪽 어깨가 긴 드레스, 칸 영화제 레드 카펫 의상으로 2021 공방 컬렉션의 블랙 반투명 레이스 보디수트 넥 드레스 콤보를 선택했다.

    7월 7~10일, 칸 영화제
    파리 일정을 마치고, 이제 칸! 아침 7시에 샤를 드골 공항으로 출발했다(전날 밤 9시에 시작된 샤넬 꾸뛰르 쇼의 디너 파티에 참석해 자정이 넘어서 귀가했지만!). 칸에 도착하자 내 이름과 거대한 로레알 로고가 박힌 플래카드를 든 가이드가 나를 향해 환하게 인사한 뒤 경호원을 소개했다. 로레알 홍보 모델들은 칸에 지내는 동안 경호원들과 동행한다.

    크루아제트(Croisette) 거리에 위치한 호텔 마르티네즈(Martinez)에 체크인하고 점심 식사를 했다. 그다음부터는? 일하고 일하고 또 일! 빼곡한 일정과 수시로 변경되는 일정 등을 잘 견디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인터뷰에 응하고, 사람들과 교제한다. 다시 말해 늘 ‘일 모드’. 나는 이번까지 다섯 번 칸 영화제에 참석했다. 그래서 나만의 어려움이 뭔지 알게 됐다. 뭐든 많이 겪을수록 대하기 수월해지는 법이니까.

    7일 밤. 나와 함께 일하는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디너 파티 두 곳에 참석했다. 먼저 일몰 시간에 칸의 해변과 요트가 보이는 곳에서 샤넬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 뒤, 로레알 파리의 회장 델핀 비기에 호바세(Delphine Viguier-Hovasse)가 주최하는 디너 파티로 달려갔다(실제로는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지만!). 델핀 회장은 2019년에 임명된 인물이다. 그녀는 대기업을 이끄는 ‘여성’이다. 그래서 함께 일하게 되어 더 기뻤다. 게다가 주위 사람을 잘 챙겨서 홍보 모델들과도 연락하곤 한다. 그녀는 우리를 공인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 신뢰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개인적인 관계의 형성은 그 브랜드와 더 깊고 진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8일은 오전 8시부터 스케줄이 시작됐다. 레드 카펫 룩과 관련해 헤어 &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스테판 랑시앵(Stephane Lancien), 발 갈란드(Val Garland)와 의논했다. 헤어는 간결하게 풀어 내리고 메이크업에 대해서는 몇몇 아이디어를 놓고 고민하다 스모키 아이와 드레스를 보완하는 클래식으로 결정했다. 사실 모델들은 레드 카펫 세리머니를 위해 대부분 스타일리스트와 컨설턴트를 고용한다. 하지만 나는 직접 스타일링 방향을 정하는데, 칸 레드 카펫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을 즐긴다. 하지만 일에 얽매인 상황에서 또 다른 임무를 감당하는 것이 살짝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다.

    공식 화보와 튜토리얼 영상을 촬영하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점심 식사를 하는 사이, 샤넬 재봉사가 블랙 드레스 수선을 위해 호텔 방에 들렀다. 드레스를 내 몸에 밀착시켜 핀으로 위치를 잡은 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내가 레드 카펫을 밟기 전 3시간 동안 수선 작업을 끝내야 했으니까. 샤넬 하우스는 다큐멘터리 기록을 위해 은밀히 카메라 팀도 출동시켰고, 드레스에 어울릴 파인 주얼리 여러 점을 고를 수 있도록 보내주었다. 정말이지 끝이 없었다.

    오후 6시. 드디어 나는 레드 카펫에 설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여기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태양이 작열하는 칸에서 나를 응원하고 나에게 힘을 보태는 스태프들에 둘러싸여 있다니,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지! 나는 진심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수줍음 없이 팬들과 셀카를 찍고 사인하며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이전엔 꽤 부끄러웠다). 레드 카펫에서 경험하는 가장 ‘멋진’ 일은 수백 명이 나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극장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내 이름을 외치는 순간이다. 그들은 자신의 렌즈를 쳐다보도록 “수주! 수주!”를 외쳤다. 내 눈앞에 놓인 길과 걸음에 초점을 맞추는 런웨이와는 전혀 다른 감흥이었다.

    대망의 영화제 첫 상영작은 맷 데이먼과 카미유 코탱(Camille Cotin)이 주연을 맡은 <Stillwater>였다. 하지만 나는 너무 지쳐 거기 머물지 못했다. 그래서 극장 뒤편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때로 지친 셀러브리티들은 레드 카펫 계단을 다 오른 뒤 나처럼 몰래 다른 곳으로 향하기도 한다. 물론 2019년 칸 영화제 개막식 때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를 끝까지 관람했고, 몇 년 전에는 <더 그레이트 뷰티>를 보기 위해 극장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누적된 피로가 영화 감상에 대한 욕망을 이기고 말았다.

    9일. 드디어 내 스케줄에 살짝 여유가 생겼다. 캠페인 몇 편만 촬영하면 되는 일정이니까. 매번 헤어와 메이크업을 바꿔가면서 로레알의 슬로건 ‘I’m Worth It’과 그것이 내게 의미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녹화하는 일이다. ‘I’m Worth It’의 의미는 특별하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행복과 존재를 스스로 책임져 자신에게 나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다. 그것은 변화를 만들어낼 힘이 내게 있음을 이해한다는 자기 확증의 표현이다. 촬영을 잘 마친 후 ‘뒤풀이’ 겸 로레알 팀과 디너 파티를 가졌다. 칸의 마지막 밤을 위해서 준비한 파격적인 뮈글러 드레스를 입을 절호의 찬스! 이번에 스케줄이 빡빡해서 같은 시기에 진행해야 했던 뮈글러 컬렉션 영상 촬영을 놓쳐 아쉬웠는데, 뮈글러를 맡고 있는 디자이너 케이시 캐드월라더(Casey Cadwallader)가 보내준 흰색 드레스를 드디어 입을 수 있었다.

    10일엔 일찍 일어나 수영하러 갔다. 칸에서의 바다 수영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에는 이 도시에 올 때마다 호텔 바로 앞에 해변이 있어도 이런 휴식을 누릴 수 없이 분주했다. 게다가 칸 영화제가 열리는 5월의 기후는 바다 수영을 하기에 그다지 유혹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상쾌했고 모든 것이 재충전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힘이 내게 있음을 이해한다는 자기 확증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VK)

      박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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