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품을 품은 프랑스의 ‘예술의 전당’
베르나르 아르노와 프랑수아 피노의 예술품을 품은, 그야말로 ‘예술의 전당’.
최근 수십 년간 프랑스 패션계와 자선 활동가 최상위층에서는 큰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72세)나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 85세)는 이런 상황과 거리가 먼 듯하다. 두 사람은 각각 럭셔리 브랜드를 소유한 대기업 LVMH와 케어링을 이끄는 억만장자이며 최고의 수집가다. 또 수년간 최상류층 무대에서 대립해왔다. 가장 유명한 일화를 꼽자면, 2001년 피노의 PPR(지금은 케어링)이 톰 포드가 이끄는 구찌 인수전에서 아르노를 이긴 것이다. 그런 대립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교양 넘치는 자존심 싸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두 억만장자는 노트르담 성당 재건에 수억 유로에 상당하는 현물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아르노 가문은 2억1,800만 달러 그리고 피노는 2003년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 프랑수아 앙리(François Henri)와 합산해 1억9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러나 패션 하우스와 자선 기부를 둘러싼 경쟁은 두 사람의 미술관을 둘러싼 경쟁에 비하면 다소 시들해진 편이다. 아르노(모두 그를 ‘미스터 아르노’라 부른다)는 2014년 불로뉴 숲 지역에 루이 비통 재단을 설립했고, 프랭크 게리가 구상한 이 재단 건축물은 은빛 달걀 껍데기 조각처럼 보이는 반짝이는 더미가 정교하게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팬데믹 기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다가 불과 몇 주 전 ‘모로조프 컬렉션(Morozov Collection)’ 전시를 시작으로 다시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이 전시는 한 세기 동안 겪은 전쟁과 혁명으로 흩어진 두 형제의 컬렉션 속 인상파 걸작을 미스터 아르노(블라디미르 푸틴이 살짝 도와줬다)가 모아놓은 것이다.
그다음 지난 5월 피노(모두들 그를 ‘미스터 피노’라 부른다)는 파리 도심 레알 지구에 그의 사립 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를 개관했다. 파리 상업 거래소였던 그곳에 1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안도 다다오의 진두지휘로 리노베이션을 단행했다. 그리고 미스터 피노의 미술관은 100년 만에 처음으로 마티스와 피카소 작품을 지금 당장 다시 합쳐놓지는 못하고 있지만, 피노 회장이 소장한 걸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의 독창적인 작품 30점을 위한 전시실을 따로 설치함으로써 이 작가의 전시회 중 유럽에서는 역대 최고 규모를 과시했다.
두 미술관은 그 자체로 21세기 프랑스 문화경관의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하지만 타이밍이 꼬이고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팬데믹으로 인해, 이 두 미술관은 동시에 몇 주 동안만 일반인에게 문을 열고 있다. 국제 현대미술 박람회(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FIAC(피악)으로 알려짐)가 얼마 전 파리에서 개최되면서 관람객이 이 두 박물관을 함께 둘러보며 마음속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트계의 거물 수집가 두 명이 프랑스인이고, 둘 다 예술에 깊이 있게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 그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도시에 미술관을 건립했다는 점. 그런 점이 모두 정말 놀랍고도 흥미로워요.” 2020년부터 FIAC 총감독을 맡고 있는 제니퍼 플레이(Jennifer Flay)가 말했다. “그것은 굉장히 근사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을 이 도시로 이끄는 경이로운 일이죠.”
플레이는 FIAC의 실내 깊숙이 자리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올해 이 박람회는 빛으로 가득한 그랑 팔레의 기존 전시 공간이 아닌, 그랑 팔레에 임시로 마련된 전시 공간 그랑 팔레 에페메르(Grand Palais Éphémère)에서 개최됐다. 샹젤리제 거리에 1897년 철재 및 유리로 건축된 그랑 팔레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 앞서 외부 보수 공사를 위해 전시회를 개최할 이 임시 공간을 마련했다. 플레이는 전시회 출품자들이 웅장한 기존 공간을 통행 가능한 복도가 설치된 좀 더 전형적인 아트 페어 환경으로 바꿔놓은 이 새로운 구조물을 대단히 반겼다고 말하면서 매우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분명히 그곳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했다. 컬렉터들이 하우저 & 워스(Hauser & Wirth) 부스에서 조지 콘도(George Condo)와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새 회화 작품을 각각 155만 달러와 85만 달러에 매입했다. 아마 박람회 첫날인 수요일 가장 높은 거래 가격을 기록한 작품은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 부스에서 280만 달러에 팔린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의 ‘Star Grass(1963)’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행사가 열리기 몇 주 전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과 아트 바젤(Art Basel)이 열광적으로 치러졌기에, 파리에서 이 아트 페어가 진행될 무렵 어느 정도 아트 페어 피로(세계 곳곳에서 아트 페어가 활발히 개최됨에 따라 관계자들이 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여러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프리즈 아트 페어에서 반향을 일으킨 뒤라, FIAC의 매출에 약간 실망하게 되죠. 파리는 페어를 치르기에 정말 근사한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메이저 페어에 비해 FIAC에서 비교적 저조한 실적을 거두는 편이었죠.”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가 이 페어 첫날 오후 언론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밝혔다. 루이 비통 재단 이사 수잔 파제(Suzanne Pagé)는 이 아트 페어의 예측 불허 변화로부터 이 재단 미술관을 구분 지으려 시도했다고 전화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신에게 (또는 럭셔리 제품 소비자의 지속적 헌신에) 이 사립 미술관 건립을 감사해야 할 더 많은 이유가 있다. 그녀에 따르면 오히려 이 미술관은 세심한 컬렉팅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프로그래밍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미스터 아르노의 결정이 아티스트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줍니다.” 파제가 말했다. “우리는 박물관입니다. 매입한 작품을 절대 팔지 않는 점에서 그렇죠. 우리는 작품을 판매하지 않아요. 그래서 포부 넘치고 감동을 주며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는 그런 미술관이 되고자 합니다.”
좀 더 냉소적인 사람이 들었다면 이 말이 미스터 피노를 살짝 겨냥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아르테미스 그룹(Groupe Artémis)을 통해 1998년 경매 하우스 크리스티를 인수했고, 이 회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피노는 2016년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의 ‘Nickelodeon(2008)’의 판매를 그 경매 하우스에 위탁했고, 작품은 추정치보다 높은 약 840만 달러에 낙찰됐다. 그녀는 미스터 아르노가 역사를 탐구하고 대표적인 컨템퍼러리 작가의 작품을 즐겨 수집한다고 강조했다. 부르스에 대한 생각을 질문하자 그녀는 굉장히 완곡하게 대답했다. “그곳도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우리 두 미술관은 예술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지녔죠.”
미스터 피노는 자신의 위치에서 열정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가 이 기사의 인터뷰에 응하지는 않았지만, 올 초 <뉴욕 타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일의 걸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인류가 모두 사라질 정도로 우리 모두가 멍청하지는 않죠.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 억만장자는 미래의 걸작을 어떻게 매입하고 있을까? 파제의 카운터파트인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이사 장 자크 아야공(Jean-Jacques Aillagon)이 처음에는 이메일을 통한 질의응답에 동의했다. 하지만 답장이 올 무렵 언론 대리인이 “피노 컬렉션은 그 컬렉션의 작품 매입에 대해 외부와 인터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노 컬렉션 대표가 예술 시장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도 개진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렇지만 부르스를 두루 돌며 관람하다 보니 미스터 피노의 철두철미한 컬렉팅 전략 그 이상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피노 컬렉션이 소장한 1만 점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작품의 상당수가 지난 10년간 페어, 갤러리, 경매 하우스에서 매입한 것들이었다.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이 자신의 딜러 폴라 쿠퍼(Paula Cooper)를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린 거대한 초상화는 피노가 2012년 아트 바젤의 아트 언리미티드(Art Basel’s Art Unlimited)에 설치된 쿠퍼(Cooper) 부스에서 약 300만 달러에 매입한 작품이다. 피노는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의 ‘Untitled – Two Eggs Over Medium, Sausage, Hash Browns, Whole Wheat Toast(2017)’를 프리즈 런던에 설치된 즈워너 부스에서, 2019년 아트 바젤에 설치된 즈워너 부스에서 마샬의 ‘Laundry Man(2019)’을 350만 달러에 매입했다. 소유주가 채무 청산을 위해 억지로 경매에 내놓기 전까지 전설적인 베를린 술집에 수십 년간 걸려 있던 마르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의 ‘Paris Bar’는 크리스티 런던에서 2009년 약 370만 달러에 낙찰됐다. 부르스의 첫 전시가 열린 후에야 비로소 키펜베르거의 걸작품 낙찰자가 미스터 피노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매입하게 될 것이다. FIAC은 유럽에서 한 달 간격으로 열리는 세 번째 아트 페어일지라도, 이 두 남자는 이 박람회의 개막식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페어가 수요일에 VIP들을 대상으로 열리자, 미스터 피노와 함께 일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아트 어드바이저 필립 세갈로(Philippe Ségalot)가 최고의 작품을 자랑하는 여러 부스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리고 파제 역시 이틀 연속 페어를 둘러봤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물론이죠. 당연해요! 저희는 FIAC에서 작품을 매입하고 있으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어제 아침에도 거기 다녀왔죠. 우리는 늘 그 아트 페어에서 작품을 매입합니다. 영향력은 있지만 덜 알려진 아티스트의 작품을 매입하죠. 작품 매입처를 가리지 않아요. 전 세계 어디에서든 작품을 매입합니다.” (VK)
- 글
- NATE FREEMAN
- 삽화
- QUINTON MCMI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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