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가운데 자리한 피에르 아르디의 집
피에르 아르디와 남편 크리스토퍼 터니어는 파리 한가운데 자리하고 프레스코로 장식한 아파트의 변화를 위해 데 코티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제격이라는 것을 알았죠.” 프랑스 출신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가 말하면서, 남편 크리스토퍼 터니어(Christopher Turnier, 아르디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CEO)와 함께 17세기에 지어진 호텔로 발을 들여놓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곳은 파리 한가운데 있는 생루이섬(Île Saint-Louis)에 자리해 센강이 내려다보였다. 이제 이 커플은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
어딘가를 보고 한눈에 빠져든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르디는 깐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파리에는 그가 살고 싶어 하는 몇몇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완전히 비어 있고 사람들 모두 살짝 엉망이라고 평한 그 아파트(190㎡ 크기)의 4.5m가량 솟아 있는 천장은 구석구석 신화를 담은 정교한 프레스코로 덮여 생동감이 폭발하고 있었다. 하프를 손에 쥐고 진홍색 로브를 입은 아폴로가 현관 로비를 내려다본다. 거실에서는 주피터의 아내 유노(Juno)와 그리스 신화의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Aeolus)가 구름 위에 느긋하게 누워 있다. 한편 로마 신화의 여명의 여신 오로라(Aurora)는 천사들과 말 사이에서 빛을 발하며 또 다른 방을 관장하고 있었다. 베르사유와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회화 작품으로 유명한 봉 불로뉴(Bon Boullogne)가 크게 기여한 이 걸작품이 중요한 매력 포인트였다.
디올과 발렌시아의 슈즈 디자이너, 에르메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친 아르디는 하이 컨셉 스타일(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로부터 영감을 받은 펌프스, 밑창이 구불구불한 스니커즈 등을 떠올려보자)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런 인물이기에 집은 늘 직접 꾸며왔다. 하지만 유서 깊은 이곳을 위해 이 커플은 <AD100> 선정 건축가이자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빈첸초 데 코티스(Vincenzo De Cotiis)에게 건물 내부에 21세기를 접목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 건축가의 작품에 감탄해왔기 때문이다. 아르디는 데 코티스가 이 장소의 본래 모습을 보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한 걸 떠올리며 웃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오케이, 완벽하군요. 우리가 할 일이 없네요’라고 말했죠.” 물론 아르디는 “할 일이 많았죠”라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런 가벼운 손길이야말로 그 커플이 데 코티스에게 끌린 이유였다. 더하기보다는 빼려는 그의 본능, 과거의 것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인테리어의 본질만 남겨놓는 능력이 그의 매력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굉장히 강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몹시 프랑스적이고 몹시 고전적이었죠. 우리는 그 역사를 존중하고 싶었어요.” 데 코티스가 파리에서 프레스코로 화려하게 장식한 천장을 보고 놀라던 그때를 떠올렸다. “저는 피에르와 크리스토퍼의 현대적인 스타일에 클래식한 분위기를 더하려고 했습니다. 미술 작품이 이 집의 주인공이죠. 그래서 인테리어 디자인은 좀 더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야 했어요.”
터니어가 건축학적으로 ‘대대적 청소’라 말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1970년대에 진행된 마지막 보수공사로 덧댄 것들을 제거하고 원래 모습에 더 가깝게 복구했다(1645년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가 의회 고문 앙투안 르페브르 드 라 바르(Antoine Lefebvre de la Barre)를 위해 지은 것이다). 오리지널 파케이(Parquet, 쪽매널) 바닥(들어 올려서 해체한 뒤 이탈리아에서 복원했다), 정교한 얕은 돋을새김, 조각이 새겨진 몰딩을 재단장했다. 그러나 데 코티스는 17세기 고전 양식에 모던한 터치로 균형을 잡았다. 이를테면 회반죽을 벽에 바르고, 무광 블랙 파이버글라스로 쁘띠 갤러리 키친을 꾸미고, 부엌 바닥에 트래버틴(Travertine)을 깔았다. 획기적인 것은 은색 브라스 웨인스코팅(벽판)을 여러 방에 덧댔다는 점일 것이다. 이 벽판은 수많은 거울과 더불어 건축학적으로 경이로운 주위의 작품과 채광까지 반사시킬 수 있다. “이 집은 완전히 남향이죠. 그래서 낮에는 빛이 곳곳에 들어옵니다.” 터니어가 설명했다.
데 코티스는 아르디와 터니어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집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청 고심했다. “부엌이 굉장히 작아요. 우리는 매일 밤 여러 사람에게 만찬을 대접하진 않기 때문이죠.” 아르디가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다이닝 룸이 싫어요. 지루하고 늘 비어 있거든요!” 이 커플은 매일매일 용도를 바꿀 수 있는 공간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 데 코티스는 여러 방을 터서 작업, 휴식, 식사, 엔터테이닝할 수 있는, 다시 말해 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크고 용도 전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커플의 개인적인 물건은 미니멀리즘에 가깝다. 그래서 다수의 18세기 앤티크 작품과 데 코티스가 디자인한 멋진 맞춤 가구를 돋보이게 한다. 침실에서는 솔 르윗(Sol LeWitt)의 작품과 핸드 페인팅 파이버글라스로 데 코티스가 만든 기념비적인 맞춤 베드 위쪽에서 천사가 구름을 타며 맴돌고 있다. 그랜드 살롱에서는 브라스와 파이버글라스의 맞춤 테이블이 18세기 암체어, 실버 브라스 소파, 토비아 스카르파(Tobia Scarpa)의 1960년대 마블 램프와 어우러진다. 소파 위에서 바라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의 그림(클래식 반신상이지만 눈에 큐브가 박혀 있다)은 이 공간에 대한 적절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현대식 렌즈로 굴절된 역사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세계의 일시적 유예로 흥분한 아르디와 터니어가 데 코티스에게서 그들만의 창의적인 조합을 찾아냈다. 그는 거실 소파에 사용할 블랙 가죽의 정확한 색조를 놓고 긴 시간 상의할 수 있어 즐거웠다. 그리고 센강의 색을 완벽하게 반영해줄 창가 소파의 커버 패브릭에 핸드 페인팅을 하는 것을 추천했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강줄기는 이 아파트의 연장인 것처럼 창밖에서 늘 희미하게 빛나면서 그들의 집을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장벽이 된다. 외가가 코르시카인 아르디는 이 도시 섬의 모순을 사랑한다. “파리 한복판에 있지만 외딴곳이기도 하니까요.” (VK)
- 글
- HANNAH MARTIN
- 사진
- FRANÇOIS HA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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