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Anxiety Brows

2021.09.30

by 송가혜

    Anxiety Brows

    일명 ‘불안한 눈썹’. 심적 괴로움으로 발병한 모공 속 깊은 고통의 흔적.

    눈가를 통틀어 눈썹 모가 세 가닥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애칭을 붙여줘야겠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그 이름은 바로 ‘불안한 눈썹’.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특별히 구구절절한 사연은 없다. 그저 내 손으로 눈썹을 뽑아버렸기 때문이다. 겨우 세 가닥만 남을 만큼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모조리 전부.

    뇌의 일부 영역이 눈썹을 지금 당장 모낭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듯했다. 불가항력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놀려 수백 개가 넘는 털을 뽑았다. 이런 행위를 지속적으로 저질러왔다. 물론 이성적 사고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숱이 전멸한 눈썹으로 인해 더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모공까지 뽑히는 듯한 찰나의 고통은 사라지지만, 눈썹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그러나 이 모든 걱정도 뿌리부터 털을 뽑아내는 쾌감에 비할 순 없었다.

    나의 고질적인 이 심리적 장애는 충격적이지만 최근 유행하는 증상이었다. <미국피부과학회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발모벽’, 즉 강박적이고 충동적으로 머리를 뽑는 증세를 호소하는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 뉴스는 마스크 속 ‘턱드름’이나 피부과 시술 열풍 같은 관심은 받지 못했다. 감히 짐작건대 ‘발모벽’이야말로 ‘캐치프레이즈’처럼 귀에 쏙쏙 꽂히는 별칭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강박적으로 눈썹을 뽑고 모낭의 어떤 고통을 없애고자 하는 이 행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해괴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내 증세에 대한 나만의 애칭 ‘불안한 눈썹’을 세상에 공개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세운 미의 기준을 <보그>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에 따르면 이 증세는 ‘발모 행위를 줄이거나 멈추려는 지속적인 시도에도 불구, 반복적으로 모발을 뽑아 탈모를 유발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피부과와 정신과 두 개 과목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의 에이미 웩슬러(Amy Wechsler)는 이렇게 강조한다. “손상이 결국 기능장애를 만듭니다. 흉터를 만들고, 탈모를 유발하죠. 멈추기도 어렵습니다. 피부를 벗기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 또한 발모벽과 같은 맥락이죠.” 코로나 사태에 부쩍 증가한 발모벽 환자는 제각기 선호하는 부위가 다르다. 두피, 속눈썹, 비키니 라인 등. 몸에 난 털이라면 어디든 타깃이다. 그중 많은 사람이 나처럼 눈썹을 뽑곤 한다. “발모 행위는 불안 장애 스펙트럼에 해당되며, 당연한 얘기지만 불안한 시기에 악화됩니다”라고 웩슬러 박사는 이어서 지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미 우리에게 앗아간 것은 너무도 많다. 자유, 생존, 직장에다, 내 눈썹까지. 꼭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을까?

    “발모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기만 증상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더 고독해하거나 숨기려고 하죠. 하지만 생각보다 흔한 증세입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2~5%가 발모벽을 겪고 있죠.” 낮은 비율처럼 느껴지겠지만 숫자로 환산하면 상당한 인구다. 두피 테라피 서비스를 제공하는 ‘루트 코즈 스칼프 애널리시스(Root Cause Scalp Analysis)’ 설립자인 모발학자 브리짓 힐(Bridgette Hill)은 오히려 강박 장애는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많은 발모벽 사례가 더 적은 숫자로 보고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수많은 오진과 적게 보고되는 환자 수만큼 신체 중심의 강박 행동 연구 역시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발모벽의 명확한 원인을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 증세는 유전적, 생물학적, 행동학적 요인이 모두 섞인 것 같다는 것.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단 하나의 이벤트나 스트레스, 불안, 우울은 가끔 아무 원인 없이도 생길 수 있다. 누군가는 강박 충동 장애와 관련이 있다고도 하는데, 발모벽 증상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다. 단순히 나쁜 습관이나 성격상 단점으로 치부할 수 없다. 발모벽은 심리적 장애의 일종이다. 심리적 장애라고 털을 뽑는 행위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광적인 경험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일명 ‘발모 환각’이라고 불리는, 오랫동안 털을 뽑아왔음에도 그 행위를 해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을 겪는다. 아무 생각 없이 발모했더라도 그 행동에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불안할 때 피부, 머리, 손톱 같은 부위에 이런 반복적 행동을 하는 것을 그저 우연이라고 볼 순 없다. 뇌와 피부는 발생학적으로 동일한 세포층에서 만들어지기에 단단한 연결 고리를 지닌다. 그래서 신체 증상을 통해 정서적 불안이 경감되기도 한다. 이 연결 고리는 공식적으로 ‘피부-뇌 축’으로 알려지는데, 여러분의 가장 깊은 속내를 얼굴에 드러내는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당황할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것, 두려울 때 창백해지는 것,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것이 그런 증상이다. 그리고 괴로움은 모공 속 깊은 고통이 되어 수많은 ‘불안한 눈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크 라페(Marc Lappé)가 저술한 <신체의 가장자리: 피부에 대한 문화적 집착(The Body’s Edge: Our Cultural Obsession with Skin)>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의 정신적 건강 상태는 피부와 불가피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피부는 정신 보호에 대한 은유와 적대적 세계에 대한 경계심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목숨을 손쉽게 앗아갈 수 있는 전 지구적 위기로 정서적 내면과 외부 세계 간의 경계가 무너졌을 때 피부 또한 뒤이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 라페의 말을 인용하자면, 피부는 ‘신체의 부드러운 보호구’라는 기능을 넘어 ‘마음이 몸을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부위이자 우리의 문화적, 개인적 정체성이 그려지는 기본적인 캔버스’다. 이 표현을 통해 나는 왜 발모벽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네 배쯤 많이 나타나는지 이론을 세워봤다. 우리 여자들은 파운데이션이나 컨투어링 제품 같은 색조 화장품을 통해 외모의 결함을 숨기거나 업그레이드하고 이런 방식으로 ‘꾸며야 한다’는 불균형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우리의 기본 인권(사회복지, 직업적 기회, 금전적 수입, 법정에서 동등할 권리 등)은 사회적 미의 법칙을 얼마나 잘 따르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달리 보면 내면적 자아마저 외양을 통해 비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라페에 따르면 자아 이미지와 관련된 많은 정신적, 심리적 장애는 우리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에 소리 없이 묻힌 감각적 폐허인 신체 가장자리에서 발생한다. 무의식 속 자아가 고통받으면 표면에 드러나는 거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더 쉬울까. 그렇게 자아 정체성의 위기가 눈썹에도 찾아오는 것이다.

    ‘정신-정체성-피부’로 연결되는 이 파이프라인은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보여주듯, 불안한 눈썹이 왜 사회적, 직업적 또는 기타 중요한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손상을 야기하는지 설명한다. 스트레스 해소는 털을 뽑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바로 그 행위의 여파에서 온다. 얼굴에 스스로 저지른 만행을 보며 내면의 자아(내가 나에게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와 외적 자아의 단절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눈썹이 없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충돌하게 만들고야 만다. 이 모든 스트레스가 쌓이면 또다시 눈썹을 뽑기 딱 좋은 심리 상태에 이른다.

    나는 뽑혀나간 ‘불안한 눈썹’이 다시 자라 언젠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복잡한 논의가 남아 있다. 첫째, 일단 ‘정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코로나 시대의 불안감은 여전히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 시대 이후에도 지속될 발모벽 시대의 존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모벽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FDA 인증을 받은 치료책이 아직까지 없다. 그저 몇 가지 대처 방안이 있을 뿐이다. 모발학자 브리짓은 “첫 단계는 인증된 전문가와 모발의 상태가 아니라, 정신 건강과 행동학적 상태에 대해 얘기해보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머리카락을 뽑는 행동의 빈도와 강도를 줄이기 위해선 정신 건강 전문의나 그룹 테라피처럼 행동 교정을 돕는 치료가 도움이 된다. 인지 행동이나 대화 치료, 침술, 최면으로 효과를 본 환자도 있다. 식단 변화 역시 부수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언급한 ‘피부-뇌 축’은 이보다 더 큰 축인 ‘위-뇌-피부 축’의 일부이므로 위에 건강한 영향을 주는 것은 곧 뇌와 피부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또 밀크시슬(Milk Thistle)이나 아세틸시스테인(N-acetylcysteine)을 함유한 건강 보조제나 항산화제를 섭취하고, 당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크 라페는 마사지를 외부 감각 기관과 내면 자아 사이의 연결을 회복하는 가장 고비용의 옵션으로 제시했다.

    개인적으로는 규칙적인 명상으로 도움을 받았다.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하루 10분씩 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의 ‘불안한 눈썹’이 특별히 많이 사라질 때는 명상과 함께 시각화도 한다. 두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쉴 때 하얀빛이 몸을 채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을 내뱉을 때는 그 빛이 눈썹에서 빛나는 장면을 그려본다. 영혼을 깊이 케어하는 명상은 인생과 눈썹을 바꿔주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감정도 느껴봐야 한다. 예를 들면, 필요할 때는 후련하게 털어내기 위해 울어버리는 것, 바쁘게 사는 문화에서 벗어나 일 외의 목적성을 찾는 것, 뷰티 문화에서 벗어나 외모 외의 가치를 찾는 것, 호흡을 통해 낡은 감정적 트라우마를 흘려보내는 것 등. 이 모든 행위의 핵심은 나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간극을 줄여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불안으로 고통을 겪을 때는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손을 눈썹에서 떼어낼 수 없다. 나는 이 순간적인 충동을 참기 위해 눈썹에 바셀린을 바르거나, 얼음으로 문질러보기도 했고, 그냥 ‘난 괜찮아’라는 주문을 계속 외우기도 했다. 웩슬러 박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해당 부위를 아예 덮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털을 뽑는 행위는 의식이 반 정도밖에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기도 하는데, 만약 반창고 같은 촉감을 느끼면 약한 각성 상태가 되어 ‘아, 이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신적, 육체적 자아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심리적 장애를 이야기하며 단순히 덮어버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핵심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피해버리는 방법에 가깝다는 의견이다. 여기서 나만의 노하우를 공유하자면, 아이브로 펜슬이나 아이브로 세럼, 전문가의 손길로 커트한 앞머리, 눈썹 문신 등이 있다. 나는 눈썹 문신을 정신 건강 루틴 중 하나로 여긴다. 내 목표는 외모에 신경을 덜 쓰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얼굴에 문신으로 새겨진 이 가짜 눈썹으로 나는 더 이상 진짜 눈썹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다 뽑아버렸다는 사실을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걱정하지 않으며, 메이크업 수정을 위해 몰래 화장실에 다녀올 필요도 없다. 눈썹 모는 계속 제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이 문제를 지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뇌는 ‘불안한 눈썹’에서 깊은 내면의 자아를 분리하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결론. (VK)

    뷰티 에디터
    송가혜
    JESSICA DEFINO
    포토그래퍼
    윤송이
    모델
    김성은
    메이크업
    이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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