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모델 에이전시가 넘어야 할 장벽
구찌 뷰티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포스팅 중 하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다운증후군 모델이 발그레한 볼의 맨 얼굴에 마스카라를 바르는 사진이다. 모델은 엘리 골드스타인(Ellie Goldstein)으로, 마이테레사 및 잘란도(Zalando), 빅토리아 시크릿과도 협업한 경험이 있으며, 포용성을 지향하는 모델 에이전시 제베디 매니지먼트(Zebedee Management)의 떠오르는 스타다. 이는 2020년 장애인 포토그래퍼 데이비드 PD 하이드(David PD Hyde)가 ‘보그 페스티벌’에서 촬영한 것으로, 이 구찌 뷰티 캠페인이 제베디 매니지먼트의 첫 럭셔리 브랜드 협업이었다.
2017년 로라 존슨(Laura Johnson)과 조 프록터(Zoe Proctor) 자매가 제베디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그들은 사회 운동가이자 장애가 있는 청소년을 가르치는 공연 예술 강사로, 장애인에게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을 포착했다. 그들이 설립한 포용적 모델 에이전시 제베디는 패션과 미디어에 다양성을 옹호한다는 목적 아래 트랜스 및 논바이너리 섹슈얼 모델을 섭외해왔다. 제베디의 사업은 영국에서 먼저 시작돼 이제는 미국과 호주, 남아프리카에서 약 500명의 모델과 계약했다. 그뿐 아니라, 영국패션협회 선정 ‘Changemakers Prize’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구찌 뷰티에 이어 제베디는 펜티 뷰티 및 타미 힐피거, 에스티 로더와 협업하고 있다. 지난해 제베디의 매출은 한화로 약 16억원에 다다랐지만, 존슨은 재무적 성과보다 대표성의 확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여러 브랜드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제베디는 여전히 럭셔리 브랜드 패션 위크의 모델 부킹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존슨은 그들이 보여주는 대표성이 그릇됐다거나,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봐 우려하고 있다. 또 컬렉션이나 패션 위크가 열리는 장소가 접근성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특히 하이 스트리트와 아동복 브랜드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패션업계와 뷰티업계의 부킹도 늘었고, 이는 서서히 뷰티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코로나 시기 동안 변화가 있었어요. 지난해에 비하면 영국에서는 세 배, 미국에서는 다섯 배 이상 바빠졌습니다”라고 존슨이 말했다. 그는 특히 뉴욕 패션 위크에서 있었던 진전에 주목했는데, 바로 지속 가능한 브랜드 콜리나 스트라다(Collina Strada)와 모스키노 쇼에서 트랜스이자 휠체어에 의지하는 모델 아론 로즈 필립(Aaron Rose Philip)을 부킹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2016년 젠더 포용적 에이전시 브라더(Brother)가 설립됐고, 2014년에는 미적 기준에 도전하는 안티에이전시(Anti-Agency)가 설립되기도 했다. 슬레이 모델 매니지먼트(Slay Model Management)는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모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리고 흑인이면서 트랜스젠더이자 장애인 모델 아론 로즈 필립은 ‘변화의 촉매’를 표방하는 뉴욕의 에이전시 커뮤니티(Community)와 계약했다. 이런 에이전시의 성공은 메인스트림으로의 합류로 이어질 거라고 존슨은 말한다. “사업성을 따지며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업계를 바꾸고 도전하기 위한 거예요. 다른 에이전시가 포용적 행보를 보인다면, 그것이 곧 우리에게 이득이죠.” 그녀에게 제베디는 장애인 모델 전문 에이전시가 아니라 세계의 가장 거대한 에이전시와 나란히 서는 포용적 에이전시다. “사람들이 어디서나 장애인을 보게 돼 더 이상 장애인 모델 전문 에이전시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그렇진 못하죠. 전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장 이를 지지하는 옹호자들이 필요한 거고요.” <보그 이탈리아>의 비주얼 디렉터이자 ‘포토 보그 페스티벌’의 창시자 알레시아 글라비아노(Alessia Glaviano)가 말했다. 이런 소수자 모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대표성을 띨 수 있게 하는 업계의 전폭적 지원이 대단히 중요하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모델 브린스턴 차나(Brinston Tchana)는 2018년 제베디 매니지먼트와 계약하기 전까지 일을 찾기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한다. 존슨은 광고의 20% 정도를 장애인 모델을 기용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전체 인구를 반영하는 것이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캐스팅 디렉터가 장애인 모델을 더 많이 요청하고, 장애인이 표현해야 하는 역할에 비장애인 모델을 캐스팅하지 않아야 하며, 광고가 특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장애인 모델을 쓰는 데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한다.
런던 패션 위크에서 제베디의 모델을 처음 캐스팅한 럭셔리 브랜드는 슬로우 패션 브랜드이기도 한 티텀 존스(Teatum Jones)였다. 티텀 존스의 컬렉션에서는 기존의 캐스팅 관행을 바꾸길 원했고, 그 결과 제베디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여러 내부 팀에서 이런 포용적 캐스팅이 맞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티텀의 공동 창업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캐서린 티텀(Catherine Teatum)이 말했다. “우리의 의문점은 ‘우리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느냐’가 아니고, ‘왜 다른 브랜드는 하지 않는가’였습니다. 캐스팅한 모델의 모습이 고객층을 반영하나요?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나요?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은 확실히 없습니다.”
영국의 신발 및 액세서리 브랜드 커트 가이거(Kurt Geiger)는 2020년 눈에 잘 띄지 않는 커뮤니티를 위해 스토리를 공유하는 ‘People Empowered’라는 온고잉 캠페인을 론칭했다. 맨 처음 올린 스토리 포스팅은 제베디 매니지먼트의 아랫다리가 절단된 모델 버나뎃 헤이건스(Bernadette Hagans)가 장식했다. 이 포스팅은 전에 비해 30% 더 많은 참여율을 기록했고 세 배의 ‘좋아요’를 받았다. “소비자의 반응이 대단했어요”라고 치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레베카 파라 호클리(Rebecca Farrar Hockley)가 말했다.
외배엽 이형성증으로 머리카락을 전부 잃은 니암 우즈(Niamh Woods)는 이 캠페인에서 가발을 쓴 모습과 쓰지 않은 모습을 다 노출하기로 했다. “우리는 제품을 보여주는 옷걸이가 아니라, 의견을 가진 개인으로 모델을 대하고 있습니다.” 파라 호클리는 덧붙였다. 제베디 협업을 통해 커트 가이거는 주요 기업의 리더십이 장애인에 대한 처우를 주요 어젠다로 삼는 이니셔티브 ‘The Valuable 500’에 합류했다.
포용적 일터 컨설팅 기업 유토피아(Utopia)에서 일하는 왕구 차푸와(Wangu Chafuwa)는 이런 의견도 내놓았다. “더 다양한 대표성과 진실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합니다. 시각적 문화는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공개적 행동에 엄청난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어떤 대표성을 띤다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모델은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일에 뛰어들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는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 인물의 노출이 많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혐오 행동이나 공격이 훨씬 늘었다는 것도 지적했다.
브랜드는 이 소수자 커뮤니티의 모습을 어떤 내러티브로 보여줄지 고민할 필요도 있다. 이 주제는 최근 영화 캐스팅에 뜨거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장애나 기형이 있는 배우는 여태까지 늘 악역을 맡아왔는데, 이에 대한 관람객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시성이라는 문제를 넘어, 브랜드는 자사 캠페인을 앞세운 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풀뿌리 조직과 긴밀하게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차푸와는 주장한다. “소수자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대표성과 단체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다양성이라는 것이 상업화되면서 받아들여지게 됐죠. 이런 변화로 어떤 사람들은 힘을 얻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간의 노력이 상업화되고, 이익을 위해 착취당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대표성만큼 제베디는 브랜드에서 모델과 소통하는 방식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처음 지원하는 신인 모델은 취미나 접근성 문제와 함께 키, 신체 사이즈, 거주지 같은 사적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모델들이 제베디와 계약 단계에 들어가면, 직접 만나거나 줌을 통해 테스트 사진 촬영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모델 지원자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파악할 수 있고, 모델 일이 잘 맞을지 충분한 정보를 갖고 결정할 수 있다. “경력이 있다면 좋지만 필수는 아닙니다. 장애인이 이렇게 제약이 큰 시장에서 경험을 쌓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요.” 존슨이 말했다. 대신 제베디는 지원자의 자신감이나 디렉팅을 받아들이는 능력 등 여러 곳에 적용 가능한 스킬을 본다. 모두가 만족한다면,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다.
존슨에 따르면 제베디 모델이 필요로 하는 고려 사항은 다양하다. 피로를 쉽게 느끼는 모델은 규칙적으로 쉬는 시간이나 낮잠을 잘 공간이 필요하다. 학습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캐스팅 시간대를 미리 정확하게 정해놓고, 대기실에 홀로 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모델은 촬영장에 팝업 텐트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준비해 감각의 과부하를 예방해야 한다. 그 밖에 다른 모델들의 경우 부모나 도우미를 동반하기도 한다. “제베디는 접근성이 좋지 않은 스튜디오는 절대 예약하지 않아요”라고 소속 모델 몰리 피어스(Mollie Pearce)가 말했다. 그녀는 오른손 손가락이 없으며, 영구적으로 배변 주머니를 착용해야 하는 모델이다. 그녀는 타미 힐피거의 ‘어댑티브’ 라인 모델로 서기도 했다. 또 논바이너리 섹슈얼 모델 낸 음템부(Nan Mthembu)는 이렇게 덧붙였다. “제베디는 저를 지칭하는 정확한 표현을 콜 시트에 표시해주고, 제 백색증 때문에 빛에 민감해지거나 스타일링으로 불편함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 저와 함께 있죠. 제베디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고객이 저를 보여주기 식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걸 알 수 있어요. 비슷한 장애를 가진 모델이 정말 많거든요. 다른 에이전시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주거나, 팔릴 만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곤 했는데, 제베디는 저를 어떤 상품이라기보다 한 개인으로 대우해줍니다.”
제베디의 다음 도전은 포용적인 고객을 충분히 끌어모아, 수요를 키워 모델이 기대하는 인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제베디에서는 현재 일곱 명의 정규직 직원과 세 명의 계약직 직원이 일한다. 예약 스케줄 관리 담당자가 사내 포토그래퍼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직도 장애인 모델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목표는 대형 캠페인의 메인 모델로 세우는 겁니다. 다른 모델 에이전시에서 포용적인 움직임을 보일 부분이 많이 있어요.”
불과 4년 만에 제베디 매니지먼트는 다음과 같은 세 개 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1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매출과 장애인을 대표한다는 포괄적인 목표를 가진 500여 모델과의 계약, 대안적 외모,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섹슈얼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그것이다.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와 구찌 뷰티, 펜티 뷰티 같은 소수 뷰티 브랜드의 지원에도,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이런 대표성을 더 넓히자는 목적을 받아들이는 데 더딘 행보를 보인다. 제베디의 공동 창업자 로라 존슨은 캐스팅 디렉터와 브랜드를 포함하는 모든 업계가 광고에 다양성을 더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패션업계와 뷰티업계의 더 다양한 대표성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곧 제베디의 성공일 것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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