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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죄라면

2023.02.12

by 조소현

    먹는 게 죄라면

    음식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건만 여자들은 먹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이상한 죄책감이다.

    얼마 전, 수개월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하루 50개만 한정 판매한다는 군만두와 표면이 바삭하면서도 내면에는 육즙을 가득 품은 탕수육, 저 멀리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듯 펄떡이는 해산물을 볶아낸 팔보채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종일 노동으로 누적된 허기가 사라지자 늘 그랬듯 서로를 자세히 뜯어보며 “넷 다 정말 포동포동 살이 쪘구나”라고 말했다. “오늘 너무 먹었네. 내일은 한 끼만 먹어야겠다.” 전생에도 들은 익숙한 자책 레퍼토리를 시작하는 친구의 허벅지에 더덕더덕 붙은 살점이 보였다. 팬츠 위로 배가 눌리며 튀어나온 살도 보였다. 우리는 깔깔거렸지만 웃을 때 생기는 턱살도, 덜렁거리는 살점도 보기 싫었다.

    코로나로 인해 느슨하게 이어지되, 물리적으로 고립된 지 3년째였다. 출근해도 함께 식사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초콜릿 따위를 입에 밀어 넣고, 아무도 보지 않는 집에서는 배달 음식으로 토할 때까지 먹고는 다음 날 회개하는 심정으로 러닝 머신에 오른 지 시간이 꽤 흘렀단 얘기다.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초콜릿 쿠키를 두 배 더 먹었다는 실험 결과가 있는데, 각자의 초콜릿 쿠키가 우리 넷의 몸에 들러붙어 있었던 셈이다. 휴대폰에 코만 박고 있는 이 시대는 사회적 허기를 식욕으로 뒤바꿔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인스타그램에서 끝없이 생산되는 인플루언서의 가느다란 몸과 ‘괴식’에 가까운 음식 사진은 우리 몸에 대한 인식을 더 뒤틀어놓고 있었다. 더 먹어, 더 신나게 먹어. 대신 더 바싹 말라야 해. 요즘 나는 수영장 탈의실에서 늘어지고 틀어진 진짜 우리 몸을 볼 때마다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고 싶다.

    이 시대를 맞이하기 전에도 나는 식욕과 다이어트를 두고 평생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다. 여성의 80%는 자신이 뚱뚱하다고 여긴다는 통계가 있고 나도 나를 뚱뚱하다고 여긴다. 날씬한 몸은 사회가 심어놓은 강박에 불과하다고 논문 한 편은 써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식탐이 강하고, 욕망에 따라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고 나서 후회한다. 매일 당연히 먹어야 하는 끼니, 그러니까 쌀밥에 미역국, 반찬 두어 가지를 곁들여 먹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머릿속에서는 ‘왜 남들처럼 하루 한 끼만 먹지 않고 세끼를 다 먹을까’ ‘반찬을 자주 집어 먹는 습관은 정말 고쳐야 해’ 자책의 문장이 주식 시세 전광판처럼 흘러간다. 철학자 샌드라 리 바트키는 “여자는 항상 익명의 규율에 감시당하고 있어 늘 몸을 의식하고, 형태와 중량과 몸 선의 모든 미묘한 차이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규율을 어길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혹독한 징계를 내렸다. 셀프 지옥은 6시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기, 1시간 러닝, 다이어트 약 섭취 등으로 이어졌다.

    각기 다른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여자들에게는 뚱뚱한 몸을 혐오하게 되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역사가 있다. 주어진 밥을 먹고 더 먹고자 했을 때 ‘그만 먹어! 돼지니? 살쪄!’ 같은 외침, 음식에 뻗는 손을 물리적으로 저지당했을 때 느낀 수치심을 기억한다. 엄마가 딸 몸무게에 신경 쓰기 시작했을 때 내 나이는 열 살이었다. 통통하고 귀엽다가 들을 수 있는 최대 칭찬이던 그때, 엄마는 나를 체육 센터 수영장과 동네 상가 무용 학원에 보냈다. 날씬한 몸이 사회에서 발휘하는 위력을 경험한 그 시절 엄마들은 딸의 몸무게에 민감했다. ‘여자는 평생 관리해야 해. 안 그러면 흉해’ 같은 당부는 엄마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살찐 직원에 대한 험담을 식사 자리에서 종종 꺼냈다. 성장의 시대를 살아낸 그에게 살이 찐다는 건 게으름, 의지박약의 증거였다. ‘다 좋은데 그 직원은 살이 쪄서’ 안 되었다. 어리고 미성숙했던 나는 공기처럼 살찐 몸에 대한 혐오를 마시고 자랐다.

    나이가 들고 여자로서 성적 대상화될 일이 줄어들며 비로소 외모 강박에서 벗어났다는 지인들이 있다. 그들은 커다란 검정 패딩 속 자신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자 비로소 여자가 아닌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나는 아직 내 몸을 사랑할 수도, 관대해질 수도 없다. 썩은 동아줄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른 몸”이라는 허울을 놓을 수가 없다. 사회가 원하는 외모 중 적당히 마른 몸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경지다. 그저 먹고 싶은 걸 참으면 되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지 않으면 되니까. 나는 맛있는 음식 먹기를 너무 좋아했고 그렇기 때문에 먹는 모습으로도 주변의 감탄을 받곤 했다. ‘조그만 애가 어쩜 그렇게 많이 먹니? 신기하다, 신기해’ ‘잘 먹어서 보기 좋다. 맥주를 진짜 꿀꺽꿀꺽 맛있게 마신다니까?’ 같은 말을 듣는 내 몸은 뚱뚱해서는 안 됐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를 낳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마른 몸’ ‘어떤 음식이든 맛깔나게 먹지만 마른 상태’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나마 뚱뚱해지지 않기라도 해야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SNS에 셀피를 올리지도, 몸 선이 드러나는 옷을 입지도 않으면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건 “와, 정말 애 엄마로 안 보여요!”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 얄팍하게 차오르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지만 나의 만족을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고 종종 늘어놓는 내 입장은 사실 거짓이다.

    식욕은 곧 불안을 안기는 단어라 말하며 오랫동안 거식증에 시달렸던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냅은 먹을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의 원인을 욕구를 억눌러온 사회에서 찾았다. ‘너무 많이 먹지 마’ ‘너무 커지지 마’ ‘너무 많이 원하지 마’ ‘너무 똑똑하게 굴지 마’ 이런 명령이 누적되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저서 <욕구들>에서 사회는 여자들에게 갈망은 억제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갈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고 썼다. 여자의 욕구는 죄책감에 눌려서 본질을 피해 빙 둘러가고, 아름다움과 날씬함이라는 목표 뒤에 감춰진 진짜 허기는 무엇인지 모호하게 만든다는 그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게 느껴진다.

    캐럴라인 냅은 “여성의 몸은 이 사회가 메시지를 쓰는 장소”라는 로절린드 카워드의 말을 인용하며, 과거 남자들의 영역에서 여자들이 역할을 하기 시작하자 여성을 수동적이고 연약하며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묘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얼핏 요즘 시대 언어로 음모론처럼 보이지만, 식욕과 몸매를 걱정할 때는 다른 어떤 사고도 하기 힘드니 실제라면 대단히 주효한 전략이다. 많은 심리학자가 음식과 다이어트 중독을 ‘현실도피’로 볼 정도로 이는 우리 주의를 쉽게 빼앗아간다. 사회 비판, 커리어보다 무엇을 먹으면 살이 찌지 않을까 생각하는 건 간단하다. 폭식과 거식이 한 몸이듯 음식으로 하는 도피도 역시 간편하다. 음식을 쥐고 입에 넣는 행위는 정말이지 너무나 손쉬운 것이다.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밀어 넣으면 내면의 감정이 무뎌지고 증발한다. 냅은 영혼의 상태를 고민하는 것보다 몸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훨씬 쉽다고 단언한다. 게다가 건강까지 연결 짓는다면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1순위가 된다. 이 원고를 쓰면서 하룻밤 사이 우유크림빵 한 개와 아이 머리만 한 천혜향 두 개, 하리보 사우어 젤리 세 봉지를 내리 먹어치웠다. 그 짧은 시간만큼은 원고 마감의 압박으로부터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었다. 진짜 해결하고 싶었던 나의 허기는 무엇이었을까.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자책하는 습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살찐) 미래를 걱정하고 (살 빠진) 미래를 상상하는 현재는 군만두의 육즙조차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하고 친구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는 충만한 현재를 놓치게 하며, 하루 종일 플레이되는 넷플릭스 영화마저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살 빠진) 미래로 현재의 행복을 미뤄두는 삶은 주어를 잃은 채 그저 부유한다. 불현듯 아까 들이부은 하리보 젤리의 단맛이 느껴지며 (살 빠진) 미래를 위해 오늘 저녁은 굶어야겠다는 방어기제가 다시 작동한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먹는 게 유죄이고, (살 빠진) 미래는 도래하지 않는다. (VK)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장덕화
    모델
    유혜연
    메이크업
    박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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