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앨리>,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차갑고 추악한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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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차갑고 추악한 리얼리즘

2022-02-02T10:41:32+00:00 2022.02.02|

<나이트메어 앨리>는 혼란의 시기, 개인의 잠재의식 속 강박, 성공과 파멸을 누아르 장르로 풀어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다. ‘판타지 컬렉터’가 펼쳐낸 차갑고 추악한 리얼리즘의 길.

코믹 북을 머리맡에 두고 잠드는 순간까지도 판타지, 호러의 세계에 빠져들던, 어린 시절의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는 침대 머리맡에서부터 이미 훗날 장르의 거장으로 자양분과 재료를 꾸준히 수집하던 ‘컬렉터’였다. 타로 카드 읽기 역시 멕시코에서 성장한 그가 어릴 때 배워둔 취미였는데,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를 만들면서 어릴 적 보관하던 그 ‘카드’를 꺼내 들 기회가 왔다. “마법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카드와 잠재의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건 지지한다.” 타로 카드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그는 타로 카드가 가진 힘과 두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판타지 멜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이후 델 토로가 도착한 곳은 시골을 떠도는 유랑 극단, 카니발의 세계다. 불을 지르고 집을 떠나 유랑 극단 카니발에서 일하던 남자 스탠튼(브래들리 쿠퍼)은 그곳에서 배운 타로 카드와 마술을 기술로 삼아 거대한 자본의 도시 뉴욕으로 진출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혼란의 시기, 욕망과 좌절이 교차하던 그곳에서 스탠튼은 현학적인 말솜씨와 타로 카드 점성술을 접목한 심리 분석으로 다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치유한다. 아니, 치유해준다고 말한다. 뒤집어보면 100% 사기일 수 있지만, 믿고 기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그에게 커다란 파워를 주었는지 모른다. 부와 명성은 너무도 손쉽게 스탠튼을 따랐다. 적어도 정신분석학자인 릴리스 박사(케이트 블란쳇)에게 그의 마음을 읽히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속일 수 있다고 믿었던 남자와 그런 그를 간파할 파워를 가진 여자의 일대 격돌!

<나이트메어 앨리>는 혼란의 시기, 개인의 잠재의식 속 강박, 성공과 파멸을 누아르 장르로 풀어낸 기예르모 델 토로의 새로운 도전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누군가. <미믹>(1997),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판타지와 호러의 골목을 벗어나지 않아온, 공포와 두려움의 거리라면 내비게이션 없이 눈 감고도 찾아갈 사람이다. 그런 그가 57세에 접어들어, 그간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던 차갑고 추악한 리얼리즘의 길을 서성이며 그곳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기존 델 토로의 팬들에겐 선뜻 따라 들어설지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도전일 수 있지만, 이야기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면 역시 델 토로답다. 원래 타이론 파워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가 1947년에 만들어졌고 원작은 1946년 출간된 윌리엄 린지 그레셤 소설이다. 그레셤이 한 바에서 스페인 내전 때 알았던 남자와 술을 마시다가 취한 그가 들려준 카니발 쇼를 둘러싼 이야기에 매혹되어 이 이야기를 소설로 옮겼다고 한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 ‘허황된’ 이야기는 한때 판매 금지되기도 했으며, 압박감이 원인이었는지 그레셤은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헬보이>를 함께 한 델 토로의 오랜 친구 배우 론 펄먼이 원작을 델 토로에게 건넸을 때, 그레셤이 한 남자의 이야기에 매혹되었듯 그 역시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6시간의 시리즈로 만들어도 될 법하다”고 한 이 방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기 위해 제작사 폭스를 설득했다. 급기야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윌렘 대포 등 할리우드의 엄청난 배우들까지 이 방대한 ‘악몽의 골목’으로 초대된 계기다.

줌 인터뷰 창이 연결되자마자 ‘당신의 빅 팬’임을 밝히자 아카데미 수상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이 감독은 영화 앞에서라면 언제까지나 늙지 않는 소년 같은 눈을 반짝였다. 주어진 인터뷰 시간이 지나면 가차 없이 닫히는 줌 채팅 창을 단 몇 분이라도 유예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영화에 관한 이야기라면 언제나 귀 기울이고 답변을 쏟아내는 ‘델 토로 타임’이 적용되어서였다. 누아르조차도 판타스틱하게 읽히는 델 토로의 골목을 탐험한다.

1947년 작 동명의 영화와 앞서 1946년 발표된 원작이 있다. 원작을 접한 건 벌써 오래된 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지점이 영화화하게 만들었나.

내가 중요하게 본 건 이 소설이 ‘아메리칸드림’의 이면에 있는 악몽을 묘사한 초상화, 곧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 야망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가진 희망을 가지고 장난질하는 거짓투성이인 스탠튼을 통해 그 시대가 상징적으로 읽힌다. 책 속에 그야말로 사이코섹슈얼, 미스터리, 마술, 기이함 같은 다양한 면모가 모두 들어 있다. 검열이 있는 때였는데도 이걸 다 보여준다. 당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정확히 꿰뚫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라니! (웃음) 눈을 의심했다. 델 토로가 호러가 아닌 누아르를 연출했다고? 생각지 못한 결과다.

내 영화에 몬스터가 많이 등장하긴 했다. (웃음) 그런데 내가 늘 말해왔지만, 가장 나쁜, 최악의 몬스터는 인간이다. 인간이야말로 정말 끔찍한 일을 할 수 있지 않나. 인간의 그런 속성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를 이번에 만난 거다. 누아르는 아주 오래전 어릴 때부터 항상 만들고 싶었고 시도도 했다. 첫 장편을 찍기 전에 멕시코에서 부패한 경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단편을 찍었는데 그 작품이 약간 누아르에 가깝기도 했다. 마침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찍고 나서, 다음 영화는 평소 하던 것과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나이가 쉰일곱인데, 내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좋은 때라고 여겼다.

마술적인 속성이 있는 카니발 쇼와 누아르의 만남은 역시 델 토로 감독의 색깔을 입히기 좋은 요소다. 카니발이 인기를 끌던, 현실에서도 판타지가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이 시대에 매료된 이유는?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을 겪으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새로운 출발의 시기였다. 시골 작은 상점의 시대는 가고 도시와 산업의 야만적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정확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그 변화의 시대에 처한 인물들의 혼란을 보여준다. 대공황 이후 재건의 시기였지만 그만큼 우울한 시기였다.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가 돈과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걸던 시기였다. 매일매일 모두가 성공을 목표로 고통당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거짓말을 일삼아 돈을 버는 스탠튼은 늘 들킬 위험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누아르 장르지만 누아르의 기존 공식을 비튼다. 예를 들어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정신과 닥터 릴리스는 이를테면 강해 보이지만 결국은 수동적인 ‘팜므 파탈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강인함을 보인다.

원작을 토대로 공동 각본가 킴 모건(<사이트 앤 사운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등에 글을 기고해온 비평가)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녀의 영향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스탠튼을 위해 세 명의 ‘아버지’를 만들려고 했다. 그의 어두운 면을 비춰주는 인물들로, 각각의 여성이 그 역할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수행해낸다. 몰리(루니 마라)는 순진하다. 평범하고 착한 여성이야말로 현명하게 삶을 헤쳐나간다. 서커스에서 점성술사로 일하는 지나(토니 콜렛)는 스탠튼과 관계하다가 헤어지지만 그 순간에도 전혀 울지 않는다. 여느 멜로드라마의 연약한 여성의 모습이 아니다. 팜므 파탈처럼 보이는 릴리스 박사(케이트 블란쳇)는 과거의 상처가 깊지만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간 얼마나 많은 누아르 영화에서 팜므 파탈 캐릭터들이 죽거나 처벌당했나. 킴과 나는 그렇게 전형적으로 인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반드시 이 영화의 영웅으로 만들자고 했다. 이 세 여성이 스탠튼과의 관계로부터, 비극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랐다.

브래들리 쿠퍼와의 작업은 어땠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익살스러운 로켓 연기를 떠올려보면, 이 영화에서 사람들을 꾀는 말재주가 있는 사기꾼 기질에 잘 어울려 보인다. 특히 제작이나 연출 경험도 있는 배우라서 소통의 지점이 컸을 것 같다.

너무 판타스틱한 배우이자, 한편으로는 브래들리 자체였다. 두 가지 면에서 그는 이 영화에 없어서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 일단 스탠튼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매력이 있어야 했는데, 브래들리의 연기와 매력이 그 믿음을 충분히 제공해준다. 그는 배우뿐 아니라 감독이기도 해서 연출의 시점까지 볼 줄 안다. 정말이지,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체를 이해하고 있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에게 정말 많이 의지했다. 촬영장은 매일매일이 문제의 연속인데 그럴 때마다 그가 언제나 최종 해결책을 찾아내줬다. 불과 3년 만에 우리는 마치 10년간 알아온 친구 같은 신뢰를 쌓았다.

<캐롤>의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다시 만난 작품이자, 윌렘 대포, 리차드 젠킨스, 토니 콜렛 등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엄청난 배우들과의 협업이었다.

케이트 블란쳇이나 브래들리 쿠퍼 같은 대단한 배우가 눈앞에 있고, 그들과 작업을 하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내가 고집해오던 스타일이 바뀌는 걸 경험하게 된다. 이전까지 난 장면을 조각조각 찍어왔다. 머리에서 내가 본 장면을 정확히 구현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하지 않아왔다. 그런데 이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매 장면, 매 순간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면서, 카메라가 모든 앵글에서 장면을 촬영할 수 있게 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결국 이런 과정 끝에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깨달음을 얻고 배운다는 것이 기쁘다.

촬영 감독 단 라우스트센과는 초기작 <미믹>, <크림슨 피크>(2015),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 이어 또 한 번의 작업이다. 딥 블루 색감부터 누아르의 색감을 찾은 시도가 돋보인다.

예를 들어 레드는 시골에 남은 유랑 극단 카니발의 흔적 같은 것이다. 도시에는 레드가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레드는 릴리스 박사의 립 컬러와 몰리의 드레스, 구세군 간판이 전부다. 이곳엔 푸른빛이 감도는 골드, 블랙, 화이트가 메인 컬러가 된다. 카니발은 매우 인간적이고, 더럽고, 진흙투성이에다, 축축한 공기가 감싸고 있다. 이렇게 시골의 카니발은 모든 것이 역동적으로 살아 있고 젖어 있는 반면에 도시의 이미지는 골목처럼 직선으로 곧거나, 유리 거울, 차가운 검은 바닥 같은 것으로 표현되고 사람들에게도 벽이 느껴진다. 할리우드 클래식 영화 같은 색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1947년 원작이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 멘탈 붕괴를 담고 있다. 오늘날의 관객에게 호응하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탠튼은 자신의 공허함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 더 많이 가지려 애쓴다. 그렇게 불안함에 젖어 있던 삶이 그를 불행하게 만든다. 스탠튼이 가진 그 불안감을 지금, 현재의 우리 역시 같은 방식으로 느낀다. 우리 모두 매우 빠르게,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거짓과 진실의 차이가 희박하고 명확하지 않은 시대다. 진실을 말하는 대신 거짓을 일삼는다. 나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잔인해지는 시기라고 본다. 사람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다른 무엇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이 캐릭터들을 통해 인지하길 바란다.

벌써 넷플릭스 <피노키오> 연출에, 써놓은 시나리오만 해도 수십 편에 달한다고 SNS에 썼다. 끊임없는 창작의 비결은 무엇인가.

음(웃음). 모든 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어릴 때 난 나 자신에게 항상 이야기를 해왔고, 그래서 혼자가 아니었고 외롭지 않았다. 난 정말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는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내가 우리를 위한 치료제 같은 이야기를 그렇게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