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lgrim
클로이에게선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타인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는 다르다. 조용히 자기 자리에 있다가도 조명이 다가오는 순간 100% 이상 스스로의 매력을 표현한다.
세상이 갑자기 멈춘 지난해 봄,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소녀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던 오채윤에게 팬데믹 세상은 따분하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패션모델을 자주 권했지만, 낯가리는 성격 탓에 패션 세상은 넘볼 수 없는 곳이라 여겼다. “한번 해보자 싶었어요.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히 도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죠.” 클로이는 뒷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뉴욕의 모델 에이전시에 보냈고, 즉시 밀라노로 날아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며칠 뒤 그녀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 앞에 서게 되었고, 프라다의 컬렉션 영상으로 패션계에 데뷔했다(프라다 쇼는 많은 슈퍼모델의 데뷔 무대다).
“처음 클로이의 사진을 본 건, 우리 웹사이트를 통해 클로이가 자기 사진을 접수하고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엘리트 모델 에이전시의 뉴욕 에이전트 테일러 에이버리(Taylor Avery)는 클로이의 사진을 보자마자 팀과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엘리트 팀 전체가 클로이의 사진을 보자마자 그 잠재력을 발견하고 흥분했습니다.” 같은 팀의 에이전트 마이클 브루노(Michael Bruno)는 당시 클로이의 매력이 남달랐다고 전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잠재력이 보였습니다. 아주 깨끗하고 현대적인 매력이 있었죠. 또 무엇보다 직접 우리에게 지원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패션계에 들어서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죠.”
처음 프라다 런웨이에 등장할 때부터 클로이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맑은 화선지에 먹으로 그려낸 듯한 마스크는 동양적인 동시에 서구적인 세련된 멋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루이 비통과 디올, 펜디와 발렌티노 등 모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런웨이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디올 크루즈 쇼를 잊을 수 없어요. 오래된 경기장을 워킹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소수지만 처음으로 관객 앞에서 캣워킹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마구 떨렸어요.”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한 이번 시즌 막스마라 캠페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스타일링을 맡은 카린 로이펠드 등을 포함해 우리는 파리에 있고, 스티븐 마이젤은 뉴욕에서 화상으로 촬영을 진행했어요. 비록 스크린 너머지만 손가락 위치와 입술 각도까지 조절하는 그 세심함에서 거장의 힘을 느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세계를 두루 다니며 일하는 모델 생활이 힘들게 느껴질 법하지만, 아직까지 클로이는 모든 것이 새롭다. 어린 시절부터 유학 생활을 하며 단단하게 성장한 경험도 큰 힘이다. “파리와 밀라노, 뉴욕에서 런웨이에 서는 것, 세계 여러 나라에서 촬영하는 것, 한국에서 모국의 스태프와 함께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촬영하는 것이 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9월부터는 뉴욕에 살고 있는 언니와 함께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미국 곳곳에서 자랐지만, 뉴욕에 살아본 적은 없어요. 게다가 언니와 함께라서 더 좋아요.”
“우아! 이 말밖에 안 나왔어요.” <보그> 10월호 커버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하자 클로이의 감흥은 간단했다. “모델이라면 누구나 <보그> 커버를 꿈꿀 테니까요. 그 꿈을 제가 이뤘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죠. 1년 전만 해도 저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으니까요.”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맛있는 떡볶이를 찾는 것이라고 답하는 소녀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스스로의 숨은 매력을 찾아내고자 언제나 애쓴다. “소라와 현지의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요.” 10월호 커버 촬영을 맡은 사진가 김영준은 클로이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최소라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도 느껴지고, 신현지의 맑은 아름다움도 엿보입니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두 모델과 비교된다는 사실은 클로이에게도 감동이다. “언니들과 같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해요.”
“클로이는 현대적이고,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할 때부터 자신감이 보였어요. 그 사실에 패션계가 매료된 듯합니다.” 엘리트 뉴욕의 에이전트 브루노의 말처럼 클로이에게선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타인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는 다르다. 조용히 자기 자리에 있다가도 조명이 다가오는 순간 100% 이상 스스로의 매력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어릴 땐 매장에서 계산할 때도 엄마 뒤에 숨을 정도로 낯을 가렸어요. 요즘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일하는 것이 사실 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모든 스태프가 있어야 제가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은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요.” 조용히 빛나는 매력. 모델 클로이의 빛은 이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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