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환의 진정한 등장
우도환의 진짜 등장은 지금부터다.
촬영하는 내내 탐색했어요. 그리고 실패했죠. 5년 만의 만남인데, 정말 그대로군요.
그럴 리가요. 하하. 18개월의 시간이 저에게 그리 관대했을 리 없을 텐데요. 게다가 어제 촬영을 시작한 <사냥개들>의 ‘건우’ 캐릭터를 위해 두 달 전부터 몸을 키우는 중이에요. 화보는 슬림해야 잘 나오는데, 걱정이에요.
<사냥개들> 촬영이 벌써 시작됐군요. 불과 이틀 전에 제대하지 않았나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굉장히 변칙적이고 예외의 연속이잖아요. 제대는 그제가 맞지만 미복귀 전역으로 지난해 10월 31일에 사회로 나왔죠. 그래서 공식적인 스케줄로는 어제 드라마 촬영이 처음이고, 오늘이 두 번째 스케줄이에요. 아무래도 공식 제대 날짜 전에는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으니까요. 제 경우엔 첫 휴가로 9일을 보내고 복귀한 후에 전역하는 날까지 1년 동안 단 한 번의 외박이나 휴가 없이 제대했어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하지 못하는 상황의 차이는 사람의 감정을 굉장히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거죠. 1년 만의 외출이 전역이라면 심리적 동요가 꽤 있었을 것 같아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 이어진다는 건 안에서도 뉴스로 계속 접하게 되니까요. 그런 소식이 누적되고,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게 되죠. 사실 짧지만 중간에 두어 번 휴가 나올 기회가 있긴 했는데, 저보다 더 간절한 친구들에게 양보했어요. 거창한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특별히 나와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기다리는 여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술 마시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꼭 나와야만 하는 이유가 없었죠. 가장 중요한 건 그렇게 며칠 나왔다 들어가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요. 한동안 그 일렁거림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죠.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고, 이런 날이 오긴 오니까요. 이렇게 나왔잖아요. 하하.
그렇게 맞이한 첫날 스케줄이 궁금하군요.
<위대한 유혹자>(2018)를 하면서 친해진 배우 (김)민재랑 영화 <사자>(2019)를 감독했던 (김)주환이 형, 같이 운동하는 친구가 레드 카펫과 축하 음악을 준비해줬어요.
오랜만에 나의 공간으로 들어온 느낌이 묘했겠어요.
솔직히 휴가를 자주 나오게 될 줄 알고 집을 정리하지 않고 들어갔거든요. 이렇게 길게 비워둘 줄 모르고. 그런데 막상 내 공간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숨이 쉬어지더라고요. 1년 반의 시간이 딱 한 번의 호흡으로 정리되는 것 같았어요.
뻔하지만, 당연한 것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군요.
공기처럼 매일 품어지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실 입대 시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남자라면 누구나 성인이 된 후에 그 시기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기다리게 되니까요. 18개월의 숙제가 아니라 10년 동안의 숙제를 마친 느낌이에요. 이제 정말 마음 편히 달리기만 하면 되겠다 싶은. <더 킹: 영원의 군주>(2020) 찍을 때 한 작품 더 하고 입대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이 작품을 엔딩으로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입대 2주 전에 영장이 나왔어요. 막상 영장을 받고 보니 지금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정해진 때나 완벽한 타이밍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 상황에 맞게 움직이면 그게 정답이 되는 것 같고, 잘 결정한 것 같아요.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이죠. 감정 설정도 세밀하고. 오롯이 혼자 마주했던 시간을 뚫고 우도환의 미래는 변화된 곳으로 갔나요?
제가 생각이 좀, 아니 아주 많아요. 깊이를 알 수 없게 파고 또 파는 성격이죠. 본격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으니 제대로 책임을 다하긴 했는데 다행히 아주 범주를 벗어날 만큼 감정의 변화를 많이 겪진 않았어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긴 했지만, 생각의 줄다리기가 허용되는 구간까지만 했죠. 크게 달라진 건 그날그날 나의 감정이나 소소한 행복을 옮겨 적고 있어요. 하루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고, 감정의 공유일 수도 있는데 일기를 쓴 후로 생각의 폭이 더 넓어진 것 같아요. 그 안에서만큼은 나에게 좀 더 사치스러운 요구를 할 때도 있고, 도전 과제를 던지기도 하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수첩으로 7~8권 정도? 후임들에게도 일기는 꼭 썼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죠. 적어도 나중에 읽어보면 “너에게 웃음이라도 준다”고.
수첩의 가장 마지막 장을 차지한 내용이 궁금해요.
누구나 같을 거예요. 밖에 나가면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 같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눈 덮인 산 오르기. 이건 11월쯤 친구들과 제주로 여행 갔을 때 이뤘어요. 예전부터 한라산을 등반하고 싶어서 예약하고 올라갔는데 뜻밖에도 소복하게 내려앉은 설산을 만났죠. 너무 벅차서 제 SNS에도 공유했어요.
그런 아쉬움 없는 시간을 보냈으니 바로 ‘본캐’로 컴백이 가능했군요. <사냥개들> 첫 촬영은 어땠나요.
이렇게 준비 작업이 많은 작품은 처음인 것 같아요. 액션 장면이 많아 전역 후에 2주 정도만 운동이나 식단 관리 없이 풀어져 있었고, 그 후로는 식단 관리하면서 복싱, 헬스, 액션 스쿨, 필라테스까지 운동하는 시간을 하루에 네 타임으로 쪼개서 움직이고 있어요. ‘건우’라는 캐릭터가 복싱 선수 출신이라 몸의 움직임이 굉장히 많거든요. 어제 첫 촬영은 추격 장면이었는데 6시간을 내리 달리기만 했어요. 아마 그래서 아까 수트 핏이 제대로 살지 않았을 거예요. 근육이 많이 펌핑된 상태거든요. 하하. 저녁에는 (이)상이 형과 브로맨스를 쌓게 되는 중요한 감정 신을 연결했어요. 처음이라 아직 톤도 덜 잡히고, 완벽하게 느낌을 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날이었어요. 아까 첫 컷 찍고, “눈빛이 너무 착하다”고 하셨잖아요. ‘건우’라는 캐릭터가 슬픔과 함께 선함이 있는 친구라 어제의 감정이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예전엔 셔터 소리가 시작되면 눈빛이 달라졌는데, 오늘은 너무 부드러워서 갑자기 컨셉을 바꿔야 하나 당황했어요.
사실 어제 잠자리에서 뒤척였어요. 화보 찍을 때 내가 어떻게 포즈를 취했더라, 인터뷰는 어떻게 했더라, 영상은 어떻게 톤 앤 무드를 맞췄더라 등등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촬영장 오기 전까지 집에서 대본을 읽고 왔더니 ‘건우’의 선함을 여기까지 품고 온 것 같아요. 예전엔 거의 모든 생각이나 중요한 것들을 주로 잠들기 전에 정리했는데, 입대 전후로 중심점이 자연스럽게 오전으로 옮겨졌거든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아침을 갖고 싶어 시작했는데 가라앉는 저녁 시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것 같아요.
날카롭고 섹시한 우도환이 익숙한 우리에게 ‘건우’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겠군요.
영화 <사자>로 인연을 맺은 후로 감독님과는 사적으로도 굉장히 친밀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평소 제 모습을 잘 아시니까 제 안에 그런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그래서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 우도환의 모습을 꺼내 보이고 싶다고 하셨어요.
제대 후에 작품 선택의 기준이 바뀌었나요.
보는 관점이 달라진 건 없어요. 솔직히 복귀 후 첫 작품으로 하고 싶은 장르는 로맨스였어요. 군대라는 조직이 주는 어쩔 수 없는 틀이 있잖아요. 굉장히 자신을 몰아붙이고 외롭게 만들죠. 있는 동안 가장 신경 써서 유지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감성을 잃지 않는 거였어요. 그래서 책이나 웹툰도 로맨스 장르 위주로 보고, 들꽃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바라봤죠. 하하. 배우로서 감정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었거든요. 드라마도 로맨스가 부각되는 작품 위주로만 봤어요. <호텔 델루나> <멜로가 체질> 같은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게 본 작품이고, 그러면서 멜로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굉장히, 몹시, 의외의 선택이군요. <사냥개들>은 성장하는 청춘은 담고 있지만 멜로는 담고 있지 않잖아요.
제가 일할 때 사람을 좀 많이 타는 편이에요. 전역 6개월 앞두고 김주환 감독님이 이 작품을 전해주셨는데 사실 어떤 내용인지, 원작과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무것도 묻지도 않았어요. 이 작품을 하게 될 줄 모르고 예전에 웹툰을 5화쯤 본 적 있는데, 그게 알고 있는 전부였으니까. 저는 관계에서 오는 믿음이 중요해요.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사람, 그게 원 픽이에요.
필모그래피가 또래의 다른 배우에 비해서 꽤 다양하게 완성된 편이에요. 주인공만 고집하지 않는 것도 차별화되는 선택이죠. 배우라면 누구나 지향하고 싶지만,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앞으로도 가장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에요. 저에게는 주인공과 두 번째 주인공의 경계가 중요하지 않아요. 롤이나 분량보다는 캐릭터의 표현이나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 얼마나 공감이 되느냐가 중요하죠. 어떤 한 가지를 기준점으로 정해두면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져요. 플랫폼으로 전달 방식의 다양화가 진행 중인 지금 같은 시대에 한 가지 원칙으로만 움직이는 건 스스로 기회를 놓아버리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름값, 개런티값을 해내야 하는 게 배우에겐 굉장한 압박이 되기도 해요. 캐릭터 표현만으로도 연기하는 동안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상상 이상이니까. 그 외의 것들은 조금 자유로워도 되지 않나 싶어요.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카메라 안에 머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임팩트 있게 머무는가. 시간이나 분량이 아닌 캐릭터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죠.
오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요?
‘나는 오늘 왜 컨셉과 다른 사슴 눈빛을 보였는가.’ 하하. (VK)
- 컨트리뷰팅 에디터
- 김민경
- 포토그래퍼
- 김영준
- 스타일리스트
- 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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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선영(JOY187)
- 세트 스타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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