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굶어야 하죠? 보디 프로필이 낳은 섭식 장애 후폭풍
자기 관리와 강박 사이,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우리 몸.
“보디 프로필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보디 프로필이란 식단과 운동으로 만든 자신의 몸을 기념하기 위해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의 경우 ‘#바디프로필’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100만 개가 넘을 만큼 인기가 높다(2020년 8월 기준).”
딱 1년 전 출간된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1> 속 이야기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인스타그램을 넘어 TV와 유튜브에는 유명인의 보디 프로필 촬영 도전기가 흘러넘쳤다. 해당 콘텐츠는 하나같이 건강한 몸을 향한 지금 우리의 열망을 담은 듯했다. 하지만 보디 프로필 열풍은 또 다른 후폭풍을 몰고 왔으니, 강박으로 인한 섭식 장애가 그것이다.
대학생 김정민은 두 번의 보디 프로필 촬영 준비 과정 중 식이 장애를 겪은 케이스다. 그녀는 말한다. “첫 번째 보디 프로필을 찍으며 스스로를 많이 몰아붙였어요. 제 기준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막바지엔 절식을 했거든요. 13kg을 감량해서 만든 보디 프로필 사진에 멋지다, 섹시하다는 칭찬을 들으니 기뻤습니다. 하지만 점차 그런 말이 절 조여오더라고요. 불안할 때마다 폭식을 했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걸 느꼈어요.”
코로나 시국 탓도 있었지만, 5주 만에 무려 18kg이 늘어난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불안이 야기한 외적 변화는 다시 내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대인 기피증과 우울증에 빠져 있던 그 시기를 두고 김정민은 “죽고 싶지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았다”고 전한다.
그녀는 두 번째 보디 프로필에 도전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구성된 최소한의 식단을 하며 최대한 운동하는 것. 정석으로 알려진 길을 밟은 거다. 하지만 몸은 전처럼 변하지 않았다. “트레이너도 지난 10년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변화가 더뎠어요.”
결국 혈액검사를 권유받았고, 그 결과 요산과 혈당 수치가 평균 이상이라는 게 드러났다. “4개월 동안 클린한 식단을 유지했는데도 수치가 높게 나온다는 게 말도 안 되잖아요. 말하자면 이전의 극단적인 식단 탓인 거예요. 요산 수치가 높을 때 피해야 하는 게 육류인데, 지난 몇 개월 동안 제 주식은 닭 가슴살이었으니… 병원에서 그러더라고요. ‘호르몬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다이어트를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 건 당연한 거다.’” 김정민의 케이스는 건강미를 가지려다 건강을 해치게 된 경우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난 10월 2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나비약과 뼈말라족’ 편을 방영했다. 다양한 체중 감량 보조제 중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먹고 환각, 환청 또는 우울과 분노감 같은 급격한 감정 기복 등 부작용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방송에 등장한 전문가들은 전했다. 국내에 허가된 다섯 가지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중 대부분이 암페타민 유사체인데, 이는 메스암페타민인 필로폰의 하위 약품이라고. 마약으로 분류되는 그 필로폰, 맞다. 환각과 환청을 겪었다는 이들의 증언이 납득되는 지점이다.
“강력한 중추신경 흥분제로서 각성 작용을 일으키는 합성 화합물질이다. 투여 시 졸음과 피로감이 사라지며, 육체 활동이 증가하고, 쾌감이나 행복감을 느끼게 되므로 오남용할 위험성이 있다. 내성과 심각한 의존성이 생기며, 중단 시 금단증상이 나타나므로 향정신성의약품인 마약류로 분류되어 법적으로 강력히 규제하는 약물이다.” 약학용어사전은 필로폰을 이렇게 정의한다.
물론 필로폰과 식욕억제제는 다르다. 식욕억제제의 핵심 성분 펜터민은 암페타민의 화학적 구조식을 바꾸어 대사 과정을 바꾸고 중독성을 줄인 것. 그러나 몸에 작용하는 기전은 크게 보아 다르지 않다. 이선구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말한다. “식욕억제제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죠.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을 많이 분비하게 해서 교감신경을 활성화합니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우리 몸이 전쟁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예요. 마치 도망치거나 싸움을 준비하듯, 전신이 예민해지면서 모든 피가 근육으로 몰리는 거죠. 피를 근육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펌핑이 빨라야 할 테니, 심장이 빨리 뛰겠죠.”
이런 기전을 활용한 약답게, ‘나비약’이라 불리는 펜터민은 심혈관계 질환, 동맥경화증, 고혈압 환자에게 처방 및 투여가 금지되어 있다. 장기 투여 혹은 권장 용량 이상 투여 시 판막 심장병의 위험 인자가 된다는 경고가 이어지며, 약물 남용이나 불안증 병력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않는다는 내용 또한 눈에 띈다. 체중 감량을 위해 먹은 약에 이런 무시무시한 주의 사항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는 걸, 복용자들은 주지하고 있었을까?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의사의 강력한 경고와 함께 처방받아도 모자란 이 약을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이런 구매자의 일부가 10대라는 점이다.
16세 미만에게 금지된 ‘나비약’을 불법 유통을 통해서라도 구하려는 건 속칭 ‘프로아나’라 불리는 청소년들. ‘Pro(찬성을 뜻하는 접두사)-Anorexia(거식증)’, 즉 거식증을 지지하는 이들 ‘프로아나’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거식증 환자를 찬양하며 음식을 거부하는 청소년들이다. 음식을 멀리하기 위한 십계명을 외며 ‘먹토(먹고 토하기)’와 ‘초절식’을 오가는 이들이 종착역처럼 찾는 게 ‘나비약’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원래 좀 통통하던 여자 아이돌이 살 빼고 레전드 찍었다는 얘기 들으면서 생각하는 거예요. 아, 저렇게 마를 정도로 살을 빼야 예쁘고 빛날 수 있는 거구나.” “미디어에서 마른 몸을 보면 내가 음식을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먹토’를 했어요.” 청소년들의 방송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거식증은 강박에서 시작된다. 잘못 주입된 외모를 향한 강박 말이다. 생리 불순이나 탈모, 빈혈 정도를 넘어, 면역력 저하와 저혈압, 대사와 관절 질환을 야기하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섭식 장애인 거식증은 정신과 질환 중 자해 및 사망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TV 광고에서도 노래하듯 습관처럼 자기 관리하는 시대라 하는데, 자기 관리와 강박의 차이가 대체 뭘까? 클린한 식단과 운동만으로 생활한 지 벌써 7개월, 네 번의 보디 프로필 촬영을 거치며 비로소 섭식장애에서 벗어났다는 김정민의 답변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취업이든, 주체적으로 하는 거라면 자기 관리라 생각해요. 반면에 타인의 시선 때문에 하는 거면 강박증일 테고요.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건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고 불행해진다면 그만둬야죠.”
- 프리랜스 에디터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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