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큐레이터의 현대 미술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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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큐레이터의 현대 미술 대담

2022-02-14T10:44:38+00:00 2022.02.14|

런던 출신인 조나단 앤더슨과 러셀 토비는 절친한 친구이자 현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팬이다. 그들이 공감하는 열정에 대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38세의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북아일랜드와 이비자를 오가며 인격 형성기를 보냈다. 두 곳의 극명한 대조는 그의 독특한 감성을 위한 영감과 색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프라다에서 미우치아 프라다의 믿음직스러운 조력자였던 마누엘라 파베시(Manuela Pavesi)와 함께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경험을 쌓은 후, 2008년 독립해 자기 브랜드를 설립했다. 그의 첫 JW 앤더슨 남성복 컬렉션은 곧바로 성공을 거뒀다. 그러다 2013년 LVMH가 JW 앤더슨 브랜드의 소수 지분을 인수하고 그에게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의 지휘권을 넘겨주면서, 그는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차원에 들어섰다. 남성복과 여성복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고, 종종 두 가지를 한 번에 선보이기도 했다. 앤더슨은 자신의 패션을 ‘양성적인 것’으로 규정짓는 데 만족한다. 변화무쌍한 패션계에서 그가 꾸준히 생명력을 이어가는 요인 중 하나가 예술을 향한 사랑이다. 그는 2019년 당시 테리사 메이(Theresa May) 총리에 의해 V&A 뮤지엄 큐레이터로 임명됐고, 이를 계기로 그의 컬렉션은 더 큰 명성을 얻었다.

마흔 살의 러셀 토비(Russell Tovey)는 열세 살에 영국 TV 시리즈 <Mud>에 아역 배우로 출연하면서 어린 나이에 유명해졌다. 그는 무대와 라디오 등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다, 2007년 앨런 베넷(Alan Bennett)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 <The History Boys>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바로 이 시점에 그의 배우 커리어가 TV와 극장을 넘나들며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게이 남성들의 일상을 소재로 하는 HBO 시리즈 <Looking>을 통해 2015년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엠마 톰슨 주연, 러셀 T. 데이비스(Russell T. Davies) 각본으로 뜨거운 기대를 모았던 시리즈 <Years and Years> 등 2019년 다수의 작품이 뒤이어 나왔다. 토비는 동성애를 숨기지 않고도 배우로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는 불과 얼마 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10년 넘게 수집할 정도로 모던 아트를 향한 뜨거운 애정에 대해서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친구이자 갤러리 오너 로버트 디아멘트(Robert Diament)와 함께 팟캐스트 ‘Talk Art’를 시 작했고, 이를 서적 형식으로도 발간하고 있다. 마게이트 컨템퍼러리 아트 페스티벌(Margate Contemporary Art Festival) ‘NOW’의 큐레이터로 임명되기도 했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3년 전 토비가 앤더슨의 로에베 캠페인을 촬영한 바로 그 바닷가 마을이기도 하다. 그때 이후 두 사람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공통점을 많이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Jonathan 늘 당신을 존경하고 있어요. 당신을 배우로서 처음 만났죠. 프랑스 남부에서 휴가를 보낼 때 <Looking>을 몰아서 본 기억이 납니다. 너무 더워서 바깥에 나갈 수 없었거든요. 결국 하루 만에 시리즈를 모두 보고 말았죠.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우리가 소호의 로에베 매장 오프닝에서 만났을 때는 둘 다 모던 아트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죠. 종종 사람들에게 예술품을 수집하는 이유를 묻곤 하죠. 당 신은 왜 수집하나요?

Russell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물건을 모았죠. 그냥 수집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고, 정리하고, 재배치합니다. 제 환경의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죠. 그것도 모두 수집가 DNA 덕분인 것 같아요. 우리는 매일 자신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기 위해 환경을 큐레이팅하고 싶어 하죠. 저는 늘 물건을 쌓아둡니다. 이런 집착이 어디에서 왔는진 모르겠어요. 정말 오랫동안 그런 습관을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물건 수집 때문에 이상한 아이처럼 보였죠. 창피했어요. 그래서 멈추려고 무진장 애썼죠. 그렇지만 성장하면서 그런 큐레이터가 되는 게 더 편하더라고요. 결국 이런 팟캐스트를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덕분에 제 삶이 풍성해져서 아주 좋아요.

Jonathan 저도 동감해요. 어린 시절 시리얼 상자에 들어 있는 작은 플라스틱 동물을 모았어요. 그러다 작은 도자기 동물 수집으로 옮겨갔죠! (웃음) 외할아버지가 특히 16~17세기 시계를 수집하는 엄청난 수집가셔서 그런 제 모습이 덜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침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색깔이었죠. 50번 넘게 페인트칠을 다시 한 것 같아요. 블루, 화이트, 블랙, 그린으로 바꿔가면서요.

Russell 옐로에 빠진 단계는 없었나요?

Jonathan 없었어요. 그런데 피스타치오색은 있었어요. 살짝 특이한 그린 컬러죠. 어릴 때 프라다에 꽂혀 있었어요. 프라다가 더블린에 피스타치오색으로 단장한 매장을 열었죠. 그리고 저도 당신처럼 종종 가구를 재배치하곤 했어요. 여전히 집에서 그러고 있죠. 새것을 들이면 원래 있던 것이 자리를 내줘야 하니까요.

Russell 물건이 서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죠. 새것을 들여오면 기존 물건 중 일부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럴 때 당신이 큐레이터가 되는 거죠. 그것이 바로 수집가의 운명입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물건이 너무 많아 일부는 창고에 넣어둬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까맣게 잊고 지내다 다시 발견하면, 그것들은 심지어 더 유의미해지죠. ‘10년 전 내가 이것을 구매한 이유를 이제 알겠어!’라고 여기게 됩니다. 갑자기 최근에 들여온 아이템과 완전히 새로운 대화가 이뤄지는 거죠.

Vogue 이른 나이에 도자기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됐군요, 그렇죠?

Jonathan 외할아버지는 영국 도자기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었어요. 특히 19세기 말 브랜드 마틴 브라더스(Martin Brothers)를 좋아했습니다. 그에겐 성배나 다름없었죠! 그 브랜드는 정말 이상한 도자기 새를 만들었어요. 기괴했죠. 외할아버지는 평생 그것을 갖고 싶어 했고 마침내 그것을 찾았어요! 그것은 수집가로서 그가 찍은 정점이었죠. 어린 시절 저는 모든 것을 지켜봤어요. 농부였던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는 뭔가를 수집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죠. 하지만 정말 열심히 일했던 외할아버지에게 그의 수집품은 정서적 안전밸브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다른 아이들에게 물건 수집을 향한 사랑을 결코 터놓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은 특별한 앨범에 축구 선수 스티커를 모아 붙이는 것 정도였죠. 학교에 가서 도자기 동물 수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어요!

Vogue 수집하지 않은 시기도 있었나요?

Russell 없어요. 하지만 자동차나 우표, 동전에는 절대 관심 없었죠.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에만 흥미가 있었어요.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해 창의적으로 애쓴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수집 대상이 장신구에서 모던 아트로 바뀐 거죠. 작품을 생각하면 설레기까지 했어요. 예를 들어, 당신 덕분에 짐 패트리지(Jim Partridge)와 리즈 웜즐리(Liz Walmsley)를 만났을 땐 정말 특별했어요. 그들 작품을 당장 사고 싶었죠. 작품을 보고 그저 감탄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구매하고 수집해야 했죠.

Jonathan 굉장히 진부한 질문이겠지만 맨 처음 구매한 모던 아트 작품은 뭔가요?

Russell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모노프린트. 2007년 <The History Boys>를 촬영하면서 제 수준에는 최고의 출연료를 받았어요. 그래서 엄청난 금액, 그러니까 거의 1,000파운드가 넘는 돈을 그 작품 구매에 썼죠. 하지만 모든 일이 말처럼 쉽게 이뤄진 건 아니었어요! 런던에 있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 갔는데 엄청 무섭더라고요. 제가 갈 곳이 아니라고 느꼈죠. 누군가 제게 나가라고 말할 것 같아 겁이 났어요.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면서 말이죠. 이러저러해서 사람들에게 트레이시의 모노프린트를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그중 한 작품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구매가 가능한지 물었더니, 갤러리 측 담당자가 살 수 있는 제품이라고 말하며 계산서를 보여주더군요.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죠. 계좌에 있는 돈으로 충분한지도 몰랐죠! 실제로 가격이 장벽은 아니었어요. 비이성적 측면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국면을 전환시키는 일이 있었던 거죠. 제가 트레이시 에민을 직접 만나 친구가 됐다는 겁니다. 모던 아트를 향한 설렘의 일부는 창작자를 직접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서 비롯됩니다. 나중에 트레이시가 갤러리 오너 로버트 디아멘트를 소개해줬어요. 그와도 친구가 됐고, 저는 지금 그와 함께 팟캐스트 ‘토크 아트’를 진행하죠. 그것을 책으로도 만듭니다. 이제 로버트는 가장 절친한 친구입니다. 그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위한 협력자, 괴짜 동맹군이 됐죠.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우고,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이것은 끝없는 강박이기에, 그것에 대해 함께 대화할 친구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이 발견한 것과 당신이 사랑에 빠진 것에 피드백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러면 당신은 더 열광하게 되죠!

Jonathan 충분히 공감해요. 오랫동안 그런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중독적인 성향을 지녔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최근에야 이해했죠. 제가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두 가지를 고르자면, 담배와 모던 아트입니다. 하나하나 구매할 때마다 친구, 아티스트 같은 사람들이나 그 밖의 것과 연결되죠. ‘아무개 씨 작품을 확인해보세요. 당신에게 흥미로울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죠. 그것은 우리 삶의 순간, 만남, 그리고 당신이 그 특정 시간에 하던 일과 부합하죠. 안전밸브에 대한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게 되네요. 그런 열정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것은 우리처럼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며, 휴식의 한 방식이 됩니다. 그것은 물건 자체보다 예술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특정 순간에, 그 작품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죠. 그리고 우리가 배우고 지식을 얻도록 이끕니다.

Russell 맞아요. 그것은 절대 끝나지 않는 기나긴 교육입니다. 당신 말이 옳아요. 하나하나 획득하는 건 우리 삶의 순간순간과 연결돼 있습니다. 자화상 같아요. 수집품은 정말이지 내 인생을 써 내려간 일기와 같죠.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보면, 제 친구 트레이시 에민이 보이고, 그녀의 감수성, 시대, 현대미술의 역사가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 배우로서 일을 시작한 순간과 그 시절 제 삶에 관여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죠.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바로 그때 저를 감동시킨 이유입니다. 당신의 소장품은 증인이 되고, 여러분이 어떤 존재였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보여주는 유산이 됩니다. 물론 투기 수단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수집한다면. 자신이 곁에 두기로 스스로 선택한 작품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합니다.

Jonathan 맞아요. 저는 작품 사이에 형성된 낯선 대화가 마냥 마음에 들어요. 그것이 아마 제가 형편없는 큐레이터인 이유일지도 몰라요. 물건을 이리저리 옮겨놓는 것을 멈출 수 없거든요! 저는 두 작품 사이에 좋은 대화를 찾아내는 게 좋아요.

Russell 그건 마법 같아요! 정말 그래요. 그럴 때 자신이 큐레이터가 돼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작품을 나란히 놓고 맞은편에 앉아 그런 대화가 이뤄지는지 직감적으로 느껴보려고 합니다. 저는 작품 위치 선정에 완전히 집착해요. 0.5cm 정도 돌리고, 다시 마음을 바꿔 0.5cm 정도 뒤로 빼죠. 아니면 왼쪽으로 3mm 정도 옮기고 완벽하다고 여기죠. 1시간 후 그 공간으로 돌아가 마음을 바꿔 원래 있던 대로 돌려놓습니다! 정말 강박적이에요. 중독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래서 마게이트 페스티벌의 큐레이터가 되니 정말 스릴 넘치더라고요! 누군가 제게 이런 위치 선정의 책임을 맡김으로써 강박 장애를 타당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았으니까요.

Jonathan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너무 고맙군요. 저 혼자만 그러는 게 아닌 것 같아 진짜 좋아요.

Vogue 조나단,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예술을 창조하고 있습니까?

Jonathan 정말 난처한 질문이군요. 의견이 계속 바뀌고 있어요. 제 일에 관한 한 그렇게 말한다는 게 불가능해요. 러셀,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를 볼 수 있나요?

Russell 제가 출연한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한 번은 봅니다. 그러고는 절대 안 봐요.

Jonathan 저에게 그건 매우 복잡한 질문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제 패션쇼 주제로 삼기도 했죠. 어느 날 마크 제이콥스와 점심을 먹는 내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패션사의 일부 시기를 분명 아트로 묘사할 수 있어요. 마담 그레나 코코 샤넬 같은 디자이너가 트위드 수트를 만들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당대 사회에서는 패션이 예술 세계의 일부인 뭔가를 지니고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그렇다고 말하기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것과 별개인 것이 대량생산 때문이죠. 패션은 분명, 그 자체로 예술 양식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자신을 아티스트보다 큐레이터로 봐요.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재맥락화하고, 그다음 의상에 담아내니까요. 저는 아티스트와 협업할 때나 그들을 후원할 때 ‘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정말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그 말을 자신에 적용할 뿐입니다.

Russell 패션을 예술 창작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아티스트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생각에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Felt Suit’ 시리즈가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Jonathan 그는 정말 천재예요. 그 시리즈가 독특하고 거의 신성시되니 좋아요.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가 자기 작품에 그것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스와 쿠사마는 옷과 물건을 영원히 지속되는 생각으로 전환하고 있어요. 패션이 진과 데님, 화이트 티셔츠 등 신성시되는 의상을 만들 때 예술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패션은 당연히 예술의 영원성과 정반대로 분명 수명이 짧아요. 또 예술은 유용하지 않다고 여기죠. 예술은 제게 필수지만 유용성을 지니도록 만든 대상은 아니라는 뜻이죠. 반면에 우리 모두가 벌거벗고 돌아다니지 않는 한, 패션은 유용성을 지닙니다. 그렇지만 예술과 패션의 관계가 진화하고 있어요. 미술계 사람들이 패션을 경멸하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점을 나타낸다고 여기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요즘은 동서양이 점점 더 합쳐지고 있어요. 중국은 초강대국으로 거듭나고, 모든 것이 바뀌고 있습니다. 결국 모던 아트는 예술과 패션 모두 ‘Luxury’라는 것을 깨달은 후, 서로 관여할 준비를 해가는 듯 보여요. 패션과 예술의 주요 공통점은 관객입니다. 두 가지 모두 값을 치르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죠.

Russell 정말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대중화하려는 당신의 프로젝트로부터 큰 영감을 받고 있어요.

Jonathan 한 아티스트에 빠지면 그의 작품을 여기저기 두고 싶기 마련이죠! 제가 최근에 한 가장 만족스러운 협업 중 하나가 조 브레이너드 재단(Joe Brainard Foundation)과의 협업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작가이며 아티스트로서 좋아해요. 그는 이 사회의 아트 시스템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죠. 저는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알릴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그 유명한 ‘Show in a Book’, 즉 우리의 룩을 통해 그 일을 하게 됐죠(록다운 기간 언론사에 보낸 패션쇼 프레젠테이션). 사람들은 실제로 잘 알지 못했던 아티스트의 작품을 재발견하게 됐습니다. 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아트를 알렸죠.

Russell 당신은 스웨트셔츠에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wicz)의 ‘Burning House’도 다시 담아냈어요. 저에겐 굉장히 중요하죠. 그 옷을 구매한 사람 중 상당수가 에이즈 활동가의 역사를 뜻하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것은 파워풀하고 한껏 고조된 정치적 심벌이죠.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스웨트셔츠에 프린트됐어요. 그래서 데이비드의 메시지가 여전히 브루클린과 뉴욕 전역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워요!

Jonathan 네, 그는 제가 너무나 만나보고 싶었던 수많은 아티스트 중 한 명이죠. 피터 후자(Peter Hujar)도 그 명단에 포함됩니다.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는 함께 더 많은 일을 이뤄냈을 테니 지금이라도 세상에 다시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동성애 문화를 반대하는 나라에서도 입을 수 있는 스웨트셔츠를 통해 그의 작품을 알리는 게 너무 좋아요. 이런 지하 무정부주의 발상은 아일랜드 혹은 영국, 즉 제 뿌리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Russell 또한 당신은 아티스트를 위해 그런 일을 합니다. 그런 활동은 우리 예술 프로젝트의 목적이었습니다. 아티스트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하죠. 그리고 한 단체를 통해 누구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을 그렇게 널리 알리다니 정말 대단했어요!

Jonathan 최근에는 상황이 퇴보하고 우리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제가 뉴스를 너무 많이 접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팬데믹이 이미 달성된 진전의 일부를 저지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동성애자인 것이 멋진 나의 작고 완벽한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요. 간혹 촬영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곳에 가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 가면 생각보다 인식의 전환이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단지 동성애자 문화만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일반적 평등에 관한 인식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팬데믹이 그 밖의 많은 이슈를 차단하고 있어 정말 걱정이 깊어집니다. 진전하는 듯 보이던 모든 것이 잊히거나 악화되고 있어요. 어쨌든 제가 말하려는 건 코로나보다 분명 더 끔찍한 에이즈 같은 다른 종류의 팬데믹을 겪은 사람들, 정당화나 정의를 누려보지 않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데이비드 워나로비치와 피터 후자 같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당신은 그들이 놀라운 정치적 도구를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저는 2010년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이 연출하고 프랜 레보위츠(Fran Lebowitz)가 출연한 놀라운 다큐멘터리 <Public Speaking>을 봤어요. 그녀가 앤디 워홀과 함께 작업하던 시기를 다룬 그 작품에서, 그녀는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와 확산 일로에 있는 에이즈에 대해 이야기하죠. 그녀는 이미 고인이 된 아티스트들은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성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성생활을 즐긴 사람들인 거고요. 그것이 당시 그들 작품에도 분명히 반영되었다고도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그 시대 예술은 동성애자 문화에 기반을 깔아주는 도구로 사용됐죠. 정말 황홀한 시절이었습니다.

Russell 특정 시점에 사회가 어땠는지 알고 싶다면 그 시대가 만들어낸, 정부의 선전과 상반된 예술을 보면 됩니다. 그러면 답을 얻게 되죠.

Jonathan 요즘 미국에서 새로운 퀴어 아티스트가 혜성처럼 등장하고 있어요. 좋은 일이죠. 도론 랭버그(Doron Langberg), 앤소니 쿠다히(Anthony Cudahy), 살만 투르(Salman Toor)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들 중 하나가 제프리(Geoffrey)라 불리는 인물이에요. 저도 이유는 잘 모르지만, 온라인에서 늘 벗은 모습을 보여줘요. 관음증을 앓는 사람처럼 그의 일상 속 모습을 지켜보죠. 때때로 ‘와, 저렇게 살고 싶다. 하루 종일 벌거벗고 그림 그리면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아티스트 커뮤니티가 다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너무 좋아요. 그전에는 폴 카드머스(Paul Cadmus)와 조지 플랫 라인스(George Platt Lynes)가 있었죠. 퀴어 역사상 정말 놀라운 시절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종의 르네상스를 거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Russell 동감입니다. 저는 키스 해링과 앤디 워홀 같은 인물 덕분에 모던 아트를 좋아하게 됐죠. 지금 퀴어 아티스트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인식이 부족한 곳에 가서도 지낼 수 있다는 것과 같죠. 굉장히 오랫동안 퀴어 문화는 게토, 즉 일정한 격리 구역에만 처박혀 있었죠. 여성 아티스트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문이 열리는 시기에 살다니 정말 흥미로워요.

Jonathan 그 말이 사실이에요. 정말 멋진 시대죠. 그 말을 들으니 얼마 전 가진 저녁 식사 자리가 떠오릅니다. 옆자리에 굳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엄청난 수집가 한 분이 앉아 있었죠. 그가 자신의 이성애 중심적 인 컬렉션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더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좋아하는 퀴어 아티스트를 제게 묻기 시작하는 거예요. 뭔가 이제 꿈틀거리고 있고 퀴어 아트가 서서히 주류에 편입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그에 게 사이 톰블리(Cy Twombly)가 동성애자이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죠. 지금 제가 뭔가를 구매한다면, 저는 그 물건뿐 아니라 그것이 담은 역사도 구입하는 거죠. 여기서 상상력이 핵심이에요. 저는 폴 카드머스의 이미지나 톰 오브 핀란드(Tom of Finland)의 이미지에서 자신을 찾고 싶어요. 그것이 제 세상은 아니지만 저는 그 안에서 자신을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Russell 아티스트는 우리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우리의 존재를 말합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 도론 랭버그의 작품이 떠오르네요. 향수가 느껴지는 그 작품에는 롱아일랜드에서 추위로 떨고 있는 두 남자가 등장하죠. 정말 멋진 그림이에요. 두 남성이 어떤 의도도 갖지 않고, 게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정치적이지 않다고 해도 멋진 작품이죠.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작품입니다. 다른 그 어떤 것이 될 필요도 없어요. 그냥 남자 둘이고 동성애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VK)