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팬데믹 이후 뷰티는 이렇게 변했다

2021.11.30

by 송가혜

    팬데믹 이후 뷰티는 이렇게 변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뷰티 유통의 판도마저 흔들었다. 그것은 빠르고 친절하며 편리한 뷰티 월드의 서막이다.

    침대에 누워 엄지손가락을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제공되는 세상의 도래. 럭셔리한 화장품도, 건강 진단 키트도 예외는 없다.

    “똑똑.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버선발로 나간 현관문 앞에 조그만 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세포라에서 배송된 나의 ‘최애’ 베네피트 브로우 펜슬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 그러니까 아까 1시간 전쯤에 화장실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지 않았나? 한 손으론 양치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10월 말, 뷰티 편집숍 세포라(Sephora)가 미국 주요 도시에서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드디어 ‘쿠세권’에 살고 있는 서울 친구들이 더 이상 부럽지 않게 됐다. 웬 유난이냐고? 한국의 100배에 가까운 미국 면적을 생각하면 입이 쩍 벌어질 만한 배송의 진화다. 후발 주자를 자처한 세포라 외에도 미국에선 이미 우버 이츠(Uber Eats)와 인스타카트(Instacart), 도어대시(DoorDash)가 떠오르는 화장품 유통망으로 손꼽힌다. 지난여름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가 우버 이츠와 손을 잡았다. 이제 35분이면 집에서 잠옷을 입은 채로 새로운 갈색병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고객을 위해 의식주 외의 일상을 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속도와 편리성에 대한 인식과 필요성이 높아졌으니까요.” 우버 이츠의 줄리 킴(Julie Kim)이 뷰티 사업에 힘을 더한 이유를 설명했다.

    고기나 채소, 우유처럼 신선도가 등급으로 매겨질 일 없는 뷰티업계에도 총알 배송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로켓’처럼 빠르고 ‘새벽’에 도착하는 배송의 기원은 미국 아마존(Amazon) 기업이다. 아마존은 고객의 소비 행위에 대한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이를 전 영역에 활용한다. 북미 지역에는 ‘주문 이행 센터’라고 불리는 거대 창고가 100여 개 있는데, 창고의 넓이는 100만 제곱피트(약 9만2,900㎡) 이상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 목표 지역의 위치, 재고, 주문 현황 등의 데이터를 종합해 가장 빠른 배송이 가능한 센터를 고른다(물론 인공지능의 업무!). 배송 차량, 날씨와 교통량 등을 고려한 최적의 배송 경로를 뽑아내는 데도 인공지능이 활용된다. 이 모든 의사 결정의 근간에는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가 있다.

    “모바일 기술과 IT 인프라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형태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그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세상이 되었어요. 바야흐로 ‘온디맨드(On-Demand)’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리서치 회사 피치북(Pitchbook)의 신흥 기술팀 디렉터 알렉스 프레더릭(Alex Frederick)의 전언이다. “이제 성공의 열쇠는 편리함이 차지하게 될 겁니다.”

    침대에 누워 엄지손가락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주문하는 편리함에 가려 자칫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쇼핑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냐고? 우버 이츠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샘플을 증정하고, 세포라는 당일 배송 서비스의 도입과 함께 ‘홈 챗(Home Chat)’ 기능도 되살렸다. 온라인 사이트와 모바일 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 기능은 화장품 색깔이나 향, 브랜드 선택이 고민될 때 사용하면 좋다. 가장 가까운 오프라인 매장의 뷰티 어드바이저에게 퍼스널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을 돕는다.

    미국에 사는 저널리스트 피오렐라는 올 초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느꼈다. 머릿속이 뿌옇고 기운이 떨어지면서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혹시? 수차례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음성.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다. 그러다 친구 중 하나가 종합 호르몬 검사(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 등의 수치를 체크해볼 수 있는 혈액 검사)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줬다. 팬데믹 기간에, 그것도 이렇게 아픈 몰골로 안심하고 방문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검색을 거듭하던 와중에 찾아낸 것이 바로 에벌리웰(Everlywell)의 호르몬 자가 진단 키트였다.

    집에서 혈액과 타액을 채취한 뒤 멸균 백에 넣어 우편으로 전송하는 시스템! (한국에서 유행하던 유전자 검사 키트와 비슷하다.) 키트에는 손가락 끝 채혈을 위한 란셋과 검사용 튜브, 반창고, 알코올 솜, 거즈 패드, 반송용 봉투까지 마치 OCD 환자의 서랍처럼 완벽하고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혈액 채취 과정에 시간이 꽤 소요됐지만 두 번 만에 피를 뽑아냈다. 우체통에 넣었으니 전송 완료! 자, 이제 검사 결과는 의사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스마트 앱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일 정도 지났을까? 아이패드에서 알림이 울렸다. 호르몬 검사 결과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었다. “테스토스테론 부족입니다.” 그리고 곧 이것이 만성 피로의 원인일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몇 달째 미뤄온 운동 스케줄, 불규칙한 식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허무맹랑할 정도로 쉽게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어렵고 복잡하기로 유명한 미국 보건과 보험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터! 더 놀라운 사실은 몸속 미생물 상태부터 배란 주기와 요로 감염증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자가 진단 키트로 집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최근 통계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미국 내에서 최대 2,500억 달러에 달하는 보건 관련 지출이 차츰 원격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됐다. “가정용 검사 키트는 맥박 측정기처럼 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이 될 겁니다. 우리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데 간편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고요.” 혈액 검사 키트를 생산하는 베이스(Base)의 창립자 겸 CEO 롤라 프리에고(Lola Priego)가 말을 이었다. 베이스에서 만든 신진대사 패널로 글루코스, 칼슘, 전해질 수치를 측정하면 신장, 심장, 간 기능을 체크할 수 있는데, 스트레스, 식단, 에너지, 성욕, 수면 등 건강 관련 핵심 이슈를 스스로 체크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만약 늦은 밤 넷플릭스 삼매경에 빠지는 생활 습관을 하루빨리 고치고 싶다면 이 자가 진단 키트에 도전해보길.

    미국 코네티컷에 위치한 기능 의학 센터(Center for Functional Medicine) 디렉터이자 산부인과 전문의 조엘 에반스(Joel Evans)는 개개인이 격리된 채 검사 결과를 직접 받아들이고, 처방법 역시 직접 결정함으로써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석의 미묘한 차이로 자칫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 있죠.” 또한 개인의 의학적 정보를 모으고 전달하고 저장하는 데 자가 진단 키트를 만드는 기업이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찌 되었건 소비자가 건강관리를 주도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건 분명 커다란 진전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는 것이 병이 아니라 아는 것은 곧 힘이 되기 때문. “자신의 의학 데이터를 다루는 데 능숙해지면 건강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VK)

    에디터
    송가혜
    우주연
    사진
    이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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