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 그 중심에 있는 한국 모델들
회복된 패션 수도에 펼쳐진 런웨이. 그 중심에 한국 모델들이 걷고 있다!
패션쇼는 오감을 자극하는 ‘피지컬’ 그 자체다. 두근거리는 진동과 눈부신 조명, 귀를 가득 채우는 음악과 화려한 런웨이, 이어지는 관중의 환호까지.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멈추기 전까지는 그랬다. 록다운, 봉쇄령, 이동 제한 등 낯선 이름으로 무장한 사회적 제재를 패션계도 피해 갈 순 없었다. 그리고 캣워크를 거닐던 패션쇼의 꽃, 바로 모델들의 무대는 파리 그랑 팔레와 튈르리 정원 , 에콜 데 보자르 대신 ‘디지털 런웨이’로 대체됐다. 패션 하우스가 라이브 스트리밍과 패션 필름, 인형극과 증강 현실 게임까지 동원해 디지털로 보이지 않는 각축을 벌이는 동안 무려 18개월이 흘렀다. 마침내 패션 수도들은 백신과 부스터 샷의 도움 덕분에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다. 그중에서도 파리는 지난여름 꾸뛰르 시즌을 시작으로 디올, 생 로랑, 지방시, 샤넬 등의 슈퍼 브랜드가 2022 S/S 패션 위크로 복귀했다.
“디지털 컬렉션은 확실히 패션쇼라기보다 촬영의 연장선처럼 느껴져요. 실제 런웨이를 걸을 때만 느껴지는 웅장함이 있거든요. 심장은 쿵쾅대고 전율이 느껴지는 오프라인 쇼의 짜릿함이 그리웠습니다.” 파리 패션 위크 마지막 날, 미우미우와 루이 비통 쇼에 등장한 조안 박은 록다운 이후 해외 패션계에서 눈에 띈 모델 중 한 명이다. “해외 패션 위크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렇게 빅 쇼에 서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그런지 여전히 비현실적이고 조금은 얼떨떨해요.” 파리의 일요일 아침,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그녀는 지난 두 달간의 여정을 꽤 자세히 설명했다. “처음에는 뉴욕에 잠시 머물다 곧장 귀국하는 일정이었어요. 캐롤리나 헤레라 쇼에 서면서 밀라노로 이동해 써네이와 블루마린 런웨이에 선 다음 파리까지 오게 됐죠.” 이렇게 자유로운 이동이라니! 그렇다면 한반도 너머의 북미와 유럽 대륙은 코로나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된 건가? “전혀 아니에요!” 패션 위크 동안 조안은 PCR 테스트를 셀 수 없이 많이 받았다. 뉴욕에서는 룸메이트가 코로나에 걸려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모델이라는 직업상 불특정 다수를 계속 만나는 데다 메이크업을 받을 때는 마스크를 쓸 수도 없어서 검사할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조안은 후회하지 않는다. 특히 루이 비통 쇼에서 최소라를 마주쳤을 땐 심장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바야흐로 신인 모델의 우상이 된 최소라는 이미 코로나 시국을 초월한 패션 일정으로 분주했다(지난해 7월에는 도장용 점프수트와 고글, 장갑으로 무장한 뒤 촬영을 위해 해외로 출국하는 모습이 기사화됐다). 이번 시즌에도 역시 에르메스, 미우미우, 지방시, 베르사체, 스텔라 맥카트니 그리고 런던에서 단독으로 열린 알렉산더 맥퀸 쇼 등이 최소라를 원했다. 그러니 이제 최소라가 한 시즌에 몇 개의 쇼에 섰는지 숫자를 세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최소라와 함께 유럽 패션 대도시를 누비며 스트리트 사진가들에게 자주 찍힌 클로이 오 역시 수많은 런웨이를 걸었다. 이번 패션 위크가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10월호 <보그> 커버까지 장식한 클로이는 처음으로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까지 네 도시를 섭렵했다(클로이가 섰던 패션쇼는 그의 인스타그램에 가지런히 포스팅되어 있다). 최소라 같은 선배 모델과 달리, 클로이는 코로나 이전의 패션 위크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최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 “관객이 있든 없든 여전히 캣워킹은 긴장돼요. 그래도 일하면서 친해진 모델, 스태프들을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가웠어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낯설던 현장에 익숙해지고 있어요.”
지지 하디드, 모나 투가드와 함께 동양인 최초로 샤넬 컬렉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신현지는 여전히 자신만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이번 시즌에도 샤넬 쇼에 섰음은 물론, 밀라노에서는 킴 존스의 펜디, 페라가모, 토즈, 스포트막스 쇼에서 본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다시 돌아온 패션 위크에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기분을 느꼈어요.” 신현지의 소감은 10년간 수많은 패션쇼에 캐스팅된 슈퍼모델이자 셀러브리티인 수주의 마음과 비슷하다. “이렇게 빨리 패션 위크가 회복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베니스 출장을 다녀온 바로 다음 날 뉴욕 패션 위크 피팅 스케줄이 빽빽하게 잡힌 걸 보고 정말 놀랐죠!” 수주는 늘 그렇듯 에너지 넘치는 태도로 이번 패션 위크의 감흥을 전했다. “많은 사람과 나누는 친밀한 접촉이 오랜만이라 불안하긴 했지만, 런웨이는 모델로서 가장 즐기는 순간입니다. 다시 걷게 된 무대 그 자체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어요.”
이런 불확실한 현실에도 1만km 상공을 가르는 한국 모델이 많았다. 박희정, 김도현, 선윤미, 소유정, 윤보미 또한 4대 패션 도시에서 맹활약했다. 그 초롱초롱한 소녀들의 눈동자를 마주치는 순간 역시 수주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저에게 환한 미소로 먼저 인사하는 친구들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마저 들어요. 이렇게 멀리 와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자극을 받죠. 이 친구들을 이끌고 도움도 주고 싶습니다.”
사실 신인 모델에게 이러한 낯선 현실은 더 가혹하다. 오래 준비한 해외 진출과 촬영이 무산되거나 글로벌 만남의 장이었던 백스테이지에서는 바이러스를 의식하며 손 세정제를 사용하기 바쁘니 말이다. 식당에 가는 것조차 불안해 “마지막 쇼가 끝난 날 숙소에 돌아와 혼자 라멘과 초밥을 푸짐하게 시켜 먹었다”는 조안, “턱 마스크를 하던 스태프가 불안해 계속 손을 씻었다”는 클로이. 익숙한 듯 낯선 새로운 패션 세상이 도래했다. <보그>가 사랑하는 한국 모델들은 서울은 물론 해외 패션 도시의 런웨이를 지금도 걷고 있을 것이다. (VK)
- 에디터
- 황혜영
- 포토그래퍼
- Giuseppe Triscari
- 모델
- 조안 박
- 스타일리스트
- Magali Martin
- 메이크업
- Yoriko Fujita
- 헤어
- Kazue Deki
- 프로덕션
-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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