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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작가들과 나눈 뒷이야기

2021.11.16

by 김나랑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작가들과 나눈 뒷이야기

    웨스 앤더슨 감독이 <뉴요커>에서 영감을 얻어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를 발표한다. 영화의 실제 작가들과 그에 얽힌 뒷얘기.

    10월 2일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신작 <The French Dispatch>가 제59회 뉴욕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앤솔로지 형식의 이 영화는 <뉴요커> 매거진과 굉장히 비슷한 허구의 주간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실제 <뉴요커>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태프와 이야기 역시 <뉴요커>에서 가져왔다. 가상의 프랑스 도시 앙뉘쉬르블라제(Ennui-sur-Blasé)에 거주하는 미국인을 연기하기 위해 앤더슨 감독 사단 배우들을 총동원했다. 빌 머레이(<뉴요커> 창간 편집장을 모델로 만든 매서운 캐릭터), 틸다 스윈튼, 오웬 윌슨, 애드리언 브로디,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앤더슨과 또다시 합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 엘리자베스 모스, 베니시오 델 토로, 제프리 라이트 등은 앤더슨과 첫 작업이다.

    앤더슨은 <뉴요커>의 열광적인 팬이다.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이 잡지를 처음 봤고, 후에는 그 잡지 수백 권을 바인딩해 수집하고 기고 작가들을 파헤쳤다. <로얄 테넌바움>과 <문라이즈 킹덤> 등의 영화로 일곱 번이나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된 앤더슨 감독은 <편집장의 장례식>이라는 제목의 책도 영화 개봉과 동시에 출간했다. 이 책은 이 영화에 영감을 준 글을 모은 것으로, 실린 글 중 상당수는 원래 <뉴요커>에 게재된 원고이다. 그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뉴요커>와 맺은 오랜 인연, 그 잡지가 신작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발행하는 잡지에 실릴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을 구상할 때, 극 중 편집장 아서 호위처 주니어(Arthur Howitzer, Jr.)가 출발점이었나?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몇 년간 연극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그가 하나로 엮어놓은 두 편의 연극 아이디어가 두 가지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절대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두 가지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아이디어는 세 가지인 듯하다. 첫 번째 아이디어. 특정 스토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앤솔로지 형식, 즉 흔히 말하는 옴니버스 타입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두 번째 아이디어. 항상 <뉴요커>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 속 프랑스 잡지는 분명 <뉴요커>가 아니다. 그렇지만 <뉴요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내가 11학년이었을 때 학교에 도서관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을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정기간행물’이라고 라벨링된 나무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의 표지에 그림이 있었다. 정말 독특했다. 맨 처음 읽은 스토리는 베드 메타(Ved Mehta)가 쓴 ‘[뉴]델리에서 온 편지(Letter of [New] Delhi)’였던 것 같다. 그게 뭔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단편이 정말 재밌었다. 당시 딱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 시절, 도서관에 비치된 <뉴요커> 과월호를 보곤 했다. 책으로 출판된 적 없는 J.D. 샐린저(J.D. Salinger)의 글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다음 U.C. 버클리가 40년간 수집한 <뉴요커>를 폐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을 600달러에 사들였다. 내가 소장하던 구독본은 바인딩했다(실제로 그 잡지를 보관하기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 잡지가 온라인 아카이브에 올라온 다음부터 바인딩을 중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보관 중이고 거의 모든 발행호를 갖고 있다. 나중에는 <뉴요커>에서 브렌던 길(Brendan Gill),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 벤 야고다(Ben Yagoda) 등 다양한 작가의 인생 이야기를 접했다. 그 잡지의 전체적인 아우라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 릴리안 로스(Lillian Ross)도 만났다. 그는 그 잡지에 트뤼포(Truffaut)와 헤밍웨이, 채플린에 대한 글을 기고했으며, 샐린저와도 가깝게 지냈다.

    세 번째 아이디어. 프랑스 영화. 그런 영화를 한 편 찍고 싶었다. 앤솔로지 형식, <뉴요커>, 프랑스. 이 세 가지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이것은 친구이자 공동 집필자 휴고 기네스(Hugo Guinness)가 말하는 ‘역이민’에 관한 영화가 된 것 같다. 그 친구가 보기에 미국인이 유럽으로 가는 것은 역이민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를 본 후, 수년 전 작고한 릴리안 로스가 굉장히 좋아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신이 릴리안은 보자마자 ‘왜 프랑스죠?’라고 물었을 거라 말했다.

    정확한 햇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파리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역이민을 간 것이다. 그리고 파리 거리를 걷다 보면 왠지 영화 같은 느낌이 들고 정말 신이 났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고립감 같은 것도 있다. 이것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어쨌든 외로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항상 일종의 모험을 하게 되며, 이것이 굉장히 영감을 준다.

    <뉴요커>를 창간한 편집장 해럴드 로스(Harold Ross)는 늘 외지인이 뉴욕의 역사를 기록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영역 밖에 있거나 다른 나라에 있으면,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 마치 표시등이 항상 켜진 상태와 같기 때문이다.

    맞다! 표시등이 늘 켜져 있다.

    외국에서는 철물점에 가는 것조차 박물관에 가는 듯하다.

    전구 하나 사러 가는 것도 그렇다.

    빌 머레이가 연기하는 편집장 아서 호위처 주니어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잡지를 위해 일할 당대 최고의 작가를 모집한다. 그들은 당신처럼 조국을 떠나왔다. 당신은 <뉴요커> 최고 작가의 글을 이 책에 모았다. 작가 중 상당수는 파리로 이주했다. 영화에 “그는 편집장에 걸맞은 장례식을 치렀어요”라는 대사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몇몇 글은 해럴드 로스의 부고 기사이다.

    호위처는 해럴드 로스를 본보기로 만든 인물로, 이 잡지의 두 번째 편집장이었던 윌리엄 숀(William Shawn)이 살짝 섞여 있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그다지 조화롭지는 않다. 로스는 작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졌다. 정확히 말하면 존경은 아니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또 교묘히 다루거나 응석받이로 다뤄야 하는 터무니없는 아이 같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숀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싶을 만한 점잖고, 존경스럽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두 사람을 조금씩 섞으려고 노력했다.

    로스는 콜로라도 출신이었고 숀은 미드웨스트 출신이었다. 호위처는 미국 한가운데 위치한 캔자스 리버티 출신이다.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해 프랑스로 가고, 캔자스에 세상을 보여주는 잡지를 창간하기에 이른다.

    원래 편집장 캐릭터를 호위처가 아니라 리블링(Liebling)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항상 A.J. 리블링의 얼굴로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 머레이가 살짝 리블링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당신이 만든 호위처와 로스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 호위처는 사무실에 ‘울기 금지!’라고 적힌 표지판을 놓아두었다. 로스도 사무실에서 허밍, 노래, 휘파람을 절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그렇게 토로한다. 작가 서버는 그것을 로스가 지닌 ‘저 정말 안타깝죠!’ 분위기라 부른다.

    그렇지만 당신이 언급했듯 호위처에게서 숀의 모습도 살짝 보인다. 숀은 로스의 호통치며 몰아치는 스타일과 대조적으로 예의를 갖추고 점잖다. 영화에서 호위처가 오웬 윌슨이 연기한 작가 허브세인트 사제락(Herbsaint Sazerac)에게 “당신의 기사가 시대의 점잖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저급해요”라고 말할 때는 딱 숀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로스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가 고상한 척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굉장히 저속할지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비치는 것이다.

    <편집장의 장례식>에 발췌된 서버의 책 <로스와 함께한 시절>에는 “지붕에서 떨어지는(Falling off the rood, 관용적으로 ‘생리를 시작하다’라는 의미로 쓰는 표현임)”이라는 문구를 실수로 게재한 것을 놓고 로스가 넋두리하는 재미난 부분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잡지에 실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버는 또한 그를 ‘배가 곧 좌초되어 갑자기 피어오른 안개 속 뭔가와 충돌할까 봐, 뜬눈으로 걱정하며 다리를 서성이는 선장’에 비유했다. 영화의 자매편으로 이 책 같은 이야기 모음집의 출판은 사운드트랙의 문학 버전처럼 느껴진다. 피렌체로 여행을 떠나기 전 E.M. 포스터의 책을 읽는 것처럼 <편집장의 장례식>을 읽으면 된다. 영화 개봉과 책 출간을 왜 함께 하기로 결심했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영화가 특정 작가의 작품과 삶에 의지한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다. 각색은 아닐지라도 그것으로부터 받은 영감은 구체적이며 이 영화에 중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출처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할 방법을 원했다. 그것이 뭔지 알리고 싶다. 이 책은 커다란 주석이라 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 이유. 정말 재미있는 책을 쓰겠다는 핑계가 또 다른 이유다. 이들은 내가 사랑하는 작가이고 작품이다. 이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 1968년 학생운동에 대한 메이비스 갤런트(Mavis Gallant)의 기사를 읽거나 영화보다 이 책에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깊이도 있다. 책 내용이 더 많다는 것도 이유다. 물론 책과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그 나름의 것을 담고 있다. 프란시스 맥도맨드 배우가 연기한 크레멘츠(Krementz)는 메이비스 갤런트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그 인물에는 릴리안 로스도 섞여 있다. 그리고 맥도맨드 자신도 살짝 녹아 있다. 한번은 그녀가 정말 오만한 프랑스 웨이터에게 “제가 품위 좀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영화 평론가 폴린 카엘(Pauline Kael)이 존 휴스턴(John Huston) 감독의 <죽은 자들>에 대해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그녀는 조이스의 스토리가 완벽한 걸작이며,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영화는 원작 스토리가 가질 수 없는 힘을 지닌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대한 배우들 덕분이다. 영화에는 그들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노래까지 한다!

    모든 영화가 추천 도서 목록과 함께 개봉한다면 멋지지 않겠는가?

    많은 것을 차용했다. 그중 일부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니 멋지다. <프렌치 디스패치>에는 프랑스 고전 영화에 대한 참조가 넘친다. 트뤼포와 장 비고(Jean Vigo) 영화에서처럼 망토를 걸치고 돌아다니는 남학생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는 프랑스 영화에서 좋아하던 것으로 가득 찬 작품을 완성하려 했다. 어떤 면에서 프랑스는 영화가 시작된 곳이다. 미국 외에 프랑스 영화가 내게 가장 중요하다. 많은 감독과 배우, 프랑스 영화만의 스타일이 있다. 고다르(Godard), 비고, 트뤼포, 타티(Tati), 클루조(Clouzot), 뒤비비에(Duvivier), 자크 베케르(Jacques Becker) 같은 감독으로부터 스타일을 빌려왔다. <Le Trou> <Grisbi> <The Murderer Lives at Number 21> 같은 프랑스 누아르 영화를 차용한 것이다. 우린 아주 대놓고 도용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집어내고 출처가 어디인지 알아보기 쉬울 것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가? 일부는 1965년 아닌가?

    1968년 5월의 사건을 다룬 메이비스 갤런트의 글을 좋아한다. 적어도 이 영화의 한 부분이라도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야 함을 알았다. 다른 부분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이 잡지가 1925년부터 1975년까지 발행되었으니, 어쨌든 모든 사건이 그 50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혹시 1960년대 중반에 대해 특별한 호감을 가진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당신은 1969년생이지 않나? 한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출생 몇 년 전 시기에 대해 가장 많은 향수를 느낀다. 부모님의 로맨스가 절정에 달했을 시기라는 것이다.

    마음에 쏙 드는 이론이다! 영화를 만든 후 전문용어 하나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영화에서 가끔 한 인물이 프랑스어로 대사를 하고, 자막이 달리고 다른 사람이 영어로 대답한다. 나는 ‘이게 잘될까?’ 계속 궁금했다. 물론 실생활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 이것을 설명하는 전문용어가 ‘비적응 2개 국어 사용(Non-accommodating Bilingualism)’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만 상대방의 언어로 전환하지 않을 때 글을 쓴다.  그들은 자신만의 언어에 머물지만, 상대를 이해한다. 서로에게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말이다.

    메이비스 갤런트의 스토리가 영화의 핵심처럼 느껴진다. 소설가 프랜신 프로즈(Francine Prose)는 갤런트의 열렬한 팬이다. 그녀는 자신을 ‘신랄하면서도 끝없이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녀와 함께 묶을 사람이 없다. 완전히 독자적인 시각으로 1968년 5월을 다룬 글을 썼다. 한 외국인의 관점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통찰했다. 명료함과 공감력도 있다. 그녀는 매일매일 혼돈의 한가운데로 혼자 나섰다.

    갤런트는 캐나다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미국으로부터 두 배 정도 더 동떨어질 수 있었다. 미국에 사는 캐나다인 역시 표시등을 지닌다. 그런 이유로 캐나다 출신 코미디언이 그렇게 많은 듯하다. 그들은 아웃사이더로서 의견을 가진다. 미국 남부 출신 위대한 소설가들 또한 그렇다.

    그녀는 파리에서 91세까지 살았다. 내 아파트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았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7년 전 작고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그리웠다.

    이 책에는 자넷 플래너(Janet Flanner)가 유럽에 사는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에 대해 쓴 아름다운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워튼이 어떻게 계속 자신을 ‘반복적으로 재설정’했는지 썼다. 크레멘츠에게 플래너의 모습이 담겨 있는가?

    자넷 플래너가 살짝 담겼다. 플래너는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때로 세밀하게 시사적인 글을 썼다. 한 주에 파리에서 일어난 가장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또 1968년 5월에 대한 글도 썼다. 정말 훌륭하다. 그리고 메이비스 갤런트의 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플래너는 거리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당시 76세였다. 어쩌면 젊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조금 덜했는지도 모른다.

    갤런트는 그 학생들의 걱정에 찬 부모들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가진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도 강인한 면이 있다. 영화에서 크레멘츠는 작가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감정은 단지 최루탄에 의한 결과물로만 표면화되는 듯하다.

    갤런트도 쉽게 발끈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고 본다. 그녀와 관련한 글을 보면,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에 꽤 근사한 인물이었던 듯싶다. 누군가가 바보 같거나 옹졸한 뭔가를 말해 상황이 어두워지지 않는 한. 그녀는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원리 원칙을 거스른 사람을 배제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헛소리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당신은 릴리안 로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알다시피 릴리안은 굉장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뭔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나는 안젤리카 휴스턴이 <로얄 테넌바움> 촬영장으로 릴리안을 데려왔을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나도 폴 루돌프(Paul Rudolph)가 설계한 이스트 50번가의 글라스 하우스에서 릴리안을 본 적 있다.

    내가 안젤리카에게 말했다. “릴리안 로스가 온다고요? 믿을 수 없어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정말이에요. 실수하지 마세요.” 안젤리카는 릴리안이 <Picture>를 출간할 때부터 그녀와 집안끼리 많은 교류를 했다. 안젤리카와 릴리안은 정말 멋진 친구들이었다.

    당신 영화에서 혁명적인 10대였던 크레멘츠와 줄리엣의 대결이 강렬하다.

    크레멘츠는 아이들을 꾸짖는다. 그렇지만 그들을 보며 감탄한다. 갤런트의 <젊은이들의 감동적인 나르시시즘>에서 직접 따온 크레멘츠의 프랑스어 대사가 있다. 대본에는 몇 가지 불합리한 추론이 있다. 그 운동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들이다. 단지 메이비스 갤런트의 글귀 중 일부를 사용하고 싶어 그것을 삽입했다. 티모시 샬라메가 맡은 역할은 혁명적인 10대로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어머니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어요.” 갤런트의 작품에서 그녀는 친구의 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 전쟁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그 아이가 아는지 궁금하다.” 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갑자기 마지막 전쟁에서 아버지가 정말 꽤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을 그 아이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그냥 최근의 전쟁을 ‘마지막 대전’이라 부른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부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도 모른다.

    영화에서 학생 시위의 발단은 남학생들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 허가권 요구였다. 영화를 상영하는 동안, 앤더슨 버전의 학생 시위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그 분쟁의 역사에 대해 읽으면서 그것이 진짜 문제의 시초였음을 알았다.

    68혁명의 주역이었던 프랑스 낭테르의 다니엘 콩 방디트(Daniel Cohn-Bendit)가 요구한 사항 중 하나가 여학생 기숙사 출입권이었다. 아마 더 확장된 주장은 ‘우리는 어린이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남학생에게 여학생 기숙사의 자유로운 출입권을 달라는 것이 진정한 요구 사항 아니었을까? 그 말이 굉장히 재미있게 들렸다. 그 혁명 정신이 프랑스 사회 각처로 퍼져나가고 결국 여학생 기숙사와는 상관없이 끝난다. 결국 아무도 그 시위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더 이상 알 수 없다. 메이비스 갤런트가 이것을  너무 잘 포착해낸다. 사람들은 무엇이, 왜 일어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이 뒤바뀌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교수들이 더 나은 거래를 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베트남전쟁에 대해 분노한다.

    갤런트는 ‘시위자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더 이상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이 혼란을 끝낼 수 있을까?’를 알아내려고 시도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정답은 정직한 삶, 깨끗한 삶, 깨끗하고 정직한 프랑스인 것 같다.

    갤런트를 담당한 <뉴요커> 편집자 윌리엄 맥스웰(William Maxwell)이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한 말이 떠오른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들을 수 없게 된 것에 감사한다.” 이 영화는 작가와 편집자 간의 흥미로운 관계를 포착한다. 작가가 제출한 새로운 스토리는 편집자에게 바치는 공물과 같다. 그것에는 뭔가 친밀한 면이 담겨 있다. 호위처와 그의 잡지는 이 모든 고립된 국외 거주자들에게 가족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크레멘츠는 ‘언론적 중립성’이라는 개념을 외로움의 가림막으로 삼는 것 같다. 마지막에 주방장이 어떤 말을 하나?

    스티브 박(Steve Park)이 연기한 요리사 네스카피에(Nescafier)는 외국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것을 찾고, 남겨진 것을 놓치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것은 이 책에 담긴 모든 작품과 모든 작가의 삶을 관통한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기자들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라고 부른다. 언론인이 국민의 적으로 불리는 시대에 고무적인 일이다. 바로 스튜디오에 있는 동료들이 영화를 그렇게 부른다. 진짜 연애편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영화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기자들에 관한 것이다. 내게 의미 있는 기자들 말이다. 인생의 전반기에 <뉴요커>를 픽션을 읽는 통로로 삼았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영화는 모두 픽션이다. 영화에 나온 기자 중 그 누구도 실존 인물이 아니다. 이야기 역시 모두 허구다.

    경찰국장의 요리사를 다룬 마지막 스토리에서 제프리 라이트 배우가 연기하는 로벅 라이트(Roebuck Wright)는 여러 곳에서 복합적으로 영감을 받은 또 다른 인물이다. 그는 동성애자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식가로, 미국의 인종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리로 이주한 A.J. 리블링과 제임스 볼드윈이 조금씩 섞인 듯하다. 정말 대담한 조합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대담하고 무분별한 결합이라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에 나온 인물마다 여러 곳에서 받은 영감이 섞여 있다. 늘 아이디어를 적으려고 작은 공책을 휴대한다. 그 영감을 어떻게 할지, 그것들이 결국 어떤 상태가 될지 모른다. 때론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 이름을 노트에 적기도 한다. 제프리 라이트와 베니시오 델 토로는 수년간 지켜온 이 목록의 맨 윗줄에 적혀 있었다. 제프리와 베니시오에 적합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로벅 라이트 캐릭터에 대해 생각했을 때, 그 안에 항상 볼드윈을 살짝 섞었다. 볼드윈의 <Giovanni’s Room>과 에세이 몇 편을 읽었다. 하지만 라울 펙(Raoul Peck) 감독의 볼드윈 관련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으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65년 볼드윈과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William F. Buckley Jr.)의 케임브리지 유니언 클럽(Cambridge Union Society) 토론을 지켜봤다. 볼드윈은 매우 훌륭하고 통찰력 있게 말했다. 그럴 뿐 아니라 그 자체, 그의 목소리, 그의 성격도 그렇다. 그래서 그의 말투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말투와 고어 비달(Gore Vidal)의 말투도 염두에 두었다. 그 작가들의 특징에 그것을 더했다. 게다가 리블링의 특징도 포함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특징이 모두 조화로웠다.

    제임스 볼드윈의 <Equal in Paris>의 어느 문구가 당신 영화에서 경구처럼 쓰여 있다. 그는 “멀리서 보면 프랑스는 매우 관대하고 자유로운 것 같았다. 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외국인에게는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낯설고 거만하고 칙칙한 면으로 가득 차 있다”고 썼다.

    프랑스에 일정 기간 체류한 미국인이라면 그 느낌을 알 것이다. 좀 복잡한 비유이다. 그 글을 읽으니, 당신이 뜻하는 바가 정확히 이해되는 듯하다.

    호위처가 항상 그의 작가들에게 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부러 그렇게 쓴 것처럼 보이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캘빈 트릴린(Calvin Trillin)이 조셉 미첼(Joseph Mitchell) 스타일에 대해 한 말을 떠올린다. 그에 따르면 미첼은 자신의 작품에서 ‘글의 특징’을 지워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신은 자신의 방식을 어디서 찾았나?

    뭔가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가마다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진다. 조지 트로우(George Trow)에게 해줄 만한 충고를 조셉 미첼에게 해줄 수는 없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나는 재미있게 말하는 방식을 생각해내려고 노력했다. ‘의도한 대로 완벽하게 달성하고자 시도하라.’ 그것이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도움이 된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자신 있게 쓰라’는 뜻이지 않나.

    영화를 만들 때, 어떤 방향으로든 영화를 찍을 수 있고, 실험할 수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원래 의도한 것처럼 느껴지고 권위를 갖는 한.

    이 영화에는 ‘분당 문장 수에서만큼은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묘사된 이름 없는 작가가 있다. 누구를 지칭하나?

    리블링은 스스로 “나는 글을 더 빨리 쓸 수 있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쓸 수 있고, 더 잘 쓸 수 있는 그 누구보다 더 빨리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몽타주 안에 잘 어울리도록 그것을 줄였다. 벤 헥트(Ben Hecht)도 살짝 녹아 있다. 지나가는 말로 언급된 작가가 몇 명 더 있다. 베드 메타를 정말 살짝 언급하기도 한다. 그를 늘 사랑했고 특히 그의 <The Photographs of Chachaji>를 좋아했다.

    그리고 월리 우로다스키(Wally Wolodarsky)가 연기한 수십 년간 아무것도 쓰지 않은 ‘쾌활한 작가’가 조셉 미첼을 따서 만든 캐릭터 아닌가?

    미첼 맞다. 미첼이 집필을 중단하기 전 잊지 못할 작품을 썼다는 것만 빼고. 등장인물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딱 다다이즘이다. 조셉 미첼의 인생 말년에 그와 친해졌다. 나는 그가 <New York Observer>에서 뭔가 쓰게 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30년간 어떤 것도 출판하지 않았다. 어떤 글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매주 전화로 이야기했다. 내게 바다의 뱃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오웬 윌슨 배우가 연기하는 사제락을 미첼과 약간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는 도시의 어두운 면에 대한 글을 쓴다. 그리고 사제락은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오웬도 실제로 항상 자전거를 탄다. 베를린이나 도쿄 같은 곳에서는 오웬 윌슨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그다지 별난 일이 아니다. 사제락은 또한 뤽 산테(Luc Sante)로부터도 많은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인물이다. 그의 책 <The Other Paris>의 분위기를 많이 따왔기 때문이다. 결국 사제락은 미첼이자 뤽 산테이며 오웬인 것이다.

    이 사제락이라는 인물은 특별히 창의적이다. 그는 하류층을 취재하는 기자였다. 그는 부둣가와 빈민가로 나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녔다. 뤽은 뉴욕의 역사적인 슬럼가를 다룬 <Low Life>와 19세기 파리의 지하 세계를 다룬 <The Other Paris>의 작가로, 학자에 더 가깝다. 그는 도서관과 벼룩시장에서 그의 원석을 발굴한다.

    미첼은 “굴을 까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더니, 그가 내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미첼은 이른바 현장에서 뛰는 기자다. 당신은 이 책에 쥐를 다룬 미첼의 걸작도 포함시켰다. 그 작품에는 당신 영화의 시퀀스가 될 법한 ‘쥐가 달걀을 훔치는 것’에 대한 글이 나온다. “작은 쥐는 달걀 위에 걸터앉아 네발로 그것을 꽉 잡는다. 그것을 잘 움켜쥔 상태에서 등을 바닥에 굴렸다. 그다음 더 큰 쥐가 그의 꼬리를 잡고 바닥을 가로질러 널빤지 구멍으로 끌고 갔다.”

    아마 미첼이 해충 제거업자와 얘기하면서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가을에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쥐들이 여름을 나던 공원을 떠나 5번가를 가로질러 건물 지하로 떼 지어 달려가는 것을 다룬 그 작품의 이미지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것은 내가 읽은 미첼의 첫 작품이었다.

    수년간 <뉴요커>에 실린 이런 글을 파일링하고 있었나?

    글쎄, 일부러 모아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작가들을 참조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이 영화를 헌정하고자 하는 작가 명단이 나온다. 세인트 클레어 맥켈웨이(St. Clair McKelway)와 월콧 깁스(Wolcott Gibbs) 또는 E.B. 화이트(E.B. White)와 캐서린 화이트(Katharine White)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뉴요커>를 본모습 그대로 만들어가는 데 그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잡지의 목소리와 톤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대개 영화에선 <뉴요커> 작가들이 작품에 전념하는 사람들이기보다는 반체제 인사로 묘사된다.

    알곤퀸 라운드 테이블(Algonquin Round Table)의 멤버들처럼 각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알고, 각 배우가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구현해야 하는 실제 인물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기는 더 어렵다. 누군가를 허구로 만들어낼 때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

    전에도 이렇게 풍부한 자료를 영감의 원천으로 영화를 만든 적 있나?

    그렇게 많은 자료는 아니었다. 나는 이 작품을 몇 년간 계속 준비했다. 하지만 제이슨 슈워츠먼(Jason Schwartzman)과 로만 코폴라(Roman Coppola)가 작업에 합류하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캔자스주 리버티’와 ‘가상의 프랑스 도시 앙뉘쉬르블라제’의 이름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제이슨이 그냥 큰 소리로 ‘앙뉘쉬르블라제’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두 곳이 자매도시가 되기를 원했다. 리버티는 글쎄, 그것에 걸맞은 미국적 느낌을 지닌다.

    프랑스인들이 그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잘 모르겠다. 영화에는 프랑스 배우도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일종의 달콤한 사탕 같은 환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환상의 실제 버전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것의 뿌리가 믿을 만하게 느껴져야 한다. 그 영화가 한 외국인이 가지는 프랑스에 대한 생각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꽤 분명하다. 나는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Paris, Texas>를 좋아한다. 그 영화에서 본 벤더스 감독 버전의 미국과 그가 서부에서 촬영한 사진이 기억난다. 그것은 한 특별한 개인이 갖는 미국에 대한 견해일 뿐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영토에 침범하면 그 사람들이 그것을 꼭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다. 아무리 정중할지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곳을 굉장히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이 확인한다면, 오히려 그런 침범에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그 결과를 누가 알겠나? (VK)

      에디터
      SUSAN MORRISON
      일러스트레이터
      TOMA VA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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