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사카이를 키워낸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와의 대화

2021.09.15

by VOGUE

    사카이를 키워낸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와의 대화

    론칭 이후 20여 년. 사카이를 부동의 인기 브랜드로 키워낸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Abe Chitose). 전 세계 패션계의 여러 셀러브리티와 친분을 맺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미 성공을 거머쥔 듯 보이는 그녀는 지금 뭘 생각할까. 바야흐로 장 폴 고티에와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발표하기에 이른 그녀를 일본 <보그> 편집장이 도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1월 런웨이에서 은퇴한 장 폴 고티에는 매 시즌 게스트 크리에이터를 초대해 오뜨 꾸뛰르를 발표한다는 새 프로젝트를 내놓았습니다. 첫 번째로 사카이를 선택했어요. 고티에 이름으로 발표하는 이상 브랜드의 디자인 코드에 따라야 하는 규칙 같은 건 없었나요? 아무 전제 없이 “치토세가 좋을 대로 하면 돼”라는 말을 들었어요.

    작업 과정에 디자인을 보내는 일도 없었나요? 고티에는 옷 제작에 대해 전혀 말이 없었어요. 괜히 눈치를 보며 일하다 보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게 되잖아요. 결과적으로는 좋았어요. 완성된 컬렉션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죠.

    고티에 스스로가 분명한 개성을 지녔기에 다른 디자이너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다만 제 이름이 아니라 그의 아틀리에에서 제작하고 있기에 타투를 입힌 듯한 ‘타투스킨’이라든지, 1994년 F/W 런웨이에 등장한 비요크의 모습처럼 20대 무렵에 본 아이코닉한 장면을 떠올렸어요.

    1980~1990년대에 장 폴 고티에는 매회 새로운 걸 내놓았죠. 그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어서 파리에서도 서로 그의 패션쇼 티켓을 손에 넣으려는 경쟁이 치열했어요. 운이 좋아 볼 수 있을 때는 다른 세상에 초대받은 것 같은 자극에 휩싸여 온몸이 흥분 상태가 될 지경이었죠. 아틀리에에 재단사와 바느질 장인, 자수 담당자 등 수많은 팀이 갖춰져 기본적으로 그 안에서 제작했어요. 사카이의 기성복은 적재적소에서 제작되기에 ‘오뜨 꾸
    뛰르는 프랑스 장인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칙에 대해 처음에는 다소 의문을 가졌지만 실제로 해보니 정말 대단하더군요.

    프랑스 문화인 장인의 기술을 계속 훌륭하게 이어간다는 의미 역시 굉장하죠. 그리고 오뜨 꾸뛰르는 프레타 포르테와 달리,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듭니다. 사카이는 퀄리티가 높은 상품을 내놓고 가능한 한 소화율을 높이고 싶은데, 그 점에서 오뜨 꾸뛰르는 궁극을 의미해요. 저렴한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팔고 남으면 할 수 없지, 라는 식이 아니에요. 옷을 굉장히 좋아해서 재고 상품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오뜨 꾸뛰르는 프레타 포르테에 비하면 가격이 상당히 높지만 그런 반면에 낭비가 없지요. 맞아요.

    오랜만에 열리는 오프라인 형태의 꾸뛰르 쇼입니다. 패션쇼는 예전부터 정해진 형식이 있지만 디자이너가 독창성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형태라는 걸 코로나를 계기로 새삼 느꼈어요. 이 프로젝트는 런웨이 쇼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몇 번이나 발표를 미루긴 했지만 역시 컬렉션은 디지털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봐야 해요.

    현장 인원은 한정돼 있지만 그 자리에서 피어나는 에너지는 전혀 다르죠. 뭐든 디지털로 간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건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꾸뛰르처럼.

    연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고민했나요? 고티에는 게스트 퍼포머를 초대해 축제처럼 꾸미는 유형이지만 사카이답게 도도하고 쿨한 여성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래서 언제나 사카이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칼 템플러 팀과 함께하고 있어요.

    축제나 해프닝처럼 보이는 방법은 고티에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고티에는 정말 유쾌한 인물이에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일단 만나자고 해서 아틀리에에 가보면 부엌에 달콤한 간식을 준비해놓고 “다 함께 들지!”라는 말로 시작해요. 협업 제안이 올 때 보통은 브랜드에 정말 도움이 될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니 어지간하지 않으면 즉답하는 경우는 없는데 이번에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할게요”라고 바로 답했어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니! 좋군요, 고티에와 부엌에서 간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것도. A.P.C. 디자이너 장 투이투와 그의 가족도 음식을 만들어줘요. 모두들 정말 친밀하게 대해주죠.

    단지 비즈니스로서 딱딱하게 옷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친구 같은 느낌에서 창의성이 확장되는 건 이상적인 형태 같아요. 정말 운이 좋은 거죠. 11월에 발표하는 디올 남성복 협업 역시 킴 존스가 루이 비통에서 일할 때부터 뭔가 해보자고 계속 이야기했던 결과입니다. 그것을 이제야 이루게 된 거죠. 모두 ‘패밀리’ 베이스입니다.

    킴 존스와는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건가요? 물론 온라인 미팅도 했지만 서로 실물 디자인을 보고 싶으니 샘플을 몇 번 보냈어요(웃음). 디올 로고의 ‘I’에 사카이 로고를 넣은 브랜드 네임은 획기적이죠.

    ‘VOGUE’라는 로고도 브랜드의 생명 같은 존재인데, 거기에 또 하나의 브랜드 이름을 더해 디자인하는 일은 굉장히 허들이 높겠군요. 킴의 성격을 잘 알기에 즐겁게 추진하긴 했지만, 전통이 있고 동경하던 브랜드였기에 꽤 멋진 경험이었죠.

    나일론 소재 새들백은 브랜드 로고를 보지 않아도 사카이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 좋아요. 꼭 여성들도 들어봤으면 해요.

    당신 마음엔 ‘사카이 패밀리’가 전 세계 여기저기에 있다는 이미지가 있겠군요. ‘패밀리’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뻐요. 그 과정에서 스타일리스트 칼 템플러와 인연도 맺게 되었죠.

    어떻게 알게 됐나요? 그의 파트너가 사카이를 좋아했어요. 15년 전쯤, 아직 가쿠게이대 상점가 안쪽의 사무실에 있었던 시절부터 종종 옷을 협찬해달라는 메일이 오곤 했죠. <보그> 패션 저널리스트 사라 무어와는 그 전부터 알고 지냈죠.

    사카이는 사라의 안테나에 일찍 포착됐나 봐요. 인터뷰도 했죠? 몇 차례 만났고, 사라가 집에 놀러 온 적도 있어요. 같이 다코야키를 만들었죠(웃음).

    지금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건 “치토세는 점점 세계에 알려지고 있으니 빨리 사카이 스타일을 널리 보여줘야 해. 안 그러면 다른 곳에 빼앗기고 말걸”이라는 사라의 말이에요. 사카이를 막 시작할 무렵부터 사카이를 찾아주신 분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사카이 스타일을 빨리 세상에 알리는 게 좋다”고 말이죠.

    패션계는 그 타이밍을 의식적으로 놓쳐선 안 된다고 절실히 느껴요. 당시에는 좋은 옷을 만들면 홍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납득했어요. 그래서 패션쇼를 하게 됐죠.

    2011년부터 파리 컬렉션에서 발표를 시작해 비로소 ‘사카이 스타일’을 정착시켰죠. 지금은 곧바로 사카이 감각, 사카이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자신의 스타일을 전략적으로 세워나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여기나요? 역시 조금 예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모두가 좋아하는 사카이’와 ‘의외성이 있는 사카이’의 밸런스를 맞추고 싶다고 늘 고민하죠. ‘모두가 좋아하는 사카이’만 해서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아요. 페이스가 빨라지거나 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지만, 결국에는 전진하고 싶죠. 비즈니스에는 매출이 필요해요. 그래서 매출을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아요. 매 시즌 새로운 걸 발표하고 있어서 조금씩 좋은 의미로 배신을 이어나가지 않으면 소비되고 말죠.

    그 밸런스는 당신 감각만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배반한다’는 건 2021년 F/W 컬렉션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가늘고 긴 실루엣은 지금 주류인 오버사이즈나 편안한 옷에 대해 사카이가 생각하는 것의 한 발자국 앞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과 같은 걸까요? 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처음 발표한 프리 컬렉션은 원점으로 돌아가 편안한 옷을 만들었어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조금 치장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라스트 룩의 반짝반짝 빛나는 드레스는 사실은 편하게 입을 수 있어요. ‘드레스업=답답함’이 아니라 웨어러블하게 하고 싶다는 것도 예상을 뒤엎은 부분이랄까요?

    드레스업이라는 주제를 언제 꺼내는가 하는 것도 포인트군요. 모두의 기분과 좀 동떨어져 지나치다 보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역시 패션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거나 ‘누구도 좋아 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라고 하는 건 틀린 것 같아요. 약간 “어?” 하는 부분이 있지만 “좋군” 정도의 ‘약간의 배반’이 되도록 마음을 쓰고 있어요. 지금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 착륙한 헬리콥터에서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는 내용의 비디오를 만드는 것도 포함해 ‘역시 공격적’이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매출은 올랐어요. 특히 미국 바이어는 페미닌하고 발랄한 무드에 공감했죠. 이런 시도가 매출로 이어지는 모습이 제가 원하던 일이죠.

    여러 개성 있는 디자이너가 활약하는 패션계에서 사카이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을 더 강하게 어필하고 싶을 때 중점적으로 하는 일이 있나요? 원단, 패턴, 봉제로 이어지는 제작 면에서는 질적으로 굉장히 향상됐다고 보기
    때문에 팀으로서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사카이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아직 꼭 해야 할 게 있는 것 같아요.

    브랜드 론칭 후 22년째인데, 세상도 패션계도 최근 큰 변화를 겪고 있어요. 지금은 정보와 이미지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소비되어 사라지지 않고 오래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큰 과제
    라고 봅니다.

    소비되지 않는 방식이라면 전부를 보여주지 않고 암막 너머 부분을 남겨두면서도 독자적 커뮤니케이션을 창조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지금, 특히 남성복 세계에서는 디자이너 자신이 나서서 젊은 세대와 공감하죠.
    그 흐름을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러면 우린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함께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브랜드나 디자이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보테가 베네타는 어느 날 갑자기 SNS를 그만두고 독자적 미디어를 내놓았어요.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는 거죠. ‘사카이의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되고 있다는 느낌은 듭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정말이지 아직 멀었다 싶어요.

    아직 긴 여정의 한가운데라는 느낌이군요(웃음). 말하자면 좀 더 배워야지, 좀 더 힘내야지, 하는 생각일까요? 나는 사카이를 더 강하게 만들고 싶어요.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끝, 이런 게 아니라 새로운 광경을 볼 때마다 이런 것도 있다니, 전혀 몰랐어, 아직 멀었구나 하고 느끼는 거죠.

    지금까지 당신이 몇 차례나 “다른 광경을 바라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군요. 10년 전, 20년 전에 상상한 장면을 지금 보고 있나요? 먼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나아지길 바라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어요. 매일 아직 이루지 못한 게 아주 많다고 반성하면서요. ‘왜 이렇게 됐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지만 패션 시스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느꼈을 때 좀 더 강해지고 싶다고 원하게 됩니다.

    끝이 없겠군요. 종종 젊은 세대에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죄송합니다. 아직 필사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라 조언을 드리기가 힘드네요”라고 답하고 있어요(웃음).

    코로나를 계기로 e커머스 매출이 굉장히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6월 온라인 스토어를 시작했어요. 일부 한정 아이템은 해외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했고요. 다만 온라인 페이지에 단순히 상품을 나열한 게 아니라 ‘sacai THE people’이란 제목으로 옷을 입은 사카이 패밀리의 모습을 업로드했어요. 콘텐츠로서 재미를 느꼈으면 하는 의도 역시 갖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것도 사카이라는 브랜드를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군요. 코로나를 계기로 임시 휴업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려움이 생겼을 때 팀은 더 단결할 수도 있거든요.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이거 어떻게 됐어?” “저건 어떻게 됐어?” 하고 확인만 했죠. 지금은 스태프들이 노련하다 보니 묻기도 전에 이미 하고 있어요. 그들도 신뢰받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알아서 행동하는 팀이 되고 있어요. 굉장히 긍정적인 분위기죠.

    옷을 만들 때 재단사들과 대화하면서 디자인을 완성해간다고 들었어요. 종이 패턴대로 만들면 그걸로 오케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예를 들어 ‘여기 지퍼를 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는 식으로 서로 의견을 나누며 진행해요. 그냥 ‘여기 지퍼와 리본을 달았습니다’가 아니라 계속 조율하고 보디를 앞에 둔 채 ‘어떻게 할까?’ 고민에 잠길 때도 있고요. 패턴 메이커가 모두 디자이너이자 함께 옷을 만드는 팀이죠. 모두가 진심으로 일하는 만큼 디자인에 깊이와 힘이 생긴다고 믿어요.

    당신이 말한 ‘여성의 다면적인 매력’을 심도 있게 표현하려면 그런 방법이 필요하겠군요. 사람의 여러 부분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나요? 성별에 집착하진 않지만 어느 시대에도 자립 가능한 강한 여성이 좋습니다.

    여성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버는 게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삶의 방식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자유의지를 지키는 일로 이어지죠. 네, 맞아요. 브랜드도 그와 같아요. 사카이 역시 독립적으로 경영하기에 힘들지만 자유가 있어요.

    자유가 없으면 뭘 위해 옷을 만드는지 알 수 없지 않아요? 다음에 뭘 할까, 두근두근 설렐 수 있는 자유가 없어지는 건 싫어요. 매출을 떨어뜨리기 싫지만 비즈니스 측면만 생각하면 재미가 없죠.

    숫자만 목표로 하는 건 좀 그래요. 대부분 그런 경우 결과가 좋지 않아요. 반면에 즐겁게 일한 결과물이 매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옷을 사는 고객도 재미를 느끼며 만들었구나, 그런 에너지를 느끼는 거 아닐까요.

    당신은 많은 사람과 협업했는데, 상대로부터 자극받는 즐거움을 기대하는 부분도 있죠? 자극도 받고, 재미도 있어요. 나에게 없는 걸 가진 상대는 참 매력적이죠.

    오늘 새삼 느끼지만 당신은 늘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그 열정은 어디서 오나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런 걸까요? 만족하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나요.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걸, 혹은 이건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등등 행동 하나하나를 후회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 마음이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스스로를 압박하는군요. 색다른 광경을 추구하는 일은 끝이 없어요. 뭔가 다음에 보고 싶은 장면이 또 있나요? 상상하던 것과 다르거나 의문이 생기는 경우에 다음 단계가 보이곤 해요. 실패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때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을 좋아해요. 아, 그렇구나, 그럼 이건 이렇게 바꿔보자, 하고요. 그리고 다시 다음 단계로 가보자 싶은 거죠.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을 좋아하는군요(웃음). 굳이 극복하지 않아도 될지 몰라요. ‘아, 그런 거구나, 그럼 나는 필요 없어’라고 여기고 싶은 순간도 없진 않아요. 사카이로서 어떻게 해나갈지 고민하죠. 실패도 나쁘진 않아요.

    실패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요. 앞으로 성장할 사카이의 미래가 더 기대됩니다. (VK)

      MITSUKO WATA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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