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플루이드 패션 디자이너, 해리스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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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플루이드 패션 디자이너, 해리스 리드

2022-01-13T01:18:27+00:00 2022.01.13|

해리스 리드는 해리 스타일스와 솔란지 노울스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맘껏 활용하도록 어떻게 도왔을까? 이 어마어마한 신인 디자이너의 일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남자 혹은 남성으로 식별되는 존재를 위한 해리스 리드의 독특한 노출 의상.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린 초상화 중 18세기 작가이자 행정가였던 자크 카조트(Jacques Cazotte)만큼 즐겁고 자신감 넘치며 확고해 보이는 인물은 거의 없다. 장밥티스트 페로노(Jean-Baptiste Perronneau)가 그린 카조트는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흰 가발을 쓰고 있지만, 자세는 젊은이답고 눈빛은 반짝거리며 미소를 숨기지 않는다. 그의 복장은 눈에 띄게 화려하다. 금단추로 멋을 부린 나팔 모양 소매의 장밋빛 실크 플러시 재킷과 여기에 잘 어울리는 조끼를 매치했다. 또 옷깃부터 소맷동까지 이어지는 풍성한 화이트 레이스가 돋보이며 목 부분에 맨 블랙 실크 밴드로 멋을 더했다.

올봄, 이 초상화는 힘과 예술성, 성 정체성의 전달에 남성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하는 전시 <남성 패션: 남성복의 예술(Fashioning Masculinities: The Art of Menswear)>의 일부가 되어 V&A 박물관에 걸린다. 이 작품은 25세 영국계 미국인 디자이너 해리스 리드(Harris Reed)의 앙상블 옆에 자리할 것이다. 탁한 핑크의 반짝이는 폴리에스테르로 제작한 의상은 윗부분을 풍성하게 부풀린 소매가 점차 가늘어지다 손목에서 장식용 타이로 마무리한 블라우스와 가랑이 부분과 허벅지를 스치며 지나가는 하이웨이스트 벨 보텀 팬츠로 이루어진다. V&A 박물관의 수석 패션 큐레이터 클레어 윌콕스(Claire Wilcox)가 최근 내게 리드의 작품을 전시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작품은 완전히 다른 역사적 어우러짐을 이뤄내고 있어요. 리드는 가면무도회 의상 같은 분위기를 담아내면서도 굉장히 패셔너블한 의상을 만들었죠.”

페로노의 초상화와 리드의 의상을 나란히 배치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컬러와 장식의 젠더 관련 가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준다. 카조트 시대에 핑크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멋스러운 색상이었다. 레이스 역시 여성스러움뿐 아니라 부유함과 취향의 표식이었다. 카조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던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프랑스식 화려함을 대체해 천연 색감의 울로 만든 영국식 테일러링이 유럽의 보편적인 남성복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것을 기점으로 현재 전 세계에 퍼진 거무칙칙한 스타일이 형성됐다.

리드의 그 핑크 작품은 그의 2017년 컬렉션에 포함된 것이다. 당시 그는 알렉산더 맥퀸과 존 갈리아노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재학 중이었다. 컬렉션에는 옷이 세 벌뿐이었다. 그렇지만 한 벌 한 벌이 드라마틱했다. 블랙 마타도르 팬츠와 프런트리스 블랙 자보(Jabot, 주름 장식) 재킷, 호박색 메탈릭 팬츠와 탈착 가능한 소매가 달린 플라운스 톱, 프릴 뷔스티에 재킷을 포함한 화이트 앙상블과 자전거 바퀴만 한 챙이 달린 모자로 구성됐다. 리드는 에디터들에게 자신이 18세기 귀족 소년에 대해 상상한 이야기로부터 화이트 의상의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야기 속 소년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쫓겨난 후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 뒤에 기거하며 의상으로 분장놀이를 했다고 한다. 컬렉션을 알리기 위해 촬영된 몇 장의 폴라로이드에서 키 크고 마른 리드가 실버 하이힐 부츠를 신고 직접 모델이 되어 그 의상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 윤곽을 따라 늘어진 머리는 프랑스혁명 이전의 구체제(Ancien Régime) 귀족처럼 하얀 폭포가 흘러내리는 모양새였다.

리드는 2020년 봄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고, 모델로 일해 번 돈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하지만 제품 생산은 아직까지 굉장히 한정적이다. 지금까지 제작된 옷을 다 합해도 옷걸이 하나를 채울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부피가 크지 않다면. 그렇지만 패션 전문가들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으며, 이 젊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에 재정 지원 방식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학생이던 시절, 그는 솔란지 노울스(Solange Knowles)의 스타일리스트로부터 유망한 인재임을 인정받았다. 리드가 만든 재킷과 화이트 앙상블을 입은 솔란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찍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Harry Lambert)가 리드에게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의 투어용 의상을 의뢰했다. 그 의상 중 하나가 소셜 미디어에서 입소문이 난 ‘부풀고 주름진 소매와 부스스한 프릴 깃이 달린 태피터 블루종’이었다. 상의에는 작은 블랙 조끼를, 하의는 펄럭이는 와이드 플레어 팬츠를 매치했다. 그 옷을 입은 모습은 새벽에 비틀거리며 사창가를 나오는 백작의 말썽꾸러기 아들내미 같았다. “해리스의 옷을 입는 것은 재미를 즐기는 일입니다.” 스타일스가 이메일로 내게 말했다. “온갖 프릴이 거기에 다 모여 있어요. 그리고 온몸으로 압도적인 해방감을 느끼게 되죠.”

지난해 가을 <보그>는 리드에게 스타일스의 화보 촬영용 의상을 부탁했다. 그는 과장되게 떡 벌어진 어깨와 돛만큼 넓은 바짓가랑이가 특징인 블랙 수트를 탄생시켰다. 그 작품을 착용한 스타일스의 허리 부분에는 블랙 크리놀린 프레임에 화이트 튤과 푸크시아 리본을 장식해놓은 무도회용 드레스가 활짝 피어 있었다. 이 작품은 리드가 지난해 2월 런던 패션 위크 직전에 선보인 감성을 간략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런던 패션 위크에서 그가 발표한 컬렉션은 컬러 스프레이로 물들인 튤로 엉덩이, 어깨, 옆구리 부분을 장식한 남성 수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리드의 경력은 짧다. 하지만 심미성은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전통적인 남성적 형태, 이를테면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턱시도가 떠오르는 재킷의 어깨 스타일과 20세기 중반 영국계 미국인 디자이너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의 드레스가 떠오르는 겹겹이 장식된 조각 같은 치마와 합쳐놓는 것을 좋아한다. 리드가 데미 꾸뛰르(Demi Couture, 오뜨 꾸뛰르와 레디 투 웨어의 중간 개념)라 부르고, 어쩔 수 없이 비교적 저렴한 재료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만든 그의 작품은 종종 시그니처 액세서리로 마무리된다. 그가 <보그>에 밝힌 바에 따르면, 2020년 컬렉션은 빅토리아 시대 귀족 헨리 파젯(Henry Paget)의 호화로운 옷차림에서 부분적인 영감을 받았다. 리드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아카이브를 살펴보다가 헨리 파젯의 역사를 찾아냈다. 보석을 단 머리 장식과 모피를 좋아했던 파젯은 1898년 23세에 5대 앵글시(Anglesey) 후작이 됐고, 그 후 가문의 예배당을 극장으로 개조해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을 상영하며 직접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리드에 따르면 파젯은 부끄러울 것 없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았다고 한다.

비평가들은 리드의 컬렉션을 칭송했다. 덕분에 그는 즉각적으로 상업적 모험을 하게 됐다. 그 모험 중 하나가 맥(M·A·C) 협업으로 탄생된 코스메틱 컬렉션이다. 특히 눈, 뺨, 입술의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는 색조 화장품이 인상적이었다. 홍보 영상에서 리드는 자신의 뺨에 루즈를 바르고, 금빛 손톱을 과시하며, 영감을 읊었다. “글램 록과 낭만주의, 소년과 소녀,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 그저 길을 건너고 옛 세상과 새로운 세상을 믹스하는 모든 사람들.” 핑크 실크를 배경으로, 시스루 핑크 레이스 블라우스와 하이웨이스트 아이보리 바지를 입은 그는 자크 카조트의 의기양양한 기세(Élan)를 물씬 풍겼다. 자신의 문화적 영향력을 음미하면서 매력적인 의상에서도 굉장히 편안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지난해 5월 런던 킹스크로스 역 부근의 스탠더드 호텔에서 리드를 처음 만났다. 팬데믹으로 이런저런 제한 조치 중이었기에 호텔 로비와 바가 한산했다. 하지만 리드는 사람들로 빼곡한 곳에 있어도 찾기 쉬웠을 것이다. 즐겨 신는 플랫폼 부츠를 신지 않아도 키가 190cm가 넘는다. 게다가 치마인가 싶은 블랙 플로잉 팬츠와 탄력 있는 주름으로 뒤덮인 블랙 재킷을 입고 있었다. 원래 머리 색은 갈색이 섞인 더티 블론드지만, 달콤한 적갈색으로 염색해 어깨 주변으로 굽이굽이 내려앉아 있었다. 팔다리는 비현실으로 길고 호리호리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드로잉 패드에다 적절하고 대담한 몇 개의 선으로 그린 포부 넘치는 스케치가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리드는 이 호텔 총괄 매니저 엘리 자파리(Elli Jafari)를 저녁 식사에서 우연히 만났고, 이후 지난 몇 달 동안 스탠더드 호텔 객실을 공짜로 사용하면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리드는 “그녀가 ‘계획이 뭐죠?’라고 물었고, 저는 공간을 찾고 있다고 말했죠”라며 그때를 떠올렸다. 팬데믹이 없었다면, 그는 갓 졸업한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스튜디오를 임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런 준비를 어렵게 만들었다. 스튜디오를 가진 친구들은 함께 사용하는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일 때마다 격리돼야 했다. 리드는 자파리에 대해 “그녀는 ‘달링, 그냥 호텔로 들어오세요!’라고 말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리드는 스탠더드 호텔의 공식 거주 디자이너가 됐고, 호텔의 빈 공간에서 회의를 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 그는 호텔 웹 사이트에 진저 마르가리타를 추천했다. 또 위층에 소규모 디자인 팀을 꾸려놓고, 배의 선실만큼 조밀한 몇몇 호텔 객실에 직원을 분산시켰다. “121호에는 모자를, 124호에는 부츠를 갖다놓았죠.” 리드가 내게 말했다. 호텔의 길고 좁은 복도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쉽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조건 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어느 직원과 리드가 60미터짜리 튤을 양 끝에서부터 손으로 주름을 잡으며 중간에서 만나기도 했다. 스탠더드 호텔 직원들은 그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었다. 리드는 “저 혼자 호텔에 살고 있어요. 놀랍기도 하지만 섬뜩하기도 해요.” 리드가 말했다. 그가 밤늦게 외출을 시도했을 때 “차도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경험은 그가 만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이야기 속 초현실적 성취 같은 느낌이었다.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학생들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을 통해 독창성을 찾는 패션계에 정통한 관객에게 자신들의 가장 야심 찬 아이디어를 선보일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알렉산더 맥퀸이 1992년 ‘Jack the Ripper Stalks His Victims’라는 작품으로 졸업했을 때 영향력 있는 스타일리스트 이사벨라 블로우가 그의 컬렉션 전체를 구매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팬데믹으로 현장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패브릭과 액세서리 공급업체는 휴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리드는 자신이 쓸 여성 모자 제작용 접착제를 구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핀즈베리 파크의 어느 철물점에서 구매한 강력 접착제를 사용해야 했다. 그는 모자 디자인 중 하나를 디지털 이미지로 겹칠 수 있는 인스타그램 필터로 개조했고, 까꿍 놀이하듯 가상의 챙 밑에서 입을 쑥 내밀고 셀카를 촬영한 모델 카이아 거버 같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 디자인을 여기저기 알릴 수 있었다.

리드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40만 명에 이르며, 그의 계정은 자신의 작품을 주제로 한 잡지 화보(<보그 스페인> <마리 끌레르 차이나>) 또는 팝 스타 올리 알렉산더(Olly Alexander)가 5월 브릿 어워드에서 공연할 때 입은 레이스와 크리스털로 만든 홀터 톱, 플레어 등 빛나는 협업의 화려한 사진으로 가득하다. 인스타그램은 스폰서와 다른 브랜드의 현금 투입에 의존하는 리드의 초기 사업 모델에서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다. 그는 “돈이 필요하다면 저는 누군가에 DM을 보내 ‘협업하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말할 거예요”라고 내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을 형식주의(Tokenism)에 빠트리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대형 브랜드가 영국의 젊은 퀴어 디자이너와 파트너십을 맺어서 엄청난 관심을 얻을 뿐 아니라 저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을 왜 마다하겠어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리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업로드한다. 할로윈에 깃털이 부착된 머리 장식과 스팽글 레오타드로 한껏 꾸미고 포즈를 취한 사진, 8월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즐기며 친구들과 함께 춤추는 사진 등을 포스팅하는 것이다. 스탠더드 호텔과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은 가득 찬 희망과 생략에 의해 왜곡되긴 했지만 일종의 커뮤니티를 제공해줬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을 매일 보죠. 그들 중 몇몇은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에요”라고 리드가 말했다. “그러나 자신이 정당하다거나, 그 선택을 한 것이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가끔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죠.”

우리가 만난 아침, 리드는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사무실로부터 메시지로 확증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2021 멧 갈라에 그를 초청한 것이다. “세상에 그런 전화를 받다니요!” 리드가 말하면서, 그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늘 꿈꿔오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2020년에는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윈투어는 독특한 협업을 제안했다. 리드가 자신의 의상은 물론 돌체앤가바나의 꾸뛰르 라인 알타 모다를 대표해 참석하는 또 다른 게스트의 옷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리드는 그 제안을 받은 순간에는 수락하지 않았다. 돌체앤가바나는 LGBTQ의 인권을 비롯해 리드가 중히 여기는 사안에 관한 복잡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이 브랜드의 공동 대표 도메니코 돌체가 이탈리아의 어느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시험관 수정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인위적’이라고 말한 후 엘튼 존은 그 브랜드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또 다른 공동 대표 스테파노 가바나와 함께 동성애자의 입양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리드는 자신과 돌체앤가바나에 모두 좋은 기회임을 포착했다. “한편으로 이번 기회는 윈윈하는 다음 장을 열기 위한 정말 좋은 순간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통해, 제 메시지의 성과가 최대치에 이르게 되죠. 1미터당 5파운드짜리 패브릭과 스프레이 페인트로 컬렉션을 준비하던 제가 알타 모다 꾸뛰르를 통해 정말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이미 다른 몇 가지 의뢰를 수락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더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프로젝트 중에는 올리 알렉산더의 앨범 커버에 사용될 인어 꼬리도 있었다. 그 작품은 <보그> 편집장과 통화하던 그날 오후에 바로 작업할 계획이었다. 얼마 후 그는 멧 갈라 의뢰를 수락했다. 그러다 자신의 호텔 객실 스튜디오에서 목욕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욕실에 문이 없어요. 그래서 그 호텔 방과 진행 중인 모든 일을 하염없이 쳐다봤죠. 정신 건강에 그다지 좋지는 않겠지만.”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톰 포드는 하루에 네 번씩 목욕을 하곤 했대요. 저는 그 내용을 접하면서 그것이야말로 화려함의 초절정이라고 생각하던 기억이 나요.”

리드는 1996년 LA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아버지 닉(Nick)은 탤런트 양성 기관 I.C.M.의 에이전트로 일했다. 현재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는 닉은 지브롤터의 군사 기지에서 태어났고, 1980년대 초 영국 해군에 복무했다. 해리스 리드가 말했다. “가족 중에 해군에 복무하지 않은 사람은 제가 유일하죠.” 어머니 리넷 리드(Lynette Reed)는 미국인으로 1980년대 뉴욕에서 모델로 일했다. 웨스트 코스트로 이주한 그녀는 향초 사업을 시작해 부티크를 열었다. 디자인에 대한 해리스의 안목은 어린 시절부터 분명했다.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집 소품을 재배치하곤 했어요.” 닉이 내게 말했다. “베개, 쿠션, 담요를 옮겼죠. 그리고 ‘아빠, 이 의자 여기에다 옮겨줄 수 있어?’라고 말했죠.” 한번은 리넷이 네 살배기 해리스를 그녀의 친구 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창문 장식을 뚫어지게 봤다. “저를 올려다보더니 ‘엄마, 커튼이 정말 별로예요’라고 말하더군요.“ 리넷이 내게 말했다. “저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단다’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네, 하지만 저런 취향은 별로야’라고 말했죠.”

해리스는 여러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전통적인 사립학교였던 첫 번째 학교에서 그는 선생님들로부터 보충수업을 강요받았고, 부모는 그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그다음에는 발도르프(Waldorf)식 학교에 입학했다. 창의성을 기르도록 도왔지만 9~10세임에도 글을 읽지 못하는 상태를 바꿔놓진 못했다. 그는 뒤늦게 심각한 난독증 판정을 받았다. 리드 부부는 가정교사를 고용했고 읽기와 쓰기 능력 향상을 위해 독특한 전략을 강구했다. 그중에는 <WWD> 구독도 포함됐다. 이 방법은 해리스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최신 스타일뿐 아니라 패션계 활동에 관심을 갖게 했다. 아홉 살 때 그는 엄마에게 언젠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될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리넷이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그 아이에게 ‘와! 좋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언제든 너만의 작은 의류 브랜드를 만들 수도 있단다’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 애가 저를 보더니 ‘엄마, 왜 제 꿈을 짓밟으려고 해요?’라고 말하더군요.”

리드 부부는 해리스가 열 살 되던 해 결국 이혼했다. 리드는 곧 엄마와 여동생(지금은 애리조나주립대학 졸업생)
이사벨과 함께 피닉스로 이사했다. “그때 저다운 모습, 제 성적 취향이 드러났죠. 그리고 옷을 통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드가 말했다. 그곳의 사회적 분위기는 캘리포니아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핑크 폴로 셔츠를 입고 놀이터로 나갔더니,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던 게 생각나요. 패션이 지닌 힘이 아주 맘에 들어요. 당신이 입은 옷이 운동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파워가 좋아요.” 그런 시선은 종종 부정적이기도 했다. 리넷은 이렇게 말했다. “아들에게는 친구가 없었어요. 너무 특이하니까요. 일부 학부모는 학교 교장에게 자신의 아이들과 제 아이가 다른 반이 되게 해달라고 요구했죠.” 가족은 피닉스에서 다시 LA, 그다음 오리건주 유진으로 이사했다. 그러고도 또 많이 옮겨 다녔다. 리넷의 기업가적 행운은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한때 그녀는 아이들과 향수 제작 창고에서 지내며 생활비를 아껴야 했다. 이렇게 잦은 이사로 점철된 일상에 대응해 리드는 미래에 생길 친구들에게 짧은 자기소개 문구를 터득해뒀다. “저는 정말 짧은 시간에 홍보하는 것에 엄청 익숙해졌어요”라고 리드는 말했다. “안녕, 나는 해리스 리드야. 나는 열두 살이야. 나는 게이야.” 이것이 그의 짧은 소개 문구였다. 그러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의 안전이 걱정되더라고요. 하지만 그의 미래는 단 한 번도 걱정해본 적 없어요.”

리드의 디자인은 빅토리아 시대 귀족 헨리 파젯의 화려한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리드에 따르면 파젯은 “부끄러움 없이 진정한 자아로 살았던 인물”이다.

리드의 옷은 종종 시그니처 액세서리로 마무리된다. 기이할 정도로 큰 모자나 머리 장식이 대표적인 예다.

학교가 끝나면 리드는 양장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불과 아홉 살의 나이에 편집장의 칭찬을 들었다. 아빠의 인맥을 통해 그는 <Battlestar Galactica>의 스타 제이미 뱀버(Jamie Bamber)를 다룬 기사의 화보 촬영에 입을 섹시한 레드 드레스의 디자인을 의뢰받기도 했다. 리드가 열두 살쯤 됐을 때,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쇼핑하러 갔지만 남자 아동복 코너에서는 원하는 것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친절한 영업 사원이 여성복 코너를 권했다. 그는 젠더와 상관없이 옷을 골랐다. 또 요즘 말하는 패션계 ‘인싸’답게 브랜드와 트렌드를 통달하게 됐다. 리넷에 따르면 리드가 한번은 노드스트롬 핸드백 카운터에서 멈추더니 구찌 백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직원이 몸을 숙여 그에게 핸드백 하나를 건넸죠. 그랬더니 그 아이가 ‘신상이 아니네요’라고 말했어요.” 맨해튼에서 패션 홍보 담당자로 활동하는 켈리 커트론(Kelly Cutrone)을 비롯한 이 집안의 친구들 또한 리드가 자신의 길을 찾도록 도왔다. 14세였던 리드는 뉴욕 패션 위크 동안 커트론의 인턴으로 일하며 소호 사무실 위층에 자리한 그녀의 아파트 소파에서 잤다. “그때부터 키가 꽤 컸죠.” 커트론이 내게 말했다. “제가 ‘해리스, 어디 있니?’ 그러면 누군가가 ‘이런, 제가 걔를 콘데 나스트 잡지사에 보냈어요!’라고 말하곤 했죠. 그러면 저는 ‘뭐 하는 짓이야? 걔 열네 살이야.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아이인데. 그 애를 이 건물 밖으로 내보내면 안 돼!’라고 말했죠.” 리드는 몇 시즌 동안 함께 일했다. 결국 제레미 스캇 같은 디자이너의 런웨이를 위해 일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에 리드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고, 드디어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입학했다.

리드는 어린 시절 영국에 간 적이 있었다. 아직도 친할머니가 사우스 코스트의 이스트본에 산다. 그리고 ‘런던은 화려하고 제대로 된 곳’임을 알았다고 내게 말했다. 아침 5~6시에 트렁크를 끌고 리버풀 스트리트 스테이션에 도착하면서, 자신의 모습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염을 기른 채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내, 글쎄, 내가 ‘사내’라 말하면 안 되지만, 그 사람이 지나가고, 또 다른 사람이 클래식 비즈니스 수트를 입고 지나가던 기억이 나요. 그들은 서로 쳐다보지 않았죠. 자기 갈 길만 갔어요. 그래서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고등학교 시절 리드는 진과 화이트 티셔츠를 입었다. 또는 미드 <글리>의 캐릭터, 커트 험멜(Kurt Hummel, 게이 청소년의 가장 대표적 인물)의 정갈한 자기표현을 흉내 내 멜빵과 보타이에 수트를 차려입었다. 런던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스타일 감각을 지닌 퀴어 커뮤니티를 발견했다. “굉장히 절충적이면서도 제대로였어요. 그리고 음산하고 지저분했죠. 모호크족 헤어스타일에 눈썹이 없는 사람, 다자간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아침 6시에 황홀경에 빠져 있곤 했어요. 너무 감동적이고 벅찼어요. 나는 새벽 3시에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나 평범하지?’라고 물었습니다.” 한 달도 안 돼 리드는 닥터 마틴 슈즈에 미끈한 슬립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리드의 패션 스쿨 시절도 순탄치는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너는 무슨 코스튬 디자이너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리드가 “저는 ‘아니요, 저는 패션 디자이너예요’라고 말했어요. 선생님들도 늘 ‘누가 이 옷을 입게 될까? 네 고객은 누구지?’라고 말했죠. 그러면 저는 ‘제 고객이 누군지 저도 몰랐으면 해요. 그들은 아직 존재해선 안 되거든요’라고 말했어요.” 리드는 수업 과정 이외의 흥미진진한 모험과 수업 과정상 의무를 균형 있게 잘해냈다. 모험 중 하나가 해리 스타일스를 위해 의상을 제작한 일이었다. 그가 암스테르담 콘서트에서 리드가 제작한 옷 중 한 벌을 처음 입었을 때, 리드는 지하 공간에서 열린 톰 포드 향수 론칭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 행사는 제가 처음 초청받은 자리였죠. 그 전에는 여기저기 몰래 숨어들어 갔거든요. 어쨌든 정말 신났어요.” 리드가 내게 말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전화기 수신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모델 카렌 엘슨과 마주쳤어요. 어릴 때부터 제 우상이었죠. 그런 그녀가 제게 ‘정말 멋지군요’라고 속삭였죠. 저는 그녀를 바라보며 ‘당신은 제 삶을 이끌어주셨어요’라고 말했죠.” 리드가 말을 이었다. “샴페인을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전화기가 터지더라고요.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가 20통이나 와 있었죠. 전화를 받자 엄마가 울면서 ‘인스타그램을 확인해봐. 해리가 네 작품을 입었어’라고 말했죠. 그리고 1시간 만에 팔로워가 1,000명에서 7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드는 구찌 인턴십에 지원했다. 다음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2015년부터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만나러 다음 날 밀라노로 날아오라는 전화였다. “저는 집으로 달려가 은색 가죽 나팔바지를 차려입고 비행기를 탔어요.” 그가 미켈레의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바닥에는 수천 개의 견본이 있었고, 그가 차를 마시며 나를 올려다봤죠. 나는 그 찰나에 다 읽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기억했다. 미켈레는 프랑스 남부 아를의 로마 묘지에서 개최된 패션쇼에 리드를 모델로 초대했고, 리드는 이를 수락했다. 그리하여 반짝이는 녹색 셔츠와 바지에 분홍색 기모노 스타일 새틴 코트를 입고 캣워킹을 했다.

그리고 미켈레는 리드에게 스타일스와 함께 구찌 향수 광고 캠페인의 모델로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할게요. 그렇지만 면접 보고 인턴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죠. 모두가 약간 어안이 벙벙한 듯했어요. 그들은 ‘당신은 우리와 함께하는 VIP가 될 거예요. 그런데 지금 옷핀 심부름이나 하고 싶은 건가요?’라고 물었죠. 저는 ‘당신들이 뭘 원하든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저는 디자이너예요. 제 일이죠.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아름다운 곳에 머무는 것도 근사해요. 하지만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죠.” 그는 로마에 있는 구찌 아틀리에에서 9개월 동안 근무했다. “결국 ‘학교로 돌아가서 내 스타일을 추구해야 할까? 아니면 여기 남아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게 됐어요.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아를에서 패션쇼가 열리는 동안 행복해 가슴이 벅찼거든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어요. 그 어떤 것에도 제 이름을 달 수 없었으니까요.”

지난해 5월 어느 날 아침, 메이페어에 있는 상류층 고객과 트로피컬 데코로 유명한 유서 깊은 프라이빗 클럽 애나벨스(Annabel’s) 지하에 있는 정글 바로 리드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영국패션협회가 성 중립적 패션 위크를 개최하던 시기에, 리드와 그의 발굴을 돕던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가 애나벨스에서 조찬 토론회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리드는 플레어 드레스와 힐, 상반신이 살짝 드러나는 드레이프 재킷을 착용하고, 그 위에 목걸이를 걸치고 있었다. 지금은 빨간색인 그의 긴 머리칼이 머리 장식을 한 채 귀 뒤에 꽂혀 있었다. 하트형 얼굴과 윤기가 흐르는 피부를 가진 리드는 라파엘이 그린 대천사처럼 세련되면서도 강해 보였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드레스가 전통적 성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어왔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여성이 남성 같은 옷을 입는 것을 비난하는 소책자 <Hic Mulier>가 출간됐다. 라틴어로 남성 지시대명사 ‘이것’을 뜻하는 ‘Hic’이 ‘여성’을 뜻하는 ‘뮐리에’를 수식하는 제목의 에세이는 어여쁜 모자나 두건, 멋진 드레스나 스카프 등으로 꾸민 수수한 복장을 탁하고 지나치게 넓은 챙이 달린 모자와 터무니없는 깃털 등으로 대체했다며 여성을 꾸짖었다. 그런 용납하지 못할 짓을 한 사람들은 남성-여성(Men-women) 혹은 남성적인-여성들(Masculine-feminines)이라 불렸다. 200년 후에는 ‘He-She Ladies’라는 용어가 프레더릭 윌리엄 파크(Frederick William Park)와 어니스트 볼튼(Ernest Boulton) 또는 패니(Fanny)와 스텔라(Stella)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에 의해 생성됐다. 두 사람은 1870년 어느 날 한밤중에 런던 실외에서 여성복을 입고 ‘풍기 문란’ 죄로 체포됐다. 체포되던 날 아침에도 여전히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채 부두에 등장했다. 주간지 <Illustrated Police News>의 한 기자가 옷의 디테일에 초점을 맞춰 이런 기사를 썼다. “볼튼은 떡 벌어진 몸에 선홍색 새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화이트 레이스 스카프 주름이 목을 가리고 있었다. 소매는 팔꿈치에 닿을 듯 말 듯한 길이였으며 화이트 레이스가 끝단에 장식돼 있었다.” 볼튼의 표현이 어찌나 그럴듯한지 재판 중에도 피고를 언급할 때 여성 대명사를 사용할 정도였다.

리드가 스타일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이 성 경계에 대한 또 다른 대중적 재고찰과 우연히 맞아떨어졌다. 얼마 전 메리엄-웹스터 온라인 사전이 ‘They’의 단수형에 ‘남성’이나 ‘여성’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람을 언급하는 단수 형태를 추가한 것이다. 미국 12개 이상의 주에서는 제3의 성 카테고리가 기재된 ID를 발급하고 있다. 패션계에서도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비롯해 많은 디자이너가 남성복과 여성복의 차이를 없애고 이를 대중화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부터 발렌티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디자이너를 대변해온 켈리 커트론은 리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딱 적기에 그리고 적재적소에 등장한 거죠.” 리드는 스스로를 어떤 성으로도 확정 지을 수 없는 성 정체성이 유동적인 사람, 즉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라 묘사했다. “남성과 여성의 중간이 아니에요. 유동적인 성. 말 그대로 진자처럼 왔다 갔다 유동적인 거죠.”

리드는 아홉 살부터 스스로를 게이라 불러왔다. 그렇지만 런던에서 성 정체성 때문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제가 게이 같지 않았어요. 저의 성이 어느 한 부분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듯 느껴졌죠. 저는 하나의 성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처음으로 그는 트랜스젠더나 팬섹슈얼(Pansexual, 성 표현이 다양한) 친구들과 친해졌다. “자신을 갖고 각양각색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때 젠더 플루이드가 제게 맞았죠.” 그는 융통성 있지만 대명사 ‘They/Them’을 썼다. “러시아라면 젠더 플루이드는 여성 명사이기 때문에 대명사 ‘She’가 됐겠죠. 남미에서는 남성 명사니까 대명사 ‘He’가 될 겁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서 그것은 늘 ‘그들’일 거예요.” 젠더 플루이드를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리드로 하여금 불확정성을 지키는 동시에 힘과 아름다움에 관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이라는 범주를 거부하게 해주었다. V&A 전시 <Fashioning Masculinities: The Art of Menswear>의 공동 큐레이터 로잘린드 맥키버(Rosalind McKever)는 “걸러내고 단순화한 일종의 ‘유니섹스’와 같은 것과 젠더 플루이드는 매우 다르게 느껴집니다. ‘젠더 플루이드’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성 영역을 넘나들며 유동적으로 전환되니까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리드는 ‘He/Him’으로 돌아갔다. 자유로워지는 것보다 ‘젠더 플루이드’라는 개념이 그에 대한 한정적 범주로 고정되는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는 맥 코스메틱과 협업 광고에 수천 달러를 들여 연장한 헤어와 플랫폼 힐을 신어 2m가 넘는 키에 디지털로 보정된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 자신이 젠더 플루이드에 대해 불가능한 기준치를 설정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는 이렇게 자문했다. “어린 시절에 이성애자가 되는 것은 근육이 울퉁불퉁한 아베크롬비 모델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고, 소녀가 되는 것은 가슴이 커지고 허리가 잘록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긴 것처럼, 젠더 플루이드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내가 말하는 것은 아닐까?” 형식주의가 자신에게 다가올 기회 중 일부를 미리 알려주는 것임을 알았다. 리드는 “‘젠더 플루이드’와 ‘그들’이 다른 것이 됐고, 저는 그게 싫었어요.” 때로는 남성 대명사로 되돌아가는 것이 걱정됐다. 리드는 그를 어떻게 지칭해야 하는지 몇몇 사람이 자신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지칭하든 상관없어요. 저는 그저 저일 뿐이에요’라고 말했죠.”

메이페어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머리를 손질한 여성들이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으며 카푸치노를 마셨다. 그리고 램버트와 리드는 살짝 높은 곳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2016년 패션 화보 촬영 모델 오디션에서 만난 일, 그곳에서 굉장히 죽이 잘 맞은 일을 떠올렸다. 당시 리드는 캐스팅되지 않았다. 이후 램버트는 리드에게 화보 촬영용 의상을 여러 번 요청했지만 어떤 의상도 실제로 쓰이지 않았다. “해리스의 디자인이 나름의 공간에서만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다른 것과 믹스 매치가 정말 어려워요. 그의 작품은 정말 특별하니까요.” 램버트가 말했다. 해리 스타일스가 입을 의상을 리드에게 의뢰한 건 “그를 캐스팅하지 않은 것 또는 그의 옷을 촬영에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이었어요”라고 램버트가 농담처럼 말했다. 한번은 램버트가 리드에게 ‘패션의 플루이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가 뜻하는 바를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저에게 플루이드 패션은 자신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겁니다”라고 리드가 말했다. “탑샵에 대해 나쁜 감정은 없어요. 하지만 ‘유니섹스’는 후디와 추리닝 팬츠처럼 신체와 모습, 플루이드, 움직임, 컬러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플루이드 패션’이 자기표현, 가장 순수하고 최고의 존중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보는 것과 관련 있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 일반 고객이 리드의 의상을 구매할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그의 데미 꾸뛰르 의상은 일반 매장에서 구할 수 없다. 2020년 여름 그는 온라인으로 ‘이월’ 블라우스 컬렉션을 판매했다. 톱이나 미니 드레스로 착용할 수 있는 원 사이즈 의상으로 튤, 태피터, 벨벳, 레이스 등 자투리로 제작한 것이었다. 800달러 이상으로 책정된 블라우스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엄마와 협업으로 향초 라인을 론칭했고, 당분간 해리스 리드의 감성은 주로 후각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신인 디자이너는 일부 매장에서 팔리는 몇 가지 세퍼레이츠 룩을 생산하면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팬데믹으로 상품 제작과 매장 쇼핑이 힘들어져 리드는 잡지 화보 프로젝트나 프라이빗 고객을 위한 일회성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협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몇 달 전 그는 미쏘마(Missoma)와 함께 주얼리 컬렉션을 론칭했다. 래브라도라이트(조회장석) 칵테일 반지와 뱀 모양 이어커프가 특징적이다. “의류 리테일러들과 바이어들은 ‘당신은 완전히 잘못하고 있어요. 물건을 시장에 내놓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죠. 그렇지만 저는 인스타그램 시대에, 더구나 이런 코로나 시대에 ‘지금 J.C. 페니에 걸린 옷을 구매하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 지금 그들이 세상에서 하는 것과 더 많이 관련되어 있다고 봐요.”

플루이드, 즉 유동성의 개념을 한계점까지 밀어붙이고, 어쩌면 그것을 넘어서는 그는 최근 <보그> 인터뷰에서 자신의 향초 라인이 “누군가의 집에서 플루이드적 현실도피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메시지를 더 퍼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는 데 열심이다. 당대 패션계의 또 다른 주요 테마이며, 사치스러운 참신함과 환경오염 발생에 패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뒤늦게 인지하고 있다. 리드에게는 10년 동안 모아온 많은 빈티지 옷이 있다. 이 습관은 굉장히 유용한 것으로 입증됐다. 그는 이번 멧 갈라 협업을 위해 줌 회의를 하며 뉴욕 중고 매장에서 산 돌체앤가바나 실크 블라우스를 꺼냈다고 말했다(결국 리드가 슈퍼모델 이만을 위해 만든 멧 갈라 의상은 브로케이드 뷔스티에, 플레어 팬츠, 수작업으로 금박을 입힌 깃털 장식 후프 스커트 프레임으로 구성했다. 또 이 스타일과 조화를 이루는 깃털 머리 장식을 후광처럼 더했다. 그 역시 화이트 팬츠, 옷자락이 긴 화이트 턱시도 재킷과 이만의 것보다 살짝 작은 머리 장식을 착용하고 그녀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미국 <하퍼스 바자>는 곧장 “이만이 그 쇼를 평정했다”고 평했다). 애나벨스에서 열린 조찬 토론에서 그는 자신이 지속 가능성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매장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판매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라고 모두에게 설명했다. “우리는 지금, 바라건대 더 적게 구매하는 시기에 놓여 있어요. 저는 켈리 백이나 멋진 샤넬 재킷처럼 할머니부터 그의 딸, 손녀까지 이어지고 대물림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어요.” 스프레이로 칠한 털 패니어(Pannier)가 달린 베네치안 울 플레어 바지가 에르메스 핸드백의 장기적 효용성을 가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리드의 커리어가 현재의 궤적을 유지한다면, 그런 옷이 현명한 투자로 판명될 수 있다. 몇 해 전 맥퀸의 초기 작품 여러 점이 경매 시장에 나왔다. 그가 1995년에 선보인 ‘Highland Rape’ 컬렉션의 일부 작품이 포함됐고, 드레스 몇 점은 5만 달러에 낙찰됐다.

2021년 늦은 봄, 리드는 학교를 떠난 후부터 런던 패션 위크를 준비했다. 9월 21일 열린 쇼는 그의 첫 대면 쇼다. 그는 “업사이클 의상으로 구성될 이번 컬렉션에서 지속 가능성이 더 두드러진 주제가 될 것입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몇 주 동안 그와 팀은 영국에서 중고 매장을 수백 군데 운영하는 옥스팜(Oxfam) 대표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6월의 어느 날 아침, 리드와 그의 조수 레베카 빈(Rebecca Bean)은 스탠더드 호텔을 출발해 런던 남서부의 어느 부유한 마을 같은 리치먼드로 차를 몰았다. 그곳은 현지 옥스팜 매장의 위층을 중고 드레스로 가득 채워 신부용 부티크로 만들어놓았다. 특히 웨딩드레스로 작업하는 것이 리드의 관심을 끌었다. 그 옷은 새로운 스타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새틴과 레이스를 충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드레스는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패션쇼에서 웨딩드레스는 전통적으로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기술이 절정을 이룬 전형으로 비친다. 게다가 웨딩드레스는 현재 입는 의상 중 젠더의 특징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여자에게 결혼식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치수에 맞춰 바닥까지 닿는 드레스를 입는 유일한 행사일 테니까. 웨딩드레스는 ‘브리저튼’ 스타일의 러플처럼 당대 트렌드를 반영한다. 수백 년 동안 만연한 여성성의 표출 방식을 고수하기도 하지만.

옥스팜으로 가기 전, 리드는 한 친구가 가진 웨딩드레스를 분해해 컨셉을 테스트했다. “그 옷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생각이 맘에 들었어요.” 리드는 남자 모델과 작업하면서 보디스를 허리 높이까지 내렸다. 이로 인해 모델의 조각 같은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화이트 튤 스커트 모양을 바꿔 드레스 일부가 바닥에서 어깨까지 위쪽으로 올라가게 했다. 리드는 곧 발표될 컬렉션에 이 컨셉을 더 많이 접목해 중고 웨딩드레스와 중고 남성정장을 결합한 의상 10벌을 만들기로 했다. “많은 남성 또는 남성으로 식별되는 존재에게 몸이 드러나고 여성처럼 보일 만한 독특한 의상을 입히고 있어요.”

리치먼드에 도착한 리드는 신부용 부티크로 안내됐다. 벽에는 웨딩 산업에서 잘 알려진 백색 실명(White Blindness, 지나치게 많은 실크와 구슬 장식으로 정신이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을 촉발할 만큼 드레스가 줄을 이루었다. “오, 세상에, 이건 꿈일 거예요.” 리드가 복도를 따라 내려가며 작업을 시작했다. 드레스 패브릭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비비며 품질을 평가하고 레이스 장식을 들어 올려 어떻게 떼어 어느 각도로 다시 붙일지 살폈다. 리드는 블랙 팬츠와 낮은 네크라인의 롱 슬리브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힐을 신지 않고 털이 북슬북슬한 블랙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래서 극장의 코스튬 백스테이지를 돌아다니는 무용수처럼 전시된 드레스 사이를 사뿐사뿐 돌아다닐 수 있었다. 빈이 그가 드레스 고르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나중에 리드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용으로 사용할 사진과 동영상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젊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소셜 미디어에 정통한 것을 의미하죠.” 리드가 옷걸이 뒤에서 스커트 사이로 머리를 내밀더니 말했다. “그것의 핵심은 콘텐츠와 제품 제작 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닐까요?”

한 옷걸이에는 1960년대 드레스, 심지어 제국 시대 스타일의 허리선에 우아한 시폰 스커트를 더한 훨씬 더 이전 시대의 드레스도 걸려 있었다. 그 옷을 바라보던 리드가 천천히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빈티지 스타일을 덜어내고 싶진 않아요. 그 의상은 그런 삶을 살도록 의도했을지도 몰라요. 플루이드적이고 독특한 것으로 재단되지 않도록 말이죠.” 대신 그는 풍성하고 휘장과 긴 옷자락으로 무장한 조금 더 최근 의상에 초점을 맞췄다. “라벨에 필기체로 ‘Bridal Couture’라고 적혀 있다면, 저에겐 만만한 상대인 거죠.” 리드의 예산은 2,000파운드 정도였다. 그래서 이 할인 가격에 화들짝 놀랐다. 그는 어느 드레스를 보며 “이 레이스 하나만 해도 미터당 350파운드는 되겠는데요. 그리고 그 드레스 하나만 150파운드 정도 되고요.” 달러로 환산하면 200달러쯤 된다는 것이다. 어느 드레스 헴라인의 패브릭에는 씨앗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가 수백 시간 동안 튤에 바느질해 이 드레스를 만들었겠죠. 그다음 누군가가 이 옷을 입고 들판에 나가 춤을 췄던 거예요.” 리드는 그 옷을 옷걸이에서 뺀 다음, 보관하려고 한쪽에 놓아두었다.

매장 뒤쪽에 거대한 거울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리드는 거울 앞에 서기 전 드레스를 한 무더기 쌓은 뒤 직접 모델이 되어 각 드레스가 상상 속에서 어떻게 뒤바뀔지 영감을 끌어내려고 애썼다. 그는 셔츠를 벗고 스트랩리스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의 주름 장식과 스팽글로 장식된 보디스가 옷 입는 사람의 엉덩이가 있을 법한 부분에서 튤 스커트로 바뀌어 퍼져나갔다. 드레스 뒷면의 지퍼를 열어둔 채, 리드는 가슴 라인 부분을 자신의 허리쯤으로 내렸다. 그러자 패브릭 뭉치가 무릎과 발목 주변에 놓였다. 그런 뒤 드레스를 벗고 그 드레스 스커트를 턱 밑까지 들어 올려보았다. 어깨 주위에서 시작해 허리까지 내려간 스커트가 18세기 초상화에 등장하는 과장된 깃처럼 보였다. 잠시 후엔 거대한 레이스 오버스커트로 뒤덮인 드레스를 입었다. 스커트의 잘록한 허리를 손으로 잡아 엉덩이까지 당겼다. 그러더니 스커트를 머리 위로 홱 뒤집었고, 얼굴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겹겹의 스커트 속에 파묻혔다. 차분히 턱을 내리는 모습은 베일을 젖히고 신랑에게 키스하기 직전의 제단 위 신부처럼 보였다.

며칠 사이에 리드는 자신이 고른 드레스를 스탠더드 호텔에서 새 모습으로 바꾸고 있었다. 지난번 버슬에 부착한 오버사이즈 리본이 이번에는 푸시캣 스타일처럼 목 부분에 달려 있었다. 새틴 패널은 어두운 맞춤 양복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혼합물로 탄생했다. 이 컬렉션은 리드가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 처음 도착해 옷의 경계가 엇갈리고 합쳐진 것을 목격하면서 런던이야말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느꼈던 그 경험을 떠올렸다.

리치먼드의 그 신부용 부티크를 떠나기 전, 리드는 남자 아동복 사이즈의 블랙 블레이저를 집어 들더니 어깨를 움츠려 그것을 입었다. 재킷 단추를 채우자 옆구리 부분이 조였고, 상의의 좁은 소매가 그의 팔꿈치 아랫부분까지밖에 닿지 않았다. 그러자 옷의 실루엣이 원래의 남성스러운 것에서 매력적인 여성스러운 것으로 돌변했다. 그다음엔 손을 뻗어 새틴 웨딩드레스를 집었다. 긴 헴라인을 레이스와 스팽글로 장식한 옷이었다. 엉덩이 왼쪽에 그것을 갖다 대고 머리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자 머리가 어깨를 덮었다. 그는 오른쪽 바짓가랑이를 화이트 패브릭에서 빼냈다. 리드가 그 드레스를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야 할지, 그 드레스가 그를 어느 쪽으로 취할지 상상하며 거울을 들여다보니, 다른 이미지가 반반 섞인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VK)

리드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공부할 때, 은사들은 그에게 작품을 위해 직접 모델로 서길 제안했다. 그 당시 그는 “자신의 고객이 아직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