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과 향이라는 항해
목적지가 없는 후각의 여정을 담은 루이 비통과 향이라는 항해.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인물은 프랭크 게리다.
‘코스믹 클라우드(Cosmic Cloud)’, ‘댄싱 블라썸(Dancing Blossom)’, ‘랩소디(Rhapsody)’, ‘심포니(Symphony)’, ‘스텔라 타임즈(Stellar Times)’. 알쏭달쏭한 이름이 간결한 서체로 새겨진 향수 보틀은 이제껏 본 적 없는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독특한 곡선을 그리는 유리병 위로는 알루미늄판을 천 조각처럼 구긴 듯한 커다란 뚜껑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우리에게 익숙한 향수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조각품에 가깝다. 초월적 의미를 띠는 듯한 향수 이름과 그 외양은 과연 어떤 향기를 담고 있을까.
향은 추억과 경험을 상기하는 매개체로 작용하지만, 루이 비통 ‘레 젝스트레 콜렉시옹(Les Extraits Collection)’은 기억에 없는, 전혀 새로운 경지의 향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를 목적지가 없는 후각적 여정이라 표현했다. 대체 어디로 우리를 데려가기에?
당신이 디자인한 향수 보틀이라니! 건물과 향수 디자인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규모는 다르지만 사람들이 공감할 느낌과 의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도를 갖고 지은 건물에서 사람들은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음악을 듣는 등의 활동을 하며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죠. 향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향수 보틀 역시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상호작용을 합니다. 결국 디자인에서 사고하는 과정이나 원칙은 비슷해요. 보는 순간 “오!”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처럼 감정을 이끌 수 있는, 삶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것을 만듭니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구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레 젝스트레 콜렉시옹’ 향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한 단어로 표현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병 안에 갇힌 향의 생명력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것 아닐까요. 이 향수는 오르락내리락 유영하는 물고기, 느리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지느러미의 공간적 표현, 불안정한 평형 상태와 미끄러지는 물속 움직임을 상기시키는 유체 역학적 라인이 고정된 형태를 띱니다. 건축가로서 늘 동경해온 모습이죠.
이번 협업에서 구현하기 어려웠던 요소가 있었나요?
일상에서 저는 향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사실상 부차적 존재라는 것이 큰 어려움이었죠. 그래서 향수가 아닌 조각품을 작업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위엄이 느껴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적이지만 유한성이 가미된 움직임을 이 향수병에 구현하고자 노력했어요. 향수를 담은 유리는 날카로운 특성 때문에 어느 정도 불안정성을 안고 있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형태가 완전히 고착되지 않습니다. 향수 보틀은 하나의 동작이나 움직임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오브제이기도 하죠.
당신의 작품에선 ‘물고기’와 ‘바다’가 중요합니다.
건축가라면 모든 영속적 움직임을 건축물에 담아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만의 아주 순진한 방식으로 물고기의 형태를 연구했죠.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는 매우 건축학적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이 향수 보틀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군요.
항해에 대한 열정을 수많은 곡선으로 표현했습니다. 당신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되었나요?
건축 학도 시절 우연히 항해에 눈을 떴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가난해서 제 돈으로 보트 여행을 다닐 수 없었는데, 누군가에게 초대받은 거죠. 자연과 엄청난 대양을 느끼는 순간 매료되고 말았어요. 훗날 작은 배를 사고 본격적으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훌륭한 뱃사람은 아닙니다. 보트 경주를 하진 못하지만 그 드넓은 공간감, 바다, 자연과의 관계, 움직인다는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또 그 움직임을 표현할 여러 방법을 고민하는 일은 제 안의 열정을 깨웁니다. 항해할 때면 매우 원시적인 방법으로 대자연을 만납니다. 대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과학적 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될 거예요. 바람과 바다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이해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자연과 파트너가 되는 셈이죠.
평생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당신의 그림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나요?
1950년대 건축가들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어떤 관점을 연구하고, 저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방법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죠. 요즘도 종이를 바탕으로 사고를 전개하고 있어요. 특정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을 표출하고 정리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죠.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기하학적 솔루션이 튀어나오는데 때로 상상도 못한 일이 손과 펜 끝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나온 거야?’ 자문할 때가 있을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나면 건축가는 그것을 탐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 시작점이 바로 그림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루이 비통은 어떤 의미인가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부아 드 불로뉴(Bois de Boulogne)’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프로젝트에 참여해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 방식에 대해 눈과 마음을 여는 브랜드와 협업할 기회는 흔치 않아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유입니다. 자유에 대한 정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의지야말로 루이 비통과 제가 긴밀하게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이유입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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