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의 성공 비법
에르메스가 새로 오픈한 프랑스 생뱅상드폴 공방에서, 이 브랜드를 상징하는 가방이 신입 가죽 장인에게 훈련의 토대가 된다.
패션계에는 아주 긴 생명력을 가지며, 시간을 초월해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이 있다. 그러다 보니 그것들은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해당 브랜드의 환유어(Metonym)가 된다. 에어 조던이나 ‘Love’ 팔찌가 그런 케이스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는 있지만 온전히 그런 상태에 도달하는 브랜드는 흔치 않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그 대단한 일을 두 번이나 해냈다. 바로 버킨 백과 가문의 이름을 딴 첫 주자라 할 수 있는 켈리 백이 그 주인공이다. 원래 1930년대에 디자인한 ‘쁘띠 삭 오뜨 아 크루아(Petit Sac Haut à Courroie)’ 백이 켈리 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1956년 왕위에 오른 그레이스 왕비가 그 가방으로 임신 초기 모습을 가린 사진이 찍혔고, <Life> 잡지에 공개된 것이 계기였다.
그런데 에르메스 공방에서 켈리 백은 웨이팅 리스트의 상징이 아니라 교육용이다. 보통 신입 가죽 장인이 처음으로 제작하는 이 가방은 가죽 제품 101로 불린다. “켈리 백은 수완이나 노하우 측면에서 가장 복잡한 가방 중 하나예요. 말안장과 하니스 제작 전통을 기반으로 하죠.” 에르메스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관리하는 에르메스 인터내셔널의 감사 및 조직 개발 총괄 부사장 올리비에 푸르니에(Olivier Fournier)가 말했다. 빳빳한 톱 플랩과 어깨끈, 숙녀다운 싱글 핸들(양손 핸들의 버킨과 가장 쉽게 구별된다)이 특징인 이 가방을 완성하려면 가죽 조각 36장과 여러 개의 금속 부품이 필요하며 장인 한 명이 15~20시간 정도 작업해야 한다. 켈리 백 제작에 능숙하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에르메스 가방 디자인을 마스터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에르메스는 거의 200년간 이어진 전통을 계승해 팽팽하고 탄력적인 싱글 스티치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독일 태생의 마구 제작자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1837년 파리에 설립한 에르메스에서 바느질 한 땀이 브랜드 역사의 한 문장을 의미한다면, 제작 공방은 문장론을 지도하는 문법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만 51곳이 있는 에르메스 아틀리에는 여성복, 향수, 신발, 보석, 남성복, 실크 또는 홈 퍼니싱을 각각 전담하며, 규격과 기술을 전수하고 보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기업이 지난 9월 보르도 변두리 생뱅상드폴(Saint-Vincent-de-Paul)의 목가적인 마을에 최근 설립한 가죽 공방 혹은 피혁 공장은 어느 곳보다 공예 기술과 전통유산을 확실하게 통합한다. 시내에 있거나 포도 덩굴로 가득한 포도 산지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공방에서는 장인 180명(트레이닝과 채용 과정이 완료되면 그 숫자는 250명 이상으로 늘 것이다)이 프랑스에서만 오로지 제작되는 에르메스 시그니처 가방 중 하나에 사용할 부드러운 가죽을 고르고, 자르고, 완벽하게 다듬고, 바느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15년 에르메스에 합류해 생뱅상드폴 가죽 공방에서 일하는 장인 에밀리(Emilie)는 “가방을 만드는 것은 시간과 기술 면에서 힘든 일입니다. 가방 하나하나에 저희의 혼을 담아내죠”라고 말했다.
그 가죽 공방은 티에리 에르메스의 외아들 샤를 에밀(Charles Émile)이 1880년 에르메스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던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24 Rue du Faubourg Saint-Honoré)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파리 외곽에는 100여 년 후인 1989년 리옹에 처음 오픈했고, 1992년 팡탱(Pantin)에 생겼다(모든 브랜드가 자기 참조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에르메스의 방식은 특별히 순환적이다.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는 팡탱 아틀리에에서 착용하던 앞치마를 모티브로 웨이스트 라인을 고안해 2019 S/S 컬렉션에서 판초를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원하는 품질과 내구성을 가죽 제품에서 얻기 위해 이런 장인의 손을 거치는 제작 방법이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투철한 장인 정신으로 제품을 만들죠.” 푸르니에가 설명했다. 에르메스의 사훈 ‘수선할 수 있어야 명품이다’(전임 CEO 로베르 뒤마 에르메스(Robert Dumas-Hermès)가 정했다) 역시 공방에서 되살아난다. 실제로 에르메스의 전 세계 수선 전문 매장 15곳이 수선하는 제품은 낡은 어깨끈부터 수십 년 된 말안장에 이르기까지 연간 최대 12만 점에 이른다. 간혹 30년 전에 만들었던 핸드백을 같은 장인이 수선하는 경우도 있다.
“장인 정신은 기술 전수를 기반으로 합니다.” 푸르니에가 말했다. 새 공방이 오픈하면서 그 패션 하우스에 소속된 마스터 트레이너 80명(에르메스에서 8년 정도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자격)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세대의 장인들을 가르친다. 그것은 굉장히 힘든 교육법으로, 18개월에 걸쳐 2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실습 과정이다. 이때 신입 장인들은 지정 멘토 200명 중 한 명의 감독을 받으며 새롭게 배운 것들을 활용하게 된다.
생뱅상드폴에서 각각의 장인은(대다수가 직업학교와 직업소개소를 통해 현지에서 고용되며, 종종 가죽 세공을 많이 해보지 않은 경우도 있다) 12개 이상의 도구를 쓴다. 하지만 에르메스 오브제에 계승되는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주의는 자신들의 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곧 배우게 된다. 아침이면 그들이 발가락을 풀고, 팔을 흔들고,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죽 작업 수업이라기보다 모던 댄스 클래스에 더 가까워 보인다. “몸짓 하나하나가 중요해요”라고 에밀리가 말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계속 집중해야 합니다.” 골반 각도, 상체 기울기, 손의 압박 등 모든 것이 최종 미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전통을 철저히 고수함에도 불구하고 에르메스는 지난가을 굉장히 현대적인 소재인 균사체(Mycelium) 가죽을 도입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 기업 마이코 웍스(MycoWorks)와 협력해 개발했고, 개발자들이 ‘실바니아(Sylvania)’라 이름 붙인 ‘파인 마이셀리움(Fine Mycelium)’은 소가 아니라 버섯 균사체를 가죽처럼 가공한 것이다. 푸르니에의 주장에 따르면 균사체 가죽의 품질과 내구성이 기존 가죽과 동일한 높은 기준을 충족하며, 혁신이라는 에르메스의 오랜 유산을 이어간다. 결국 티에리의 손자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Émile-Maurice Hermès)가 1922년 핸드백에 지퍼를 도입한 것과 같은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수작업으로 그리고 전통을 계승해 일하는 것 때문에 신기술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믿어요.” 푸르니에가 말했다. “이 두 가지는 양립하거든요.” 그는 또 “신소재로 작업하는 것은 창조의 근사한 기회가 됩니다”라고 덧붙였다(이 소재를 사용해 에르메스 공방에서 제작한 빅토리아 백을 2021 F/W 컬렉션에 출시했다).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의 말처럼, 기존 가죽이 현실과의 대결이라면, 균사체 가죽은 변화하는 시대와의 대결이다. “에르메스에도 성공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에요”라고 푸르니에가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스타일의 (상징적인 켈리 백도 포함된다) 성공에도 수년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의 기본은 창조의 자유입니다.” (VK)
- 글
- ALEXIS CHEUNG
- 사진
- CYRIL ZANNETTA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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