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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언 브로디와 ‘보그 코리아’가 나눈 대화

2023.02.12

by 조소현

    애드리언 브로디와 ‘보그 코리아’가 나눈 대화

    애드리언 브로디가 웨스 앤더슨이 창조한 <프렌치 디스패치>의 세계에 기꺼이 합류했다.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동화된 그는 마치 치열한 잡지의 한 페이지처럼 연기 철학을 드러낸다.

    웨스 앤더슨이 처음 <뉴요커>를 접한 건 텍사스에 있는 고등학교 도서관에서였다. 절친이자 영화 동료인 오웬 윌슨이 이를 증명할 정도로 그날부터 그는 ‘<뉴요커> 수집광’이 됐다. <뉴요커> 기사뿐 아니라, 기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울 정도의 팬심! (웨스 앤더슨의 수집욕은 유명하다!) 극영화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이후 7년 만, <뉴요커>를 모티브로 만든 웨스 앤더슨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는 저널리스트의 주도하에 출판 잡지가 존중받던 지난 시대를 향한 웨스 앤더슨 방식의 헌사다. 영화는 가상의 프랑스 도시 ‘앙뉘쉬르블라제 (Ennui-sur-Blasé)’에서 발행되는 미국 잡지의 마지막 호에 실리는 세 편의 칼럼을,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한다. 잡지 형식의 독특한 구성으로, 잘 만들어진 기사를 읽듯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애드리언 브로디의 걸작

    애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는 그중 첫 번째 에피소드 ‘콘크리트 걸작’에 등장한다. 그가 연기한 아트 딜러 줄리언 카다지오는 19세기에 실존했던 동명의 아트 딜러를 모티브로 한 인물로, 그는 감옥 안에서 빛을 보지 못할 뻔한 범죄자 로젠탈러(베네시오 델 토로)의 그림을 적극 발굴해 천문학적 가격으로 팔려 나가게 한 최고의 아트 딜러였다. 한 명의 천재 화가가 탄생하고 활용되는 아트 비즈니스계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로, 애드리언 브로디의 독특한 연기가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다즐링 주식회사>(2007), <판타스틱 Mr. 폭스>(2009),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은 웨스 앤더슨과의 또 한 번의 협업. ‘웨스 앤더슨 사단’인 그가 말하는 감독과의 오랜 협업, 그 안에서 배우로서의 즐거움을, 줌 인터뷰를 통해 나누었다.

    웨스 앤더슨 감독과 같이 한 또 한 번의 작업이다. ‘웨스 앤더슨 사단’으로, 그와의 작업은 일로서의 ‘존중’뿐 아니라 이제 ‘우정‘도 쌓였을 것 같다.

    웨스와 인연이 닿은 건 정말 행운이다. 친구로 우정을 나누며 또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건 큰 영광이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 배우인 나를 성장시켜주고 또 기쁨을 주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하다. 사실 누구든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런 관계가 있다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더군다나 그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다. 작업하며 내가 하지 못한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줘 늘 고맙다. 웨스뿐 아니라, 그와 작업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다 그런 존재다. 그런 점에서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운이 좋다.

    사단으로 소속감도 느낄 것 같다(웃음). 당연히 웨스 앤더슨의 작품이라면, 작품 선택 순위에서 단연 우위를 차지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있다면.

    솔직히 난 웨스가 부탁하면 무조건 출연한다(웃음). 웨스를, 그의 작품을 그만큼 믿고 인정해서 절대 그의 제안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 출연할 거다. 그럼에도 <프렌치 디스패치>가 워낙 특별하다는 점도 언급해야 한다. 이 영화에 활용된 레퍼런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 역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살아왔는데, 이 작품은 웨스 앤더슨이 프랑스에서 거주했던 경험을 통해 제작한 영화라는 점, 저널리스트를 소재로 한 점, 그가 다른 문화와 다른 도시에 대한 해석을 활용한 점 등이 너무 멋졌다. 관객이 보기 전에 일단 나 스스로도 이 작업이 너무 재밌어서 꼭 출연하고 싶었다. 베네시오 델 토로, 레아 세이두 등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 역시 좋은 지점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배우 협업이 늘 기대된다. 당신처럼 기존 웨스 앤더슨 사단의 배우뿐 아니라, 베네시오나 티모시처럼 이번 영화로 웨스와 함께하는 배우도 많았다.

    웨스의 촬영장은 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유명하다. 배우들, 메인 스태프, 촬영 팀이 모두 한 호텔에 묵고 저녁 식사도 함께 한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개별 행동이 거의 없다. 다른 작품에선 다들 따로 지내며 출퇴근하는데, 그런 점에서 웨스의 방식이 특별하다. 내가 같이 일한 감독 중 웨스처럼 현장 분위기에 신경 쓰는 건 M.나이트 샤말란 감독뿐이었다. 작업하면 결국 이런 방식이 연기에 스며드는 것 같다.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말이 있듯, 같이 생활하고 일하며 서로에게 익숙해질 수 있으니까. 이런 작업 방식이 참 좋다. 웨스를 통해 멋진 사람도 많이 만났고, 훌륭한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작품에서 밥 발라반과 헨리 윙클러 같은 존경할 만한 배우가 내가 연기한 카다지오의 삼촌 역할로 출연한다. 티모시 샬라메도 이번에 만났고, 틸다 스윈튼 같은 멋진 배우도 함께할 수 있었다. 다 영광이다. 모두가 영화를 통해 맺은 특별한 가족 같다.

    당신이 연기한 아트 딜러 ‘줄리언 카다지오’는 예술 비즈니스계의 흐름,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완을 발휘한다. 잇속을 차리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아무리 뛰어난 미술품이라도 가치가 있으려면 영향력 있는 수집가, 미술관 관계자, 큐레이터 등 업계의 힘 있는 이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아트 딜러는 작가의 작품을 맡아 그런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하는 역할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훌륭한 작품으로 남기 어렵다. 작품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좌우된다는 게 흥미롭다. 이를테면 반 고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이지만 생전에 그림을 거의 못 팔았다. 친동생이 미술상이었는데! 엄청난 비극이다. 화가가 자리를 잡으려면 그를 발견할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호불호를 떠나, 카다지오의 입체적 캐릭터성도 규정된다.

    줄리언 카다지오는 19세기에 실존한 영국의 아트 딜러 조셉 듀빈을 모델로 한다. 실존 인물이 있어서 더 주의하거나, 참고한 지점은 뭔가.

    조셉 듀빈은 당시 엄청나게 명망 높은 아트 딜러였다. 그의 직업적 특징이 영화 캐릭터뿐 아니라 스토리에 영향을 주긴 했다. 하지만 내가 연기한 캐릭터는 그 인물을 바탕으로 새로 만든 허구의 캐릭터다. 듀빈처럼 특정 시대에, 이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할 만큼 대단히 성공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 그의 성격적 특징까지 가져오진 않았다.

    중절모에 말쑥한 수트 차림이 카다지오의 성격을 더 확연하게 규정한다. 스타일에서 당시 아트 딜러의 룩을 연구했을 듯한데 시대상과 성격을 보여주는 룩을 만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의상이 주는 효과는 늘 엄청나다. 배우가 정말 그 캐릭터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니까. 이 작품에서 입은 의상 모두 근사했다. 카다지오가 처음 감옥에 수감됐을 때 입은 단색 죄수복부터, 정교하고 화려한 연회복까지 다 환상적이었다. 여러 창의적인 요소를 더해 캐릭터의 비주얼과 느낌이 살아났다. 의상뿐 아니라 세트 디자인과 로케이션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정말이지 모두 특별했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피아니스트>(2003)에서의 진지한 연기 톤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면, 웨스 앤더슨과 만남은 무게감을 덜고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의 역할을 확장하게 한 기회다.

    정말 맞다! 앤더슨의 영화와 캐릭터 모두 하나같이 특이하다. 워낙 독특한 스타일을 전개하는 감독이고, 그가 설계한 타이밍이 돋보이는 유머도 특별하다. 그 세계에 있으면 배우로서 재미있다. 뭐랄까, 굉장히 구체적이고 색달라서 좋다. 어떤 영화든 그의 작품은 웨스 앤더슨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표가 난다.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배우에게는 특권이다.

    한국에 웨스 앤더슨 팬이 많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관객과 직접 만났을 텐데, 이 작품을 기다리는 한국 팬들에게 몇 마디 부탁한다.

    나 역시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웃음)! 서울에 친한 친구들도 있고, 한국에서 영화 찍을 뻔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나는 태권도 범띠다. 어릴 때 사범님에게 몇 년 동안 태권도를 배웠는데, 자기 수련법과 호신술을 많이 가르쳐주셨다. 태권도를 통한 수련이 성장기의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한국 음식도 정말 좋아한다. 당장 먹고 싶다(웃음)! (VK)

    에디터
    조소현
    이화정(영화 저널리스트)
    사진
    ALASDAIR McLE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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